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105화 (106/232)
  • 105화

    [5장-11절] 더 하실 겁니까?

    마오짜이가 무협 소설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15살부터였다.

    “얼굴이 그게 뭐냐? 또 학교에서 맞은 거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산에 2마리의 호랑이가 같이 살 수 없는 법.

    학교에서 마오짜이를 건드리는 서민은 없었지만, 서민이 아닌 선배, 동급생에게는 소용없었다.

    “한심한 놈.”

    “아버지. 전학 가고 싶습니다.”

    “......”

    “조사는 이미 마쳤습니다. 서민뿐인 학교로-”

    “도망치겠다는 거냐? 내 아들이 파산한 돼지들처럼 도망치겠다고? 농담이겠지?”

    “...네. 농담이었습니다.”

    “다음부터 그런 싸구려 농담은 절대 하지 마라. 이 아비의 심장에 좋지 않으니.”

    “심려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간절히 바란 전학마저 실패하고 우울증에 걸린 마오짜이.

    의지할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그는 교과서랑 바꿔치기 당한 낡은 책, 무협 소설에 빠져들었다.

    ‘...멋져.’

    약자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경쟁자들을 죽이고 군림하는 협객의 삶은 매우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무림백서>

    <천하천상>

    수많은 무협 소설을 읽었다. 하지만 푹 빠져서 15번이나 정독한 작품은 단 한 작품뿐이었다.

    <이 천마 실화냐?>

    자신의 아버지랑 여러 부분에서 비슷한 천마가 죽고, 모든 영광을 주인공이 차지하는 완결까지 완벽!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한심한 놈.”

    “아버지! 오해입니다!”

    “무슨 오해? 피아노를 사라고 준 돈으로 이상한 책을 산 아들아. 어디가 오해란 거냐?”

    “이건 이상한 책이 아닙니다. 500년 전에 사라진 무공-”

    “닥쳐라! 네가 지금 제정신이냐...!”

    “소자는 멀쩡합니다!”

    무협 소설의 무공에 심취한 마오짜이는 전통 무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네 적성은 피아니스트다. 싸움질은 못 배운 서민들이나 하는 것이다. 돈만 주면 너 대신 싸워줄 서민은 발에 치일 만큼 많아.”

    “압니다.”

    “그런데 왜 배우겠다는 거냐?”

    “무공은 아무나 배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소자가 어릴 적에 무공을 익혔다면 학교에서 그런 수모를-”

    “피아노나 쳐라.”

    “아버지!”

    “마오짜이. 피아노나 쳐라.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서 농담하지 마라. 이건 명령이다.”

    “...네.”

    마오짜이는 강압적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

    * * *

    “혹시, 천마가 맞으십니까?”

    “...이상한 일이군. 본좌의 얼굴을 아는 자는 몇 없는데.”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의 세계에서 눈을 뜬 마오짜이.

    그의 주위에는 마적에게 당한 시체로 가득했지만, 무섭다는 생각을 밀어낼 만큼 기쁨이 훨씬 컸다.

    ‘세상에!’

    마오짜이의 눈에는 15번이나 정독한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의 최강자 천마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협의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꿈을 이룬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음? 천지음양지체로군.”

    “맞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천지음양지체.

    작가가 공인한 최고의 재능!

    이제, 작가가 공인한 최고의 무공 천마신공을 천마에게 배우면 완벽하다.

    “따라오거라.”

    “네!”

    “...사문이 어디냐?”

    “없습니다.”

    “어린 것이 거짓말만 배웠구나. 그 우스꽝스러운 보법(步法)을 누구에게 배웠느냐?”

    “독학했습니다.”

    마오짜이는 우스꽝스러운 전통 무술을 애써 부정했다.

    “천마신공은 일인전승이다. 이미 스승이 있다면...”

    “믿어주십시오! 길거리에서 주운 책으로 독학했습니다!”

    “...믿어주마. 이대로 천지음양지체를 포기하긴 아까우니.”

    “감사합니다!”

    소설 원작의 주인공은 간단히 천마의 제자가 됐는데, 그는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이런 일이...’

    아버지에게 혼나며 배운 전통 무술이 그의 발목을 잡을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충격이 더욱 컸다.

    심지어 우스꽝스럽다고?

    말도 안 나왔다.

    “받거라.”

    “예?”

    짤랑!

    천마는 가까운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그에게 돈을 건넸다.

    “너는 천지음양지체 외에는 장점을 찾을 수가 없구나. 그래서는 천마신공을 대성하지 못한다.”

    “그런...!”

    ‘나는 주인공인데?!’

    이건 있을 수 없는 전개였다.

    “아가야. 무공을 꼭 배우고 싶다면 소림사를 찾아가라.”

    “소림사? 농담하지 마십시오! 천마신공이 아니면 안 됩니다!”

    “...본좌가 어린 것을 상대로 농담할 만큼 한가해 보이냐?”

    “큭!”

    쿠웅.

    내공에 짓눌린 마오짜이는 바닥에 강제로 엎드렸다.

    “가서 목탁이나 두드려라.”

    “웃기지 마! 천마,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천마에게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알고 싶지 않구나.”

    “두고 봐! 나를 버릴 걸 후회하게 해주겠어!”

    “껄껄!”

    천마는 비웃으며 떠났고 마오짜이는 주인공의 길을 벗어났다.

    * * *

    (주인공의 기연을 독식한 마오짜이는 천마신공 덕분에 방대한 내공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다. 흡성대법으로 상대의 내공을 야금야금 빼앗을 수도 있지. 오호? 내 힘을 흡수하면서 강력한 주술도 가능하게 됐구나.)

    정말... 엄청나네요.

    마오짜이가 중원의 황제 앞에서 당당했던 이유가 다 있었다.

    (그래서 두려우냐?)

    농담이시죠?

    (당연히 농담이다. 껄껄!)

    이곳은 건강과 체면을 목적으로 무공을 수련하는 황족들만 이용할 수 있는 황족 전용 연무장.

    이 싸움에서 살아남은 승자가 벽안공주를 얻고 ‘황족’이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휙~

    마오짜이랑 대치한 나는 황제에게 하사받은 보검을 바닥에 버렸다.

    “마오짜이 씨. 맨손으로 상대해드리겠습니다.”

    “허! 농담하냐?”

    “당신은 맨손으로 충분합니다.”

    이기어검술로 수많은 검을 허공에 띄워서 포위망을 구축한 마오짜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면 맨손으로 죽어라.”

    슝! 슝! 슝! 슝...!

    마오짜이가 조종하는 검들이 나를 향해 비처럼 쏟아졌다.

    ‘장관이네.’

    전부 무시하고 돌진했다.

    툭, 툭, 툭, 툭...

    검들은 내 몸에 닿기 직전에 힘을 잃고 땅에 떨어졌다.

    “무슨-?!”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마오짜이가 당황하며 뒷걸음쳤다.

    “흠...”

    빠르네요.

    (네가 느린 거다. 내공을 포기한 대가지. 그 대신에 이기어검술과 흡성대법을 무시하고 있잖느냐? 그만 투덜대고 엉덩이가 닳도록 달려라.)

    “대체 뭐야?!”

    자신의 이해를 벗어난 현상에 당황한 마오짜이는 이기어검술로 땅에 떨어진 검들을 다시 내게 날렸다.

    슝! 슝! 슝!

    “이기어검술은 포기하세요.”

    하지만 검들은 내 몸에 닿기 직전에 실 끊긴 연처럼 추락했다.

    툭, 툭, 툭...

    칼끝이나 칼날이 살짝 스치면서 옷이 훼손되긴 했지만, 내 피부에는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았다.

    ‘나의 몸은 독립된 세계.’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의 설정과 법칙이 침범할 수 없다.

    “이익...!”

    쿠구구구-

    마오짜이가 쌓은 방대한 내공이 나를 짓눌렀다.

    “이것도 포기하세요.”

    사라락~

    하지만 내공은 내 몸에 닿기 직전에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어, 어째서 주술이-?!”

    “주술?”

    (둔감한 너는 모르겠지만, 마오짜이가 너에게 다양한 주술을 열심히 시도하는 중이다.)

    예를 들면요?

    (네가 가장 소중히 아끼는 기억. 학교 담장을 넘는 송선영의 다리와 속옷을 훔쳐보려고 했다.)

    “......”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

    “젠장...!”

    챙!

    이기어검술을 포기하고 직접 검을 뽑은 마오짜이.

    내공으로 강화된 그의 움직임은 매우 빨랐고, 거칠게 휘몰아치는 검풍은 내 시야를 어지럽혔다.

    ‘온다!’

    오감(五感)에 기초한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본능에 몸을 맡겼다.

    촤아-

    피가 튀었다.

    (조심해라. 네 몸뚱이가 튼튼하긴 해도 칼에 베이면... 허!)

    쏘옥-

    피가 다시 들어갔다.

    (세계의 복원? 기가 막힐 정도로 실전에 강한 애송이일세!)

    감사합니다.

    ‘이젠 내 차례.’

    마오짜이의 검풍은 내게 산들바람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그가 직접 휘두르는 칼은 소설 <이 천마 실화냐?> 세계의 규칙이 아니라서 무시할 수 없었다. 심지어 빨라서 대단히 위협적!

    방금까지는 말이다.

    퍽!

    “커억-?!”

    갑옷처럼 두른 두꺼운 내공을 믿은 마오짜이가 내 공격을 안 피하고 무시했다가 비명을 토했다.

    사라락~

    내공을 공기처럼 관통한 내 돌려차기가 그의 옆구리에 박힌 결과.

    당연했다.

    ‘칼을 든 일반인이 태권도 국가대표선수를 어떻게 이겨?’

    빠직!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의 설정을 거부하는 나의 세계와 물리적으로 충돌한 마오짜이.

    천지음양지체가 흔들렸다.

    “한 번 더!”

    이건 당신이 죽인 검봉의 복수다!

    “컥?!”

    빠각!

    마오짜이가 체내에 쌓아둔 고밀도의 내공이 맥없이 흩어졌다.

    “멀었습니다.”

    “사, 살려-”

    퍽! 빡! 푹! 퍽...!

    내공이 한 톨도 남지 않도록 그의 온몸을 골고루 난타했다.

    (야! 내 복수는 안 하냐?)

    “마오짜이 씨. 더 하실 겁니까?”

    “아으으...”

    뼈가 부러지고 관절이 꺾인 마오짜이는 지독한 고통을 호소했다.

    “선택하십시오.”

    “죽인다...!”

    “포기하세요. 내공을 잃은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뭐- 뭐야?!”

    고통과 분노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던 내공을 살펴본 마오짜이.

    그는 혼란에 빠졌다.

    “마오짜이 씨의 잘못은 저보다 약하다는 겁니다.”

    “아아아!”

    “그나저나... 벽안공주를 건드리고 연회를 망친 당신을 황제가 용서할지 의문이네요.”

    “이건 악몽이야~!”

    빠직-

    환자에게 부정당한 꿈의 세계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발생했다.

    (애송이. 수고했다.)

    “후우...”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고마우면 앞으로는 선배님이라고 불러라.)

    그럴게요.

    ‘다시 만날 리 없지만요!’

    와르르-

    마오짜이의 꿈이 무너져내렸다.

    * * *

    “...완벽해.”

    무당으로서 두 단계쯤 발전하고, 라누벨 환자도 무사히 깨웠다.

    시간은?

    서혜주 과장님께 꿈에서 눈을 뜨면 바로 현실 날짜를 확인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오... 안 잊으셨네.”

    똑딱똑딱.

    정자세로 누운 정면의 벽에 날짜까지 표시되는 전자시계가 걸려 있었다.

    ‘2달 23일...?’

    계산해본 나는 당황했다.

    84일.

    날짜를 세진 않았지만,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의 세계에서 겨울을 보지 못했기에 체류 시간이 1년 미만인 건 확실했다.

    그런데,

    ‘현실에서 84일이나 흘렀다고?!’

    환자의 꿈에 들어가기로 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하긴 했지만, 현실의 시간을 너무 희생했다.

    “미치겠군...”

    딸각-

    그때, 나 혼자 쓰는 입원실의 문이 열리면서 서혜주 과장님이 들어왔다.

    “오래 잤네.”

    “환자는요?”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어. 꿈속에서 대체 뭘 했기에 환자가 눈을 뜨자마자 펑펑 우니?”

    “...꿈이 현실이라고 저를 설득할 정도로 맹신했었거든요. 충격이 매우 큰 모양이네요.”

    검봉과 혈신의 몫까지 신나게 때려서 깨웠다는 건 비밀이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이젠 나처럼 이 일에 익숙해진 서혜주 과장님이 피식 웃고 넘어갔다.

    “어라?”

    휙휙.

    링겔을 뽑고 침대에 걸터앉은 나는 팔다리를 움직여보았다.

    “어때?”

    “...가벼워요.”

    “네 전용으로 개발한 영양제를 투여했는데,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네. 개발자로서 뿌듯한걸?”

    “감사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이 뼈아픈 만큼 빠른 일상 복구는 환영할 일이다.

    “나중에 환자가 좀 진정되면 만나볼래?”

    “됐어요.”

    마오짜이가 나를 보면 공황장애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아! 두 아가씨에게 깨어났다고 직접 연락해줘.”

    “두 아가씨? 선영이는 알겠는데, 또 누가 있어요?”

    “벌써 잊었어? 전지은. 정보 담당.”

    “이해해주세요. 꿈속에서 여러 아가씨를 만나다 보면...”

    “여러 아가씨?”

    “헙!”

    말실수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들어봐야겠는걸? 여러 아가씨.”

    “......”

    “아무튼, 네가 너무 늦지 않게 일어나서 다행이야.”

    “왜요?”

    “선영이를 계속 귀찮게 하는 남자가 있는 것 같아.”

    “...그래요?”

    죽었다고 복창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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