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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27화 (128/232)
  • 127화

    ‘지금부터가 문제네.’

    마녀 라누벨라가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오게 만든 남성 부랑자.

    한심하다고 평가받은 이 남자의 꿈이 대체 어떻길래?

    “...아니지.”

    일단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사하는 것부터가 급선무다.

    하지만 내가 그를 옮기기 위해 만지면 바로 꿈에 빨려 들어갈 터!

    올림픽 때처럼 선배가 내 몸을 조종해줄 수도 있지만, 이런 음침한 장소에서 실험해보고 싶진 않았다.

    삑-

    스마트폰을 꺼내서 이 근처에 대기 중인 전지은에게 연락했다.

    (강문수 씨, 무슨 일인가요?)

    “저랑 똑같은 능력을 보유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환자도. 엘몰랑스 병원에서 응급차를 보낼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위치가 어떻게 되세요?)

    “흠... 위성지도를 찍어서 보내겠습니다. 들어오진 마세요. 이 주위에 안타까운 분들이 많습니다.”

    (네. 병원에는 제가 연락할게요.)

    뚝-

    통화가 끊겼다.

    “...얻은 정보가 없네.”

    라누벨라가 떠나지 못하게 붙잡고 물어볼 기회였다. 필요하다면 물리적인 힘을 동원할 수도 있었고.

    그러나 떠나게 놔뒀다. 그녀의 언변에 흔들린 게 원인이리라.

    선행.

    대가 없는 봉사.

    나랑 생각이 다르긴 하지만, 라누벨라가 생각하는 ‘선(善)’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단정할 수 없었다.

    응급차를 기다리면서 주위를 슬쩍 둘러봤다.

    “......”

    “......”

    모두가 현실에 절망한 얼굴. 이들은 아직 ‘희망’을 품고 있어서 꿈속에 사로잡히지 않은 걸까?

    그럴 리 없다.

    ‘뭔가... 선별 기준이 있을 텐데.’

    라누벨의 발병 원인조차 모르는 답답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치료하는 것뿐.

    “...이봐.”

    “저를 부르셨습니까?”

    “그래. 너.”

    힘없이 바닥에 드러누운 여성 부랑자가 눈만 움직여서 나를 올려다보며 긍정했다.

    꾀죄죄한 몰골이긴 하지만, 딱 봐도 아직 젊은 나이.

    “......”

    딱히 대화를 나눌 마음은 없었다. 인생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아닐까, 라는 감상이 끝.

    “부럽네. 너는 적성이 좋잖아.”

    “제 적성을 아십니까?”

    “아니. 하지만 좋은 적성이 맞잖아?”

    “과연...”

    이 사람은 자신의 실패 원인이 적성에 있다고 보는 듯했다.

    “맞지?”

    “100번.”

    “응?”

    “제가 취업하기 위해 적성검사결과표를 들고 면접을 본 횟수입니다.”

    “......”

    “이래도 모르면 됐습니다.”

    “......”

    여성 부랑자는 더 말을 섞기 싫다는 듯이 몸을 돌려버렸다.

    ‘선행이라...’

    인생을 한 번 포기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아니면, 마녀 라누벨라처럼 행복한 죽음을 주는 것이...

    “강문수 씨. 안녕하십니까.”

    “엘몰랑스 병원에서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이 사람들, 교통신호등을 무시하고 질주한 걸까? 30분 거리를 10분도 안 걸려서 도착했다.

    “이쪽입니다.”

    나는 문제의 환자를 응급요원들에게 맡기고 병원으로 향했다.

    * * *

    젊음과 적성도 중요하지만, 경력직이 우대받는 풍조가 강한 이유는 일에 능숙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의미로, 나랑 어느새 5번이나 손발을 맞춰온 서혜주 과장님은 매우 능숙한 동업자!

    그랬는데,

    “미안. 이젠 부원장이라서 처리해야 할 일이 좀 많네.”

    엘몰랑스 병원의 이인자로 승진한 서혜주 부원장님.

    생명공학과만 관리하면 됐던 과장 시절보다 일이 10배로 늘었다나? 엄살이 심한 한탄이 계속됐다.

    “그러면 이젠 작별입니까?”

    “내가 미쳤니? 네가 아니었으면 이 자리까지 20년은 걸렸을 텐데.”

    “하지만 바쁘시다면서요?”

    “그래서 적성과 경험을 고루 갖춘 쓸만한 조수를 고용했지.”

    서혜주 부원장님이 옆에 윤소라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강문수 씨! 잘 부탁드려요!”

    만날 때마다 잘 부탁한다는 인사로 시작하는 동갑내기 소녀.

    고용주가 잘 해주는 걸까? 삐쩍 말랐던 몸에 살이 붙으면서 여성스러움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환자를 골라 보라고 할 예정이었는데, 내가 엄선해서 짠 명단이 바보 같을 정도로 정반대의 환자를 데려왔구나?”

    “그렇게 됐습니다.”

    “자기 이름을 라누벨라 13세라고 소개했다고 했지?”

    “네.”

    “라누벨, 라누벨라. 어때?”

    “비슷하네요.

    “예전에 한 번 말했는데, 라누벨은 지구의 사회부적응자들을 다른 세계로 데려간다고 전해지는 여신(女神)의 이름에서 유래했어.”

    “다른 세계... 꿈?”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지? 나도 마찬가지야.”

    “흠.”

    정보가 부족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인터넷 검색이나 의뢰로 찾을 수 없는 특수한 정보를 얻으려면 직접 뛰어다니는 수밖에 없다.

    “소라야?”

    “네. 이름 박효만, 나이 26세, 적성 시공업자, 시공사 동료들에게 돈을 빌리고 4개월 전에 실종, 국내의 마지막 라누벨 환자입니다.”

    윤소라가 환자의 개인정보를 빠르게 읊었다.

    “마지막이란 건...?”

    “이 사람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제가 마지막 환자였어요.”

    “흐음.”

    마지막이란 말이지?

    “걱정하지 마. 네가 해외로 출장 가는 일은 거의 없을 테니까. 아쉬운 환자 쪽이 와야지.”

    “그건 좋네요.”

    “왕족 빼고.”

    “...왕족은 뭐가 아쉬워서 꿈에 사로잡혔데요?”

    “궁금하면 나중에 직접 물어봐.”

    “네.”

    현재,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 박효만의 사연은 흔해 빠져서 자세히 들을 필요성도 안 느껴졌다.

    친한 직장동료들에게 돈을 빌려서 투기를 했고, 적성이 투기꾼인 전문가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하고 파산!

    ‘아버지랑 참 비슷해.’

    통계에 따르면, 자신의 적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도전했다가 망하는 사례가 99.8%쯤 한다고 한다.

    0.2%는 적성을 무시하고 성공?

    아니다.

    파산이나 신체적 장애 등의 큰 손실을 보기 전에 정신 차리고 빠르게 포기한 사람의 비율.

    예외나 기적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만은 다르다고 생각하지...’

    잘 먹고 통통하게 살이 오르기 전까지는 자신이 양식장 물고기 신세란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아버지도 그랬다.

    “바로 들어갈래?”

    “흠... 일정이 어떻게 되죠?”

    “그건 걱정하지 마. 소운현 씨가 대신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이번에도 네 몸을 조종해준다면.”

    “환자의 건강은 어때요?”

    윤소라 때처럼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꿈보다 현실의 시간이 매우 빠르게 흘러갈 터.

    마녀가 이번 환자에게 무슨 짓을 해놨는지 궁금하지만, 지나친 희생은 사양하고 싶다.

    “적성이 시공업자라서 몸이 튼튼한 것 같아. 발견된 장소가 열약했던 점을 고려하면 매우 양호해.”

    “그건 다행이네요.”

    “나는 회의가 있어서 이만 가볼게. 나머지는 내 조수랑 해봐.”

    “아, 네.”

    정말 바쁘신 모양이다.

    “잘 부탁해요!”

    “그 말만 벌써 3번째인데...”

    “처음이라서 떨리긴 하지만, 환자의 건강은 부원장님 대신 제가 관리할 예정이에요. 달리 필요한 정보가 있으시면 빠르게 준비할게요.”

    의욕은 좋지만, 믿음직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지. 처음이니까.’

    서혜주 부원장님이 윤소라를 선택한 이유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꿈속을 직접 경험한 환자 출신.

    현실에 만족하는 부원장님에게 없는 그녀만의 장점이었다.

    “SSS급 초능력.”

    “예?”

    “꿈의 정보입니다. 소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환자가 꿈속에서 SSS급 초능력을 얻었다는 것 같습니다.”

    SSS급.

    대충 해석해보자면 S급보다 좋은 SS급마저 능가하는 SSS급 초능력이라고 보면 될까.

    이걸 직역하면?

    슈퍼슈퍼슈퍼(Super-Super-Super).

    게임이나 소설에서 등장하면 그러려니 넘어가겠지만, 현실에서 정말 저런 표현을 쓴다면 받아들이기가 조금 버겁지 않을까?

    아무튼,

    “예전 일이 떠올라서 하루 정도 준비하고 들어갈 예정입니다.”

    “예전 일이요?”

    “안 좋은 일이 있습니다.”

    마취도 없이 내 팔다리가 뜯겨 나가는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SSS급 초능력.

    그 힘이 홀로 세상을 지킬 수도, 파괴할 수도 있었던 마법소년 최강민이랑 비슷한 수준이라면 버거우리라.

    그때처럼 비참하게 또 죽고 싶진 않았다.

    “어떤 준비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네. 대단한 건 아니지만.”

    * * *

    SSS급 초능력.

    누가 시초인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광범위하게 쓰이는 용어였다.

    게임, 소설, 만화, 영화...

    여기서 내가 파악해야 하는 것은 환자가 무슨 능력을 보유할 수 있는지 추측하는 것이다.

    “...엄청나군.”

    상상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조금만 조사했을 뿐인데도 무시무시한 능력으로 한가득했다.

    시간 정지, 공간 절단, 정신 지배, 무한 성장, 절대 불사, 과거 회귀, 장비 제작, 괴물 조련...

    성공하지 못하는 게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것들뿐!

    몸을 사려야 할 것 같다.

    ‘나만의 세계가 만능은 아니란 말이지! 육체파에 약해서...’

    마법소년 최강민처럼 ‘물리 마법’에 특화된 SSS급 초능력이면 절대 못 이길 수도 있다.

    빛의 속도를 어떻게 상대해?

    반응조차 할 수 없는 순수한 물리력은 진짜 곤란하다.

    “...좋아.”

    준비는 끝났다. 나머지는 직접 몸으로 부딪혀보는 수밖에.

    “이쪽에 누워주세요.”

    환자랑 나란히 붙은 침대를 가리키는 윤소라.

    그녀의 적성은 의사일 텐데, 분홍색 간호사 복장이 무척 잘 어울렸다.

    “잘 다녀와.”

    이 순간만큼은 아무리 바빠도 직접 확인하는 서혜주 부원장님.

    나중에는 이것도 귀찮다며 생략하지 않을까?

    아무튼,

    “후우!”

    탁.

    심호흡 후에 굳은살 박인 환자의 거친 손을 잡았다.

    * * *

    “...이런 차이군?”

    예전에 선배가 Wifi에 비유하면서, 환자랑 거리가 가까울수록 ‘나의 세계’도 강해진다고 했던가.

    단순한 추론이 아니었다.

    불끈!

    온몸에 넘쳐 흐르는 힘.

    사극 <궁녀 덕춘이>의 세계에서 신비한 선술을 쓰던 도적이 무더기로 덤벼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위대함을 조금은 알겠냐?)

    오! 위대한 선배님!

    (그래. 그 마음가짐을 앞으로도 쭉 유지해라.)

    네.

    그래서 내 몸은?

    (혈신으로 불린 내가 애송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계약이니 특별히 해주마.)

    스포츠토토는요?

    대박의 기회를 놓쳤다.

    (흥! 도박 같지 않은 시시한 도박은 안 한다.)

    “아, 네.”

    선배의 정말 시시한 이유로 돈을 쓸어 담을 기회를 놓쳤다.

    (욕심내지 마라. 애초에 포기한 돈이지 않느냐?)

    “그건... 그렇죠.”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 올림픽 금메달 배당금이 200배가 넘을 줄 몰랐다.

    윤소라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절대! 절대로 그녀를 구하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네가 마녀에게 속물이란 소리를 들은 거다.)

    “킁.”

    선배의 핀잔에 반박하지 못한 나는 주위를 찬찬히 둘러봤다.

    폐허로 변한 도시.

    과거에 아름다웠던 건축물들이 철근콘크리트 잔해로 변해 있었다.

    ‘...안전한 장소는 아니군?’

    하지만 지금은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팟!

    달리면서 오감을 극대화했다.

    꿈속에 진입하는 첫 시작 지점은 항상 환자의 주변이니까. 운이 좋으면 금방 끝내고 현실로 귀환할 수-

    “쿠워어어-!”

    콰르르!

    반쯤 무너진 건물 안에 숨어있던 괴생명체가 포효를 터트리며 내게 달려들었다.

    “이건 또 뭐야...?”

    (멍하니 구경하면 죽는다.)

    “압니다!”

    움직이기 편한 운동복만 입고 넘어온 게 아니다.

    서걱-

    발도술(拔刀術).

    허리에 찬 검을 잽싸게 뽑으며 두 발로 달리는 늑대의 앞발? 오른팔을 자르고,

    “깨갱~?!”

    퍽!

    마무리는 깔끔한 발차기.

    두개골이 함몰된 괴물의 회색 몸뚱이가 철푸덕 쓰러졌다.

    “귀찮게...”

    “실례합니다.”

    “오! 사람이다!”

    예쁘다는 형용사는 나의 원활한 현실 연애를 위해 생략하겠다.

    “...네. 사람인데요.”

    “실례지만, 박효만 씨를 아십니까?”

    “실례는 제가 먼저 했는데요.”

    “먼저 실례하는 부분까지 실례하겠습니다.”

    “하아?”

    나를 어이없게 쳐다보는 미녀를 다그치며 생각했다.

    ‘진짜로 초능력이네?’

    이 여자, 검귀처럼 땅 위에 살짝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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