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97화 (98/232)
  • 097화

    [5장-7절] 주인공이 안 구해!

    무림의 명문학원 중 하나인 화산파에서 만난 천마에게 마오짜이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주인공의 재능은 확실한데, 현대에서 습득한 잘못된 지식과 정신력 미달로 탈락!

    ‘충격과 공포로군...’

    마오짜이를 찾기 위해 중원 무림 전역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사실에 현기증이 날 것 같다.

    여기서 문제.

    라누벨 환자는 꿈의 세계를 강하게 부정하면 깨어나는데, 천마의 제자가 되지 못한 마오짜이는 여전히 꿈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직 꿈과 희망을 못 버렸다는 소리인데...”

    “미봉 소저~!”

    그때, 화산파 장문인이 일방적으로 떠넘긴 청년의 목소리가 내 상념을 깨트렸다.

    “화룡 소협.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베어버릴 거예요.”

    화룡.

    내가 천마를 쫓아서 화산파에 간다고 했을 때부터 미봉이 극도로 경계했던 구룡오봉의 일원.

    화룡은 입만 다물면 여자들이 좋아할 것 같은 꽃미남이었다.

    “여전히 부끄러움이 많구려.”

    “...옛날처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죽을 거예요.”

    “하하! 화산파의 무공은 천하가 알아주는... 이크!”

    휙!

    경고를 무시하자마자 허리를 절단할 기세로 휘두른 미봉의 칼질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화룡.

    그는 매화가 그려진 새하얀 도복을 펄럭이며 뒤로 물러섰다.

    “경고예요.”

    칼을 들고 생긋 웃는 미봉의 뻔뻔한 태도도 만만치 않았다.

    “하하! 미봉 소저! 정말 몰라볼 정도로 실력이 늘었구려!”

    “다음은 없어요.”

    “하하!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더욱 분발하겠소.”

    “그냥 죽으세요.”

    “하하!”

    화룡은 미봉이 스트레스로 탈모가 올 때까지 웃지 않을까?

    이런 남자는 무시하거나 경찰에 신고가 답이라고 미봉에게 가르쳐주려다가 그만뒀다.

    “강 소협. 어째서 다시 사천성으로 돌아가는 거야?”

    꼬마 권왕이 질문했다.

    휙, 휙, 휙...

    그는 아령처럼 생긴 무거운 쇳덩이를 양손에 하나씩 쥐고 운동하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어째서 사천성으로 돌아가냐?

    이유는 하나다.

    “제가 찾고 있는 사내아이가 사천성에 있기 때문이에요.”

    “천지음양지체?”

    “네.”

    “어떻게 아는데?”

    “천마의 제자인 마룡이 사천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음?”

    “마오- 천지음양지체는 천마신공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힘으로 빼앗을 생각일 겁니다.”

    하지만 천마에게 덤비는 건 자살행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만만한 마룡을 노리리라.

    ‘이러면 전부 말이 돼.’

    내가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의 세계에서 맨 처음에 눈을 뜬 장소는 사천성의 도시로 이어진 도로 한복판이었다.

    시작 장소는 환자 주변.

    그래서 무공을 좋아하는 마오짜이가 사천제일 무술대회에 참가하거나 관전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마룡을 노린다는 거야?”

    “네.”

    “천마의 제자가 되지 못해서 천마신공을 노린다는 건 좀...”

    “억측같죠?”

    “그래. 천마신공이 대단한 건 틀림없지만, 세상에는 천마신공에 비견되는 무공이 많아.”

    “뭐...”

    자신의 무공에 자부심이 강한 무림인들은 천마신공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 원작에서도 꼬마 권왕이랑 비슷한 말을 하는 자가 많았으니까.

    그러나,

    ‘천마신공은 소설 작가가 설정으로 정한 최고의 무공이지.’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를 읽은 독자가 아니라면 절대 알 수 없는 객관적인 진실.

    비슷한 예로, 중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리라.

    천하제일미, 미봉, 벽안공주...

    하지만 막상 후보들을 일렬로 세우고 비교하면 천하제일미가 1위, 미봉이 2위, 벽안공주가 3위라는 인기순위가 나올 것이다.

    왜?

    작품의 세계관을 설계한 작가가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천지음양지체는 자신이 천마신공을 익혀야만 천마에게 복수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천마신공은 일인전승이니까요.”

    “아! 그럴 수도 있겠군!”

    “강 공자님! 소녀도 대화에 끼워주세요!”

    내가 꼬마 권왕이랑 심도 있게 토론하는 게 부러웠던 걸까? 미봉이 쪼르르 다가와서 부탁했다.

    “미봉 소저. 눈치 보지 말고 언제든 말하세요.”

    할 수 있다면 말이죠.

    “하하! 미봉 소저! 저 나뭇가지 위에 앉은 한 쌍의 파랑새를 보시구려. 마치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 같지 않소?”

    “아아, 정말...!”

    노골적으로 싫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는 화룡의 끈질긴 참견!

    이에 미봉은 짜증을 내면서도 그를 상대해줬다.

    “...평화롭네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러 지형을 지나쳐왔다.

    산, 숲, 초원, 강, 사막...

    하지만 무협 소설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산적(山賊)과 수적(水賊)을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야 당연하지.”

    “왜요?”

    “노부가 주먹 하나로 녹림을 평정한 권왕이기 때문이야!”

    “어르신이 권왕인 줄 어떻게 알아요? 지금은 꼬마잖아요?”

    “증표가 있잖아.”

    “증표요?”

    “네가 빌려가서 안 돌려주고 있는 반월도.”

    “아, 이거요.”

    내 허리에는 아직도 권왕에게 빌린 반월도가 매어져 있었다.

    녹림십팔도.

    맨손으로 싸우는 권왕이 어째서 칼을 차고 다니는지 의아했었는데, 그의 신분증이었다.

    “언제 돌려줄 거야?”

    “줄게요.”

    “어? 이렇게 간단히?”

    “돌려달라고 안 하셔서 갖고 있었던 겁니다.”

    탁.

    나는 허리에 찬 녹림십팔도를 꼬마 권왕에게 돌려줬다.

    “...네가 계속 갖고 있어.”

    “왜요?”

    “키가 작아지면서 녹림십팔도가 바닥에 질질 끌려.”

    “......”

    키가 너무 작아서 놀이기구를 타지 못하는 꼬마를 보는 기분.

    나는 조용히 녹림십팔도를 다시 허리에 찼다.

    “녹림십팔도를 못 알아보는 산적은 중원에 없어.”

    “멋지네요.”

    “노부가 권왕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덤비는 산적이 있다면, 이길 자신이 있다는 소리야.”

    “그런 경우도 있었어요?”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는 주인공의 일인칭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됐다.

    그런데 주인공은 ‘미녀’가 아닌 등장인물에는 관심이 없어서 정보가 매우 적은 편!

    주인공의 스승인 천마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혀 몰랐어.’

    천마에게 아내와 딸이 있었다는 정보는 소설 원작에도 없었다.

    스윽-

    나는 천마에게 돌려받은 책 사이에 끼워져 있는 붉은색 책갈피를 만지작거렸다.

    「혈운(血雲)이 드리우니 자하(紫蝦)가 우는구나.」

    소설 원작에 없었던 물건.

    주인공이 동굴에서 주운 이 책을 아내가 아닌 천마에게 줬다면?

    무의미한 가정이었다.

    “...음?”

    저격수의 총알도 피해내는 내 감각에 무언가가 걸렸다.

    “강 공자.”

    “네. 이 친구들은 권왕이 무섭지 않은 모양이네요.”

    “산적이 아니라서 노부를 모르는 거야.”

    “정말요?”

    “확실해! 진짜야!”

    “알겠으니 때쓰지 마세요.”

    포위됐다.

    * * *

    “미봉을 넘겨라. 그러면 고통 없는 죽음을 약속하지.”

    자기소개 대신 자신들의 목적만 짧게 밝힌 수상한 복면인들.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고 복면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들을 알고 있었다.

    “뭐야? 혈마의 신붓감을 구하러 다니는 혈마수호대잖아.”

    “...잘못 봤다.”

    “맞잖아.”

    “......”

    “......”

    “...사천제일마. 사천제일 무술대회에서 운 좋게 우승한 게 아닌 모양이구나. 맞다. 우리는 죽음을 지배하는 혈마수호대. 위대한 교주님의 씨를 받을 미봉이 필요해서 너희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복면인들의 대장으로 짐작되는 남자가 인정했다.

    혈마수호대(血魔守護隊).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에서 주인공이 침 발라둔 미녀들을 납치하는 일에 목숨을 건 집단.

    포기를 모르고 몰살시켜도 금방 보충된다는 특징이 있다.

    “혈마수호대라니!”

    “헉! 혈마수호대라고?!”

    “혈마수호대...”

    그리고 주인공이 없는 곳에서만 강하다는 특수효과가 있다.

    검왕, 걸왕, 잠룡, 무룡...

    그래서 소설 원작에서는 많은 남자가 혈마수호대에게 당했고, 악명은 하늘을 찌를 수준!

    나 때문에 복면인들의 정체를 알게 된 혈왕, 화룡, 미봉의 표정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미봉을 넘겨라.”

    “싫은데?”

    “그러면 죽어라.”

    챙! 챙! 챙!

    맹독이 묻은 단검을 양손에 쥔 복면인들이 포위망을 좁혀왔다.

    이에 우리는...

    “주먹 하나로 녹림을 평정한 권왕의 힘을 보여주마!”

    팟!

    주먹을 야무지게 쥔 꼬마 권왕이 일직선으로 돌격했다.

    저기요?

    “미봉 소저. 잘 보시오. 이것이 화산의 무공이오!”

    살랄라~

    화룡이 팔다리를 흐느적거리며 권왕의 뒤를 따랐다.

    미봉은?

    “혈마의 아내가 될 바에 여기서 자결하겠어요!”

    스르릉-

    자신의 칼을 목에 대면서 자결할 준비를 했다.

    “...미봉 소저.”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소녀의 몸과 마음은 죽어서도 강 공자님의 것이니까요.”

    “마음만 받을게요.”

    “너무해!”

    “무서운 여자친구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거든요.”

    우웅-

    뼈다귀 사부님께 받은 나의 작고 소중한 내공.

    권왕과 미봉에게 주인공의 보물을 양보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몇 배에 달하는 내공을 쌓았겠지만, 후회하거나 아쉽진 않았다.

    그야...

    “큭! 뭐야?!”

    “대체 무슨 일이...!”

    “갑자기 바람이?!”

    내가 달리기만 해도 주위에 작은 폭풍이 몰아치고,

    서걱!

    “어?”

    내가 칼을 휘두르면 죽는 순간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화산파는- 허억?!”

    “이놈아! 적당히 해!”

    “꺅! 강 공자님~!”

    내공을 조금만 써도 근처의 아군이 휘말리거나 방해되니까. 많은 내공이 필요 없었다.

    ‘현실에 가져갈 것도 아니고.’

    이게 가장 큰 이유.

    꿈에서 깨어나면 전부 사라지는 돈이랑 똑같다.

    털썩.

    철푸덕.

    상의도 없이 돌격한 권왕과 화룡 주변의 복면인들만 남기고 깔끔히 몰살시켰다.

    “후퇴- 켁켁?!”

    “기다려.”

    덥석.

    떠나려는 복면인의 목을 잽싸게 낚아챘다.

    “켁켁?!”

    “너도 간부지?”

    놈들의 대장은 나의 첫 공격에 휘말려서 죽었지만, 후퇴를 명령하는 복면인이 또 있었다.

    “......”

    “충성심이 대단한걸. 비밀을 안고 죽겠다는?”

    “수, 숨이...!”

    “미안.”

    스르륵.

    손아귀의 힘을 풀자마자 복면인이 크게 외쳤다.

    “살려만 주시면 소인이 아는 모든 비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남성(河南城)에 있지?”

    “예?”

    “몰라?”

    “아, 아닙니다! 교주님이 아끼는 은신처가 있습니다!”

    “정답.”

    혈마수호대는 납치한 미녀를 하남성의 은신처에 가둔 후, 혈마가 올 때까지 손가락 하나 안 건드리는 신사적인 조직이다.

    편안한 잠자리, 맛있는 식사, 친절한 시녀, 청결한 위생...

    이 정도 복지면 한 번쯤은 납치당해도 좋지 않을까?

    “대협! 살려주십시오!”

    “마지막 질문. 혈마는 지금 어디에 있어?”

    뼈다귀 사부님이 조언했다.

    내 본업을 개발하고 싶으면 혈마를 만나보라고.

    “하남성의 은신처로 향하는 중이십니다!”

    “은신처에 누가 있어?”

    “네. 최근에 아미파를 습격해서 아미선녀, 아미신검, 검봉을 납치했습니다.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 투항한 사천제일미도 있고요.”

    “잠깐! 사천제일미는 할머니잖아?”

    “교주님이랑 동갑입니다.”

    “그, 그렇군.”

    동갑이라면 인정!

    사천제일미(四川第一美).

    현대식으로 소개하면, 무림이란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여학교 아미파 출신의 교사다.

    꼬마 권왕처럼 반로환동으로 회춘해서 겉모습은 20대 초반!

    그녀는 사천성을 대표하는 미녀지만, 주인공이 포기한 몇 안 되는 미녀이기도 하다.

    “살려주십시오!”

    “그래.”

    나는 복면인을 놔줬다.

    “...어? 대협. 정말로 그냥 보내주시는 겁니까?”

    “싫으면 죽던가.”

    “아닙니다!”

    살아남은 혈마수호대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강 공자님! 놈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에요!”

    “비겁한 놈들. 아미신검과 아미선녀가 다친 틈에 습격하다니!”

    내 옆에서 듣고 있던 미봉과 권왕이 초조한 기색을 드러냈다.

    화룡은?

    “후후! 화산파 최고의 기재인 내가 방심했군...”

    털썩.

    화룡은 흐트러진 앞머리를 멋지게 뒤로 쓸어넘기며 쓰러졌다.

    “...뭐지.”

    “독이야. 한심한 녀석. 방심하다가 독에 당했어.”

    꼬마 권왕이 진단했다.

    “죽을까요?”

    “죽겠지. 악명 높은 혈마수호대의 독에 당했는걸.”

    “실화냐...”

    꿈에서 깨어날 때까지 화산파 주변은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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