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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79화 (80/232)

079화

[5장-1절] 꿈은 이루어진다

남해수의 후원이 끊기면서 1군 수영선수들은 2군, 3군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훈련을 받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어째서 강문수 선수만?”

“참아. 어쩔 수 없지.”

“상대는 핵잠수함이잖아.”

“박한희 여사님이 왜...?”

선수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밀폐된 수영장의 벽에 반사되어 내게 전달됐다.

‘내가 뭘 어쨌다고?’

남해수의 비밀을 박한희 여사에게 전부 전달했을 뿐이다. 배우자로서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메모리칩도 회수하지 않고 그녀에게 대가 없이 넘겼다.

그런데 왜?

깔끔히 청산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던 걸까.

“강문수 선수는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군요.”

“감사합니다, 여사님!”

불필요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내게 박한희 여사가 다가왔다.

“남편이 당신을 보았다면 참 좋아했을 텐데.”

“절대 그럴- 어흠! 네.”

남들은 가족이나 여자친구가 응원하고 격려해준다. 그런데 나는 휠체어를 탄 할머니?

물론, 평범한 할머니는 아니었다.

“여사님의 말씀대로예요.”

“매우 훌륭한 선수죠.”

“저희도 기대 중입니다.”

그녀의 주위에는 국제수영연맹 간부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부장, 팀장, 과장, 감독...

수영의 황제 남해수가 유언으로 후원을 끊긴 했지만, 명성과 영향력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기에.

그 빈자리를 박한희 여사가 고스란히 계승했다.

“언니도 당신을 봤다면 참 좋아했을 텐데...”

“아, 네.”

남해수에게 약점을 잡혀서 하나뿐인 동생을 팔았다는 죄책감.

박한희 여사는 죽을 때까지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한 친언니를 애도했다.

“나중에 같이 식사해요.”

“영광입니다!”

“이 늙은이야말로 젊고 잘생긴 사내랑 오랜만에 대화할 수 있어서 좋네요. 한결 젊어진 기분이에요.”

“......”

저는 한결 늙은 기분입니다만!

“슬슬 가지요.”

“네! 여사님!”

“모시겠습니다.”

국제수영연맹 간부들이 박한희 여사의 휠체어를 끌며 퇴장했다.

사극(史劇)에 종종 등장하는 태후마마 행차 같달까.

쿡쿡.

“저분이랑 언제 친해졌어?”

조용히 다가온 장서연 감독님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장난스럽게 찌르며 물었다.

“언제 오셨어요?”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했다.

“그야 어쩔 수 없잖니. 상대는 박한희 여사님인걸.”

“여사님이 왜요?”

“내가 현역이던 시절에 여신님처럼 올려다보던 분이야. 1군의 후원 수준을 문수도 봤잖니? 맛보기로 끝나긴 했지만.”

“뭐...”

유람선의 식사가 매우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조금 아쉽긴 했다.

“기록이 또 눈에 띄게 좋아졌어.”

“그래요?”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너무 오래 쉬는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재활 치료가 끝나자마자 성적이 쭉 올라갔네.”

“다행이네요.”

이번에는 꿈속에서 죽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특히, 다리의 힘이 좋아졌어. 네 주치의나 다름없는 서혜주 씨도 같은 말을 하더라.”

“다리의 힘...”

우연일까?

남해수의 꿈속에서 나는 다리의 역할이 매우 큰 육상과 태권도에 집중했었다.

수영은 굳이 더 훈련하지 않아도 모든 분야에서 1위,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할 성적이었으니까.

그래서 수영은 구시대의 올림픽 수영종목인 배영, 접영, 평영을 조금 연습한 게 전부였다.

‘혹시...?’

지난 일들을 회상해봤다.

‘송선영.’

개헤엄밖에 못 하던 내가 꿈속에서 그녀에게 수영을 배운 뒤부터 수영을 매우 잘하게 됐다.

‘최강훈.’

평범한 체력과 정신력의 소유자였던 나는 마법소년에게 살해된 뒤부터 평균치를 초월했다.

‘김은정.’

싸움을 전혀 할 줄 몰랐던 나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의 세계에서 배운 검술과 창술로 강해졌다.

‘남해수.’

그리고 이번 꿈속에서는 수영의 황제 이상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많이 따기 위해 육상과 태권도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그 결과는?

지식과 경험 외에도 현실의 육체에 일부 반영된 듯했다.

“...감독님. 정말 감사합니다.”

“갑자기?”

“장서연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거예요.”

“다리의 힘이 좋아진 거?”

“네. 그리고 저번에도 비슷한 말씀을 해주셨잖아요.”

내가 꿈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몸을 망치고 시간을 빼앗는 ‘낭비’가 아님을 깨달았다.

대단한 발견!

이건 내 인생을 송두리째 재설계할 만큼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내 적성은 감독이 아니니까.”

“그게 왜요?”

“잘 가르치지 못하는 대신에 선수의 상태라도 꼼꼼히 검사해야지. 적어도 방해는 안 되도록.”

“아...”

일반적인 감독은 선수의 성적이 오르면 ‘내가 잘 가르친 결과!’라고 판단하니까. 그게 오만이나 착각은 아니다.

당연한 상식!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도 감독이 시원찮거나 없으면 잘못된 훈련으로 몸을 망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연히 기량도 떨어지고.

감독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하다.

“문수는 내 은인이야!”

“제가요?”

“그동안 내가 의사 남편에게 백수라고 얼마나 구박당했는지...!”

“......”

“선영이가 적성을 무시하고 모델을 선택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전부 남편 때문이야. 선수가 되면 힘들고 불행해지는 줄 안다니까.”

“그랬군요...”

적성 때문에 계속 자살하는 송선영의 꿈은 가족이 원흉이었다.

“그래서 어제는 깜짝 놀랄 일이 있었어.”

“뭔데요?”

“남편이 15년 만에 처음으로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지 뭐니.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현관문에 놔둔 쓰레기를 들고 나가더라고.”

“...기분이 좋으셨겠네요.”

“당연하지! 신혼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어.”

“아, 네.”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정의 평화를 지키려면 돈이 꼭 필요했다.

“선영이랑 잘 지내?”

“저요?”

“문수가 아니면 누구겠니? 다른 늑대가 내 딸에게 치근대면 바로 경찰서 직행이지!”

“하, 하, 하...”

굳이 그렇지 않으셔도 직장은 보장해드릴 생각인데.

“얼버부리지 말고 얼른 말해보렴.”

“어... 며칠 전에 찾아와서 다른 남자의 욕을 막 했어요.”

“아아, 그 변태 왕자 새끼?”

“이미 아시네요.”

“엄마니까. 남편은 그 새끼가 마음에 든 모양이지만.”

“......”

내가 잠든 사이, 다른 나라의 왕자가 송선영에게 첫눈에 반해서 고백했다는 것 같다.

‘레온.’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왕위계승권이 없는 허울뿐인 왕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모든 면에서 우수했다.

재산, 외모, 신분, 가문...

조금씩 돈이 쌓이기 시작한 통장과 건강한 몸뚱이가 전부인 나랑은 사는 세계가 달랐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내 딸이 질색하더라.”

“그런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나는 남해수의 비밀을 보고 깨달았다.

‘그는 짝사랑한 박한희랑 결혼하기 위해 가족의 약점을 잡았지.’

그런데도 그는 죽을 때까지 정의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장례식장에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애도했으니...

나도 이 불합리한 세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감독님.”

차라리 가해자가 되겠다.

“응? 부탁이 있는 얼굴인걸.”

“네. 오늘은 훈련을 쉬고 태권도장에 가봐도 될까요?”

“태권도? 갑자기?”

“제가 예전에 태권도를 조금 배웠거든요.”

“그래서?”

“시험해보고 싶어서요.”

남해수의 방해로 중단된 계획을 현실에서 이어받겠다.

* * *

올림픽 역사를 살펴보면,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선수들의 기록과 기량이 좋아졌다.

인체공학적인 운동복.

체계적인 훈련.

신소재 운동기구.

인류의 체질 개선.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P의 적성검사기 등장이 가장 컸다는 데 이견이 없다.

“네가 그 녀석이군. 적성이 수영선수가 아닌 수영선수.”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들을 가르치는 사범의 사범에 위치에 있는 관장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맞습니다.”

“기가 막히는군! 수영을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적성이 없는 인간이 국가대표가 될 수 있을 만큼 태권도가 만만해 보여?”

“해보면 알겠죠.”

구시대에서는 죽을 때까지 모르는 자신의 재능과 잠재력.

하지만 현대에서는 19살만 되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 결과란?

분야마다 다르지만, 작업 효율이나 성과가 최소 2배에서 많게는 500배까지 차이가 났다.

그건 스포츠도 마찬가지.

인간의 탈을 쓴 괴물만이 운동선수가 될 수 있다.

“병원에 실려 가고 싶어?”

“괜찮습니다. 엘몰랑스 병원에 제 주치의가 있거든요.”

공짜로 건강검진을 해주는 고마운 분이다.

너무 자주 하는 게 흠이지만!

“...엘몰랑스 병원도 죽은 사람은 못 살려.”

“안 죽으면 되죠.”

“이빨과 코뼈가 부러져도 책임 못 진다.”

“네.”

내 대답에 관장이 비웃음을 머금은 어조로 외쳤다.

“들었지? 괜찮다고 하는 거. 이 자리의 모두가 증인이다...!”

“네! 관장님!”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선수를 불렀다.

“유일충.”

“네!”

“네가 상대해줘라.”

“알겠습니다!”

관장의 호명을 받은 청년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왔다.

‘태권도를 잘하게 생겼네.’

표범처럼 날렵한 체격과 긴 다리는 태권도 적성을 보유한 모든 선수의 공통된 특징.

우락부락한 근육은?

유연성이 떨어져서 안 된다.

올림픽 격투 종목 중에서 다리를 가장 많이 쓰는 태권도는 유연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왜냐?

발뒤꿈치로 상대의 정수리를 찍거나, 발등으로 뺨을 후려치거나, 발바닥으로 턱을 올려치거나...

태권도가 사람의 머리만 노리는 건 아니지만, 유연성이 떨어지면 선택지가 몸통밖에 없다.

그나저나,

“실례지만...”

“유일충이다.”

“네. 유일충 선수. 혹시, 유일암이란 분을 아십니까?”

“내 형이다.”

“아하! 닮으셔서 물어봤습니다.”

천재 무당 유일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그 인간의 얼굴을 닮은 친동생 유일충이 내 앞에 있었다.

‘이거 참...’

운명의 장난이란 건가?

남해수의 꿈속에서 태권도를 배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이토록 강렬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내 형을 아십니까?”

“같은 업계의 선배입니다.”

“형이 선배? 이보세요. 당신 멋대로 천재 무당의 후배를 자처하면 곤란합니다. 허위사실유포,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범죄입니다.”

“아, 네.”

“앞으로는 주의하십시오.”

“...명심할게요.”

나를 무시하고 인내심을 자극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유일암.

그리고 눈앞의 유일충.

둘은 외모만 닮은 형제가 아니었다.

“경례.”

심판을 맡은 관장의 지시.

살짝 거리를 벌리고 대치하듯 선 나와 유일충이 서로를 향해 살짝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태권도의 예법.

나는 고무신 관장님의 발바닥 냄새를 맡으며 그 예절을 배웠다.

“영광으로 아십시오. 세계 태권도 공식서열 8위 유일충이 당신을 상대해준다는 사실에.”

“...기쁘게 생각하죠.”

유일암의 동생을 합법적으로 때릴 수 있다는 사실에!

“시작!”

휙-

나는 관장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두 발을 빠르게 교차하며 거리를 좁혔다.

‘방심하는 건가?’

이때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유일충.

나는 다시 거리를 벌렸다.

예전에 고무신 관장님에게 돌진했다가 순간적인 반격에 처맞고 뻗은 경험이 숱하게 많으니까.

상대는 세계 8위의 강자!

허세가 아니라면 내가 만만히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뭐야? 겁먹은 거야?”

유일충의 말투가 바뀌면서 깐죽대기 시작했다.

“탐색전.”

“그래?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는 오래 끌 마음이 없는데-”

건들건들한 자세로 말하는 도중에 파고드는 유일충!

‘탐색은 안 한다더니?’

기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느리고 동작도 단순했다.

“흡!”

휙-

호흡을 멈춘 후, 오른발을 축으로 팽이처럼 회전하면서 왼발을 머리 위까지 치켜들었다.

“뭣-”

내 복부를 노린 유일충의 옆차기가 닿기도 전에,

빠각!

돌려차기에 회전력을 추가한 내 뒤돌려차기가 그의 뺨을 시원하게 훑으며 찍어눌렀다.

“꺽~?!”

“......”

동작이 크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그걸 감수할 만큼 강력한 뒤돌려차기.

특히, 태권도 종주국에서 무신(武神)으로 칭송한 고무신 관장님의 뒤돌려차기는 알고도 못 막을 만큼 독보적이었는데...

‘이걸 맞네?’

아무리 그래도 구시대 태권도가 현대에 통할 줄은 몰랐다.

쿵!

눈에 힘이 풀린 유일충이 입에 피거품을 물며 고꾸라졌다.

그리고 침묵.

“......”

“......”

그를 응원하던 관장과 다른 선수들도 말을 잊지 못했다.

“7위는 누구죠?”

내 질문을 들은 선수들의 시선이 한 남자에게 집중됐다.

그가 당황했다.

“나, 나는...”

“당신이 7위입니까?”

“히익?! 오해입니다! 옛날에 7위였고, 지금은 유일충에게도 가끔 지는 송사리입니다!”

“그렇군요.”

“......”

“다음은 6위인가요?”

“헉!”

꿈이 헛되지 않았는지 이 자리에서 시험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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