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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62화 (63/232)
  • 062화

    [4장-3절] 내가 남해수다

    다른 인간의 탈을 쓴 남해수 씨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단 하나뿐.

    나에게 초능력이 없는 한, 그가 스스로 내 앞에 나타나도록 상황을 유도할 수밖에 없다.

    혹은,

    ‘미래의 지식.’

    과거의 꿈을 꾸는 남해수 씨가 다시 한번 성공할 수 있도록 해줄 최강의 무기!

    마법소년 최강민처럼 절대적인 힘을 가진 게 아니라면 이 지식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금쯤 엄청난 부자가 됐겠지.”

    나는 다큐멘터리로 배운 토막 지식이지만, 이 시대를 몸소 겪은 남해수 씨는 돈 버는 방법들을 자세히 알고 있을 터!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어... 이런.”

    그리고 실패했다.

    ‘전혀 구분이 안 되잖아!’

    남해수 씨의 돈벌이 수단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그가 돈에 집착한다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부자는 세상에 너무 많고!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는 나로선 한계가 명확했다.

    이상기후, 전염병, 가상화폐...

    내가 역사책이나 다큐멘터리 등으로 습득한 과거의 역사에서 벗어나는 전개도 없었고.

    “그렇다면...”

    「검색: 예언가」

    접근법을 완전히 뒤집어봤다.

    남해수 씨가 ‘미래의 지식’을 독점하지 않고 세계를 위해 공개했을 가능성으로!

    「운석이랑 충돌한다.」

    「3차 세계대전이 터진다.」

    「새로운 전염병이 확산된다.」

    「화산이 폭발한다.」

    “흠...”

    인터넷에 떠도는 예언가가 굉장히 많았다.

    P의 적성검사결과에서 적성이 ‘예언가’인 사람이 전 세계를 통틀어서 단 2명뿐이란 점을 고려하면, 정말 터무니없이 많은 숫자.

    심지어 구시대의 예언가들은 날짜와 내용이 두루뭉술하고, 모든 예언이 100% 적중하지도 않았다.

    ‘거참...’

    틀린 예언이 너무 많잖아?

    슈퍼컴퓨터보다 정확한 날씨예보와 자연재해경고로 신뢰를 받는 현대의 예언가들이랑 비교됐다.

    “어디 보자... 이 예언가는 사기꾼이고... 이 노인은 죽었고... 이 소녀도 아니고...”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재난, 전쟁, 사건...

    하지만 미래를 모르더라도 사기꾼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이건 예언가가 방송에 출연해서 직접 말했으니까.

    ‘확정된 미래.’

    알아도 못 바꾸는 미래만 예언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적성.

    베토벤이 청력을 잃은 뒤에도 무수히 많은 명곡을 남긴 천재 음악가였던 것처럼.

    적성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반면,

    ‘불확실한 미래.’

    예언가들은 자신의 발언이나 간섭으로 바뀔 수 있는 미래는 내다볼 수 없다.

    예를 들어보자.

    A라는 사람은 교통사고로 내일 죽을 예정이다.

    하지만 예언가의 경고를 들은 A가 밖에 나가질 않는다면?

    A가 교통사고로 죽는 미래는 오지 않는다.

    즉,

    “전쟁은 전부 사기꾼이지.”

    예언가의 예언으로 바뀔 수도 있는 미래는 미래가 아니다.

    전쟁, 암살, 사망, 멸망...

    그래서 이런 예언들은 볼 것도 없이 걸러야 한다.

    그러나,

    ‘진짜 복잡하네!’

    구시대의 사람들은 예언가들의 발언이나 경고를 현대인만큼 신용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러면 또 상황이 달라지는데, 예언가가 무슨 예언을 해도 미래에 간섭할 수 없기에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된다.

    같으면서도 다른 예를 들어보자.

    예언가의 경고를 못 들었거나 무시한 A가 밖에 나간다면?

    A는 교통사고로 죽는다.

    “정확한 예언이...”

    앞으로 지구에서 벌어질 미래를 정확하게 맞춘 예언가가 있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남해수 씨가 자신의 발언으로 미래가 바뀔 위험성까지 고려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단언하는 이유?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 그의 안일한 태도 때문에 재산 상속 문제로 다투는 자식들을 보았으니까.

    그리고 열흘째 되는 날.

    “으아아아! 포기! 완전 포기...!”

    벌러덩~

    침대에 드러누웠다.

    남해수 씨의 국적이었던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예언가들까지 조사해봤으나 헛수고.

    단기간에 떼돈을 번 부자도 너무 많았다.

    “진짜 모르겠네!”

    “몰랑?”

    “...음?”

    외계생명체가 내 옆에서 몰랑거리고 있었다.

    “몰랑?”

    “슬라임이잖아? 이 녀석이 어째서 지구에...?”

    피부의 감촉이 말랑하지 않고 몰랑한 슬라임이었다.

    반투명한 몸도 내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에서 흔하게 보았던 슬라임처럼 분홍빛이 아닌 무지갯빛...

    “몰랑몰랑~”

    “네가 왜 여기에 있냐?”

    “몰랑!”

    “그, 그렇구나.”

    이 몰랑한 슬라임이 뭐라고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여기는 꿈의 세계니까. 검귀도 있었잖아?’

    깊게 생각하길 포기한 나는 몰랑한 슬라임을 만지작거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몰랑~”

    “...몰랑거리는 친구.”

    “몰랑? 몰랑.”

    “지금부터 내 생각에 긍정하면 한 번 몰랑거리고, 부정이면 두 번 하는 거야. 이해했어?”

    “몰랑!”

    정말로 이해한 게 맞는 걸까? 아무래도 좋았다.

    “남해수 씨는 미래의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은 것 같아.”

    “몰랑.”

    “하지만 다른 인간으로 시작한 그는 실패한 인생도 아닐 거야. 실패했다면 진즉 꿈에서 깨어났겠지.”

    “몰랑.”

    “최강민이 그랬으니까.”

    “몰랑~”

    빛의 속도와 절대적인 힘을 가진 마법소년 최강민은 과거의 패륜이 들통나고, 꿈이란 사실을 자각한 후에야 현실로 돌아왔다.

    “김은정도 그랬고.”

    “몰랑~”

    모든 미남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귀족 영애였던 김은정. 그녀도 공개처형의 위기와 끔찍한 봉사활동을 경험하고 꿈에서 깨어났다.

    “송선영만 조금 다르네.”

    자신의 적성을 바꾸고 싶었던 소녀는 나의 설득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눈을 떴다.

    “몰랑몰랑!”

    “음? 내 생각이 틀렸다고?”

    “몰랑!”

    “...몰랑한 친구. 정말로 내 말을 알아듣는 게 맞아?”

    “몰랑.”

    “흠...”

    대답이 영 미덥지 않았지만, 몰랑한 슬라임을 쓰다듬으면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수영의 황제였던 이 인간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몰랑~”

    “송선영, 최강민, 김은정. 모두가 현실이 마음에 안 들어서 꿈에 사로잡혔잖아.”

    “몰랑!”

    “그런데 남해수 씨는 뭐가 아쉬워서 과거에 목을 매는 걸까? 그것도 다른 인간의 모습으로.”

    “몰랑?”

    “전혀 모르겠어.”

    “몰랑몰랑!”

    부정하듯 격렬하게 2번 몰랑거리는 슬라임의 행동 때문에 쓰다듬던 내 손이 뚝 멈췄다.

    “...내가 이미 안다고?”

    “몰랑!”

    “......”

    수영의 황제 남해수 씨는 누가 보더라도 성공한 인생이었다.

    돈, 명예, 가족...

    모델 출신의 아름다운 아내가 낳은 자식들이 재산 상속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지만, 그가 갑작스럽게 쓰러지기 전까지는 불화 한번 없었던 화목한 가정이었다.

    ‘내가 이미 안다고?’

    남해수는 자신의 재산을 국제수영연맹에 맡기고 후학 양성을 지원할 정도로 물욕이 없는 위인.

    이런 행동을 보면, 미래의 지식을 활용해서 부자가 됐을 것이란 내 추측도 완전히 잘못 짚은 셈이다.

    “...잠깐.”

    “몰랑?”

    “물욕이 없다고?”

    남해수 씨에게 욕심이 없었다면 올림픽 메달을 싹쓸이하다시피 하지 않았으리라.

    연맹에 빌려준 호화여객선만 보더라도, 그는 과시하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어째서 후학 양성에 그토록 집착한 걸까?”

    국가대표에 가까운 1군 선수일지라도, 호화여객선과 최고급 뷔페는 필요 이상의 지나친 사치였다.

    과거에 선수였던 남해수 씨가 그걸 몰랐을까?

    그럴 리 없다.

    “몰랑?”

    “기다려봐. 생각날 것 같아.”

    “몰랑~”

    남해수 씨가 후학 양성에 집착한 이유.

    현대의 수영시합은 좋은 수영복과 환경, 감독만 제공해주면 ‘적성’으로 승부가 결정되는데...

    “적성?”

    “몰랑!”

    “맞아. 그랬지. 남해수 씨는 적성이 수영선수가 아니었어.”

    하지만 그는 올림픽 수영종목 메달을 싹쓸이하고 ‘수영의 황제’란 칭호를 얻는다.

    왜?

    경쟁자들의 적성도 수영선수가 아니었거나 충분한 지원을 못 받았기 때문이리라.

    “몰랑?”

    “...아니. 이젠 알 것 같아.”

    내가 다른 사람의 탈을 쓴 남해수 씨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

    ‘그가 나를 찾아오도록 해야지.’

    어떻게?

    침대에서 일어선 나는 곧바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검색: 다음 올림픽」

    인간의 탈을 쓴 스포츠 괴물들이 매년 쏟아지는 현대에서는 2년마다 올림픽이 개최되지만, 구시대는 하계와 동계로 나뉜 4년 주기.

    “아... 이런.”

    “몰랑?”

    “시간이 별로 없어.”

    “몰랑!”

    “여기서 4년을 썩힐 게 아니라면 진짜 서둘러야겠네.”

    시간이 없었다.

    * * *

    “혀어어엉~!”

    탕!

    보는 각도에 따라서 성별이 헷갈리는 중성적인 외모의 아름다운 소년이 병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뛰어 들어왔다.

    “...최강훈 씨. 병원에서는 조용히 해주세요.”

    “문수 혀어어엉~!”

    “......”

    엘몰랑스 병원 업무를 먼 타지에서 처리하고 있던 서혜주 과장은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이 소년이 이곳에 온다는 ‘통보’를 받긴 했지만...

    ‘진짜 성가셔!’

    그의 이복형인 최강민 환자의 병문안을 올 때보다 평균 86배에 달하는 질문과 관심. 그녀의 업무에 방해될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안녕하세요!”

    “잘 오셨습니다.”

    돈이 덕지덕지 붙은 뒷배경이 너무 대단했다.

    “선생님! 문수 형은 어때요? 또 잠들었다면서요!”

    “몸에 이상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방학했으니까요! 형이 김은정이란 자폐증 환자를 치료 중이란 소식을 듣자마자 오고 싶었지만, 그때는 학기 중이었거든요!”

    “병원 기밀을 아무렇지 않게 알고 있네요.”

    “문수 형의 일이니까요!”

    “그렇군요.”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상대가 엘몰랑스 부속병원의 주주 아들이기에 그러려니 넘어갔다.

    하지만,

    “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숙녀가 엘몰랑스 병원의 의사라는 게 정말 놀랍군.”

    최강훈의 뒤를 이어서 병실에 들어온 청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사자의 갈퀴 같은 황금색 머리카락과 진녹색 눈동자, 조각가가 심혈을 기울여 깎은 듯한 턱선...

    고급스러운 흰색 턱시도로 마무리한 그의 외모는 매력적인 남성미가 물씬 풍겼다.

    “레온 왕자님이신가요?”

    “오! 이국의 아름다운 의사여. 나를 아는가?”

    “사전에 연락받았습니다.”

    레온 왕자.

    이 아름다운 휴양지가 소속된 나라의 어린 왕족.

    그가 정통후계자라면 예의를 갖춰야 하지만, 적성이 ‘왕’에 어울리지 않는 왕족은 재벌 2세나 다름없기에 신경 쓸 필요 없다.

    ‘성가신 인간이 2배...’

    밀린 업무가 많기에 방해하지 말라고, 최강훈과 레온 왕자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그녀의 바람이 닿은 걸까?

    “강훈아. 용무가 끝났으면 내가 섬을 안내해줄게. 왕족 전용 리조트와 레스토랑...”

    “잠시만요. 문수 형에게 선물만 주고요.”

    탁!

    최강훈은 병실의 침대에 쥐죽은 듯이 누워있는 강문수의 이마에 종이를 붙였다.

    “최강훈 씨? 그건 대체...”

    그가 강문수의 몸에 직접 손을 델 줄은 몰랐던 서혜주 과장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에 답하길,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명한 무당에게 산 부적이에요! 강력한 신의 가호가 깃들어 있데요!”

    “아, 네. 신의 가호...”

    “진짜에요!”

    그녀는 최강훈이 사기를 당했다고 확신했다.

    “거참! 서민들의 생각은 도통 알 수가 없군.”

    레온 왕자도 다른 의미로 어처구니없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때,

    “뭐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어? 문수 형을 귀찮게 했던 송선영 선배야말로 여긴 왜...”

    “누가 귀찮게 했다는 거야!”

    “맞잖아요.”

    “아니야!”

    냉커피 2잔을 든 송선영이 발끈하면서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아... 오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보며 넋을 놔버린 레온 왕자가 앞을 가로막은 바람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비켜주실래요?”

    송선영은 곧바로 고운 이마를 찡그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름다운 아가씨! 이름이...”

    “송선영.”

    “오! 나의 영혼에 쏙 박히는 이름이오. 송선영 양. 나는...

    “비켜주실래요?”

    서혜주 과장에게 냉커피 1잔을 건네는 그녀의 목소리에 짜증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어흠! 실례했소.”

    무안했던 레온 왕자는 급히 옆으로 비켜섰다.

    살랄라~

    그는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송선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응? 이건 뭐야?”

    “선배! 떼지 말아요!”

    최강민은 강문수의 이마에 붙인 부적을 사수했다.

    “네 짓이구나! 저리 비켜.”

    “안 돼요!”

    “송선영 양. 환자를 걱정하는 당신의 고귀한 마음은 잘 알겠지만, 잠시만 내게 시간을...”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떼!”

    “싫어요!

    “......”

    서혜주 과장은 송선영이 준 냉커피를 호로록 마시며 생각했다.

    ‘난장판이네.’

    강문수가 깨어나기 전까지 계속 이러는 건 아니겠지?

    ...아니길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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