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99화 (100/232)

099화

[5장-8절] 예의가 없네요!

“...이상하네.”

뱃놀이 중에 수적이 조직적으로 덤빌 때만 하더라도 혈마가 곧 공격해올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수적을 몰살시키고 반파된 유람선이 가까운 선착장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조용하기만 했다.

“공자님. 왜요?”

내가 수적을 쓸어버리면서 호감이 또 상승한 미봉이 질문했다.

“혈마가 안 오네요.”

“안 와야 좋은 것 아닌가요?”

“보통은 그런데... 미녀를 좋아하는 혈마가 미봉 소저를 무시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어... 이거, 미봉이 자존심 상해야 하는 상황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상식인의 범주에서 보면 성범죄자와 납치범은 안 마주치는 편이 좋지만, 지금은 조금 별개였다.

내공 충분, 체력 아주 충분!

적들이 미봉의 목숨을 노린다면 절대 유인하지 않겠지만, 그녀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는 확신이 있기에 과감한 계획을 짰다.

‘그런데 안 넘어온다고?’

강 건너에서 나를 관찰하는 시선을 느꼈다.

하지만 이곳은 중원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하남성. 중원 최대의 번화가답게 구경꾼이 너무 많아서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 없었다.

“흐음~”

“강 공자님! 이대로 포기할 순 없어요! 미봉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요!”

“...그렇죠.”

“뱃놀이를 즐겼으니 이번에는 불꽃놀이 어떠세요? 원래는 유람선에서 보려고 했지만, 높은 전각에서 바라보는 것도 낭만적이에요.”

“좋습니다.”

현대의 고층건물에 익숙한 내게는 낮게 보였지만, 철근콘크리트를 쓰지 않고 목재만으로 저 높이를 지었다는 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번화가로 이동했다.

* * *

사람이 품는 생각은 비슷하다.

예로, 송선영과 나의 첫 데이트 장소였던 수족관과 빠르나루 레스토랑에는 수많은 커플이 있었다.

멋진 경치, 분위기, 식사...

종합적인 평가로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가 선정되기 때문이다.

여긴 어떨까?

“강 소협! 저 주루(酒樓)에는 미신이 있어요.”

“미신이요?”

무당이나 할 법한 얘기인데?

“네! 경치가 가장 좋은 6층에서 불꽃놀이를 감상하며 술을 마시면 사랑이 이루어진대요!”

“딱 봐도 상술이군요.”

운동선수는 몸이 흉기라서 술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지만, 술의 효과는 잘 알고 있다.

긴장 완화, 판단력 저하, 감정 고조, 균형감각 저하, 기억상실, 자제력 저하, 방향감각 상실...

그리고 이 효과들은 이성을 유혹하는 데 도움이 된다.

술에 취한 여자.

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가 다 있다.

‘확실히... 경치 좋은 장소의 낭만적인 분위기에 휩쓸려서 술을 배 터지도록 마시면 사랑이 이루어질 확률이 매우 높긴 하겠네.’

역시 상술이다.

“강 공자님! 여기에요!”

“...돈 좀 있을 것 같은 사람이 정말 많네요.”

“후후! 걱정하지 마세요. 무술대회에서 딴 돈이 제법 돼요.”

짤랑!

미봉의 지갑에서 들리는 영롱한 소리가 무척 듬직했다.

“미봉 소저만 믿겠습니다.”

속물적인 나는 무서운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미봉의 호감이 상승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나도 무시하지 마!”

짤랑!

유사시에 미봉을 지켜줄 보험으로 데려온 꼬마 권왕도 두툼한 지갑을 자랑했다.

“...부탁합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번다고 했던가?

내 처지가 딱 곰이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오늘은 예약이 있어서 5층, 6층을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술집 주인이 매우 송구하다는 어조로 4층을 제안했다.

그러자,

“소녀가 누구인지 알아요?”

매우 불편한 얼굴이 된 미봉이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어... 죄송합니다. 소저처럼 아리따운 분은 처음 뵙는지라...”

“미봉이에요.”

“예...?”

“미봉이라고요. 지금까지 제가 이용한 루주는 예외 없이 대박이 났어요. 이래도 안 되나요?”

“...정말 죄송합니다. 이 일은 신뢰가 생명이라.”

“미봉이에요. 잘 생각하는 편이 좋을 거예요.”

“아, 아무리 그래도...”

술집 주인이 너무 불쌍해서 내가 슬그머니 나섰다.

“미봉 소저. 다른 곳으로 가요.”

“하, 하지만...!”

“여기서 미적대다가 다른 곳도 자리가 꽉 찰 수도 있어요.”

“으으... 네.”

내가 그녀의 손을 잡고 천천히 잡아당기자 저항 없이 따라왔다.

“여기는 내일 오면 되죠.”

“내일은 불꽃놀이가 없어서 한참 기다려야 해요.”

“흠.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두고 보세요! 여기는 미봉을 쫓아낸 최악의 루주로 소문이 나서 금방 망할 거예요!”

“하, 하...”

“정말이에요!”

“네네.”

보통은 웃고 넘어가겠지만, 중원 2위 미녀가 앙심을 품으니 푸념처럼 들리지 않았다.

옆집으로 가려는데,

“자, 잠시만요! 미봉 소저!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어?”

오른쪽 눈에 피멍이 든 술집 주인이 달려오며 외쳤다.

“6층은 힘들지만, 5층에 공사 중인 귀빈실이 있습니다! 그곳이라도 괜찮다면 모시겠습니다!”

“5층이잖아요.”

“대신에 술과 안주를 무료로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소인을 한 번만 봐주십시오! 그냥 돌아가면 주인어른께 맞아 죽습니다!”

“싫어요. 5층은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잖아요.”

피도 눈물도 없는 미봉!

누가 봐도 상술인 미신에 집착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서리고 했다.

“미봉 소저.”

“싫어요.”

“5층이긴 하지만, 술과 안주가 공짜라고 하잖습니까?”

“싫어요.”

“소저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미봉을 무시하다니? 혈마만큼 무례한 술집이네요.”

“맞아요!”

“그러니 갑시다.”

“싫어요!”

하지만 계속 싫다고 말하는 그녀의 몸은 내가 손을 잡아끌자 저항 없이 따라왔다.

“가, 감사합니다!”

술집 주인인 줄 알았던 남자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내게 절했다.

“안내해주세요.”

“네! 이쪽입니다!”

우리는 미봉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6층은 실패했지만, 최근에 어떤 무림인의 술주정으로 파괴된 5층 귀빈실로 안내됐다.

귀빈실답게 화려한 외관.

뚫린 바닥을 나무판자로 막고 양탄자로 가렸다는 것 같다.

“방음이 완벽하지 않으니 주의해달라는 얘기네요.”

“방음이 왜요?”

“술에 취한 남녀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어머!”

우리는 술과 안주를 잔뜩 주문하고 불꽃놀이를 기다렸다.

“멋진 경치네요.”

“6층이 아쉬워요.”

창가에 마주 보고 앉은 우리를 꼬마 권왕이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봤지만, 깔끔히 무시해줬다.

탁, 탁, 탁...

술과 안주가 잔뜩 나와서 넓은 식탁이 꽉 찼다.

“죄송합니다. 예약한 손님들이 오셔서 지금부터는 주문하셔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눈이 멍든 남자가 허리를 연신 굽히며 양해를 구했다.

“괜찮아요.”

“어쩔 수 없죠.”

술이 조금 들어가면서 기분이 풀린 미봉이 마침내 용서해줬다.

“감사합니다! 미봉 소저, 그리고 두 공자님! 좋은 시간 되십시오!”

휙~

남자가 귀빈실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폭죽이 터졌다.

펑! 펑! 펑! 펑~!

현대의 불꽃놀이랑 비교하면 초라했지만, 도시가 전반적으로 어두워서 더욱 눈부셨다.

“와아!”

어느새 내 팔을 끌어안고 어깨에 머리를 기댄 미봉.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그녀의 두 눈은 꿈을 꾸듯 몽롱해져 있었다.

“......”

꿈에서 깨어나면 송선영에게 불꽃놀이를 보러 가자고 할까?

미봉이 알면 섭섭해할 생각을 하면서 나도 구경했다.

“이래서 젊은것들은...”

“멋지군요.”

“예뻐요.”

“무림에서 사랑 타령하는 것들이 꼭 가장 먼저 죽더라.”

술과 안주를 청소기처럼 흡입 중인 꼬마 권왕의 악담은 한 귀로 흘리며 불꽃놀이를 감상했다.

그때,

쿵! 쿵! 쿵!

낭만적인 분위기를 깨듯 천장이 울렸다.

“배려심이 없네요.”

“...위에서 뭘 하는 걸까요?”

눈살을 찌푸리는 나랑 달리, 미봉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짙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쿵! 쿵! 쿵!

삐꺽! 삐꺽! 삐꺽!

천장이 무너질 기세로 소리가 점점 커졌다.

“한마디 하고 와야겠네요.”

절대로 6층이 궁금해서 가는 게 아니다.

“공자님! 같이 가요!”

“나도 갈래!”

미봉과 권왕도 따라 일어섰다.

“한꺼번에 몰려가는 것도 실례이니 저만 다녀오겠습니다.”

“너무해요.”

“치사한 녀석!”

나는 두 사람의 비난을 건성으로 넘기며 6층으로 향했다.

“멈춰라.”

하지만 계단을 지키는 남자에게 가로막혔다.

“전할 말이 있는데요.”

“여기서 해라.”

“천장이 울리니 조금만 주의해달라고 해주세요.”

“명령하는 거냐?”

“부탁입니다.”

“좋은 말로 할 때 꺼져라. 죽고 싶지 않다면.”

계단을 지키는 남자가 눈짓으로 주위를 가리켰다.

‘와우?’

술집 5층에는 비슷한 복장의 사내들로 바글바글했다.

바로 그때,

“헉!”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다가 나랑 눈이 마주친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술잔을 떨어트렸다.

쨍그랑!

술잔이 깨지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뭔- 커억?!”

나는 그틈에 계단을 가로막은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 위층으로 잽싸게 올라갔다.

“...성공.”

술집 6층은 분위기부터 달랐다.

몽환적이라고 할까?

반투명한 붉은색 비단이 커튼처럼 사방에 처져 있었고, 코를 자극하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향로와 선정적인 예술품들도 보였다.

“치, 침입-”

톡.

나는 딱밤으로 남자를 기절시킨 후에 놔줬다.

“...미봉이 6층에 집착한 이유를 알 것 같네.”

조금 고급스러운 술집 같았던 5층이랑 비교 자체가 안 됐다.

살랑살랑~

시야를 가로막는 붉은색 비단을 걷어내면서 앞으로 향했다.

“실례합니다.”

나의 접근을 아직 눈치채지 못한 남녀의 실루엣이 보였다.

‘오우야!’

가까이 붙은 남녀가 겪하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너무 열중해서 내 접근마저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

괜히 미안한걸?

“실례합니다.”

내 목소리를 들은 남녀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누구냐!”

여자의 몸에서 떨어진 남자의 실루엣이 근처에 놔둔 칼집을 쥐며 위협적으로 물었다.

아마도 무림인.

우리는 반투명한 붉은색 비단 2겹을 사이에 두고 대화했다.

“5층 손님입니다. 천장이 너무 울려서요.”

“...그래서?”

“함께 사용하는 공간입니다. 조금만 조용히...”

“싫다면 어쩔 테냐?”

비아냥거리는 상대의 말투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심지어 그는,

쿵! 쿵!

도발하듯 발로 바닥을 내리치며 소리를 더욱 키웠다.

“거참...”

정말 예의 없는 남자다. 반면에 옆의 여자는 예의를 알았다.

“어린 친구가 시끄럽다지 않으냐! 너는 나이를 헛먹었구나! 부끄러운 줄 알아라.”

“흥!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본녀는 20살이다.”

“허! 양심 없는 네년이 보살이 되겠다고? 천하가 웃겠구나!”

“웃어봐. 당장 그 못생긴 머리를 따줄 테니.”

“하하! 할 수 있으면 해봐라.”

자연스럽게 나를 잊어버린 남녀는 말싸움하기 시작했다. 대화가 도저히 안 되는 상황.

‘어쩔 수 없지.’

상대는 5층과 6층을 통째로 전세 낸 손님. 억지를 부려서 5층에 자리를 잡은 우리가 불청객이었다.

“실례했습니다.”

이 근방에 괜찮은 술집이 여기만 있는 건 아니니까. 이런 사소한 문제로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발길을 돌리려는 그때,

“이봐요! 시끄러워서 불꽃놀이를 즐길 수가 없잖아요!”

남자의 도발에 발끈한 미봉이 6층으로 올라왔다.

“네년은 또 뭔데...”

“미봉이에요!”

“미봉?!”

남자가 당황했다.

이에 더욱 기고만장해진 미봉은 큰 목소리로,

“이해했으면 당장 6층을 우리에게 양보하고 떠나세요!”

시커먼 속내를 드러냈다!

그때,

“미봉! 당장 도망쳐...!”

남자랑 말싸움하던 여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닥쳐!”

“꺅?!”

당황한 남자가 여자의 가냘픈 몸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우당탕.

“무슨 짓을...?”

너무 놀란 미봉이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나는,

“혈마냐?”

“...사람을 잘못 봤군.”

“그래?”

뒷걸음치며 조금씩 창문으로 이동하는 남자를 향해 도약했다.

우직-!

나무로 된 6층 바닥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건 나중에 배상해주면 되기에 무시했다.

펄럭~

우리의 사이를 가로막은 붉은색 비단 2겹을 치웠다.

“젠장!”

“드디어 만났네?”

나는 낭패감에 젖은 혈마를 향해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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