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74화 (75/232)

074화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찰칵! 찰칵!

구시대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으로 증거 사진을 확보한 후, 보기만 해도 아찔한 허공을 향해 거침없이 몸을 던졌다.

휙!

“몰랑!”

총알을 막아서 내 생명을 살려준 외계생명체도 함께!

“으으...!”

제대로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탓에 눈을 뜨기도 힘들었지만, 고도가 높지 않아서 버틸 만했다.

펄럭~!

승무원에게 대충 들은 설명대로 등에 맨 배당의 줄을 당겨서 낙하산을 활짝 펼쳤다.

‘어라?’

재미있는데?

나중에 돈을 아주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면 스카이다이빙을 취미로 즐기고 싶다.

“흠...”

높은 하늘에서 천천히 하강하며 지상을 관찰했다.

야자수, 해변, 리조트, 요트...

전반적인 분위기와 풍경은 열대지방의 관광지.

공항도 어딘가에 있으리라.

꾸욱-

낙하지점은 바람의 방향이 가장 중요하지만, 낙하산이랑 연결된 두 줄을 양손으로 당기면서 조절하면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

‘해변으로.’

장애물이 없어서 충돌의 위험이 없고, 바닥이 모래라서 낙하 충격도 적으리라.

유사시에 바다로 뛰어들어서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도-

“...어어?!”

“몰랑?!”

풍덩!

거센 바람에 해변을 지나쳐서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푸하!”

옷이 다 젖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무사히 지상에 도착했다.

지금부터 할 일은?

여기가 어디인지 파악하고, 전파가 닿는 곳으로 가서 내가 찍은 증거자료를 전송하는 것이다.

첨벙첨벙.

육지로 올라온 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스카이다이빙 하기에 정말 좋은 날씨네요!”

“착지에 실패하셨네요.”

“하하! 제가 아직 초보라서요!”

“수건을 빌려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의심받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랑 어울리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조급하게 행동하면 쫓기는 몸이라고 광고하는 셈이니까.

“몰랑몰랑~”

“모자가 정말 멋지네요.”

“감사합니다!”

“몰랑!”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보도 수집하고, ‘모바일 핫스팟 연결’이란 기능을 활용해서 수집한 증거자료를 간단히 전송.

일단은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지켜볼 계획이다.

‘하지만 증거가 부족해.’

내 상상 이상으로 ‘황해수 회장’의 영향력이 나라 곳곳에 깊숙이 뿌리내린 듯했다.

단순히 돈만 많은 졸부는 아니란 의미!

“몰랑~”

“맞아. 끝을 내야지.”

우선, 챙겨온 신용카드로 젖은 옷부터 해결했다.

관광지답게 물가가 양심 없는 수준이었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전부 사라질 돈!

아낌없이 써줬다.

“다음은...”

지금쯤 나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있을 터!

하지만 도망자처럼 숨어서 떠돌 생각은 없었다. 남해수에게 일방적으로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 상당히 짜증이 난 상태였으니까.

그를 심판할 결정적인 증거를 수집하고 싶다.

그러려면?

“실례합니다.”

“아, 네.”

관광객들을 안내 중인 현지인을 무작정 불렀다.

“저 별장을 빌리고 싶은데요.”

나는 바다 위에 있는 아름다운 별장을 가리켰다.

“숙소를 안 잡고 오셨습니까?”

“네. 어쩌다 보니...”

“흠. 어떻게 여길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저쪽으로 쭉 가면 관리사무소가 나올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 세계를 떠나기 전에 신용카드를 한도까지 긁어보자!

* * *

수면제가 들어간 기내식에 당해본 경험 탓일까?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까닭에 약을 타기 힘든 ‘뷔페’로 운영하는 식당을 주로 이용하고, 음료는 무조건 편의점에서 ‘캔’만 구매했다.

‘너무 신중한 걸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수면제에 맥없이 당한 충격이 컸으니까.

절대적인 힘을 가진 마법소년 최강민의 마음을 꺾고, 거대한 제국의 개국공신이었던 몸!

하지만 그런 화려한 수완과 경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렴한 수면제에 패배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짤랑!

해산물이 풍부한 고급 뷔페식당에서 실컷 먹고, 편의점에서 음료와 냉동식품 등을 구매했다.

‘비행기는 어떻게 됐으려나? 한희도 걱정... 이런.’

남해수의 아내 박한희.

구시대를 기억하는 고령의 할머니란 사실(현실)을 알지만, 이 세계에서는 풋풋한 20대 초반이었다.

게다가 예쁘고...

“나도 참 구제불능이구먼!”

내게 호의를 보내는 미녀에게는 무조건 약한 걸까.

꿈에서 사귀다가 현실에서 헤어진 송선영과 발렌타인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며...

딸각.

장기숙박을 계약한 아름다운 별장의 문을 따고 들어갔다.

바다 위에 지어진 펜션.

관광객들에겐 색다른 경험과 낭만이겠지만, 나는 언제든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이유로 이곳을 선택했다.

“...어라?”

“식사는 잘 했나?”

“당연히 대한민국에 계신 줄 알았는데요.”

남해수가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게 어찌된 걸까?

그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산 휴양지에서 여가를 보내는 게 신기한 일인가? 작년에 신혼여행을 목적으로 샀지.”

“하아?”

신혼여행을 보내기 위해 휴양지를 통째로 샀다고?

황당하긴 했지만, 비행기가 이곳으로 향한 이유가 있었다.

“원래는 영상통화로 짧게 대화할 생각이었는데, 자네가 탈출하면서 일이 복잡해졌어.”

“그래서 직접 잡으러 오셨나요?”

“흠... 붙잡을 생각이었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네. 이곳에 발을 들인 시점에 나의 승리. 지금도 저 여객선에서 저격수들이 자네의 이마와 다리를 조준하고 있지.”

“......”

내 눈에는 관광객들을 태운 평범한 호화여객선이었다.

허세일까?

하지만 시험해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누군가가 찾아오길 기대해면서 신용카드를 써온 나였기에.

‘그게 남해수일 줄은 몰랐는데...’

그가 가족까지 데려오리라고는 더욱 생각하지 못했다.

“......”

쪼르륵.

아내로 짐작되는 여인이 그의 곁에서 묵묵히 술을 따랐고,

“새근새근.”

유모차에 탄 갓난아기가 손가락을 입에 문 채 자고 있었다.

내가 남해수를 보자마자 달려들지 않고 집착하게 대화에 응한 것도 그들 때문이다.

가족이 보는 앞에서 위험하게 싸우진 않을 것이란 막연한 믿음.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 자리에서 목을 부러트리는 것은 좀...’

남해수의 의도가 ‘임시휴전’이라면 성공한 셈이다.

“내 가족이네.”

“마음에 드시나요?”

“흠. 날카로운 지적이군. 아내는 유명한 배우가 되지만, 성접대 강요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네.”

“남해수 씨?”

그걸 당사자 앞에서 발설해도 괜찮은 걸까?

그는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

“하지만 나의 도움으로 그 미래는 오지 않았지. 만족하냐고? 너무 당연한 질문이군.”

“......”

남편에게 처음 듣는 고백에 아내도 무척 당황한 눈치.

질문하고자 입술을 벌렸으나 끝내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조용히 대기하라고 지시받은 비서처럼.

사랑이 바탕에 깔린 정상적인 부부 관계로는 보이지 않았다.

“앉게.”

“...갑자기 신사적이시네요.”

“자네에게 머리를 세게 맞고 정신 차렸거든.”

“언제요?”

“총기로 무장한 테러리스트와 공모자들이 점거한 비행기를 단신으로 탈환한 후에 낙하산으로 탈출. 비서에게 실패했다는 보고를 처음 받았을 때, 첩보영화의 줄거리를 듣는 줄 알았지.”

“그래서요?”

“내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계획이 전부 엉망이 됐어.”

“무슨 계획이었는데요?”

“대한민국의 어두운 미래를 바꾸기 위한 계획.”

쪼르륵.

남해수는 아내가 따라주는 술로 입술을 적시며 답했다.

“대한민국의 어두운 미래요?”

“모르나?”

“...압니다. 학교에서 역사도 배우니까요.”

띵-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야말로 남해수에게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

‘완전히 잘못 짚었잖아!’

수영의 황제 남해수.

그 명성이 너무 강한 탓에 수영과 재산에 초점을 맞춰서 접근했다.

“이 나라의 미래요?”

“그래.”

“그걸 정치인도 아닌 남해수 씨가 왜 바꾸려고 해요?”

나라의 미래는 정치인들이 결정해야 할 문제다.

국민은?

살던 나라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나라로 떠나면 그만이다. 이사 비용이나 언어 장벽 때문에 웬만하면 떠나지 않지만.

아무튼, 정치인이 아닌 국민이 나라를 바꿀 의무나 권리는 없다.

“내가 이상해 보이나?”

“네. 매우.”

“자네는 나처럼 구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아닌 것 같군.”

“저는 인류혁명이 지나간 신세대에 태어났습니다.”

“과연... 신세대 젊은이들은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지. 그런 부분에서 확실히 달라.”

“......”

비꼬는 것 같진 않았다.

담담한 표정과 말투.

역사 선생님처럼 있는 사실 그대로를 설명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런 세상을 만든 P는 정말 대단한 인간이야.”

“어?! P를 보셨나요?!”

P.

오징어처럼 생긴 외계인이란 소문까지 있는 미지의 존재.

내 질문에 남해수가 답했다.

“아니.”

“......”

“하지만 P가 활동한 시기를 몸소 겪었지. 원숭이나 외계인이 인간을 위해 대단한 발명품을 공개할 것 같은가? 당연히 인간이지.”

“아, 네.”

그런 추론은 신세대에 태어난 나도 할 수 있겠다.

“자네는 어떻게 과거로 왔는가?”

“잠들어서요.”

“오! 나도 그렇다네!”

“......”

같은 고향 사람을 만나서 반갑다는 듯이 무척 기뻐하는 남해수.

그가 오염되지 않은 휴양지의 푸른 하늘을 보며 말했다.

“젊은 시절의 남해수는 대단히 이기적인 인간이었네.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경쟁자들을 온갖 방법으로 밀어냈지.”

“처음 듣는 얘기네요.”

“당연하지. 한 번도 들킨 적이 없었으니까. 동료의 물통에 약을 탄 후에 고발하거나, 예쁜 여자를 소개해줘서 정신 못 차리게 하거나, 도박에 눈을 뜨게 하거나...”

“와우?”

이 정도면 수영의 황제가 아니라 야바위꾼인데?

매우 충격적이었다.

“후회와 반성의 의미로 모든 재산을 후학 양성에 힘썼지. 동료와 그들의 가족들도 도와주고.”

“그래서 명예도 얻으셨죠.”

“어흠! 명예를 노리고 한 행동은 절대 아니었어.”

그게 의도했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그는 ‘수영의 황제’란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여기서 의문.

과거의 잘못을 반성한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대체 왜?’

남해수는 총기로 무장한 사조직을 운영하는 걸까.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지.”

“네.”

꿈이 맞습니다.

“하지만 볼을 꼬집고, 며칠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걸 보고 이게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했지.”

“네.”

그래도 꿈이 맞습니다!

바로 딴죽을 걸고 싶었지만, 그를 꿈에서 끄집어내려면 더욱 자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무엇이 그를 과거(꿈)에 사로잡히게 했는가?

후회와 반성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남해수로 태어났겠지.’

그는 전혀 다른 인간 ‘황해수’로 다시 태어났다.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얼굴,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 평균 이상의 큰 신장, 넓은 어깨...

첫인상만큼은 무조건 100점!

지금까지 못생긴 ‘주인공’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다지 놀랍진 않지만...

“그래서 고민했지.”

“뭘요?”

“죽을 날만 기다리던 내가 어째서 과거로 돌아왔는가?”

“......”

그래. 저 말을 듣고 싶었다.

“깨달았지. 나는 대한민국의 암울한 미래를 바꾸기 위해 선택받은 인간이었던 거야.”

“선택이요...?”

“그래.”

“그러면 저는요?”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네. 자네는 어째서 구시대로 왔지? 역사 공부? 관광인가?”

“아뇨.”

“그러면?”

정말로 궁금하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해수.

이에 웃는 얼굴로 답했다.

“당신 때문입니다.”

“나?”

“수영의 황제 남해수 씨. 저는 수영연맹의 의뢰로 당신을 데리러 온 무당입니다.”

“......”

어디가 아픈지 판별된 환자에게 처방전을 써줄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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