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98화 (99/232)
  • 098화

    “화산파 최고의 기재가 독에...”

    “놈들이 아미파에 이어 화산파까지 손을 뻗다니!”

    “혈마수호대가 매복을...”

    “화룡 소협의 죽음은 무림의 큰 손실이오.”

    화산파의 관계자들이 찾아와서 화룡의 시신을 운구해갔다.

    모두가 비통한 심정!

    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내가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사망자가 나왔으니까.

    ‘어쩔 수 없지.’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자기 잘난 맛에 제멋대로 싸우는 동료를 지키면서 싸우는 방법 따위 알지도, 배우고 싶지도 않다.

    “...이상해.”

    꼬마 권왕은 화산파의 관계자들이 떠나자마자 중얼거렸다.

    “뭐가요?”

    “혈마수호대가 어떻게 우리의 위치를 알고 매복했을까?”

    “어... 그러게요.”

    현대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나는 무심코 넘어갈 뻔했는데, 무림 세계는 정보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다.

    위치 추적이 쉬웠다면?

    변변찮은 호위도 없이 중원을 여행하던 구룡오봉은 진즉 혈마수호대에 납치 혹은 살해됐을 것이다.

    “화산파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 게 틀림없어.”

    “그래서요?”

    “응?”

    “권왕 어르신이 알 정도면 검왕도 눈치챘을 것 같은데요.”

    바둑으로 천마를 이길 화산파 장문인이 바보일 리 없다.

    “뭐... 그건 그렇지.”

    “저희는 예정대로 사천성에 가면 돼요.”

    “화산파를 안 도와줘도 돼? 화룡의 복수는?”

    “오해하지 마세요. 저도 화룡의 죽음이 슬프고 괴롭지만, 한 가족이었던 화룡의 죽음에 분노한 화산파에 양보하는 겁니다.”

    “아하! 이해했어.”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음모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했다.

    화산파의 미래?

    알 바 아니다. 나는 마오짜이를 얼른 찾아내서 꿈 깨라고 설득하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

    “화룡 소협이 나쁜 남자는 아니었는데, 조금 아쉽네요.”

    미봉이 전혀 아쉽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조금은 좋아했나요?”

    “아뇨. 전혀.”

    “그러면 화룡은 이제 잊고 마룡이나 찾아보죠.”

    다시 돌아온 사천성.

    주인공이 차지하는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왔기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꼭 그렇지도 않나?’

    화룡의 시신을 화산파의 관계자들에게 인계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제법 허비했던 것 같다.

    “권왕 어르신.”

    “왜?”

    “걸왕이랑 친하시죠?”

    “늙은 거지랑 친해서 뭐해?”

    “마룡이 어디에 있는지 걸왕에게 물어보고 싶어서요.”

    개방(丐幇).

    무협 소설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정보조직이다.

    치안과 복지가 형편없는 중원 어디에나 사는 거지들의 눈과 귀를 활용해서 정보를 끌어모은...

    즉, 개방은 거지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악덕 기업이다. 걸왕은 그 기업의 대표이고.

    “강 공자님. 소녀가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어? 미봉 소저가요?”

    “네.”

    “어떻게요?”

    무척 의외라는 내 질문에 미봉이 생긋 웃었다.

    “보시면 알아요.”

    * * *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로맨스는 늘 수요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만인의 사랑을 받는 유명인의 연애가 관심이 많았으니!

    중원 무림에서 2번째 아름다운 미봉은 틀림없는 연예인이었다.

    “혈마수호대를 무찌른 호걸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인은 개방의 소방주, 걸룡입니다.”

    걸룡(乞龍).

    악덕기업 개방의 후계자.

    구룡오봉의 일원으로, 그는 주인공이 정보수집을 위해 가장 많이 애용하는 호구였다.

    외모는 매우 준수!

    하지만 거지 같은 몰골 때문에 잘생긴 유전자가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불러서 미안해.”

    “아닙니다. 미봉이 부르면 어디든지 달려가야죠.”

    “고마워.”

    “별말씀을요.”

    권왕의 인맥을 동원해서 걸왕을 부를 생각이었는데, 미봉도 넓은 인맥을 보유하고 있었다.

    다시 봤다고 할까?

    소설 원작에서는 숨만 쉬어도 혈기왕성한 수컷들을 끌어들이는 문제아였기 때문이다.

    “후루룩!”

    탁!

    걸룡은 우리가 국수 한 그릇을 비우는 동안, 청소기처럼 면을 빨아들여서 벌써 네 그릇째.

    미봉이 국수를 산다고 했지만, 공짜를 좋아하는 걸룡을 보면 동족 혐오 같아서 불편했다.

    “걸룡. 마룡의 현재 위치를 알고 싶어.”

    “흠. 미봉 소저의 가슴둘레, 허리둘레는 이미 알고...”

    “틀릴걸?”

    “...음? 그렇네요. 잠시 안 본 사이에 환골탈태라도 하셨나요?”

    “응.”

    미봉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잠시 멈칫한 걸룡이 젓가락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입술을 뗐다.

    “엄청난 정보를 너무 가볍게 주셔서 살짝 당황했습니다. 미봉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 협객은 밤하늘에 별처럼 많으니까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마룡의 위치나 알려줘.”

    “물론입니다.”

    걸룡은 의미심장한 미소로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답했다.

    “아미파입니다.”

    “아!”

    아미파.

    아미신검이 소속된 문파.

    마룡이 아미파로 향한 이유는 안 봐도 뻔했다.

    ‘맞아! 내가 시켰었지!’

    정정당당한 승부로 아미신검을 3번 쓰러트리면 사귈 수 있다고 마룡에게 가르쳐줬었다.

    하지만 바로 대련이 될까?

    사천제일 무술대회에서 나에게 처맞은 아미신검은 부상으로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 정정당당한 대련은 무리다.

    “걸룡. 고마워.”

    “별거 아닙니다. 혈마수호대의 습격을 받은 아미파의 끔찍한 참상을 조사하는 도중에 우연히 알게 된 정보니까요.”

    “그랬구나.”

    “아미파에서 검봉, 아미신검, 아미선녀, 사천제일미를 납치한 혈마수호대가 어디로 향했는지 수소문 중입니다.”

    “...바쁘겠네.”

    미녀들을 납치한 혈마수호대가 어디로 향했는지 잘 아는 우리로선 조금 당혹스러웠다.

    쉽게 가르쳐주던데?

    이것이 승자와 패자의 차이. 강자에게 더 약하고, 약자에게 더 강한 악당의 속성이 잘 반영됐다.

    “소인의 사견이지만, 아미파에는 안 가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아미파를 대표하는 고수들을 전부 잃은 굴욕적인 패배의 원인을 사천제일마로로 돌리고 있으니까요.”

    “양심 없네.”

    고작 2명이 빠졌다고 손쉽게 패배할 문파라면 깔끔히 사라지는 편이 좋지 않을까?

    전력 공백이 두려웠으면 애초에 무투대회에 내보내질 말던가.

    이래저래 억지다.

    “강 소협. 화산파에서 천마는 잘 만나셨습니까?”

    “남자의 관심은 사절입니다.”

    “대답을 노골적으로 회피하시는 것으로 보아, 화산파에 정말로 천마가 있는 모양이군요.”

    “......”

    “그의 외손자를 자칭하고도 살아있다는 건, 자칭이 아닌 사실이란 뜻이고요.”

    “...걸룡 소협.”

    “신경 쓰지 마십시오.”

    “당신의 비밀을 까발리고 싶어졌습니다.”

    태도가 불량한 건 아닌데, 그냥 마음에 안 들었다.

    “소인은 비밀이 없습니다. 거지에게 무슨 비밀이-”

    “누이랑 안 닮으셨네요. 피부도, 눈도, 머리카락도.”

    “...하하! 강 소협. 정보가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소인이 어디든지 달려가겠습니다!”

    “정말이죠?”

    “물론입니다!”

    벽안공주의 이복동생이 해맑게 미소 지었다.

    * * *

    천마신공을 노리는 마오짜이보다 먼저 마룡을 찾아야 했다.

    어떻게?

    “혈마의 아내가 될 위기에 처한 아미선녀, 아미신검, 사천제일미, 검봉을 빨리 구하죠!”

    마룡이 아미신검을 구하기 위해 혈마수호대를 추적 중이라면, 우리가 먼저 아미신검을 구해서 마룡이 찾아오도록 한다는 전략.

    완벽하다.

    다만,

    ‘마오짜이가 탈탈 털어갔네!’

    사천성에서 섬서성으로 이동할 때는 주인공의 보물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하남성으로 가는 동안에는 빈 동굴과 상자뿐.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허탕만 쳤잖아!”

    “누가 먼저 온 것 같아요.”

    내가 주는 공짜 기연에 길들어진 권왕과 미봉이 아쉬워했다.

    “천지음양지체의 소행입니다. 그도 무공이나 보물이 잠든 장소를 잘 알고 있으니까요.”

    “꼭 잡자!”

    “소녀도 도울게요!”

    탐욕에 눈이 먼 권왕과 미봉은 마오짜이를 빨리 잡길 원했다.

    ‘나도 잡고 싶지.’

    일단은 하남성 어딘가에 있는 혈마의 은신처를 찾아야 했다.

    소설 원작에서도 정확한 위치 묘사는 없었던 탓에 지금부터는 직접 찾아다닐... 아!

    “미봉 소저.”

    “네.”

    “제 곁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어머! 그거라면 숨 쉬듯 잘할 자신 있어요!”

    찰싹!

    미봉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양팔로 내 팔뚝을 끌어안았다.

    “강 소협. 혈마수호대가 또 미봉을 노릴 거라고 보는 거야?”

    “물론이죠.”

    소설 원작에서 혈마수호대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혈마의 결혼이 수천 명의 부하보다 가치 있고 중요할까?

    이해하기 힘들지만, 혈마수호대 혹은 혈마가 직접 미봉을 노리리란 건 기정사실.

    도발하듯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서 기다릴 생각이다.

    “뱃놀이하러 갈래요? 비용은 반반씩 내고.”

    “좋아요!”

    우리는 중원을 가로지르는 황하(黃河)의 나루터로 향했다.

    * * *

    혈마는 미봉이 황하에서 뱃놀이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도발’임을 바로 눈치챘다.

    이건 혈마에 대한 도전!

    하지만 상대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것도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수적들의 실력을 보자꾸나.”

    직접 나서지 않고 수적(水賊)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두고 봐요. 협객들이 곧 당신을 쓰러트릴 겁니다.”

    강이 잘 보이는 명당에 자리 잡은 혈마의 옆자리. 도도한 분위기의 절세미녀가 앉아있었다.

    천하제일미(天下第一美).

    어떤 남자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혈마수호대에 납치된 현재는 혈마를 제외한 어떤 남자도 만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푸하하하! 벌써 몇 년째 두고 보는 중인데, 소식이 없구나.”

    “두, 두고 봐요!”

    손발이 꽁꽁 묶인 천하제일미는 자신을 비웃는 혈마를 노려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혈마는 발끈하는 모습조차 아름다운 중원 최고의 미녀를 안주 삼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누런 강을 구경했다.

    ‘시작됐군.’

    수적들이 크고 작은 배를 타고 등장했다. 그들은 사천제일마와 미봉이 탄 유람선을 빠르게 포위했고...

    퍼엉-!

    사방에서 치솟은 물기둥과 물보라에 휘말리며 순식간에 전멸했다.

    “...무슨 일이?”

    방금까지 노란색이었던 강은 수적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두둥실~

    수면이 안 보일 정도로 빼곡한 파괴된 배의 잔해와 수적들의 시체. 그리고 이것들에 둘러싸인 유람선도 무사하진 못했지만, 수적들에게 공격받은 탓이 아니었다.

    사천제일마.

    그의 무공에 수적들이 전멸할 때 유람선도 살짝 스쳤다.

    “교주님! 지시를!”

    “흠...”

    “수적들을 상대하느라 사천제일마가 지친 지금이 기회입니다!”

    “......”

    그런 계획이긴 했다.

    “교주님의 명령을 받은 혈마수호대가 강가에 매복 중입니다. 반드시 사천제일마를 죽이고 미봉을 바치겠습니다!”

    혈마는 의욕이 넘치는 부하를 힐끔 돌아봤다.

    “지시를!”

    “...솔직하게 대답해라.”

    “네! 교주님!”

    “현재, 본좌에게 계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느냐?”

    “......”

    “솔직하게 대답해라.”

    “아닙니다! 이미 중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하제일미가 옆에 있고, 이번에 아미파에서 사천제일미, 아미신녀, 아미선녀, 검봉을 손에 넣었습니다. 본거지에는...”

    “그만.”

    “송구합니다! 교주님!”

    충성스러운 부하의 말대로, 혈마수호대는 중원의 수많은 미녀를 납치해서 그에게 바쳤다.

    솔직히 이 정도면,

    ‘충분하지.’

    소설 원작에서는 주인공의 방해로 매번 실패하지만, 그 주인공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혈마수호대는 아무런 방해 없이 수월하게 중원의 미녀들을 납치해서 혈마에게 바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쭉!

    천하제일미가 혈마의 애인(?) 비슷하게 지내는 원인도 주인공이 구해주지 않은 탓이다.

    “혈마수호대는 매복을 풀고 철수해라.”

    “예?”

    “미봉도 무시해라. 본좌의 아이를 잉태할 계집은 이미 충분하다.”

    “아! 바로 철수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 사천제일미를 준비해라. 친구끼리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싶구나.”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벌써 기대되는군.”

    강문수의 도발은 혈마의 현실적인 판단으로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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