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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09화 (110/232)
  • 109화

    “간이 부었군!”

    “혼쭐을 내주마!”

    일대일로 내 상대가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아는 태권도 선수들. 하지만 한꺼번에 덤벼도 된다는 말에 없던 용기가 솟구친 걸까.

    후다닥!

    타닥!

    그들은 태권도 도복을 입지도 않은 나를 향해 호기롭게 달려들었다.

    “합- 컥?!”

    “하압- 꾸엑?!”

    그러나 달려드는 족족 내 발차기에 맞고 쓰러졌다.

    한 방에 한 명씩!

    태권도는 동작이 큰 돌려차기에서 파생된 기술이 제법 많아서 협공에 적합하지 않다.

    앞뒤로 둘, 많아봐야 셋.

    그리고 내 움직임은 반사신경이 좋은 싸움꾼도 반응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강력하다.

    “2위! 2위는 자냐?”

    “이 새끼가-”

    퍽!

    뒤편에서 내가 빈틈을 보이길 기다리던 남자 태권도 세계 2위가 말을 잇지 못하고 훨훨 날아갔다.

    그래봤자 2위.

    더 올라갈 곳이 없는 1위가 아닌 이상,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1위에게 진 평범한 인간이다.

    “그, 그만...!”

    이러다가 전멸하겠다고 판단한 관장이 만류하려고 했다.

    “감히!”

    “죽인다!”

    하지만 함께 훈련한 동료들의 처절한 비명이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그 밑바탕에는 내가 조금씩 지쳐간다는 상식적인 계산이 깔려있을 터.

    나는 그 희망을 비웃어주기 위해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빡! 퍼억!

    고무신 관장님께 맞으면서 배운 뒤돌려차기와 돌려차기를 주축으로, 팽이처럼 돌면서 근처의 모든 태권도 선수를 무차별적으로 제압했다.

    “아으으...”

    “우으...”

    얼마 지나지 않아서 태권도 도장에는 관장, 사부들이 뜯어말린 몇몇 선수 빼고는 전부 쓰러졌다.

    ‘2위, 5위, 8위... 완벽해!’

    올해 올림픽에 출전할 예정인 선수들은 전부 해치웠으니까. 보호장비 없이 싸웠기에 갈비뼈가 한두 개쯤 부러졌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털썩.

    “혼자서 전부? 말도 안 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태권도 관장이 망연자실하면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올해 출전할 선수는 저밖에 없을 것 같네요.”

    “네놈! 우리에게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약속을 깨고 저를 선수 명단에서 빼버린 건 관장님이십니다만?”

    “그, 그건...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그렇다면 저도 알 바 아닙니다. 올해 올림픽을 망치고 싶지 않으시면 현명한 선택을 하시길.”

    휙~

    태권도 도장에 더는 볼일이 없었던 나는 몸을 돌렸다.

    “역시 형이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내가 살게.”

    “형이?!”

    “싫으면 말고.”

    “아니야! 너무 기뻐서 놀랐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튼, 뭘 먹을지는 내가 고른다.”

    호기롭게 송선영에게 선택권을 줬다가 5분 만에 후회하고 얻은 교훈.

    “응!”

    “후문에 카레 맛집이 있어. 카레에 들어가는 감자 덩어리 숫자만큼 아주머니의 인심이 아주 후하지.”

    다음 상대는 철저하게 점수만 노리는 얍삽한 꼼수로 나에게 패배를 안겨준 여자 태권도 세계 1위.

    ‘고윤정. 기다려라.’

    그녀의 얼굴에 나의 발 냄새를 반드시 묻히고 말겠다.

    * * *

    “도련님.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나는 괜찮아요. 문수 형이 지켜줬거든요.”

    강문수랑 식사 후에 헤어지고, 일반인 커플 행세 중이던 호위들이랑 합류한 최강훈은 싱긋 웃었다.

    “출발하겠습니다.”

    부우웅-

    뒷좌석에 최강훈을 태운 검은색 차량이 시내를 달리기 시작했다.

    “하나만 물어볼게요.”

    “말씀하십시오.”

    “당신이라면 혼자서 태권도 선수를 몇 명이나 상대할 수 있나요?”

    “...맨손이라면 운이 좋아도 두 명이 한계일 겁니다.”

    잠시 고민하던 호위는 과장 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다수의 태권도 선수에게 협공을 당한다면요?”

    “순식간에 당할 겁니다.”

    “과연...”

    “도련님께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면, 강문수 씨랑 비교하면 어떤 선수라도 초라해집니다.”

    “올해 올림픽 스포츠토토는 배팅할 곳이 딱 정해졌네요.”

    “꿈도 희망도 없겠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호위는 퇴근하자마자 돈을 최대한 모아서 ‘강문수’에게 배팅할 생각부터 했다.

    인생은 한 방!

    그 기회가 도래했음을 직감했다.

    “아빠에게 돈을 빌릴까? 아니지. 아빠도 배팅할 것 같은데. 끄응...”

    “도련님.”

    “네.”

    “태권도 도장에서 강문수 씨는 어땠나요?”

    자동차 보조석에 앉은 여성 호위의 질문에 최강훈은 쉽게 설명해줬다.

    “혼자만 2배속으로 움직이는 인간 같았어요. 그러고도 여유가 넘쳤죠.”

    “...무섭네요.”

    “문수 형은 귀신을 잡는 무당이니 당연하죠. 사람에게 쩔쩔매면 귀신은 엄두도 못 내지 않겠어요?”

    “귀신...”

    “그래서 형의 재능을 노리는 무당 가문도 나타났고요. 전지은, 그 여자에 대한 조사는 끝났나요?”

    “평범합니다. 다만 정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가문이라서 저희가 파고들 빈틈을 안 보입니다.”

    “음...”

    “도련님이 허락해주시면 전지은 양이랑 자리를 마련해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강문수가 전지은에게 홀려서 무당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면 힘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곤란해.’

    강문수는 폭풍의 핵처럼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엘몰랑스 병원, 서혜주 과장, 박한희 여사, 아빠, 마오짜이 가주...

    라누벨 환자를 치료할 때마다 크고 작은 인맥이 형성될 텐데, 어딘가에 소속되면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게 되리라.

    가장 좋은 방법은?

    고민하던 최강훈의 머리를 번뜩 스치고 지나가는 얼굴이 있었다.

    “모델 일을 하는 송선영 누나의 소속사가 어디였죠?”

    “알아보겠습니다.”

    “회사를 인수하면 좋겠지만... 다른 곳에서 안 좋게 볼 수 있으니 누나에게 투자해서 키우는 방향으로 생각해봐야겠네요.”

    “...도련님. 견제가 신경 쓰이시면 마오짜이 가주와 박한희 여사에게 제안해서 3인 공동대표 체계로 소속사를 인수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 그 방법이 좋겠네요!”

    “추진해볼까요?”

    “네.”

    형을 유혹하는 전지은 같은 여자들의 대항마로 송선영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그럴싸한 전략!

    강문수가 알면 식겁할 계획을 즉흥적으로 짜낸 최강훈이었다.

    “도련님. 회장님이 강하게 권하는 약혼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강문수에게는 유학이라고 돌려서 말했지만, 그 내면은 유학을 빙자한 국제약혼이었다.

    “궁금한가요?”

    “이거 참... 솔직히 그렇습니다.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기다리기로 했어요.”

    “예?”

    “문수 형이 그랬어요. 제 적성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요.”

    “그랬습니까?”

    “네.”

    “그러면 기다려야죠.”

    강문수가 말했다고 하자마자 두 호위는 간단히 수긍했다.

    -형의 말이라면 아빠는 꼼짝 못 해!

    이건 빈말이 아니다. 꿈속에서 미래를 경험한 최강민이 놀라운 사업 수완을 보일수록 부친은 ‘강문수’라는 개인의 평가를 상향 조정했다.

    진짜 무당!

    첫째 아들의 인생을 구해준 은인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는 신경 안 썼었는데, 형 때문에 적성이 기대되네요.”

    “도련님. 사옥(社屋)에 도착하면 깨워드리겠습니다. 강문수 씨를 만난다고 무리하셨잖습니까.”

    “그러면 부탁할게요.”

    최강훈은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편안히 눈을 감았다.

    * * *

    어릴 적의 꿈이 육상선수였던 박한희 여사는 ‘수영의 황제’로 불린 남편이랑 다른 행보를 보였다.

    육상에 투자!

    흑인계 혼혈 선수가 많은 나라끼리만 경쟁하다시피 할 만큼 희망이 없는 육상에 상당한 돈을 쓰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오오!”

    “이, 이건...!”

    인종의 한계를 초월한 나는 조국의 육상을 살릴 구세주로 떠올랐다.

    ‘자주 달리긴 했지.’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의 세계에서 마오짜이를 찾기 위해 두 발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말을 탔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종종 들었지만, 무림인들은 경지를 구경하면서 느긋하게 여행하는 풍류를 선호했다.

    아무튼,

    “강문수 선수. 오래 쉬어서 걱정했었는데, 정말 대단하군요.”

    “감사합니다, 박한희 여사님!”

    고령이고 몸도 불편해서 외출하는 일이 매우 드문 박한희 여사.

    하지만 그녀는 내 육상 기록을 보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육상경기장까지 몸소 찾아와서 관전했다.

    “내가 강문수 선수랑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좋았을 텐데.”

    “하, 하, 하...”

    “잘 지내는 듯해서 다행이네요. 올림픽에 꼭 참가해서 우수한 성적을 내주길 기대할게요.”

    “물론입니다!”

    내 연금이 걸렸으니까. 허투루 할 생각은 없다.

    “아! 올림픽 전까지 너무 실력을 노출하지 마세요. 태권도 도장에서 모든 선수를 때려눕힌 일도 최대한 소문을 축소하는 중이에요.”

    “주의하겠습니다.”

    “이유를 안 물어보네요.”

    “어... 선수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이 아닌가요?”

    “스포츠토토.”

    “......”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오랫동안 했었던 나는 박한희 여사의 한마디에 큰 충격을 받았다.

    ‘스포츠토토! 내가 미쳤구나!’

    망하고 편의점에서 행패 부리는 손님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직접 할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었다.

    누가 이길지 어떻게 알아?

    하지만 내가 직접 경기를 나간다면 그런 불안한 변수가 사라지고, 당첨률 100%의 복권으로 탈바꿈한다.

    남은 문제는 배당.

    나의 우승에 돈을 거는 사람이 많을수록 수익이 감소한다.

    “눈치챈 모양이네요.”

    “네...”

    “주의해주세요.”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이해했습니다! 박한희 여사님! 지금이라도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후후! 힘내요.”

    “네!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내가 미쳤다.

    기록이 잘 나왔다고 자랑했던 과거의 나를 죽이고 싶다! 아니, 당장 어제 태권도 도장에서 모든 선수를 때려눕힌 나의 무지함이 증오스럽다.

    ‘대박의 기회가...!’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않은 신인일 때가 가장 배당이 높다. 하지만 나는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짓을 쉴 새 없이 했으니!

    스스로 기회를 날려버렸다.

    “강문수 선수.”

    “네...”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당신의 마라톤 기록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서 헛소문으로 착각하기 쉬워요. 그리고 악의적인 여론이 올림픽 직전에 우연히 심해질 수도 있고요.”

    “아! 그렇군요.”

    우연히 악의적인 여론이 퍼져서 스포츠토토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올림픽 전까지 몸을 사리세요. 훈련을 아예 안 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군요.”

    “조언 감사합니다!”

    “수고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름다운 비서가 끌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멀어지는 박한희 여사님께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했다.

    스포츠토토.

    도박에 대한 안 좋은 경험이 매우 많지만, 이번 경우에는 달랐다.

    ‘투자지.’

    라누벨 환자를 치료하면서 통장에 쌓인 돈이 적지 않다.

    이 돈이 10배, 20배가 된다면?

    올림픽이 끝날 때쯤에는 무당을 그만두고 느긋하게 살아도 될 만큼 막대한 부를 축적하리라.

    두근두근!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크게 뛰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박한희 여사가 애써 찾아와서 충고하지 않았던가? 올림픽 전에 기습적으로 꿈에 빨려 들어가면 스포츠토토도 물거품이 되리라!

    그런 끔찍한 사태가 없도록 사전에 대비책을 세워둬야 한다.

    그 대비책이란?

    삑!

    「통화: 마오짜이」

    스마트폰으로 마오짜이에게 연락하는 것이었다.

    (태권도 문파를 봉문시킨 강문수 소협이 나에게 무슨 용무인가?)

    내 배당이 쭉쭉 떨어지는 소리가 벌써 들렸다.

    “가주님. 도와주세요.”

    (강 소협이 나에게? 일단은 이야기부터 듣고 생각해보지.)

    “올림픽 보러 가실 때, 저도 데려가주세요.”

    (음? 아직 몸이 안 좋아서 직접 가서 볼 계획은 없는데?)

    “이런...”

    (일단은 나랑 같이 가려는 이유부터 말해보게.)

    “알겠습니다.”

    내 인생이 걸린 이번 작전에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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