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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94화 (95/232)

094화

“안녕하세요.”

비도만 낭비할 뿐임을 깨닫고 공격을 멈춘 마룡.

마음 같아서는 내게 던진 비수의 숫자만큼 갈비뼈를 부러트려 주고 싶지만, 나는 넉살 좋게 다가가서 먼저 인사했다.

‘참자, 참아.’

상대는 라누벨 환자니까. 남해수처럼 또 죽일 순 없다.

“부러운 놈. 중원에서 2번째로 아름다운 미봉의 마음을 얻다니.”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나, 나는 못 해. 안 돼. 도저히 무리야. 죽을 거라고.”

마룡은 남자다운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말까지 더듬으며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였다.

“......”

‘이 주인공 실화냐?’

마오짜이에게 육체를 빼앗긴 주인공은 피를 토하는 심정이리라.

그는 새빨개진 얼굴이 진정된 후에 강렬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사부님의 외손자인지 아닌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아.”

“그렇겠죠.”

내가 천마의 외손자를 자칭하고 있지만, 그는 천마의 제자.

피가 이어진 외손자가 제자보다 중요할 것 같지만, 무림에서는 가족보다 사제관계가 중요하다.

이유?

유전자보다 무공을 훨씬 가치 있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미선녀와 아미신검은 절대 건드리지 마라.”

휘이잉-

경고하는 마오짜이를 중심으로 잔잔한 바람이 불었다.

‘...강해.’

진지하게 싸워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이기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역시 다르다고 할까!

불필요한 싸움을 원치 않았던 나는 미소로 회답했다.

“약속할게요. 당신의 두 아내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누, 누가 내 아내라는 거냐?! 그녀들의 마음도 들어봐야... 아니, 나 따위를 좋아할 리가 있나!”

“......”

저 얼굴과 능력으로 자존감이 낮기도 힘들 것 같다.

‘마오짜이가 이런 인물이었나?’

아니다.

진짜 아니다.

그는 전통 무술과 무협 소설에 빠져서 여자에 관심 없었지만, 여자가 없었던 건 아니니까.

유일한 가능성은 하나.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의 세계에서 유년기를 다시 보내며 성격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마오짜이 씨.”

“뭐-?”

“놀라시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 이 세계에서 당신은 <이 천마 실화냐?>의 주인공이니까요.”

“무슨 소리를...”

“시치미 때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 정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나를 바보 취급하는 거냐?”

“......”

이상하다.

“아! 그렇군!”

“드디어 인정하시는...”

“네가 미봉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 같은 건가? 대체 어떻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부러운 짓을 하고도 무사한 거지?! 누가 봐도 뺨을 맞을 분위기였거늘!”

“......”

정말로 이상하다.

“역시! 아무 말도 못하는 걸 보니 정곡을 찌른 모양이군!”

“마룡. 당신은 천마의 제자가 아닙니까?”

“미봉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리석은 질문이군. 천마신공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다니.”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와 천마의 후계자만 익힐 수 있는 절대적인 힘!

마룡이 강한 이유는 무림 최고의 재능과 학벌이 조화를 이룬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확실하게 말해줘야 합니다. 마오짜이를 모릅니까?”

“모른다.”

“......”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의 본명을 듣고도 침착했던 환자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주인공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환자가 아니라고?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나는 마룡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뭐냐?”

“천마의 제자는 단 한 명뿐이죠?”

“물론이다. 천마신공은 일인전승이니까.”

일인전승(一人傳承).

여러 제자를 거두지 않고 단 한 명만 가르치는 사문.

스승과 제자가 계승하는 도중에 죽지 않는다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다.

“마룡. 질문 하나만...”

“싫은데.”

“협조해주신다면 아미신검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알려드리죠.”

“...정말인가?”

“저는 미봉의 속옷 색깔도 알고 있습니다.”

“헤헤. 뭐든지 물어보세요.”

“......”

갑자기 비굴해진 마룡은 천마의 제자로 보이지 않았다.

* * *

“강 대협. 틀리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정말이면 어쩔래?”

“평생의 은인으로 모시겠다!”

“잊지 마.”

아미신검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들은 마룡이 꿈과 희망을 가슴에 품고 떠나갔다.

정정당당한 대련으로 3회 승리.

현실이었다면 말도 안 되는 헛소리지만, 여기는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꿈의 세계.

규칙이 존재한다.

“틀리면 말고.”

마룡이 실패한다면, 소설의 규칙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례를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절대적이란 대표적인 사례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의 세계에서 ‘전설의 검’이 숨겨진 오두막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는데, 소설 원작에서 주인공이 미남들이랑 연애한 전개를 따랐더니 마법처럼 안개가 걷히며 등장!

규칙이다.

“그런데 이건 어째서...”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의 세계관 최강자 천마는 주인공을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규칙이 아닌 걸까?

잘생기고 재능도 출중하지만, 여자랑 눈도 못 마주치는 소심한 숙맥이 천마의 제자가 되었다.

‘천마를 만나야 해.’

소설 원작의 서장(緖章).

마적단의 습격으로 고아가 된 주인공의 재능을 한눈에 간파한 천마가 거두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즉, 마오짜이가 어린 주인공의 육체에 빙의했다면 틀림없이 천마랑 만났을 터.

천마에게 마오짜이의 행방을 물어봐야 한다.

“일이 복잡해졌네...”

“강 공자님. 일이 뜻대로 안 풀리셨나요?”

미봉에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사천제일 무술대회.

더는 여기에도 볼일 없었다. 마오짜이가 무공을 좋아한다는 점을 이용해서 유인한다는 계획이 보기 좋게 실패했기에.

‘성과가 아예 없던 건 아니지만.’

마오짜이가 소설 원작의 주인공이란 확신이 생겼다.

천마의 제자가 엉뚱한 인간으로 바뀌었으니까. 마오짜이가 주인공의 몸으로 쓸데없는 짓을 해서 전개가 틀어진 것이다.

“권마는 매우 강하오!”

권룡은 자신이 돈을 건 권마가 나에게 패배할 것 같아서 매우 불안한 모양이다.

“포기하면 편해요.”

여자에게만 약한 마룡 정도는 되야 나를 긴장시킬 수 있다.

“제자야.”

“네! 스승님!”

“잘 새겨듣거라. 권마는 이젠 노부의 상대가 안 된다.”

“저, 정말입니까?!”

권왕의 양심 없는 발언에 깜빡 솦은 권룡이 경악했다.

“보면 안다. 권마는 강 공자의 상대가 안 된다.”

당신도 안 되잖아요.

그에게 핀잔해주고 싶었지만, 권왕의 거짓말이 늘수록 나에게 꼼짝 못 하기에 봐줬다.

“그, 그럴 수가...”

스승의 말을 무조건 믿는 권룡은 벌써 좌절하고 있었다.

“다녀올게요. 권왕 어르신보다 약한 권마를 상대하러.”

“하하! 권마를 한 방에 때려눕히고 오려무나!”

내가 말을 맞춰주자 표정이 헤벌쭉해진 권왕.

살짝 아쉽다. 내가 이 꿈의 세계의 주민이라면 호구 하나 확실하게 잡는 셈인데.

꿈에 뭘 기대하리.

“빨리 끝내죠.”

“그렇다고 죽이진 마라!”

“네.”

지금까지 마적 외에는 죽인 적 없는 나를 어떻게 보고?

권왕의 무례한 충고를 한 귀로 흘리며 경기장으로 나갔다.

권마.

무림 소설 <이 천마 실화냐?>의 세계관에서 악(惡)의 세력을 담당하는 ‘마교’의 간부다.

악의 간부답게 실력이 무시무시한 수준이지만, 주인공에게 늘 당하는 호구 같은 존재이기도...

“강문수입니다.”

“권마다!”

탕탕!

권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주먹을 마주치며 의욕을 다졌다.

이번에는 어떻게 상대해줄까?

‘내공 소진이라...’

상대가 아미선녀처럼 규칙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무인의 예의를 지켜줄 용의가 있다.

“후우.”

“자세가 바뀌었군.”

“네. 다른 거죠.”

이번에는 태권도의 기본 자세.

나는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며 리듬을 잡았다.

그게 우스웠던 걸까?

권마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본좌를 무시하는 거냐?”

“아닙니다. 장난은 예전에 했죠. 이건 진지한 겁니다.”

“아미선녀와 아미신검을 상대로 장난했다고 말하는 게냐?”

“네.”

마룡을 상대로 크라우칭 발주법을 쓰면 시작하자마자 머리에 비수가 꽂혔으리라.

핑~!

엽전이 하늘로 떠올랐다.

“......”

“......”

톡.

우리의 시선이 땅에 떨어진 엽전에서 마주쳤다.

“마수라신권(魔修羅神拳)...!”

“오!”

대포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른 권마의 주먹에서 도깨비의 형상이 튀어나왔다.

이것도 내공의 효과.

눈이 즐겁고 신기하긴 했지만, 내 감상은 딱 거기까지였다.

‘낭비로군.’

현대의 폭탄이 터질 때마다 분홍색 꽃무늬가 생성되는 효과를 넣는다고 가정해보자.

분홍색 꽃무늬를 만들기 위해 염색약 등이 첨가되면 살상력이 감소하고 제작비는 상승할 것이다.

과정은 복잡하고 효율은 저질!

‘그에 비해.’

현대의 무술은 과학적인 성찰을 통해 실용성을 추구했다.

고무신 관장님의 지독한 발 냄새를 맡으며 습득한 실전 태권도.

군더더기 따위 없다.

휙~

포물선을 그리면서 정직하게 나를 향해 떨어지는 권마.

그가 오른팔을 쭉 뻗으며 내지른 주먹이 내게 닿기 직전, 오른발을 축으로 회전하며 왼발 뒤돌려차기를 갈겨줬다.

내공은 덤,

“뭣-”

빠각-!

엇비슷한 신장의 성인일 때, 팔보다 다리가 긴 것은 상식.

그리고 일반인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권투 선수의 주먹보다 태권도 선수의 발차기가 빠르다. 위력은 그 이상 차이나고.

‘단점도 있지만.’

여자 태권도 세계 1위, 고무신 관장님의 후손인 고윤정에게 당한 쓰라린 기억이 떠올랐다.

털썩.

그러나 권마에게는 그녀 수준의 기량과 기술이 없었다.

오랫동안 연마한 무술이 핵폭탄이 아닌 폭죽이면 무슨 소용인가?

시간 낭비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다른 무공을 찾아보세요.”

“......”

내 발뒤꿈치에 관자놀이를 정통으로 맞은 권마는 시체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싱거운 대결.

얍삽하게 점수만 먹고 빠지는 고윤정이 훨씬 위협적이었다.

‘결승전은 좀 나으려나?’

빡-!

사천제일 무술대회 결승전.

엽전이 땅에 떨어지자마자 도망 다니면서 독이 묻은 비수를 열심히 던지는 독왕.

얍삽하다는 점에선 고윤정이랑 비슷했다.

“꾸에엑~?!”

“느려.”

내공으로 강화해도 총알보다 느린 비수가 내게 닿을 리 없었다.

털썩.

내 옆차기에 안면을 강타당한 독왕이 고꾸라졌다.

“내 돈...”

“하아...”

“망했다...”

돈을 잃은 자들의 탄식이 사방에서 들렸다. 집에서 쫓겨날 예정인 남편들도 좀 보이고...

‘고마워요. 잘 쓸게요.’

여러분의 후원금은 무림 소설 <이 천마 실화냐?>의 세계 평화를 어지럽히는 마오짜이를 검거하는 데 사용해주겠다!

“강 소협.”

“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시상식이 바로 진행됩니다.”

“그거 좋네요.”

경기장으로 다시 올라온 경기진행자가 외쳤다.

“사천제일마 강문수 승리!”

“사천제일마?”

“네.”

“어째서 ‘마(魔)’인가요?”

나처럼 선량한 문화시민을 악당 취급하다니!

“소, 소인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경기진행자가 내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사천제일마(四川第一魔).

사천성 최고의 무인을 뽑는 무술대회에서 당당히 우승한 나를 위한 별호였다.

살짝 악의가 느껴지긴 하지만!

“얼른 진행해죠.”

“네. 시상식은 중원의 영원한 지배자이신 황제 폐하가 아끼는 푸른 보석, 28번째 공주, 벽안공주님이 진행하십니다!”

“에?”

황제의 딸내미가 여기서 왜 나오는 거야?

정말 뜬금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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