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75화 (76/232)

075화

[4장-8절] 조국을 위해!

사람은 누구나 과거의 실수와 잘못을 후회한다.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조차도 과거의 자신이 완벽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으리라.

그건 남해수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기회야.”

과거의 그는 수영이 인생의 전부였다. 그래서 성공에 방해되는 경쟁자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몰락시켰고.

수영의 황제.

이 칭호는 타인을 짓밟으며 쌓아 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이번에는 달라.’

나이가 들수록 보이는 시야가 넓어지고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실감하게 됐다.

정치, 경제, 문화, 외교, 과학...

수영만으로도 머릿속이 꽉 찼던 과거의 어린 시절이랑 달랐다.

「부동산 투기 목적...」

「대국민 사과 발표를...」

「집회를 탄압하는...」

수영선수였던 남해수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 정치의 결과물까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실패(失敗)!

알고 싶지 않아도 세금, 복지, 치안 같은 일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다.

“막아야 해.”

똑같은 비극이 오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

대한민국의 미래를 망치는 정치인들이 출세할 수 없도록 무조건 막아야 했다.

어떻게?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으로 안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자본금은 충분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남해수랑 달리, 그의 새로운 몸 ‘황해수’는 재벌 3세였다.

얼굴 빼면 시체인 아들에게서 마음이 완전히 떠난 회장이 ‘손자’인 그를 총애한 덕분!

그 뒤에는 간단했다.

“할아버지!”

“오냐! 내 귀염둥이!”

“용돈 좀 주세요.”

“허허! 얼른 말해보려무나. 갖고 싶은 장난감이...”

“땅을 사고 싶어요.”

“......”

“논밭이라서 아직은 싸요. 하지만 개발제한이 풀리면 수백 배로 비싸질 거예요.”

“5살에 부동산 투자라니...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었니?”

“공부했어요.”

“허허허!”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눈이 뒤집힐 가격이었지만, 재벌의 관점에선 매우 저렴한 땅이었다.

가격이 안 오르면?

나중에 되팔면 그만이다.

“이 할아비의 뺨에 뽀뽀해주면 생각해보마.”

“쪽!”

“허허허! 좋구나.”

재벌에게는 사랑하는 손자의 뽀뽀 정도면 남는 장사.

그리고 그 땅은 정말로 1년 뒤에 갑작스럽게 개발제한이 풀리고 지하철역과 랜드마크가 생기면서 땅값이 50배나 뛰었다.

“할아버지~!”

“믿을 수가 없구나.”

“사고 싶은 게 생겼어요.”

“허허! 뭐든지 말하려무나. 나의 귀염둥이 덕분에 번 돈이니까. 진짜 비행기라도 사주마.”

“영화에 투자하고 싶어요.”

“영화?”

“네. 땅도 더 사고 싶고요.”

남해수가 자신 있는 분야에는 영화 산업이 있었다.

정치는 몰라도 문화생활은 어느 정도 즐겼으니까. 대성공을 거둔 영화의 제목쯤은 알고 있다.

“어느 영화사니?”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사와 감독이에요. 하지만 틀림없이 대박이 날 거예요.”

“흠...”

땅이랑 달리 영화 산업은 쉽게 투자할 수 없었다.

회사가 망해버리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으니까. 신뢰할 수 없는 중소기업이라면 더욱.

그러나,

“할아버지~!”

“...오냐. 네 돈이니 네 마음대로 쓰려무나!”

“와! 감사합니다!”

“이런이런. 나의 귀염둥이. 그렇게도 좋으냐?”

“네! 할아버지 최고!”

“허허허!”

위험을 감수한 만큼 영화산업의 수익은 상상을 초월했다.

200배? 300배?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과거보다 훨씬 여유롭게 영화를 제작한 덕분에 초대박이 났고-

“감사합니다!”

“저의 은인이세요!”

“열심히 할게요.”

흥행한 영화 덕분에 무명에서 스타의 반열로 껑충 뛴 배우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 인맥들은,

“나의 손자에게 고마워하게.”

“안녕하세요! 황해수입니다!”

남해수는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아군을 늘렸다.

“8살이요...?”

“8살에 사업 투자를?!”

“대단한 손자네요.”

하지만 남해수는 최대한 겸손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간섭으로 미래가 바뀌면 안 되니까.

안전하게 계속 투자하려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럴 리가요. 할아버지가 저를 너무 띄우시네요.”

“어허! 이 할아비가 거짓말한 것처럼 들리잖느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여기에 없을걸요.”

“거참...”

정말이었다.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손자를 자랑하려고 거짓말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호감을 품고 있었기에 훈훈하게만 보일 뿐, 비난하는 사람은 주위에 없었다.

그렇게 보안도 완벽!

남해수는 할아버지의 신뢰가 두터워질수록 더욱 과감하게 투자했고,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련님! 큰일났습니다! 회장님께서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가요?!”

순조로웠던 남해수의 인생에 위기가 찾아왔다.

친부의 질투와 탐욕, 경쟁사와 정치인들의 결탁, 의도적인 사고...

돈이 모이면서 수많은 인간이 눈독을 들였고, 아직 미성년자였던 남해수는 정말 힘들게 방어했다.

무려 10년 동안!

법적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더러운 진흙탕 싸움으로 소중한 시간과 돈을 허비하고 말았다.

“해수야! 제발 자비를...!”

“우리가 잘못했어...!”

“아버지, 어머니. 무기징역을 축하드립니다. 건강하세요.”

철컹!

애초부터 애정이 없었던 부모를 감옥에 보냈다.

‘내 계획을 방해하다니! 절대로 용서 못 해!’

그는 암울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선택된 특별한 존재.

방해하는 자는 가족이라도 제거할 뿐이다.

“황해수 회장님.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소중한 시간과 돈을 허비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던 건 아니었다. 비슷한 뜻을 품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으니까.

혁명!

사랑하는 조국을 망치는 해충들을 박멸할 수 있다면 하나뿐인 목숨도 기꺼이 바치리라!

“각오는 되셨나요?”

“네!”

“물론입니다!”

우렁찬 대답에 남해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할 수 있어!’

이들이 함께한다면 실패할 수 없다는 자신감과 감동이 벅차올랐다.

“대한민국 만세.”

“만세!”

“만세!”

남해수는 동지들을 이끌고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 * *

“금방 성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나라를 좀먹는 쓰레기들이 위기를 느끼자마자 힘을 합쳐서 저항하기 시작했지.”

“답답하셨겠네요.”

나는 남해수의 푸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의외로 쉽겠는데?’

그는 내가 공감해주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내 머릿속에는 ‘잠을 깨울 계획’만 가득했다.

그걸 모르는 남해수는,

“법으로 심판하는 방식에 한계가 있음을 그때 깨달았지. 수사를 질질 끌면서 증거와 증인을 제거한 후에 당당히 재판을 받더군. 정말 기가 막히지 않는가?”

“그러게요.”

“그래서 실질적인 힘을 손에 넣기로 했네. 방위산업체에 투자해서 국방력을 키우고,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사병을 육성했지.”

“......”

내가 힘으로 남해수를 당해낼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

지금도 그렇다.

‘움직이면 바로 쏘겠지.’

남해수가 가족을 동행한 건 방심이나 신뢰가 아닌 절대적인 힘의 우위에서 나온 자신감!

나를 죽이지 않는다는 방침을 바꿨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다만,

“그 결과가 마음에 드셨나요?”

내 목적은 설득.

남해수를 힘으로 굴복시킬 수 있다면 쉽고 편하겠지만, 그 방법만 있는 건 아니다.

“흠...”

질문을 받은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술을 들이켰다.

또르륵.

아내가 묵묵히 빈 잔을 채우자마자 한 번 더.

“표정만 봐도 알겠네요.”

“틀림없이 자네는 나보다 훨씬 젊을 거야.”

“맞습니다.”

“...젊은이를 탓하는 건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건 알지만, 화병으로 쓰러질 것 같아서 말이야! 도저히 안 할 수가 없더군.”

“그러면 하세요.”

어떻게든 연장자의 체면을 챙기려는 그가 우스웠다.

그렇게 죽이려 하더니?

전부 실패한 후에 화풀이한 적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면 통할 줄 아는 건가.

“어째서 내 흉내를 냈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는 척하지 마라! 수영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하고, 박한희를 유혹하지 않았나!”

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저는 현실에서도 수영선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 성적은 굉장히 좋고요. 능력이 안 되면 올림픽도 못 나갑니다.”

“...박한희는?”

“자기가 먼저 좋다고 저에게 고백한 후에 따라다니는 겁니다만?”

“거짓말하지 마라!”

“당신이 차였다고 해서 남들도 차일 거란 편견은 버리시죠.”

“큭...!”

나의 완벽한 논리에 남해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애초에 말이죠. 이미 다른 여자랑 결혼해놓고, 질투해서 저를 죽이려 하신 건 횡포 같은데요.”

“......”

“아닌가요?”

“...한희는 좋은 여자지.”

“아, 네.”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옆의 아내가 섭섭해하지 않을까?

쪼르륵.

“......”

동요 없이 술을 따르는 모습은 딱히 그런 것 같지 않았다.

“다른 여자랑 결혼했기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면, 그 법을 바꾸면 그만이다.”

“오! 그런 방법이...!”

정말 기가 막힌 발상이다.

“윤리적으로 잘못됐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나라의 현실을 보게. 살기 힘들다고 자식을 버리거나 무책임하게 자살하는 부모가 속출하고 있어.”

“뭐...”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조금은 공감이 됐다.

“그럴 바에 부자가 더 많은 배우자를 차지하고, 더 많은 자식을 키우는 편이 낫지. 안 그런가?”

“...돈이 많다고 자식을 잘 키우는 건 아닙니다.”

“자네를 설득하려고 한 말은 아니었네.”

“아, 네.”

완전히 무시당했다.

“올림픽 개막식에 전 국민의 시선이 쏠려 있을 때, 대한민국은 썩은 뿌리를 완전히 도려내고 다시 태어날 것이다!”

“...반란인가요?”

“듣기 거북하군. 위대한 혁명이라고 해주게.”

“흠...”

나는 바다 위에 두둥실 떠 있는 유람선을 힐끔 보았다.

그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이토록 중요한 시기에 나랑 밤새도록 대화를 나누진 않을 터.

용무가 끝나는 순간, 저격수들이 일제히 나를 쏘리라.

“강문수 선수. 자네가 살 수 있는 길은 딱 하나뿐이야.”

“뭔데요?”

“한희가 나를 좋아하도록 돕는 것.”

그럴 줄 알았다.

“진심이세요?”

“내가 이 상황에 농담할 인간으로 보이나?”

“그런 질문이 아닙니다.”

“그러면?”

“박한희- 아니, 그분은 이미 당신의 아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도우란 겁니까?”

“지금은 아니지.”

“아뇨. 지금도 당신의 아내입니다. 남해수 씨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

나를 바라보는 남해수의 눈이 뱀처럼 가늘어졌다.

“벌써 잊으셨나요? 저는 국제수영연맹의 의뢰를 받은 무당이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헛소리.”

“헛소리가 아닙니다. 당신이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죠.”

“인정?”

내 얼굴을 뚫어버릴 기세로 노려보는 남해수.

그에게 선고했다.

“이 세계는 당신의 꿈입니다.”

“......”

“역사를 바꾸고 싶었던 남해수 씨의 망상, 허구입니다.”

“...거짓말.”

“현실은, 수영의 황제가 쌓아온 재산을 노리는 자식들과 연맹이 싸우고 있습니다. 박한희 여사님은 멀리서 지켜보는-”

“거짓말이야...!”

벌떡!

격분한 남해수가 의자를 박차며 일어섰다.

‘온다...!’

많이 죽어봤기에 알 수 있는 직감.

온몸을 비틀었다.

픽-

수많은 총알이 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며 피가 튀었다.

“남해수 씨! 눈을 뜨... 어?”

총알에 머리를 관통당한 남해수가 보였다.

털썩.

그의 몸이 고꾸라졌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어머!”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아내가 소리를 냈다.

전혀 놀라지 않은 얼굴.

나랑 눈이 마주친 그녀가 겁먹은 시늉을 했다.

“살려주세요! 남편이 강문수 선수에게 살해됐어요!”

“응애~!”

모친의 외침에 놀라서 잠에서 깬 갓난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내가 아닌- 큭?!”

팍! 핑! 팍-!

유람선에서 날아온 탄환들의 궤도는 정확히 나만 노리고 있었다.

어째서?

그 이유는 뻔했다.

배신!

‘미치겠네...!’

그의 아내와 부하들이 배신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문제는?

“남해수 씨!”

“......”

간절히 불러봤지만, 뇌를 포함한 머리의 절반이 사라진 남자가 살아 있을 리 만무했다.

이젠 어떻게 되는 걸까?

송선영처럼 과거로 돌아가면 그나마 다행인데...

“읔?!”

끼기긱-

바닥에 널브러진 남해수의 몸에서 소름 돋는 소리가 들려왔다.

낯설지 않은 전율(戰慄).

‘설마...?’

그리고 내 눈이 의심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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