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화
끊어진 실을 이은 마리오네트처럼 비틀비틀 일어서는 남해수.
이에 나도 놀라고,
“꺅?!”
남편의 죽음을 태연하게 받아넘기던 아내도 놀랐으며,
탕! 탕! 탕...!
유람선에 잠복 중인 배신자와 저격수들의 빠른 총질에서도 그 동요가 여실히 드러났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기현상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로 입을 쫙 벌린 채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지르는 남해수.
틱, 틱, 틱...
단단한 철판을 두드리듯, 이전만큼 총알이 박히지 않는 그의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스르르-
손과 발이 시들어진 꽃처럼 쪼그라들면서 사라지고, 지방이 빠진 살가죽이 뼈에 달라붙었다.
그러다가 점점 납작해지더니, 칼날처럼 얇아지는 게 아닌가?
이건 아무리 봐도,
“검귀...?”
하지만 아직 아니다.
팔이 인간이랑 똑같이 둘뿐-
푹! 푹!
겨드랑이 밑의 갈비뼈가 돌출되면서 칼날처럼 생긴 팔 1쌍이 새롭게 추가됐다.
이걸로 팔이 넷.
검귀의 특징을 전부 갖췄다.
“여, 여보?!”
“......”
총에 꿰뚫린 머리의 상처를 회복한 남해수의 무심한 눈빛이 배신한 아내를 쳐다봤다.
“내가 잘못했어요...!”
“......”
“당신의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용서해줘요! 이 아이는 유전적으로 틀림없는 황해수의 적자에요...!”
“......”
남해수였던 검귀가 팔을 휘둘렀다.
댕강!
울면서 용서를 구걸하는 아내의 목이 절단되며 머리가 떨어졌다.
그리고,
“미치겠네...!”
“응애~!”
나는 유모차에서 꺼낸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채 몸을 날렸다.
서걱-
유모차가 절반으로 갈라졌다. 내가 구하지 않았다면 이 어린 생명마저 목숨을 빼앗겼을 터.
“......”
입을 살짝 벌린 채 넋을 놓은 얼굴로 나를 보는 남해수.
다음 표적이 누구인지는 굳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탕-!
제삼자가 방해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그랬으리라.
유람선에서 쏘아진 총탄이 남해수의 몸을 거칠게 두드렸다.
휘청~
얇은 철판을 뾰족한 물건으로 찔러서 찌그러트린 모양새의 특이한 상처가 늘어났다. 총격의 물리력으로 생긴 반동은 덤.
그게 매우 거슬렸던 걸까? 아니면 위협이라고 판단한 걸까?
“......”
내게 향했던 시선을 바다 위의 유람선으로 돌리는 남해수.
그리고 일직선으로 돌진했다.
‘...실화냐?!’
호화별장에서 바다로 뛰어내린 그는 파도치는 물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있었다.
날카로운 발끝만 물에 담근 채 스케이트 선수 같은 움직임으로 유람선을 향해 질주!
중력이나 표면장력 같은 자연법칙을 간단히 무시했다. 심지어 속도마저 매우 빠르네?
탕! 탕! 탕...!
이런 그를 저지하려는 견제사격이 시작되고, 여태 꼼짝 않고 있었던 유람선도 거리를 벌리기 위해 장소를 옮겼다.
“이게 대체...”
머리가 잘린 여자의 시체와 무자비한 총격으로 엉망인 별장.
유람선의 배신자들을 전부 처리한 후에 되돌아올 가능성이 있는 남해수의 추적을 따돌리려면 이곳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강문수 씨.”
우뚝.
낯익은 여성의 목소리가 나를 불러세웠다.
“...또 당신인가요? 마녀 씨.”
마녀.
이름을 모르는 내가 멋대로 붙인 호칭이지만, 그녀의 복장은 누가 보더라도 여성 마법사.
이번에도 챙이 넓은 검은색 고깔모자를 쓴 마녀는 별장 소파에 다리를 꼰 채 앉아있었다.
“마녀라... 그러면 저도 무당 씨라고 불러줄까요?”
“상관없습니다.”
“...자신의 적성을 싫어하던 당신이 그렇게 받아칠 줄은 몰랐군요.”
“여긴 무슨 일이죠?”
“전에도 말했을 텐데요. 여기는 제가 만든 세계라고. 집주인이 집에 들어왔을 뿐입니다.”
“여기는 수영의 황제 남해수 씨의 꿈입니다.”
“그 꿈을 제가 만들었다고요. 제 말이 어렵나요?”
“......”
바보 취급당한 나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남해수 씨는 자신이 원하는 세계에서 행복을 찾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째서 방해하는 거죠?”
“이 세계는 현실이 아닙니다.”
“현실의 기준이 뭔가요?”
“...진짜 세계.”
“당신이 믿는 세계가 진짜라는 증거가 있나요? 이곳처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
정곡을 찌르는 예리한 질문.
마녀가 바로 반박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입가를 올렸다.
“강문수 씨.”
“...뭐죠?”
“인정하세요.”
“......”
“당신도 남해수 씨처럼 꿈속에 사는 인간일 뿐이란 사실을.”
* * *
가상현실과 인공지능의 기술이 발전할수록 지식인들은 절망했다.
왜?
「우리가 사는 이 세계도 가상현실일 확률은 약 99%다.」
이 결론 때문이다.
가상현실의 세계에 사는 인공지능들이 ‘우리는 인간이다.’라고 믿고 있듯이, 창조주(인간)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에.
창조주의 창조주는 없을까?
인간이 만든 기계가 다른 기계를 만드는 것처럼!
우리가 ‘진짜 인간’이란 뚜렷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남해수 씨를 보세요.”
“......”
“과거를 바꾸고 싶었던 그는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아내와 부하들의 배신으로 살해당했습니다.”
“그게 제 탓이란 겁니까?”
“네. 당신의 고발로 최측근들이 전부 감옥에 갔잖아요? 사병을 총지휘하던 대장마저 비행기에서 당신에게 당했고.”
“흠...”
마녀의 지적대로, 남해수를 방해한 건 사실이다.
‘그래야 꿈을 포기할 테니...’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의 아름다운 주인공에게 빙의한 김은정처럼!
쫄딱 망하게 유도해서 꿈의 세계를 부순다는 전략이었다.
“그가 저렇게 변한 건 당신의 잘못입니다.”
“저렇게?”
“...쓸데없는 말이 길어졌네요.”
“마녀 씨. 당신은 남해수 씨가 검귀로, 인간에서 괴물로 변한 원인을 알고 있습니까?”
“당연히.”
“......”
그녀는 내 탓이라고 했다.
정말일까?
혼란스럽다.
“남해수 씨는 자신이 사랑한 이 세계가 완전히 파괴될 때까지 학살을 멈추지 않겠죠. 애증이랄까요.”
“...정말인가요?”
“제가 무단침입자에게 거짓말할 이유라도?”
“그거야 모르죠.”
“못 믿겠으면 지금부터 지켜보면 됩니다.”
“흠...”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사실이겠지.
하지만 그게 어쨌다고?
꿈을 스스로 파괴한 남해수는 깨어나게 될 터.
잘 된 일이다.
“아하! 이제야 알겠네요.”
“뭐가요?”
“제가 방해해서 화가 났군요?”
마녀가 내 앞에 ‘또’ 나타난 이유를 눈치챘다.
“아뇨. 그랬다면 당신을 보자마자 죽였겠죠. 밑을 보세요.”
“밑? 어...?”
스윽-
어느새 내 목에는 동아줄이 휘감겨 있었고, 마룻바닥은 바다가 보이는 투명한 유리로 변해 있었다.
교수형(絞首刑).
죄인의 목을 졸라 죽이는 사형집행 방법으로, 이것은 지지대를 제거해서 매달려 죽게 하는 수하식(垂下式)이었다.
아무튼,
‘대체 언제...?!’
그녀가 가르쳐주기 전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 알았나요? 제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죽일 수 있어요.”
“...목적이 뭡니까?”
“맞춰보세요. 틀리면... 알죠?”
내 발을 지탱하고 있는 유리가 사라지리라.
마녀의 목적.
화풀이가 아니라면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타인의 행복을 방해하지 말라는 겁니까?”
“정답.”
고깔모자로 얼굴 절반을 가린 마녀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하나만 물어볼게요.”
“해보세요.”
“제가 방해하기 전까지 남해수 씨가 행복했다고 생각하나요?”
“물론이죠.”
“사랑하지 않은 여자랑 결혼해도?”
“무당 씨. 질문은 하나라고 하지 않았나요?”
흔들림 없는 마녀의 목소리.
설득의 여지는 없었다.
그렇다면,
“마녀 씨. 저도 확실하게 말해두고 싶네요.”
“질문인가요?”
“아뇨.”
“그러면 뭐죠?”
“당신이 만든 꿈은 사람을 쾌락에 빠트려서 서서히 파멸시키는 마약이나 다름없습니다.”
“......”
반론은 없었다.
덜컹.
그러나 갑자기 바닥이 사라지며 내게 엄습한 부유감과 중력.
이것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가차없네!’
하지만 나를 확실하게 죽일 생각이었다면 팔을 묶었어야지.
“응애~?!”
아기를 최대한 조심스럽게 침대에 던진 후,
덥석!
동아줄이 내 목을 완전히 조르기 전에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머리를 잽싸게 빼냈다.
“야! 현실에서 만나면 각오- 헛?!”
뚜둑.
별장 지붕이랑 연결된 동아줄을 붙잡은 채 허공에 매달려 있던 나는 경악했다.
튼튼한 줄 알았던 이것이 ‘썩은 동아줄’이었던 탓!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말했을 텐데요. 당신을 죽일 생각은 없다고.”
“젠장! 두고 보자~!”
풍덩!
별장에서 추락한 나는 바다에 빠져버렸다.
‘그 마녀...!’
다시 만나면 고깔모자를 못 벗도록 머리털을 전부 뽑아버리리라!
촤아-!
수영 마라톤 10km도 우습게 주파하는 내가 해변에 빠져 죽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헤엄쳐서 육지로 금방 올라왔다.
“문수야!”
해변에서 젖은 옷을 말리는 나를 발견한 소녀가 달려와서는 가슴에 들이받았다.
“하, 한희야?”
“흑흑!”
박한희는 울면서 양팔로 나를 힘껏 끌어안았다.
“나는 괜찮아.”
“바보야! 걱정했잖아! 무사하면 무사하다고 연락부터 해야지...!”
“......”
할 말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사히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어. 하지만 나는 국가대표가 아니니까.”
“그랬구나.”
“나는 혼자 남아서 너를 열심히 찾고 있었어.”
남해수가 그녀는 건드리지 않은 모양이다.
“미안.”
“지금까지 어디 있었어?”
“이 섬에...”
나랑 못 만나게 수작을 조금 부린 것 같긴 하지만!
남해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치졸한 인간이었다.
“앞으로 위험한 짓은 금지야!”
“그게 내 마음대로-”
“하지 마!”
“...그래.”
“여기서 약속해! 네가 없으면 나는 누구랑 결혼하라고!”
“결혼...?”
“어서!”
자연스럽게 결혼을 강요받은 기분이 들었다.
* * *
“...감동적인 재회의 순간을 이렇게 끊어버리네.”
눈 깜짝할 사이에 바뀐 풍경.
허탈했다.
전부 꿈!
처음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정신적인 타격이 제법 컸다.
“드디어 깨어났구나.”
“서혜주 과장님?”
“맞아. 나야. 뇌세포는 파괴되지 않은 것 같네.”
나랑 동업 관계인 서혜주 과장님이 농담 섞인 말투로 진단했다.
그렇다면 여긴 현실.
바닷물로 흠뻑 젖은 내 가슴에 박한희가 얼굴을 묻고 펑펑 우는 도중에 꿈에서 깨어났다.
그래서 상당히 찜찜한 기분!
이번에도 작별인사를 제대로 못 하고 말았다.
“제가 얼마나 잤죠?”
“62일 9시간. 예상보다 훨씬 오래 잤네. 남해수 씨가 정말로 돌고래로 변했어?”
“아뇨. 인간이었어요. 남해수가 아닌 완전히 다른 인간.”
“그래도 용케 찾았구나?”
“고생했죠.”
덕분에 구시대의 엽기적인 정치와 사회도 체험할 수 있었다.
“수고했어.”
“남해수 씨는요?”
“먼저 깨어나서 가족들이랑 영상통화를 했어.”
“아...!”
진짜 다행이다!
아내와 부하들의 배신으로 죽고 검귀로 변했던 남해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잘못되는 줄 알았다.
환자의 죽음.
자살을 밥 먹듯 했던 송선영 때문에 긴가민가했는데, 꿈속에서 죽어도 깨어나는 모양이다.
‘저번에 헛수고한 셈이네!’
내 힘으로는 지구 최강인 마법소년 최강민을 이길 수 없지만, 백작가의 막내딸로 태어난 김은정은 죽일 기회가 많았으니까.
암살, 모함, 전쟁, 독살...
죽여도 되는 줄 알았다면 설득한다고 고생하지 않았으리라.
‘앞으로는 죽여야지.’
환자의 정신건강을 고려하면 좋은 수단이 아니지만, 설득에 낭비되는 내 시간이 아까우니까.
그리고 사망 체험이 어때서?
현실에서는 돈 주고도 못할 진귀한 경험이다.
“수고했어.”
“과장님도요.”
“남해수 씨는 깨어나자마자 재산 상속부터 이야기했어. 네가 꿈속에서 미리 설명한 덕분이겠지?”
“네.”
눈을 뜨자마자 현실을 받아들이신 모양이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처분해서 대한민국 문화재 보존사업에 써달라고 당부하셨어.”
“...가족은요?”
“당연히 난리가 났지. 남해수 씨의 재산이 얼마나 많은데.”
“그랬겠네요.”
충격받은 가족들이 그를 설득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오고 있으리라.
“아! 남해수 씨가 너에게도 전해달라는 말이 있었어.”
“만나서 직접 들을게요.”
“......”
서혜주 과장님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왜요?”
“이미 숨을 거두셨어.”
“예?”
“사인(死因)은 심장마비. 갑작스러운 부고(訃告) 소식에 가보려고 할 때, 네가 눈을 뜬 거야.”
“......”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았다.
‘내 잘못인가...?’
꿈을 방해하지 말라는 마녀의 경고가 비수처럼 내 가슴을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