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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95화 (96/232)

095화

이건 내 추측이지만, 인물들의 호감이나 관심 조건은 소설 원작을 따르는 것 같다.

‘벽안공주는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강해진 후에 등장하니까.’

벽안공주.

백인 모친의 유전자를 받아서 눈동자가 푸르고 피부가 새하얀 혼혈의 공주다.

무협 소설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황인이랑 다른 이질적인 외모가 유일한 흠인데, 그걸 찍어누를 몸매의 소유자라고...

‘우와! 꿈에서 작가의 묘사를 빠짐없이 구현했네!’

들어가고 나올 곳이 뚜렷했다.

“강문수 대협. 소녀의 심장이 떨릴 만큼 훌륭한 무용이었어요. 우승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공주님.”

소설 원작에서 설명하는 벽안공주의 남자 보는 기준도 미봉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

일신(一身)의 무력(武力).

이 험난한 세상에서 아름다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강인한 남자를 노골적으로 원한다.

다만, 벽안공주는 부친이자 절대적인 명령권자인 황제의 의향이 크게 반영되는데...

‘이것도 문제 없지.’

황제는 통제가 안 되는 천마랑 우호적인 관계를 갖길 원하니까. 적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위험하기에 혈연으로 묶길 원한다.

그리고 나는?

천마의 외손자!

천마의 제자인 주인공처럼 나도 황제가 원하는 사위의 조건은 통과한 셈이다.

“폐하께서 황실연회에 대협을 초청하셨어요.”

“영광입니다.”

역모죄로 끌려가지 않으려면 황제의 초청을 무조건 수락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감사합니다.”

덥석.

팔면 황실모독죄로 끌려갈 게 확실한 보검을 하사받았다.

‘우승상금은?!’

보검이 훨씬 값어치 있지만, 팔 수 없으면 고철이나 다름없다. 아니, 고철은 팔 수 있기라도 하지...

망했다.

“강 대협. 황실연회에서 다시 뵙길 고대할게요.”

“네. 공주마마.”

살랑살랑~

황제가 하사한 보검을 양손으로 내게 건넨 벽안공주가 우아한 몸짓으로 떠나갔다.

“황제폐하 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와아아아!”

돈을 딴 사람이 없어서 모두가 불행한 사천제일 무술대회.

죽기 싫으면 환호하라는 압박을 받은 사천성 백성들의 우렁찬 박수 속에 막을 내렸다.

* * *

나의 다음 목적지는 식도락을 즐기며 여행 중인 천마가 향하는 섬서성(陝西省)의 화산(華山).

여러 무협 소설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화산파가 있는 곳이다.

‘마룡이 직접 가르쳐준 정보니 확실하겠지.’

천마를 찾아가서 마오짜이의 행방을 물어볼 계획이다.

짤랑!

두툼한 돈주머니가 내 마음을 풍족하게 해줬다. 꿈에서 깨어나면 사라질 돈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화룡은 만나기 싫은데...”

화룡(華龍).

명문학원 화산파의 우등생이며, 구룡오봉의 일원.

나는 옆에서 투덜대는 미봉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따라왔나요?”

“강 공자님이 화산파에 간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요.”

“노부도 마찬가지다.”

동성애란 설정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권왕이 슬쩍 편승했다.

“어르신은 왜요?”

“무인이 강자를 따라다니며 가르침을 청하는 것은 숙명이니라.”

“...거짓말이 들통나기 전에 강해져야 하긴 하죠.”

“흠흠!”

정곡을 찔린 권왕이 무안했던지 먼 산을 바라보며 딴청을 부렸다.

‘...좋을지도.’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의 세계관 2번째 미녀가 좋다고 따라오는데, 싫은 사내가 있을까?

나는 고자가 아니다.

“미안...”

마오짜이의 꿈에서 내가 뭘 하는지 절대 알 리 없는 송선영에게 용서를 빌었다. 이건 불가항력이라고.

“그런데 강 공자님.”

“네.”

“여기는 화산파로 향하는 길이 아닌데요?”

“확인할 사항이 있거든요.”

마오짜이는 이 세계의 어딘가에 살아있다.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를 읽은 그가 소설에 등장하는 보물과 기연을 그냥 지나칠까?

절대 그럴 리 없다.

“허어! 이런 곳에 동굴이?”

반나절이나 헤맨 끝에 발견한 동굴 입구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권왕이 감탄했다.

이곳의 정체는?

“씨에에에!”

퍽!

동굴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지네의 머리가 내 발길질에 터졌다.

“영물도 별거 없네요. 내단이나 챙기죠.”

주인공이 피똥 싸면서 사냥했기에 힘들 줄 알았는데.

영물(靈物).

간단히 정의하면?

인간이 내공을 쌓으면 무림인.

동물이 내공을 쌓으면 영물!

그리고 이런 영물을 사냥하면 내단(內丹)이란 보상을 얻는데, 먹으면 내공이 쭉 상승한다.

“대단해요!”

미봉이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면서 감탄했다.

“허허...”

“어르신. 감탄은 그만 하고 내단 좀 빼주세요.”

“그러마.”

경험과 지식이 많은 권왕은 군말 없이 지네의 몸을 해부해서 내단을 끄집어냈다.

반짝반짝!

흑요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영물의 내단.

‘내 기억으로는...’

주인공이 이걸 먹고 ‘조금’ 강해지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을 호소했었다.

결정했다.

“미봉 소저.”

“네!”

기대로 반짝이는 미봉의 눈동자.

눈치가 빠르다.

“가까운 마을에서 바로 먹는 조건으로 드릴게요. 권왕 어르신은 다음에 챙겨드릴게요.”

“어흠! 누가 뭐랬느냐?”

나잇값 못하고 삐지려는 권왕의 표정이 풀어졌다.

“얼른 가죠.”

우리는 가까운 마을에서 식사하고 숙소를 잡은 후, 미봉의 내단 시식이벤트를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뜨거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강 공자님. 고마워요.”

“괜찮아요.”

“이 은혜는 평생 갚을게요.”

“안 그러셔도 됩니다. 친구로서 주는 겁니다.”

“평생 갚게 해주세요!”

“미봉 소저. 일단은 먹고 나서 얘기합시다.”

주인공이 피똥 쌌던 내단을 먹으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네.”

꿀꺽.

내단을 한입에 삼킨 미봉은 평온한 얼굴로 내공을 흡수했다.

“어라?”

“강 소협. 어째서 의외란 표정을 짓는가?”

“너무 수월해서요.”

권왕이 당연한 결과라는 어조로 지식을 뽐냈다.

“내단에 음기가 가득했으니까. 미봉처럼 음기를 타고난 여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 사내가 먹었다면 고생했겠지만.”

“그렇군요.”

주인공은 욕심을 내서 피똥을 쌌던 모양이다.

권왕이 지네의 내단을 순순히 포기한 이유도 음기가 강해서?

설득력 있었다.

“허어! 환골탈태까지?”

“정말요?”

“보게. 미봉의 머리카락과 이빨이 빠지고 다시 나고 있네.”

“그렇네요.”

환골탈태(換骨脫胎).

기존의 뼈와 가죽을 갈아치워서 무공을 익히기에 최적화된 육체로 개조하는 경지.

무협 소설마다 설정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환골탈태하면 단숨에 몇 배로 강해진다.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의 설정은 어떨까?

약을 빤 작가는 환골탈태의 조건에 사랑과 우정의 힘을 넣었다.

“강 공자님!”

번뜩!

내단을 간단히 흡수하고 눈을 뜬 미봉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부터 찾았다.

“몸은 좀 어떤가요?”

“뜨거워요. 공자님을 향한 소녀의 사랑으로...”

“아, 네.”

권왕이 흐뭇한 얼굴로 강해진 후배를 축하해줬다.

“수고했다. 음양(陰陽)의 이치를 마침내 깨달았구나.”

“네!”

“더욱 예뻐진 것 같고.”

“어머!”

미봉의 피부는 원래 고운 편이었지만, 환골탈태하면서 갓난아기랑 비슷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좀 더 성숙해진 분위기.

뼈가 바뀌면서 미묘한 체형 교정도 있었던 것 같다.

“흠...”

흥미로웠다.

‘나도 미봉처럼 환골탈태할 수 있을까? 만약에 한다면 현실에 얼마나 반영될까?’

마오짜이를 만나서 설득하기 전에 시험해보기로 했다.

* * *

화산파로 향하는 우리의 여정은 매우 순조로웠다.

마오짜이가 보물을 먼저 찾아가서 허탕 치길 기대했지만, 매번 미봉과 권왕만 행복의 비명을 질렀으니!

급기야,

“꼬마야. 너는 누구니?”

“하하! 꼬마라고? 정말이구나! 목소리가! 손발이...!”

권왕이 환골탈태의 다음 단계인 반로환동으로 꼬맹이가 됐다.

반로환동(返老還童).

낡은 뼈와 가죽을 갈아치우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무림인이 다시 젊어지는 경지.

전성기와 수명마저 대폭 늘어나기에 모든 무림인이 반로환동을 꿈꾸지만, 이 경지에 도달하는 무림인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어르신. 축하합니다.”

“정말 고맙다! 이 은혜는 내가 죽기 전에 꼭 갚으마!”

“그러세요.”

“오랜만에 붙어볼까?”

반로환동으로 젊어진 권왕은 말투도 앳되게 변했다.

패기도 넘치고.

“좋습니다.”

“강 소협. 과거의 권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아.”

“조심하겠습니다.”

“그럼... 타핫!”

꼬마 권왕이 짧아진 다리를 열심히 교차하면서 내게 돌진했다.

‘호오?’

그는 다리가 짧아진 것 이상으로 몸놀림이 빨라졌다.

그러나,

“헉- 꾸엑?!”

짧아진 팔은 어쩔 수 없었다.

빠각!

내가 들어올린 발바닥이랑 입맞춤한 꼬마 권왕이 고꾸라졌다.

“어르신. 너무 어려지신 것 같은데요?”

“큭! 원통하다!”

“그래도 뼈는 확실히 튼튼해지셨네요. 회복력도 빠르고.”

뛰다가 넘어지고 무릎이 깨져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서는 어린이를 보는 기분이랄까?

우득.

부러진 코뼈가 바로 복구된 권왕이 흙먼지를 털며 일어섰다.

“노부를 꼬마 취급할 수 있는 녀석은 세상에 너뿐일 거야.”

“그래서 싫으세요?”

“아니.”

팔다리가 짧아진 꼬마 권왕을 위해 의류점을 들렀다.

그래서 시간이 살짝 지체되는 바람에 해가 완전히 떨어진 후에야 화산파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어두워서 아쉽네요. 화룡은 싫지만, 매화(梅花)로 가득한 화산의 풍경은 언제 봐도 좋거든요.”

“헤에~”

우리는 캄캄한 산길을 아무렇지 않게 올랐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동굴이랑 비교하면 달과 별이 빛나는 야외는 매우 밝은 편.

‘나도 발전했네.’

지팡이로 앞을 더듬으며 동굴을 나아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내공으 정말 편리했다.

“이 앞은 화산파입니다. 무슨 일로 이 시각에 오셨습니까?”

화산파(華山派).

도교(道敎)에 뿌리를 둔 화산파는 화산의 정기를 받으려는 도사(道士)들이 모여서 형성된 문파.

도복에 매화가 수놓아진 것이 화산파의 특징이다.

“장문인을 만나러 왔어.”

“누구십니까?”

“주먹 하나로 녹림을 평정한 권왕이다! 가서 장문인을 불러와!”

“권왕...?”

“그래!”

화산파의 정문(正門)을 지키던 무림인이 권왕을 빤히 내려다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꼬마야. 부모님은 어디에 계시니?”

“누가 꼬마라는 거야!”

누가 봐도 꼬마인 권왕이 발끈하기 직전에 미봉이 나섰다.

“구룡오봉의 미봉이에요. 소녀도 의심하실 건가요?”

“헉! 아, 아닙니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미봉을 본 무림인이 허겁지겁 비켜서며 문을 열어줬다.

중원에서 2번째로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가 신분증명서.

데리고 다니는 보람이 있었다.

‘꼬마 권왕보다 나은걸?’

불필요한 시비를 사전에 차단하는 신분증명서였던 권왕이 한순간에 쓸모없어졌다.

“노부가 어쩌다가...”

“아저씨가 갑자기 꼬마로 바뀌었으니 어쩔 수 없죠.”

“며칠만 기다려. 노부가 반로환동한 사실이 알려지면 무림이 발칵 뒤집힐 거야.”

“충격이긴 하겠네요. 팔다리가 짧아져서 더 약해진 권왕...”

“네가 이상한 거야! 그리고 원래 약했다는 듯이 말하지 마!”

“약했잖아요?”

“아니야!”

뇌까지 유치한 어린애가 돼버린 것 같은 꼬마 권왕.

그와 사소한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화산파의 중앙에 자리한 고풍스러운 전각(殿閣)에 도착했다.

끼이익-

하녀로 짐작되는 중년의 여인이 밖에서 문이 열어줬다.

“먼저 가.”

“왜요? 어르신이 앞장서야죠.”

“노부는 장문인이랑 따로 이야기할 거야. 그런 게 있어.”

“...가죠.”

전각 안쪽에 방이 또 있었다.

“이 시각에 누구인가?”

안쪽에서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인가?

철학적인 질문이군.

“사천제일마 강문수입니다. 외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화산파까지 오게 됐습니다.”

“외조부의 존함이...?”

“천마.”

“......”

“이곳에 계신다고 마룡에게 들었습니다.”

“...위험한 손님이 늘었군. 문을 열고 안으로 들게.”

“감사합니다!”

드르륵-

세계관 최강자를 만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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