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113화 (114/232)

113화

“저쪽에서 소리가 났다!”

“헉! 또 침입자다!”

“왕세자 저하를 지켜... 어?”

왕궁의 경비들에게 쉴 틈을 안 주고 귀찮게 해서 미안하지만, 나도 물러설 수 없었다.

휙, 휘익, 부웅-

나를 향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휘둘러지는 칼날.

‘정말로 안 보이네!’

도적을 제거하기 위해 왕세자가 고용한 암살자가 죽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칼이라니!’라는 대사가 고스란히 설정으로 반영됐다.

팟-

그러나 나만의 세계를 구축한 ‘내 육체’도 상식을 벗어나긴 마찬가지. 예지에 가까운 위기감지능력이 보이지 않는 공격을 전부 피해냈다.

그리고 반격까지!

“흡!”

주위에 널린 기왓장 파편을 주워서 힘껏 던졌다.

“헛?!”

눈을 크게 뜬 도적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디로?

‘뒤!’

나는 확인도 하지 않고 두 다리를 교차하며 후퇴, 방금까지 허공이었던 내 등을 향해 뒤차기를 했다.

빡-!

묵직한 타격감.

현실에서는 살인하지 않기 위해 태권도 발차기의 위력을 조절했지만,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정확하게! 강하게! 빠르게!

그리고 현실보다 강화된 육체를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커윽~?!”

죽이진 못했다.

죽일 순 있었지만, 그 대가로 보이지 않는 칼날에 내 다리 하나를 희생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래서 살짝 경로를 틀었다.

그래도,

‘옆구리에 제대로 들어갔어. 한 방에 척추를 부러트리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내 몸이 굼떴어.’

죽이지 못해서 아쉽긴 해도 정신 못 차릴 만큼 심각한 부상!

그러나 만족할 수 없다. 이 자리에서 도적의 목숨을 확실하게 끊어놔야 안심하고 다음 계획, 왕세자 암살을 진행할 수 있으니까.

파직...!

지붕의 기왓장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강하게 박차며 도약했다.

‘딱 한 방!’

내 발차기를 맞고 뒤로 볼썽사납게 나뒹굴며 지붕 밑으로 떨어진 도적.

곧바로 추적을-

피용-!

내 머리를 노린 화살을 살짝 고개만 틀어서 피했다.

“이런.”

도적이 떨어진 기와지붕 밑을 확인하던 나는 보았다. 나를 향해 소나기처럼 떨어지는 수많은 화살을!

슝! 슝! 슝...!

무시하고 싶었지만, 내 몸은 검귀처럼 튼튼하지 않다.

‘성급했어! 이래서 왕세자를 먼저 만나서 협상했어야 했는데!’

나는 왕세자가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도적을 대신 처리해주는 중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기에 왕궁의 병사들에게 나는 단순한 침입자.

답답해도 어쩔 수 없었다.

휙!

무작정 달렸다.

낮이었다면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캄캄한 밤.

밤에도 대낮처럼 환한 현대의 도시가 아니기에 조금만 거리가 벌어져도 따돌릴 수 있다. 도적이 이 방식으로 지금까지 왕궁에 침입했으니까. 나라고 다를 건 없다.

‘그나저나...’

도적이 곧장 궁녀를 만나러 가지 않고 왕세자의 침실로 향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사극 <궁녀 덕춘이>의 원작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

암살이 목적은 아니다. 도적에게 왕세자 암살은 매우 쉽지만,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죽이지 않는다는 ‘세계의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흠... 모르겠네.”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 한창 공부해야 할 시간에 왕세자가 방에 없는 이유도 포함해서!

모르는 것 투성이다.

(너는 어째 하는 일마다 꼬이냐?)

“어흠.”

갑작스러운 혈신의 등판과 핀잔에 헛기침이 절로 나왔다.

(내가 혈신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너와 박한희가 마라톤 결승선에서 만난 연애담부터 풀어볼까?)

“헉!”

살려주세요! 선배님!

(복잡한 공항을 벗어나서 호텔로 이동하는 중이다. 큭큭! 자본주의가 좋긴 좋구나. 기다리지 않고 신속하게 입국 절차를 마쳤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직접 볼 수 없는 건 아쉽지만, 선배가 내 몸을 챙겨주고 현재 상황을 설명해주니 안심이 됐다.

(내가 처음부터 쭉 지켜봤는데, 환자랑 거리가 멀어질수록 너의 세계가 약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도적을 못 죽이고 쩔쩔맨 거지.)

어? 정말요?

(이 사극은 남녀의 사랑을 그리는 로맨스다. 일격에 태산을 가르는 힘이 필요하지 않아. 있어서도 안 되고. 왕세자가 도적의 압도적인 힘에 굴복해서 여주인공을 양보하거나 포기하는 그림이 나오면 안 되니까.)

“듣고 보니...”

보이지 않는 칼도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반면에 무협은 전투가 본업이다. 천마라면 손짓 한 번에 이 왕궁의 모든 인간이 몰살이다. 내 힘을 흡수한 마오짜이는 말할 것도 없고. 저런 애송이랑 비교하지 마라.)

“......”

미래를 위해 중원의 모든 인간을 몰살시키려던 분답지 않게 본토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서 놀랐다.

(이건 자부심이 아니라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네.”

그런데도 내가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의 세계에 있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약해진 탓에 마오짜이보다 사극 <궁녀 덕춘이>의 도적이 강하다고 느꼈다.

결론은?

내가 매우 약해져 있으며, 그 원인은 환자랑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

(정확하다. 랜카드랑 멀어져서 네 스마트폰의 와이파이가 잘 안 터지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오...”

현대인의 감성에 맞춘 완벽한 예시에 감탄했다.

(말 나온 김에 통보하마. 너의 이 싸구려 구형 스마트폰과 저렴한 요금제는 내가 싹 바꿀 거다.)

“켁! 왜요?!”

불만 없이 잘 쓰고 있는데!

(너는 불만 없을지 몰라도 내가 답답해서 안 되겠다! 집에 있는 옷도 이게 뭐냐? 잘도 이런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송선영이랑 데이트했군. 백화점에서 싹 바꿔두마. 아! 히아신스 향수는 칭찬해주지.)

“으으...”

선배에게 내 몸을 맡기는 일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왕세자를 못 찾겠네.’

선배랑 수다를 떨면서 왕궁 곳곳을 수색하는 중이다.

왕, 왕후, 후궁, 좌의정, 공주...

사극에 등장하는 배우들이랑 비슷하게 생긴 인물을 여럿 찾을 수 있었지만, 왕세자만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 걸까?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장소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참견하고 싶지 않다만, 너의 머리는 장식품이 틀림없다.)

왜요?

(왕궁에서 이런 소동이 벌어졌는데도 왕세자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지. 소란을 들을 수 없거나 들키면 곤란한 장소에 있다는 뜻이다.)

“아아...”

여태 바보 같은 짓을 했다.

(도적이 궁녀를 안 만나고 왕세자를 찾아왔다. 그건 안 만난 게 아니라 못 만났다고 봐야겠지.)

뚝.

걸음을 멈춘 나는 궁녀들이 머무는 처소에 가보기로 했다.

어디에 있을까?

(바보처럼 두리번거리지 말고 오른쪽을 봐라. 5번째 기와집이 보이지? 거기다. 전지은이 왕궁의 상세한 배치도를 챙겨왔더군. 이 사극이 고증을 반영했다면 틀림없다.)

“...편하네.”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던 이전이랑 비교가 되질 않았다.

휙~

처소는 조용했다.

“흐응...”

“아으응...”

전체관람가였던 사극이랑 달리, 궁녀들의 야릇한 신음이 내 귀를 사정없이 자극했다.

“꿀꺽.”

이거 실화냐?

(당연히 실화다. 모든 궁녀는 왕의 여자니까. 하지만 한 세대에 평균 600명의 궁녀가 있었다. 그래서 왕의 성은을 받지 못한 대다수 궁녀는 성욕을 자위나 동성애로 풀어야 했지. 늙거나 병들어서 죽을 때까지 평생.)

저도 압니다.

선배의 역사 지식은 내 머리에서 나왔기에 당연하다. 그 현장을 직접 보게 될 줄 몰랐을 뿐.

궁녀가 간통하면 무조건 사형!

왕의 여자를 감히 건드렸기에 남자도 무조건 사형!

‘그런 면에서 보자면...’

궁녀가 도적이랑 연애질하는 현장을 몇 번이나 들키고도 아직 곤장을 맞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다.

(따지지 마라.)

네.

궁녀들의 품행을 단속하기 위해 처소로 들어가는 상정(尙正)의 뒤를 조용히 밟아서 침투했다.

“......”

“......”

융통성 없는 깐깐한 감독관의 존재를 눈치챈 젊은 궁녀들이 일제히 숨을 죽이고 잠든 척했다.

‘역시...’

빈 이부자리가 있었다.

사극 <궁녀 덕춘이>에서 여주인공 ‘덕춘이’랑 짝꿍처럼 붙어 다니던 미모의 여배우 ‘덕순이’가 바로 옆자리에 알몸으로... 헉!

(잘 봤냐?)

이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

힐끔.

상정은 젊은 궁녀의 빈 이부자리를 보고도 별말 하지 않고 지나갔다.

‘이미 알고 있군?’

궁녀는 왕이나 세자의 혈통을 받을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야 하기에 철저한 감독과 감시를 받는다. 혹시라도 다른 남자의 유전자가 섞이면 절대로 안 되니까!

그런데 이 야심한 시각에 젊고 아름다운 궁녀 하나가 사라졌는데, 찾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고?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선배님?

(생각을 읽을 수 없다. 너처럼 나도 약해졌거든. 신체를 접촉해서 세계의 보호를 끊어야 해. 컴퓨터 방화벽을 무력화한다고 할까?)

이해했습니다.

(서둘러. 나는 곧 환영회에 참석해야 해서 시간이 없다.)

그게 왜요?

(말 나온 김에 명심해라. 내가 너랑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은 현실에서 가만히 있을 때뿐이다.)

아하!

(그리고 네가 가만히 있을수록 현실에서 내가 움직이기 편하다. 올림픽 시합 중에 네가 지금처럼 움직이면 틀림없이 망할 거다.)

“......”

나는 선배의 충고를 들으면서 상정을 계속 눈으로 좇았다. 그녀가 침소를 전부 돌고 빠져나올 때까지.

그리고 기회가 온 순간,

스윽-

등 뒤로 접근해서 상정의 뺨에 내 손가락을 댔다가 땠다.

“어멋?!”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가 뒤를 돌아봤을 때는 이미 하늘 높이 뛰어올라서 모습을 완전히 감춘 후였다.

(이건... 좀 의외군. 아니, 이게 당연하려나.)

“음?”

상정의 기억을 읽은 선배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묻어나 있었다

왜요?

(윤소라가 왕세자를 선택했다.)

* * *

사극에서는 여주인공 덕춘이가 궁녀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왕세자의 인내심을 끊임없이 시험했다.

침입자랑 정분(情分)을?

간통은 아니기에 죽이진 않는다. 하지만 예쁜 얼굴을 인두로 지지거나, 생식기를 꿰매거나, 곤장 100대를 맞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

이번 환자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의 여주인공 ‘안질리나 치맥’에게 빙의한 김은정처럼 머릿속이 꽃밭은 아니었다.

‘진짜 현실적이네!’

평생 쫓기면서 숨어 살아야 하는 ‘도적의 아내’보다는 화려한 미래가 보장된 왕세자빈.

윤소라가 원작의 덕춘이처럼 갈팡질팡하지 않고, 왕세자의 혈통을 하루라도 빨리 받으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사랑하오!”

“세자 저하...!”

백두산에 사는 신선에게 이상한 선술만 배운 도적의 변태 같은 후각과 청각의 감시망을 따돌리려면?

더욱 변태 같은 은밀한 장소에 숨는 수밖에 없다.

덜컹덜컹.

야심한 시간에 왕궁 밖을 산책하는 가마가 거칠게 흔들렸다.

“윽...!”

“크윽...!”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가마꾼들이 너무 불쌍했다.

(도적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왕세자랑 미리 계획을 짰더군. 심부름 가는 척하면서 왕궁으로 귀환하는 왕세자랑 접촉했다. 남녀가 길 한복판에서 할 줄은 생각하기 힘들지. 보통은.)

“그러게요.”

왕세자빈이 확정된 환자를 어떻게 설득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때,

“으아악?!”

“아악?!”

갑작스럽게 들려온 비명.

천천히 왕궁으로 향하는 가마를 전방위에서 호위하는 병사들의 몸이 순식간에 토막 났다.

습격범의 정체는...

끼긱-

피를 뒤집어쓴 검귀가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또...?”

오늘만 벌써 3마리째였다.

(너무 날뛰지 마라. 지금부터 환영회에 참석해야 하니까.)

“네.”

선배가 멀미하지 않도록 적당히 날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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