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68화 (69/232)

068화

P의 적성검사기가 없던 구시대에는 자신의 적성을 찾을 수 없다. 수영의 황제 남해수조차 적성이 수영선수가 아닐 정도니 말 다 한 셈.

그런데 적성을 안다고?

‘남해수 씨네!’

육상선수를 준비 중인 아내 박한희에게 고백하면서 ‘가수’를 추천한 수상한 남자, 남해수 씨가 아닐 수 없다.

현실의 아내를 완전히 잊고 새 출발을 하지 않았을까, 걱정했던 내가 바보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너에게 갑자기 노래를 추천한 이유를 모르겠네. 아! 같이 노래방에 간 적이라도 있어?”

“당연히 안 갔지! 돈 내고 노래를 부르는 건 너무 아깝잖아.”

“어... 그렇군.”

고음(高音)의 노래를 마음껏 부를 기회와 재능을 스스로 내팽개쳤다는 건 이해했다.

“왜?”

“너에 대해 잘 안다는 듯이 말했던 남자. 최근에도 있었잖아.”

“아! 그 비열한 남자!”

“혹시, 동일인물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네!”

남해수 씨가 여전히 집착하는 ‘아내’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당신의 ‘남편’을 찾아달라고.

그럴싸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냈다고 판단한 나는 질문했다.

“이름을 알아?”

“몰라. 관심 없었으니까.”

“그래도 얼굴은 기억하지?”

“음... 온몸에 귀티가 흐르는 재벌 2세 같은 분위기였어.”

“호오~”

공식이란 생각이 문뜩 들었다.

꿈의 세계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굴러간다고.

불치병에 걸린 중학생 2학년 같은 설정이지만,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법소년 최강민.

소설 주인공 김은정.

본인이 능력 없고 못생겨서 되는 일이 없다면 꿈에 사로잡힐 이유가 없으니까.

현실을 부정할 만큼 꿈속의 생활이 만족스럽고 행복하기에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송선영처럼 과거(적성)를 바꾸고 싶어서 꿈에 집착하거나.

뭐든 간에 남해수 씨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리라.

“하지만 아닐 거야.”

“뭐가?”

“정말로 그가 재벌 2세라면 입시학원에 올 리 없잖아? 돈으로 일류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데.”

“아하!”

이 시대에는 돈으로 일류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군?

엽기와 충격의 연속이다.

‘그래도 재벌 2세가 맞겠지. 본인이 재벌이거나.’

구시대를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남해수 씨가 쉽게 돈을 벌 방법을 하나도 모를까?

그럴 리 없다.

즉, 돈도 많은 그가 입시학원에 다닌 목적은 대학이 아니다.

아내가 그 학원에 다니니까!

자연스러운 만남과 공감대 형성이 목적이었으리라.

“오늘은 즐거웠어.”

“나도! 내일 봐!”

“...한희야.”

“응?”

내가 이 세계에서 가야 할 길이 뚜렷하게 정해졌다.

“저번에 한 얘기.”

“......”

“내게 시간을 줄 수 있을까?”

“기다려 달라는 건... 차이고 헤어진 여자친구를 잊을 때까지를 말하는 거야?”

“맞아.”

“...나를 기다리게 하는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

“역시, 무리겠지?”

“진짜 둔하네! 이미 기다리는 중이거든? 내일 봐!”

“그래.”

남해수 씨가 꿈에 사로잡힌 이유가 명확해졌다.

후회와 미련.

이미 지나간 과거를 바꾸고 싶은 마음!

‘숨어서 지켜보세요.’

제가 아프게 긁어드리겠습니다!

* * *

수영은 체력 소모가 매우 큰 운동이다. 그래서 체력이 무한대에 가까운 나에게 매우 유리한 편.

접영, 평영, 배영.

그래서 다른 수영법도 진지하게 배우기 시작하면서 압도적인 성적이 나왔다.

반면에,

쿵!

“커억~?!”

체력보다 기술이 중요한 종목에는 힘을 못 쓰고 있었다.

“하하! 움직임이 상당히 좋아졌군!”

“이게 좋아진 겁니까?”

나를 발차기 한 방에 쓰러트린 태권도 관장님의 칭찬이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3살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태권도 도장에 다닌 내가 초심자에게 진다면 우스운 일이지.”

“끙...”

내가 입은 새하얀 태권도 도복 허리에는 1달 미만의 풋내기를 뜻하는 흰색 띠가 매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내 앞에는 2회 이상의 승급심사를 통과했음을 상징하는 검은색 띠를 맨 태권도 관장님이 서 있었다.

2년 경력도 검은 띠, 10년 경력도 검은 띠, 50년 경력도 검은 띠...

이때부터는 복장으로 실력을 판별할 수 없다.

그렇지만,

‘달라.’

태권도 종주국인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를 지도하는 이 남자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강자.

절대 이길 수 없는 새하얀 호랑이랑 대치한 기분!

내가 수영, 펜싱, 육상을 제외한 올림픽 종목을 전부 포기한 이유도 그의 존재 때문이다.

“고무신 관장님.”

고무신.

대한민국에서 무신(武神)으로, 태권도의 선구자로서 모두의 존경을 받는 남자의 이름.

젊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어린애처럼 다루는 걸 보면, 올림픽에 연연하지 않는 듯했다.

“왜? 한 판 더 해보자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잠시만 쉬고요. 어떻게 제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는 겁니까?”

“훤히 보여서.”

“......”

저 대답을 100번쯤 들은 것 같다.

“이 정도 설명했으면 눈치챌 법도 한데.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자네는 싸움에 소질이 없군.”

“잘 압니다.”

내 적성은 무당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깨우치길 기대했지만, 힘들어 보이니 가르쳐주지.”

“네.”

“살기가 너무 짙어.”

“아!”

“나를 언제, 어떻게 죽이겠다고 신호를 계속 보내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겠나?”

“......”

상당한 충격이었다.

살기(殺氣).

그것은 내 무기이기 때문이다. 펜싱선수들처럼 죽음의 공포에 익숙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은 위축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익숙해지기 전에 하나뿐인 목숨을 잃는다.

“지금 같은 싸움 방식을 맹신했다가는 나중에 크게 후회할 거야.”

“살기를 감추란 건가요?”

“나처럼 안 통하는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기 싫다면.”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이해한 듯하니 다시 대련해볼까?”

“네!”

“언제든 덤-”

“커억~?!”

쿵!

얄팍한 기습공격을 시도한 나는 또 쓰러졌다.

“거참.”

“으으...”

고무신 관장님의 발뒤꿈치에 찍힌 정수리가 후끈거렸다.

“전혀 이해하질 못했군. 몸이 머리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아마도 후자겠지.”

“......”

재능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계속 할 텐가?”

“...물론입니다.”

“그러면 다시 오게.”

“네!”

나는 쓰러지고 또 쓰러졌다.

쿵! 쿵! 쿵! 쿵...!

하지만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절망하며 죽어가는 경험을 또 겪고 싶지 않기에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가 문뜩,

‘죽인다!’

고무신 관장님의 옷깃이라도 건들고 싶은 마음에 꼼수를 생각했다.

움찔.

내 살기에 반응한 관장님의 몸이 불필요한 동작을 취했다.

“오?”

속임수는 바로 간파당했지만, 처음으로 발견한 빈틈이었다.

“하압!”

나는 놓치지 않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돌려차기를 시도했다.

“흠.”

휘익-

하지만 왼발을 축으로 팽이처럼 회전한 고무신 과장님의 오른발 뒤차기가 내 복부를 강타!

푹!

나의 돌려차기 기세까지 더해진 반동에 숨이 탁 막혔다.

“컥-?!”

맞아도 금방 일어나던 나는 이번에야말로 꼼짝달싹 못 했다.

털썩.

뒤로 벌러덩 넘어진 나는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드러누웠다.

“멋지군.”

“콜록콜록!”

“아주 좋은 판단이야. 살기가 너무 강해서 감출 수 없다면 차라리 이용해야지.”

“바로 들켰는데요?”

“더 연습해야지. 거짓말도 자주 해본 사기꾼이 잘하지 않는가?”

“아...”

입가를 올리며 씩 웃는 고무신 관장님의 칭찬이 칭찬처럼 들렸다.

“계속할까?”

“네! 또 부탁합니다!”

관장님께 맞은 가슴을 마사지하듯 문지르며 일어섰다.

우뚝!

‘당연히 해야지.’

나의 부족한 재능만큼 시간과 몸으로 때우리라.

* * *

올림픽이 가까워질수록 나에게 쏟아지는 기대 또한 올라갔다.

수영, 육상, 펜싱, 태권도.

내가 참가할 예정인 종목은 총 넷이지만,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72가지나 된다.

즉, 내가 이번 올림픽에서 딸 수 있는 금메달의 최대 숫자가 72개란 의미.

나쁘지 않다.

“한희야. 힘내.”

“응...”

유의미한 성적을 내지 못한 박한희는 올림픽 참가가 무산됐다.

그녀가 게을러서?

아니, 순전히 실력 부족이었다.

그래도 정부에서는 내 여자친구란 이유로 국가대표에 슬쩍 끼워 넣어줄 수 있다는 의사를 보였지만, 당사자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오랜만에 같이 뛸까?”

“좋아!”

주로 태권도장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박한희를 만나거나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점심시간 정도?

하지만 그것도 최근에 떠도는 음모론 때문에 힘들어졌다.

<강문수 선수의 감염 위험...>

<외국에서 보낸 암살자가...>

<정부는 선수 보호에 최선을...>

<선수촌의 보안을 강화...>

금메달을 싹쓸이할 게 확실한 나를 감염시켜서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게 한다는 소문!

지나친 상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믿는 사람이 은근히 많아서 정부도 무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답답해도 참아요.”

“감염되면 큰일 납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세요.”

“한 번 더 소독할게요.”

내가 전염병에 걸려서 올림픽에 나가지 못하면 옷을 벗게 될 분이 매우 많다고 한다. 방역을 맡은 본인들도 포함해서.

‘이건 그냥 협박이잖아?’

여기에 더해, 대통령 경호원도 일부 차출되어 혹시 모를 물리적인 신변위협까지 대비 중.

사방에 감시의 눈이 달려서 독단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없었다.

“문수를 만날 때마다 코를 찔리는 것 같아.”

전염병 검사를 받은 박한희가 울상을 지었다.

“힘들면 그냥 통화로...”

“그건 더 싫어.”

단호한 그녀의 태도에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체력이 제법 늘었네.”

“노력했으니까.”

“흠...”

처음 만났을 때보다 오래 달리게 된 박한희.

그녀의 허벅지와 종아리에 붙은 근육의 윤곽이 뚜렷해지고, 옆구리의 군살도 완전히 사라졌다.

“어딜 보는 거야?”

“네 몸.”

“구체적으로.”

“...노력한 흔적들을 보고 있었어.”

“분명히 칭찬인데, 기분이 썩 좋진 않네.”

“흠흠!”

무안해진 나는 헛기침하는 척하면서 뒤를 힐끔 훔쳐봤다.

“......”

“......”

멀찍이서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쫓아오는 방역 요원들.

전염병 검사를 받지 않았거나 신원이 불확실한 사람이 내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역할이다.

‘음? 저건 뭐지?’

검은색 수송차 2대가 우리를 향해 빠르게 접근해오고 있었다.

부우웅-!

선수촌의 시속 30km 제한 속도를 가볍게 무시했다.

“...뛰어.”

“문수야?”

“얼른!”

새로운 방역 요원이나 경호원으로 보이지 않았다.

굳이 비교하자면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에 종종 등장한 산적들.

여행자를 습격한 그들이랑 분위기가 비슷했다.

“이쪽으로!”

“응!”

아스팔트 차도(車道)랑 인접한 보도블록을 벗어나서 정원으로!

내 판단이 틀렸다면 차를 세우거나 그냥 지나치리라.

쿵!

쿠웅!

하지만 검은색 수송차 2대는 망설임 없이 아스팔트를 이탈해서 우리를 계속 추적했다.

육상선수를 두 발로 뛰어서 따라잡을 순 없으니까. 그들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헉!”

“저 차는 뭐야?!”

“무슨 일이?!”

이변을 눈치챈 방역 요원들이 허둥댔다.

반면,

“지원 요청을...!”

“당장 도로를 봉쇄해!”

“소문이 사실이었나!”

정말로 물리적인 신변위협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경호원들은 후회하기 바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어떤 미친 놈이...!’

나를 차로 들이받아서 죽일 속셈인 듯했다.

“히익?!”

“진정해!”

겁에 질린 박한희의 손을 잡고 전봇대 뒤편으로 이끌었다.

부웅!

하지만 두 검은색 수송차는 속도를 줄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작정하고 왔네!’

죽음의 공포는 없었다. 정체도 모르는 자들에게 어이없게 죽기 싫다는 마음뿐.

어떻게 할까?

결정은 매우 빨랐다.

“계속 달려.”

“문수야?!”

꽉 잡고 있던 박한희의 손을 뿌리치며 차량을 향해 돌진했다.

끼이익-!

예상대로 그들은 박한희를 무시하고 내게 집중했다.

‘집중해... 지금!’

검은색 수송차의 범퍼에 치이기 직전에 몸을 옆으로 날려서 피했다.

콰직!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수송차가 가로수랑 충돌했다.

“또 한 대는... 이런.”

다른 한 대는 돌격하지 않고 내 앞을 가로막듯 멈춰 섰다.

덜컥.

그리고 차문을 열고 건장한 사내들이 우르르 내렸다.

‘설마...?’

뒤를 힐끔 돌아보니, 가로수랑 충돌한 수송차에서도 사내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한 손에는 쇠파이프를 하나씩.

저걸로 내 뼈를 바스러트릴 작정인 모양이다.

“네가 강문수냐?”

나를 포위한 사내 중 누군가가 으스스한 말투로 질문했다.

저승사자의 사형선고처럼.

이에 나는 주위를 슥 둘러보며 대답했다.

“총이 없는 것 같네요.”

“그게 중요한가?”

“네. 매우.”

내가 이들을 피해 도망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총도 없이 ‘운동선수’랑 싸워?

너무 어이없었다.

“너처럼 발만 빠른 애송이는 이걸로 충분해.”

“그래? 그러면 덤벼봐.”

“...죽여라.”

“하핫!”

현대의 운동선수들이 어째서 괴물로 불리는지 가르쳐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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