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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72화 (73/232)

072화

[4장-7절]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잘못된 선택과 암울한 현실을 비관하며 잠들었다가 눈을 떴는데, 과거로 돌아왔다면?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이건 기회라고.’

어째서 자신에게만 이런 기회가 주어졌는지는 전혀 의심하지 않고,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만 드리라.

“문수야?”

대화가 이질적이라고 느낀 박한희가 나를 불렀다.

“이따가 설명해줄게.”

“응...”

남해수는 내 소개가 불충분하다고 느낀 모양이다.

“무당? 미래라도 본 건가?”

“양심이 있으신가요? 그 미래가 될 것 같나요?”

“큭...”

남해수가 박한희랑 결혼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없다.

정말 놀랍게도, 박한희랑 연애하는 나를 질투하던 그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위험한 관계의 여가수, 여배우도 매우 많고.

‘불가능하지.’

나를 좋아하는 박한희가 이런 남해수의 아이를 낳아줄 리 없다.

그건 본인도 잘 알 터.

똑같은 미래는 오지 않는다.

“황해수 씨? 이만 나가주세요. 올림픽 개최일에 맞춰서 내일 출국해야 하거든요.”

“...실례했습니다.”

보는 눈이 많은 여기서 대화를 나누는 건 무리.

남해수는 순순히 물러났다.

“...문수야.”

그가 떠나자마자 박한희가 설명을 재촉했다.

“나의 과거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기억상실증으로 주민등록증을 새로 받았으니까. 나조차 내가 누구인지 모르지.”

“그건 들어서 알아.”

내가 유명해지면서 신상정보도 탈탈 털렸다.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긴 했지만, 과거가 없다는 사실에 외계인설까지 등장했었지.

지금도 소문이 떠돌고 있다.

“저 인간을 보자마자 기억 일부가 돌아왔어.”

“아!”

“기억이 여전히 흐릿해서 자세한 설명은 힘들지만, 그가 매우 사악한 인간이란 건 확실해.”

“그건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 것 같아.”

“그건 그렇지.”

타인의 행복과 목숨을 빼앗는 행위는 결코 정당할 수 없다.

“문수야. 기억이 더 돌아오면 꼭 얘기해줘.”

“그럴게.”

전에도 느꼈던 거지만, 기억상실증은 모든 인과(因果)를 무시할 수 있는 최고의 핑계다.

* * *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단은 공항에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출국했다.

“강문수! 강문수! 강문수...!”

“대한민국 만세!”

“힘내세요! 강문수 선수~!”

“문수 오빠! 사랑해요!”

그중에서도 내 인기는 가히 독보적인 수준!

최근에 겪은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정부와 시민단체 등에서 좀 더 신경 쓴 영향일까?

아직 올림픽 금메달을 하나도 못 땄음에도 ‘국민 영웅’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선수의 인기가 엄청나네요.”

“저도 놀랐습니다.”

“한희가 더 노력하지 않으면 빼앗기겠는걸요?”

내 옆자리에 앉은 수영 감독님이 제법 큰 소리로 말했다.

“언니...!”

내 반대편 옆자리에 앉은 박한희가 바로 반응했다.

“어머! 불안하니?”

“아, 아니야. 나는 문수를 믿어!”

“자신 없다는 소리네.”

“윽...”

“내 동생이 남자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예전에 뭐라고 했더라? 남자는...”

“제발! 그 입 좀 다물어줘!”

“괜찮은 남자를 소개해주면 생각해볼게.”

“해줘도 못 받아먹으면서.”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거든...!”

“항상 먼저 차였잖아.”

“아니야!”

“맞아!”

자매가 나를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쉿! 조용.”

“......”

“......”

내 한마디에 주위의 다른 승객과 선수, 감독들의 시선이 쏠려 있음을 뒤늦게 눈치챈 자매.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러 차례 고개 숙여 사과한 후에 얌전해졌다.

덕분에 자매 사이에 낀 나도 한결 마음이 편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 비행기... 괜찮은 걸까?’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의 되었다.>의 세계에서 배를 탈 때는 멀미가 심하긴 해도 불안하진 않다. 내가 수영할 줄 아니까. 바다에 빠져도 살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비행기가 하늘에서 폭발하거나 추락하면 아무것도 못 해보고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문수야.”

“...왜?”

“비행기, 처음 타? 살짝 긴장하는 것 같아서. 아! 기억상실이라서 모르겠구나.”

“아니. 2번째야.”

무시한다는 뉘앙스를 안 풍기려고 애쓰는 박한희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나는 바로 부정했다.

가족여행으로 한 번.

이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정말로 깨달았지.’

높은 건물에서 내려다보면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물이 작게 보인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살던 ‘높은 건물’이 손톱보다도 작아지는 광경이란?

하늘 위의 하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태양계 위에 은하계.

이전까지 자존감이 하늘을 찔렀던 나를 먼지처럼 초라하게, 겸손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첫 번째는 언제인데?”

“기억이 안 나.”

내가 긴장하는 이유는, 기술력이 부족한 구시대의 비행기에 탔기 때문이다.

드르르르-

현대의 비행기는 이런 소음이나 진동이 전혀 없으니까. 그 탓에 안심이 되질 않았다.

“조금 놀랐어.”

“뭐가?”

“내가 아는 문수는 언제나 침착했으니까. 팬들이 몰려올 때도, 조폭들이 습격할 때도, 경찰들이 총을 겨눌 때도...”

“그래서 실망했어?”

“아니. 문수도 나랑 똑같은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어. 그동안은 조금 멀게 느껴졌거든.”

스윽-

그렇게 말하면서 내 어깨에 머리를 살포시 기대는 박한희.

그녀는 실력이 부족해서 국가대표로 뽑히진 못했지만, 특수한 관계자 신분으로 동행할 수 있었다.

“...나아졌어?”

“어... 아니.”

두근두근.

다른 의미로 긴장돼서 심장에 살짝 무리가 왔다.

‘남해수가 조금은 이해되네.’

새로운 삶을 시작한 남해수는 사회초년생인 어린 연예인 지망생이랑 결혼했는데, 만족스럽지 못했던 모양이다.

단정하는 이유?

내가 비슷한 짓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송선영.

발렌타인.

무의식적으로 ‘전 여자친구’들이랑 비교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머리를 박고 싶어진다.

“힘내.”

“그래야지.”

지금쯤 남해수는 굉장히 혼란스러울 것이다.

* * *

“어떻게 내 딸의 이름을...!”

그의 전(前) 아내 박한희의 몸에 손을 댄 남자, 강문수를 암살하려다가 역풍을 받았을 때도 이처럼 당황하진 않았다.

덜덜.

그의 불안한 심사를 대변하듯 다리가 계속 떨렸다.

“회장님. 목표가 조금 전에 출국했습니다.”

“...준비는?”

“문제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회장님의 큰 뜻을 방해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나라의 위기를 외면하고 올림픽 금메달만 생각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온 남해수.

그는 곧 들이닥칠 국가위기를 막는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

“부패한 이 나라를 바로잡으려면 회장님 같은 영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자진해서 감옥에 들어간 겁니다.”

“...그래.”

그의 표정이 심각한 이유를 완전히 오해한 비서.

남해수는 정정해주지 않았다.

‘나는 틀리지 않았어.’

사랑하는 조국의 미래를 아는 그는 정말 많은 일을 했다.

방위산업체에 투자해서 국방력을 강화하고, 미래에 나라를 망치는 정치인들을 자살로 위장해서 처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묵묵히 해왔다.

물론,

“황해수 회장님만이 망조가 든 조국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지금은 수많은 동조자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능력은 제각각이지만, 조국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만은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으리라.

“회장님은 저희에게 지시만 내리시면 됩니다.”

“흠...”

“여전히 마음에 걸리시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강문수.”

“아! 그자를 이번에야말로...”

“아니. 죽이지 말고 반드시 생포해야 해. 묻고 싶은 게 있다.”

“알겠습니다.”

“무조건 생포다. 실수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고 전해.”

“네.”

남해수는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 * *

지나치게 고요했다.

“...뭐지?”

기내식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식곤증이 쏟아졌다. 그래서 항공사에서 제공한 눈가리개도 하지 않고 바로 잠들었는데...

내가 눈을 떴을 때, 비행기 내부는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

“......”

내 좌우에 앉은 자매를 포함한 모든 탑승객이 깊은 수면에 빠져서 꼼짝하지 않았다.

방광을 비우러 화장실을 가는 사람도 없고, 안 자고 영화를 시청하는 사람도 전무(全無).

‘구시대의 비행기는 원래 이런가?’

그럴 리 없다.

승무원을 호출할까, 라는 고민도 한순간뿐.

스윽-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든 박한희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조용히 일어섰다.

“......”

“......”

내가 잘못 보거나 과민한 게 아니었다. 일등석, 비즈니스석, 일반석 할 것 없이 모든 탑승객이 잡아가도 모르게 수면 중.

평범한 상황은 아니었다.

‘새로운 오컬트인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승무원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좌우를 살피면서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하면서 조종실, 일등석, 조리실이 있는 앞쪽으로 향했다.

“이건...?”

승무원들이 일등석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총구를 겨눈 남자들이 보이고...

누가 보더라도 비상사태였다.

‘기장은 알고 있으려나?’

비행기를 조종하는 기장도 같은 패거리라면 매우 심각하다. 이 비행기가 예정된 목적지로 향할 거란 보장이 없으니까.

아니-

비행기가 정상적으로 착륙하면 이 은밀한 반란도 끝나는데, 그것도 생각하지 않고 저질렀을까.

즉, 목적지도 이미 바뀌었다고 봐야 하리라.

“너. 살펴보고 와.”

“벌써 깨어났을 리가... 아, 알겠습니다.”

대화가 들렸다.

“기내식을 안 먹은 사람이 또 있을 수 있어.”

승무원들 뒤에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숨어있었다.

“저... 대장. 그러면 위험한 거 아닌가요?”

“총이 장식품인 줄 아냐?”

“아! 깜빡했습니다. 저희는 총이 있었죠.”

“얼른 가봐.”

“네!”

“잠깐! 총은 빼앗기면 골치 아프니 놔두고 가.”

“예? 총을 놔두면 저는...”

“미치겠네!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줘야 하나? 호주머니에 전기충격기를 숨겨서 가.”

“아! 그게 있었죠!”

“...깨어난 승객이 보이면 전기충격기로 기절시켜서 여기로 데려와.”

“네!”

승객들을 감시하는 중요한 임무를 어리숙한 부하에게 맡기다니?

부하를 욕하는 ‘대장’이란 남자도 썩 우수해 보이지 않았다.

“빨리 다녀와.”

“긴장하지 말고.”

귀찮은 임무를 자신에게 시키지 않아서 다행이란 표정을 짓는 나머지들도 포함해서.

이런 한심한 자들에게 승무원들이 제압당한 원인은 순전히 ‘총’ 때문이리라.

‘온다!’

시간이 없었다. 내가 앉았던 비즈니스석이랑 매우 가까우니까.

좌석이 비어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나를 잡기 위해 한꺼번에 달려오리라.

‘저것도 신경 쓰이고.’

비행기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는 피할 방도가 없다.

탁.

발소리를 줄인 후에 일반석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

저 어리숙한 감시자가 조리실, 화장실, 2층 객실까지 꼼꼼히 살펴보길 빌며,

“실례할게요.”

“......”

선수들이랑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을 어깨에 짊어지고, 내 비즈니스석으로 돌아와서 앉혔다.

찰칵!

안전띠까지 완벽하게.

‘와! 이래도 눈을 안 떠?’

내가 업어가는 동안에도 깨지 않는 것을 보면, 기내식에 들어간 수면제가 매우 강력한 모양이다.

“......”

“......”

“......”

세 여성이 나란히 잠든 모습.

남자인 내가 자매 사이에 끼어있을 때보다 자연스러웠다.

‘다음.’

나는 그 여성이 원래 앉아있었던 빈 좌석보다 더 뒤쪽의 일반석 승객을 앉혔다.

같은 방식으로 2번 더!

그리고 마침내, 어리숙한 감시자를 비행기 후미까지 들키지 않고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

“흠... 돌아- 웁?!”

칸막이에 몸을 바짝 붙어서 숨어있던 나는 방심하고 있던 남자를 기습했다.

덥석!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손바닥으로 그의 주둥이를 움켜쥔 후, 호주머니 안에 숨겨둔 전기충격기를 꺼낼 틈도 안 주고-

우득!

머리를 돌려서 목을 꺾어버렸다.

“...깔끔하군.”

툭.

간단히 처리한 감시자가 보이지 않도록 구석에 옮겼다.

‘서바이벌게임을 시작해볼까.’

지지직!

탈취한 전기충격기를 손에 쥐고 앞쪽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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