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92화 (93/232)
  • 092화

    「작년 우승자의 허무한 탈락!」

    「사천제일검이 예선전에서 패배!」

    「상대는 천마의 외손자!」

    식당 2층까지 들릴 정도로 사천성이 시끌시끌했다.

    ‘이 사람들은 할 일이 없나? 아니면 관심이 많은 건가?’

    하지만 정작 화제의 주인공인 내 얼굴은 알아보지 못해서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단 한 명을 빼고,

    “강 공자님. 이것도 드셔보세요.”

    “...미봉 소저도 얼른 드세요.”

    “어제부터 몸매 관리를 다시 시작했어요.”

    “아, 네.”

    아름다운 외모는 유전자 위에 꾸준한 노력이 더해져야 완성된다는 건 알고 있다.

    ‘저기서 뭘 더 뺀다는 거야?’

    운동선수처럼 팔뚝과 허벅지 등이 굵은 검봉이 그녀의 말을 들었다면 피를 토하리라.

    “그래도 계속 쳐다보는 건...”

    “저는 공자님을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거든요.”

    “배탈 날 겁니다.”

    “소녀가 불편하신가요?”

    “네. 조만간 소화불량에 걸릴 것 같아요.”

    “어머! 그때는 소녀가 책임지고 간호해드릴게요.”

    “거참...”

    도무지 대화가 되질 않았다.

    드륵-

    “하하! 난리가 났군.”

    그때, 식당까지 따라온 권왕이 자연스럽게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는 넉살 좋게 주문했다.

    “어르신.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늙은이들이 자꾸 질문해서 도망쳐 나왔지! 하하!”

    “그래서 꼬리가 많았군요.”

    “오! 이런 우연이!”

    권왕은 친구들이 뒤따라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척했다.

    “헉! 검후?!”

    “걸왕도 있어!”

    “마, 맙소사...”

    갑자기 식당에 몰려든 아저씨, 아줌마의 정체를 알아본 손님들. 그들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내려놓고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나도 그들이랑 같은 심정.

    이유는?

    ‘중요인물이 너무 많잖아!’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가 215권이나 되는 바람에 그만큼 비중 높은 인물도 많은 편.

    그래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무림인들의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무술대회가 자석처럼 이 인물들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했다.

    “이 친구야. 혼자 가면 섭섭하지.”

    “합석해도 되겠는가?”

    “대신에 우리가 사겠네.”

    수중의 돈을 무술대회에 거의 쏟아부은 탓에 돈주머니가 홀쭉해진 나로선 거부하기 힘들었다.

    “앉으시죠!”

    “천마의 외손자라고 해서 음침한 성격을 예상했는데...”

    “호호! 예의가 바른 씩씩한 젊은이로구나.”

    “주인장! 이 식당에서 가장 좋은 술을 가져오게!”

    짤랑!

    권왕의 친구들이 주문한 술과 안주가 식탁을 채우고, 마주 보고 앉아있던 미봉은 은근슬쩍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똑같은 복장의 남녀가 나란히 앉으면 의심받기 딱 좋은데...

    “청춘이군.”

    “좋을 때지.”

    “그립구먼.”

    짠!

    무림에서 이름난 아저씨, 아줌마들은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우리를 귀엽게 쳐다봤다.

    그러면서 흔한 질문을 내게 툭툭 던졌는데...

    “술독에 빠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홀로 생활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가난한 생활에 지쳐서 무작정 뛰쳐나왔습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아버지가 어이없게 돌아가신 뒤부터 아르바이트로 힘들게 버텨온 강문수의 인생.

    꼭 바꾸고 싶다.

    “사연은 잘 알겠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의심이 많아져서...”

    “천마의 외손자임을 증명할 방법이 있는가?”

    “물론입니다.”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폈다.

    “증거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힘입니다.”

    살랑살랑~

    나를 중심으로 가벼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

    “......”

    하지만 그 바람을 피부로 느낀 권왕의 친구들은 웃지 못했다.

    바람은 내 영역권 표시.

    공격 범위다.

    그래서 내게 조금이라도 적의를 보이는 순간, 내공으로 강화된 발차기에 머리가 쪼개지리라.

    “두 번째는 유품입니다. 저를 강하게 해준 원천이죠.”

    “흠!”

    “비급...!”

    32번이나 읽고도 나는 아무런 힘도 얻지 못했지만, 무림인들이 읽으면 다를 것이다.

    슥-

    나는 뼈다귀 사부님이 천마에게 전해주라고 당부한 책을 품에서 꺼내 표지만 보여줬다.

    제목이나 그림 하나 없는 밋밋한 갈색 가죽 표지.

    그러나 이것이 진품인지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강 공자. 무림행을 결심한 목적이 뭔가?”

    “돈이요.”

    “정말로 그뿐인가?”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원수?”

    “무림에서 얼굴을 감추고 다른 인간 행세 중인 그 남자를 찾으면 보물을 받기로 했습니다. 의뢰를 받은 셈이죠.”

    “어떤 보물이기에...”

    “비밀입니다.”

    라누벨 환자의 가족에게 받는 ‘현실 화폐’란 보물이다.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의 세계에서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의미가 없으니까.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마오짜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사뭇 기대됐다.

    * * *

    사천제일 무술대회 예선전이 끝나고 본선이 마침내 시작됐다.

    사천제일검이 예선전에서 탈락하는 이변이 있긴 했지만, 그를 제외한 유명인들은 주최자들의 의도대로 본선에 올라왔으니!

    “아미선녀 승!”

    “독왕 승!”

    “아미신검 승!”

    “검귀 승!”

    하지만 관객들은 유명인들의 경기 내용에 관심이 없었다.

    쾅! 번쩍! 캉...!

    흙먼지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는 무림인들이 대결은 하나도 재미가 없으니까. 그래서 대부분 관객은 누가 이기는지만 관심 있었다.

    내가 돈을 건 무림인이 이기지 못하면 집에서 쫓겨나니까. 매우 중요한 문제다.

    예외가 있다면,

    “허어! 저런 묘수가?”

    “종이 한 장 차이로군!”

    “멋진 반격이네요.”

    참가자들이랑 실력이 엇비슷한 극소수의 무림인들은 흥미진진하게 관람하고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는가?

    주최자들도 그 사실을 알기에 시합을 빠르게 진행했다.

    “강문수 소협.”

    “...벌써 내 차례네.”

    이 속도면 결승전까지 반나절이면 끝날 것 같지만, 무림인들의 치료와 휴식을 위해 그럴 수 없었다.

    스윽.

    가장 잘 보이면서도 위험한 앞자리에서 다른 무림인의 대결을 구경하던 나는 무투대회 관계자의 부름에 받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 공자님! 날려버리세요!”

    “네.”

    미봉이 귀엽게 양손의 주먹을 쥐며 응원했다.

    “사천제일검을 쓰러트린 몫까지 힘내시오.”

    작년 사천제일 무술대회 우승자인 사천제일검에게 돈을 걸었던 도룡의 응원은 깔끔히 무시했다.

    “제발! 제발!”

    이 경기의 승자가 아미선녀랑 대결하기 때문에 내가 패배하거나 다치길 바라는 검봉.

    아미선녀의 우승을 바라는 그녀의 꿈을 반드시 짓밟아주리라.

    “강 소협. 무운을 빌겠소.”

    권룡은 스승의 눈치를 살피며 마음에도 없는 응원을 했다.

    당연히 무시!

    나는 상대랑 비슷한 속도로 시합장을 향해 걸어갔다.

    “......”

    “......”

    나를 응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천제일검의 우승에 돈을 건 관객들의 분노!

    그들은 사천제일검의 본선 시합을 보러 왔지만, 그가 예선에서 떨어지고 내가 올라오는 바람에 헛걸음하게 됐다.

    ‘그래도 조용하네.’

    돈과 함께 이성을 잃은 관객들이 야유와 욕설을 퍼부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러나 그들은 침묵을 지켰다.

    내가 천마의 외손자라는 소문이 쫙 퍼진 탓이다.

    천마(天魔).

    그 이름은 무림의 세계를 잘 모르는 양민과 관리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니, 모르기에 더욱 두려워하는 것이리라.

    그 대신,

    “아미신검 누님~!”

    “아미파의 천재 검사!”

    “믿습니다! 아미신검!”

    관객들은 나랑 곧 붙게 될 여인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아미신검(峨嵋神劍).

    검(劍)이랑 결혼했다고 선언한 그녀는 주인공에게 패배하자마자 이혼했다. 그리고는 주인공이랑 바로 재혼하는 파렴치한 행보를...

    시기상, 검이랑 아직 이혼하지 않은 것 같다.

    “강문수입니다.”

    “소문처럼 정말로 천마의 외손자인가요?”

    “나보다 강하면 믿고, 약하면 안 믿을 분이 질문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정곡을 찌르는군요. 아미신검입니다.”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눈 우리는 약속한 거리를 벌리고 섰다.

    경기진행자가 말했다.

    “규칙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한 번 더 설명하겠습니다. 항복을 외치거나 기절하면 패배, 경기장을 이탈하거나 금지된 무기를 사용해도 패배입니다. 시합은 제가 던진 엽전이 땅에 떨어지면 시작합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네.”

    “이해했어요.”

    나는 설명을 들으면서 아미신검을 빠르게 관찰했다.

    송선영이 준 핵심요약본에 그녀가 익힌 검술과 내공심법 등이 서술되어 있었지만, 중요도가 낮아서 이름까지 기억하진 못 했다.

    대충 어떤 무공이란 정도?

    나랑 눈높이가 비슷한 그녀의 큰 신장에 어울리는 길고 아름다운 칼이 인상적이었다.

    스르릉-

    저 칼의 이름도 아미신검.

    아미파의 보물이며, 그녀가 평생을 함께한다고 맹세했다가 바람 나서 이혼당한 남편이기도 했다.

    즉, 그녀의 거창한 별호는 남편에게서 따온 셈.

    “무기는?”

    아미신검이 내 허리에 매달린 녹림실팔도를 보며 물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장식입니다.”

    “......”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든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준비하십시오.”

    경기진행자의 준비 신호.

    스윽-

    나는 출발선에 선 육상선수 같은 자세를 취했다.

    크라우칭(Crouching).

    두 발을 앞뒤로 벌리고 손끝으로 지면을 지탱하여, 무게중심이 전방에 쏠리도록 하는 발주법(發走法).

    체중을 이용하기에 출발과 반응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그건...?”

    “보면 압니다.”

    팅~!

    경기진행자가 나와 아미신검의 중간 위치에 엽전을 던지고는 도망치듯 경기장을 벗어났다.

    그 직후,

    톡.

    나는 엽전이 땅에 떨어지자마자 일직선으로 질주했다.

    단 두 걸음.

    내공이 깃든 두 다리의 도약 거리는 현실이랑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었다. 속도는 말할 것도 없고.

    “아...?”

    오른손으로 우아하게 쥔 남편의 칼끝을 내게 겨누며 싸울 자세를 취하고 있던 아미신검.

    빠각-!

    그녀의 얼빠진 얼굴에 내 주먹이 시원하게 꽂혔다.

    ‘시합이니까.’

    발차기였으면 이마가 함몰되어 죽었다.

    휘이잉~!

    한 박자 늦게 도착한 충격파가 혼절한 아미신검과 그녀의 남편을 경기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

    “......”

    조용해진 경기장.

    그 탓에 살짝 무안해진 나는 앞뒤로 손을 흔들며 퇴장했다.

    “강 공자! 조금 전에 그 기괴한 준비 동작의 무공은 뭔가?!”

    “크라우칭.”

    “그라, 뭐-?”

    “두 번은 안 말합니다.”

    “킁.”

    권왕이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미녀도 아닌 아저씨의 기분 따위 신경 쓸 내가 아니다.

    “공자님. 괜찮을까요?”

    미봉이 걱정스럽다는 눈으로 아미신검을 보며 물었다.

    “안 죽였어요.”

    “얼굴이요.”

    “평생 죽만 먹을 줄 알았던 권왕 어르신도 벌써 회복했잖아요? 괜찮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그녀는 같은 여자로서 아미신검의 얼굴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그때,

    “강 공자!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군요! 여자의 생명인 얼굴을 또 때리다니!”

    고수들의 대결을 절대 놓칠 수 없다던 검봉.

    그녀는 아직 모든 경기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나를 비난하기 위해 애써 찾아왔다.

    ‘피곤한 인생이네.’

    참견하기 좋아하는 검봉이 요절하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남편을 잘 만났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음 경기에는 얼굴을 노리지 않도록 해보죠.”

    “어떻게요?”

    아미선녀에게 돈을 건 검봉이 꼬치꼬치 캐물었다.

    “옷을 찢어버릴 겁니다.”

    “...예?”

    “그러면 항복하겠죠.”

    “수많은 사내가 구경하는 자리에서 옷을 벗긴다고요?”

    “네. 피부에 생채기 하나 없는 온건한 방법-”

    “안 돼요! 아미선녀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나요?! 이건 얼굴보다 심한 처사잖아요!”

    “흐음~”

    “절대로 안 돼요!”

    “아미선녀가 그렇게 걱정되면 귀띔해줘도 됩니다.”

    “절 얕보지 마세요. 누가 그런 비겁한 짓을...”

    “아니면 말고요.”

    “......”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에서 아미신검은 수많은 사내의 구혼을 받는 매력적인 여인이다.

    그런데도 실패!

    ‘아미선녀는 어떨까?’

    마오짜이가 아미선녀도 외면하는지 시험해보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