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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63화 (64/232)
  • 063화

    1년 정도 남은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려면 국가대표부터 돼야 한다.

    “간단하네.”

    세계신기록을 열람해본 결과, 거리에 상관없이 올림픽 금메달을 싹쓸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접영, 배영, 평영, 개인혼영...?’

    수영법의 구별 없이 빠르기만 하면 되는 현대랑 달리, 구세대는 세세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50m, 100m, 200m, 400m, 800m, 1500m로 거리도 제각각!

    그래서 수영종목만으로 딸 수 있는 메달의 숫자 또한 매우 많았다.

    “와...”

    남해수 씨가 올림픽 메달의 최다 보유자로 ‘수영의 황제’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올림픽 수영종목이 적은 현대에서 그의 메달 보유 숫자를 뛰어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큰일이네. 다른 수영법은 조금만 배웠는데.”

    위를 향하여 반듯이 누운 채 양팔을 번갈아 회전하면서 양다리로 물장구치는 배영.

    물과 몸이 수평을 이룬 상태에서 개구리처럼 양다리와 양팔을 오므렸다가 펴는 평영.

    양팔은 노처럼 휘젓고 양다리는 인어(人魚)의 꼬리지느러미처럼 모아서 물장구치는 접영.

    이 수영법들의 내 실력은 갓난아이 수준이다.

    ‘지금이라도 배워야 하나?’

    내가 송선영에게 배운 수영법은 가장 빠른 크롤 영법.

    얼굴과 몸을 수면 아래로 향한 채 양팔을 교대로 저으면서 양다리로 물장구를 친다.

    그리고 양팔로 물을 한 번 젓는 동안 양다리로 물장구치는 횟수에 따라서 2비트, 4비트, 6비트로 나뉘게 되는데...

    “현대랑 다르네.”

    단거리에서 6비트, 장거리에서 2비트와 4비트가 쓰인다고?

    완전히 정반대였다.

    크롤 수영법은 추진력의 약 70%가 팔에서 나오는데, 6비트는 양다리를 6번 왕복하는 동안 양팔을 1번 회전한다.

    반면에 4비트는 양다리를 4번 왕복하는 동안 양팔을 1번...

    즉, 똑같이 양다리를 12번 왕복했을 때, 6비트는 팔을 2번, 4비트는 팔을 3번 휘젓는다.

    뭐가 더 빠를까?

    같은 시간에 더 많이 팔을 움직이는 4비트다.

    “아직도 생각나네.”

    “몰랑?”

    “선영이는 수영선수가 되면 팔뚝이 굵어진다고 질색했거든.”

    “몰랑...”

    그래서 송선영은 팔보다 자신의 장기인 긴 다리에 힘을 준 5비트라는 애매한 수영법을 사용했다.

    그게 패배의 원인이겠지.

    “얌전히 있어.”

    “몰랑~”

    우리는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서 무작정 올림픽 선수촌을 찾아가는 중이다.

    “기분이 묘하네.”

    “몰랑?”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이 선수촌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시설이거든.”

    구시대의 경기장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너무 낙후된 까닭에 선수촌은 관광객과 연인들이 사진 찍는 명소로 이용되는 중.

    아르바이트로 늘 바빴던 나는 가보지 못했다.

    터벅터벅.

    숲으로 둘러싸인 선수촌은 운치가 있었다.

    “어디 보자... 만남의 광장을 지나서 쭉 직진하면 왼편에 있다네.”

    “몰랑~”

    우리는 선수촌의 안내판을 보고 수영센터를 찾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입구!

    “선수인가요?”

    “어... 선수가 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잘못 찾아오셨네요. 여기는 선수를 뽑는 곳이 아닙니다. 국가대표가 훈련하는 장소지.”

    “그러면 어디서 선수를 뽑나요?”

    “인터넷을 보세요.”

    “아, 네.”

    일반인은 출입금지!

    선수촌 수영센터의 출입구에서 경비원에게 저지당한 나는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지?”

    “몰랑?”

    “몰래 들어갈까?”

    수영 감독을 만나서 한 번만 봐달라고 부탁하자.

    실력만 입증되면 선수촌에 무단으로 침입한 사실도 용서해주리라.

    * * *

    “허! 체육대는커녕 고등학교도 안 나왔다고?”

    “이민자라서...”

    수영센터로 들어가는 감독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말을 참 잘하는군. 검정고시를 보고 체육대학을 나온 후에 정식 절차를 밟아서 다시 와.”

    감독들의 태도는 철벽이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자유형 하나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오! 그렇게 자유형에 자신 있으면 대학교에 특채로 입학한 후에 인정받고 다시 와.”

    “끙...”

    정론이었다.

    현실에서 내가 실력만으로 1군까지 금방 올라간 탓일까?

    구시대의 국가대표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한 번만...”

    “돌아가.”

    “잠시만 시간을...”

    “안 돼.”

    다른 수영 감독들에게도 부탁해봤지만, 대답은 모두가 똑같았다.

    딱 한 번!

    딱 한 번만 내 실력을 보여주면 되는데, 그 한 번이 너무 어려웠다.

    급기야,

    “신고를 받고 왔습니다.”

    “이런.”

    경찰이 찾아왔다.

    “선수촌 출입증이나 신분증이 있으신가요?”

    “아뇨.”

    “그러면 경찰서까지 동행해주셔야겠습니다. 협조해주시면 벌금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나는 순순히 경찰차에 탔다.

    “그런데 머리에 그건 뭔가요?”

    “모자입니다.”

    “몰랑몰랑~”

    “귀여운 모자군요.”

    “감사합니다.”

    “몰랑~”

    경찰서에서 간단한 조사만 받고 풀려난 나는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두고 보자!’

    절차를 안 지킨 내 잘못도 분명 있지만, 대학교를 물어보고 깔보는 태도는 대체 뭐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아! 미치겠네. 올림픽까지 1년도 안 남았는데...!”

    그래서 아무나 참가할 수 있는 수영대회를 찾아봤다.

    하지만 한 방에 실력을 입증하고 국가대표까지 가는 방법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으니!

    체육관, 지역대회, 전국대회...

    선수촌에 들어가려면 대학이나 시민단체 같은 곳에 소속되어 작은 대회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올라가야 했다.

    그러나,

    ‘이 추세면 힘들어.’

    나날이 심각해지는 전염병 때문에 수영대회가 줄줄이 취소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육대학으로 가볼까?

    하지만 아무리 얘기가 잘 풀려도 내년 3월에 입학.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몰랑!”

    “왜?”

    “몰랑!”

    털레털레 길을 걷던 나는 머리 위에서 거칠게 몰랑거리는 친구 때문에 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왜 몰랑거릴까?

    그런 의문을 품으며 무심코 옆을 돌아본 나는 가로수 사이에 걸린 플래카드에 탄성을 터트렸다.

    「전국마라톤대회」

    “이거다!”

    수영장은 한 번에 헤엄칠 수 있는 인원에 한계가 있어서 대회에 수백 명씩 참가할 수 없다.

    그래서 참가 조건을 걸어서 인원수를 제한할 수밖에 없는데...

    마라톤은 어떤가?

    일부 도로를 통제해서 42.195km만 마련하면 끝!

    수백 명이 동시에 달릴 수 있기에 소정의 참가비만 내면 학력과 나이 등을 일절 따지지 않는다.

    ‘심지어 내일이네?’

    지금도 마라톤 참가 신청을 받는지가 관건인데, 광고지에는 오늘 저녁 6시까지 된다고 쓰여 있었다.

    “몰랑?”

    “당연히 고맙지!”

    “몰랑~”

    마라톤 접수는 인터넷으로!

    출발하는 장소는 주소를 검색해서 찾아가면 되고, 결승선은 선수촌 육상경기장.

    전염병 극복을 위해 힘을 모으자는 취지의 전국마라톤이며, 현역 선수와 정치인들도 참가한다고...

    딱 좋았다.

    “귀신을 추적하는 무당의 체력을 보여주지!”

    “몰랑!”

    바로 접수했다.

    * * *

    일반인들도 참가하는 마라톤이라서 반드시 완주할 필요는 없었다.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고, 10시간 안에만 결승선에 도착하면 기념선물을 준다고….

    확성기를 든 안전요원에게 세세한 주의사항을 들은 후, 번호표가 적힌 얇은 옷을 받았다.

    ‘바로 선두다!’

    지역방송사에서 현역 선수를 집중적으로 보도할 테니까. 조작이라는 오해를 안 들으려면 시작부터 주목받을 필요가 있다.

    “거리를 유지하세요.”

    “마스크를 벗으시면 안 돼요!”

    “이제 1분 남았습니다!”

    전염병의 공포 때문일까? 마라톤을 구경하는 사람보다 안전요원이 많은 것 같았다.

    ‘모르는 편이 낫지.’

    앞으로 인류가 겪게 될 대재앙이랑 비교하면 이건 가벼운 준비운동에 지나지 않는다.

    탕-!

    출발신호가 고막을 때리자마자 앞으로 치고 나갔다.

    “실례할게요!”

    “몰랑!”

    체력 분배를 위해 천천히 뛰는 사람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 탓에 조금 애먹긴 했지만, 얼마 안 가서 추월할 수 있었다.

    ‘저기 있네.’

    오래 달릴 것 같은 체형의 사람들로 구성된 선두그룹을 발견!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후?”

    “후우?”

    그들은 운동화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살짝 도발해볼까.’

    마음 같아서는 결승선까지 전속력으로 달리고 싶지만, 약물이란 오해를 받기 싫으니까.

    조금만 앞서기로 했다.

    휙.

    가장 앞장선 1위 선수를 제치고 내가 최선두에 섰다.

    “......”

    하지만 선수는 1위를 빼앗겼음에도 흔들림 없이 묵묵히 달렸다.

    ‘과연...’

    내가 제풀에 지쳐서 도중에 낙마하리라고 생각하는 걸까?

    언제까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 * *

    스마트폰을 보면 안 된다는 마라톤 규정이 없어서 다행이다.

    “......”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몰랑!”

    내 도발에 넘어간 선수들이 무리해서 힘쓰다가 전부 나가떨어지고, 최후의 한 명만 남았다.

    하지만 이 마지막 경쟁자도 꽤 힘들어 보이는 얼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좁혀지지 않는 우리의 거리에 초조해하는 게 느껴졌다.

    급기야,

    휘청~

    버티지 못하고 넘어질 뻔했다.

    “......”

    “조금만 더 힘내세요. 결승선이 보여요.”

    경찰에 신고해서 나를 쫓아냈던 선수촌의 출입구가 보였다.

    ‘오래 참았지.’

    2인 1역 같은 속임수란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2시간 가까이 속도를 조절했다.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선수 옆을 달리면 그 누구도 헛소리하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이젠 끝.

    선수촌에 발을 내딛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렸다.

    탁!

    “...뷁?!”

    갑자기 빨라진 나를 보고 놀란 선수가 괴성을 질렀다.

    우리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고...

    철퍼덕!

    걸음이 위태로웠던 최후의 경쟁자가 아스팔트 위에 쓰러졌다.

    “저런...”

    “몰랑...”

    제물로 삼은 듯해서 미안한 생각이 조금 들었지만, 그렇다고 도중에 멈출 순 없었다.

    탁!

    마라톤 결승선이 있는 선수촌 육상경기장에 1등으로 진입!

    체력은 여전히 넘쳤지만, 발바닥이 너무 아팠다.

    ‘시간은... 1시간 59분 13초.’

    스마트폰으로 현재까지 걸린 시간을 확인했다.

    육상 마라톤 세계신기록보다 약간 빠른 정도.

    속도를 좀 늦출까?

    하지만 기록을 조절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았다.

    “끝!”

    “몰랑!”

    탁!

    내 가슴에 닿은 새하얀 끈을 밀치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

    “......”

    육상경기장의 관중석에 앉은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저... 물이요.”

    “감사합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건네는 물통의 빨대를 쪽쪽 빨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휙~

    그리고 신발과 양말부터 벗었다.

    “얼얼하네...”

    “몰랑...”

    피부가 벗겨지거나 물집이 잡히진 않았지만, 발바닥이 새빨갰다.

    “실례합니다.”

    “네.”

    “중간부터 달리셨습니까?”

    “아뇨. 완주입니다. 생방송으로 보셨으면 잘 아실 텐데요.”

    “......”

    내게 다가와서 질문한 남자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기록이 1시간 59분 52초가 나왔습니다.”

    “정말 아쉽네요. 신발이 안 좋아서 속도를 못 냈거든요.”

    “하아...?”

    뒤늦게 운동화가 아님을 확인한 남자의 얼굴이 굳었다.

    찰칵!

    찰칵찰칵!

    잽싸게 내 사진을 찍은 기자가 마이크를 내밀며 질문했다.

    “우승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생방송이죠?”

    “네.”

    “학력이 떨어진다고 무시당한 서러움을 갚은 기분입니다.”

    “누가 무시했습니까?”

    “그분들의 명예를 위해 비밀로 하겠습니다.”

    기자는 더 깊숙이 묻지 않고 다른 질문을 했다.

    “목표가 있으십니까?”

    “네. 마라톤은 취미입니다. 저는-”

    “자,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비공식이긴 해도 1시간 59분 52초로 세계신기록을 달성하셨는데, 취미라는 겁니까?!”

    “취, 취미?”

    “취미...?”

    경악하는 기자. 인터뷰를 듣던 사람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네. 제 특기는 수영입니다. 기회도 안 주고 무시당했지만요!”

    “몰랑!

    오늘부터 내가 남해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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