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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69화 (70/232)
  • 069화

    모든 사람은 다르다. 절대 평등할 수 없다.

    재능, 성별, 체질, 지능...

    인간은 공장에서 일괄적으로 찍어내는 부품 따위가 아니니까. 하지만 이 당연한 사실을 망각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죽여...!”

    “죽어라!”

    운동선수의 몸은 돌연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격’이 다르다.

    근섬유, 골밀도, 골격, 반사신경...

    물론, 선수의 운동 종목에 따라 우수한 부분도 다르지만, 일반인보다는 모든 면에서 뛰어난 편.

    나도 마찬가지다.

    휙.

    “어-? 아악?!”

    쇠파이프를 간단히 피하면서 태권도 발차기로 상대의 손목을 힘껏 올려쳤다.

    덥석.

    그리고 탈취한 쇠파이프.

    칼이 아니라서 살짝 아쉽지만, 갑옷으로 무장하지 않은 일반인을 상대로는 충분했다.

    ‘나를 죽이겠다고?’

    이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여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만큼 많이 죽이진 못했으리라.

    정말로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엇인지 가르쳐주겠다.

    솨아아아-

    내 살기가 사방으로 퍼진다.

    고무신 관장님은 맹신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징집병보다 못한 자들이 막을 수 있을까?

    “무슨...?”

    “이건...?”

    쇠파이프를 치켜들고 일제히 내게 돌격하던 사내들이 멈칫했다.

    그것이 생존본능.

    내게 덤비면 죽는다는 정보를 받은 그들의 몸이 뇌의 통제를 거부하고 있다.

    “고, 공격해!”

    “고작 애송이라고!”

    “겁먹을 필요 없어!”

    하지만 수적 우위로 본능을 찍어 누른 그들이 재차 돌격. 그리고 쇠파이프를 휘둘렀으나...

    “느려.”

    팟!

    내 마음 같아서는 싹 다 죽이고 싶지만, 이 나라의 법은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게 말이 돼?

    자신을 공격한 자를 죽이면 살인죄가 적용되어 감옥에 간다. 방어하지 말고 죽으란 의미!

    환장하겠다.

    빠각!

    “꾸에에엑~?!”

    “악! 내 팔이~?!”

    “커억! 다리가...!”

    그래서 급소에 해당하지 않는 팔다리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내가 마음껏 쇠파이프를 휘두르면 인체에서 2번째로 단단한 두개골도 한 방에 바스러지니까.

    즉, 즉사다.

    “악마!”

    “괴물이야!”

    “아으으...!”

    전부 쓰러트리기까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고양이와 쥐의 싸움이랄까?

    도망치려는 자도 있었지만, 내게 순식간에 따라잡혀서 다리뼈가 부러지는 신세가 되었다.

    “죽일 순 없고... 눈알을 하나씩 터트려버릴까.”

    “히익?!”

    “살려줘!”

    “잘못했어!”

    내 혼잣말이 단순한 위협이 아닌 진심이란 걸 느낀 걸까.

    예외 없이 겁에 질린 그들은 내게 자비를 구걸했다.

    “귀찮으니 다리를 못 쓰게...”

    삐익-

    뒤편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서 경호원과 경찰들이 몰려왔다.

    “세상에...”

    “이 무슨...?”

    “맙소사...”

    그들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피투성이의 사내들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휙~

    피에 물든 쇠파이프를 아무렇게나 버린 후에 말했다.

    “늦으셨네요. 제가 50번도 더 죽은 후에 도착하다니.”

    “......”

    “......”

    아무도 내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누구의 사주를 받고 나를 노렸는지 느긋하게 조사를...”

    “강문수 선수. 지금부터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와서 이상한 소리를 했다.

    “지금부터? 저는 여러분이랑 역할을 분담한 기억이 없습니다만.”

    “당신의 경호랑 관련된 모든 사안은 저희의 소관입니다.”

    “뭘 경호했죠?”

    “...하는 중입니다.”

    “뭘 했는데요? 저들은 제가 제압했고 여러분은 지금 왔죠.”

    “부상을 치료...”

    “보다시피 다친 곳이 없군요.”

    할 말이 궁색해진 책임자는 더 황당한 소리를 지껄였다.

    “저들이랑 접촉해서 감염됐을 수도 있습니다.”

    “하아?”

    “당장 방역을 실시한 후에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십시오.”

    “싫다면?”

    “당신이 전염병에 걸려서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면...”

    “하! 전염병은 안 되고 쇠파이프에 맞아서 죽을 뻔한 건 괜찮다?”

    “강문수 선수. 그런 말뜻이 아니잖습니까.”

    책임자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 새끼가?’

    나는 바닥에 떨어진 쇠파이프를 집어 들며 경고했다.

    “동작 그만! 건들지 마. 이들은 내가 잡았고, 조사도 내가 한다.”

    “이건 월권입니다.”

    “나를 지키지 못한 당신들이 할 말은 아니야.”

    “도로 사정이 안 좋아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다친 곳 없이 무사하지 않습니까? 억지는 그만 부리십시오.”

    “억지라... 좋아. 나는 정신적인 충격이 커서 당신이 옷을 벗기 전에는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겠어.”

    “뭣-?!”

    내 발언에 책임자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못할 것 같아?”

    “...이러지 마십시오.”

    상황이 매우 불리하다고 느낀 책임자의 목소리가 비굴해졌다.

    “내 생각에는 당신도 공범이야.”

    “오해입니다.”

    “고의로 늦게 왔잖아. 감시하듯 내 동선만 파악할 뿐, 막상 사고가 터지니 경호원은 한 명도 없었고.”

    “원군을 부르러 갔습니다.”

    “원군? 총이 한 자루만 있어도 제압할 수 있는 인원이었어. 이런 대규모는 필요 없었지.”

    “상황은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경호할 대상이 죽은 후에 도착했나?”

    “당신은 무사합니다.”

    “말은 똑바로 해. 당신들이 경호를 잘해서 무사한 건 아니지. 거기! 아직 데려가지 마세요.”

    습격자들에게 쇠고랑을 채워서 슬그머니 경찰차에 태우려는 경찰들에게 외쳤다.

    “강문수 선수. 이건 명백한 공무집행방해입니다.”

    “신고해. 나는 법정에서 당신 때문에 죽을 뻔하고, 정신병도 생겼다고 변호할 거야.”

    “저에게 대체 왜 이러십니까!”

    “너는 나에게 왜 이러는데?”

    억울해하는 표정의 책임자랑 대화가 되질 않았다.

    “저는 맡은 일을 수행할 뿐입니다.”

    “그걸 제대로 못했잖아.”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죽여놓고 기회를 달라는 건 억지지.”

    “안 죽었잖습니까!”

    “미치겠네.”

    내가 사람이랑 대화하는 중인지 의심스러워졌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당신이 방해하지 않는 것.”

    “조사 결과가 나오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 조사는 내가 할 테니.”

    “안 된다고 몇 번을...!”

    사람의 언어를 못 알아듣는 책임자를 무시하고 지나쳤다.

    “야.”

    “히익?!”

    나는 응급차에 실리며 안도하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누가 시켰어?”

    “나는 아무것도 몰라! 형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그 형님은 어디에 있지? 이름은?”

    덥석.

    책임자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제지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경고하겠어. 한 번만 더 나를 방해하면 당신의 인생은 완전히 파탄 날 거야.”

    “그런 협박을...!”

    “공범이 아니라면 닥치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어.”

    “강문수 선수!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제가 곤란해집니다!”

    털썩.

    처음의 오만한 태도를 벗어던지고 무릎까지 꿇는 책임자.

    하지만 나는 깔끔히 무시했다.

    “대답해.”

    “형님의 이름은... 말 못 해.”

    “그 형님이 너를 지켜줄까? 너 따위는 감시카메라만 없으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어.”

    “......”

    “...말해. 부모님이 주신 팔을 영원히 못 쓰게 되고 싶지 않다면.”

    “히익?! 마, 말할게!”

    “잘 생각했어.”

    나를 죽이려는 자가 누구인지 만나보기로 하자.

    ‘다른 나라의 짓일까? 나를 시기하는 선수일까? 아니면...’

    남해수일까?

    매우 궁금했다.

    * * *

    현대 지구의 범죄 수사는 매우 신속하게 진행된다.

    어떻게?

    형사나 검사가 ‘범죄’라고 판단되면 상부의 허락이나 복잡한 절차 없이 독단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적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

    뇌물이나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정의를 집행할 인물만 형사와 검사가 될 수 있다.

    반면,

    ‘구시대는 어쩔 수 없나...’

    정부와 정치인을 믿지 못하는 구시대는 상호견제와 감시를 통해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있다.

    이름하여, 삼권분립(三權分立)!

    입법, 사법, 행정으로 나뉜 독립된 정부 기관이 가위바위보처럼 서로 물리는 관계로 묶여있다.

    겉보기에는.

    “마음에 안 드네.”

    바위는 가위를 이기지만, 뇌물을 받은 바위가 가위를 봐준다면? 혹은, 바위가 가위를 협박해서 보를 쓰러트리게 한다면?

    이게 구시대의 정치다.

    “문수야. 괜찮아?”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나를 박한희가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흠... 전혀 안 괜찮아.”

    나를 습격한 사내들에게 지시를 내린 ‘형님’은 무려 닷새 뒤에나 구속되어 법정에 섰다.

    하지만 그게 끝.

    <강문수 선수를 질투해서...>

    <정서가 매우 불안정한...>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 중...>

    인권변호사를 선임한 그는 자신은 정신병을 앓는 환자이니 선처를 바라며, 단독범행으로 사건을 빠르게 마무리하려 했다.

    이게 말이 돼?

    정말 믿기지 않지만, 법정에서 통하고 있었다.

    “얼굴이 엄청 빨게.”

    “열이 나서.”

    “설마! 감염된 건...?”

    “아니야. 화가 나서 그래.”

    여기가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의 세계였으면 어땠을까?

    고문실에 넣어서 반나절 만에 자백을 들었으리라.

    ‘살인자의 인권(人權)이라니?’

    무고한 사람의 인권을 짓밟은 범죄자의 인권을 챙기는 이유는?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도마뱀의 꼬리자르기.’

    어른들의 놀이터를 운영하는 깡패가 운동선수를 질투해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지나가던 슬라임이 웃겠다.

    “몰랑~”

    “...그래. 나도 알아.”

    정부의 관계자들도 이번 사건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며 사건을 빠르게 마무리하려고 했다.

    어째서?

    ‘가위바위보.’

    누군가가 공정한 수사를 방해한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 누군가는 필시 권력자.

    그리고 이 나라에 나를 죽도록 미워하는 권력자가 있다면, 단 한 명뿐이리라.

    ‘남해수.’

    나는 그가 문틈에 끼워둔 경고문을 다시금 떠올렸다.

    「강문수 선수. 당신은 박한희에게 속고 있습니다. 내 경고를 무시하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후회.

    의미심장한 단어.

    지금까지는 박한희에게 배신당한다는 의미인 줄 알았다.

    하지만 배신이 아니라면?

    “왜?”

    “예뻐서 쳐다봤어.”

    “가, 갑자기 그런 말을...!”

    “미안.”

    “사과하지 마! 그리고 그런 말은 자주 하란 말이야. 기습하면 내 심장이 무리가 온다고.”

    “흠...”

    표정부터 대사까지 노골적으로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박한희.

    남해수가 나를 신경 쓰기 시작한 시기랑 엇비슷했다.

    ‘올림픽 참가는 헛짓이려나?’

    아니다.

    내가 지금처럼 올림픽을 신경 쓰지 않았다면 육상선수를 꿈꾸는 ‘남해수의 아내’를 절대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설사 만나더라도 지금 같은 애정 공세는 없었으리라.

    “한희야.”

    “왜?”

    “기분전환도 할 겸, 단둘이 여행 가지 않을래?”

    “단둘이?!”

    “싫으면 말고.”

    “싫을 리 없잖아! 그런데 갈 수 있을까?”

    뺨에 홍조가 든 그녀는 전염병이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내가 휴양지에서 마음의 병을 치료하겠다는데 누가 말려?”

    “아!”

    “어떻게 할래? 느긋하게 2박 3일쯤 생각하고 있어.”

    “2박 3일?!”

    “왜? 너무 긴가?”

    “그게 아니라... 긴 건 좋은데... 그러면 같은 방을 쓰는 거야?”

    “당연하지.”

    그래야 이 여행에 의미가 있다.

    “으음...”

    “싫으면 말고.”

    “눈치 없는 바보야! 고민하는 척하는 시간을 주란 말이야!”

    “그런 시간이 필요해?”

    “필요해!”

    남해수가 이번에도 꼬리를 자를 수 있을지 두고 보겠다.

    ‘내 목숨을 노려?’

    이 꿈에 행복한 결말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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