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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61화 (62/232)

061화

바위에 이어 강철마저 수수깡처럼 베어버리는 검귀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현장을 빠르게 벗어났다.

“1박이요.”

근방의 저렴한 숙박업소에 자리를 잡고, 가방에 넣어둔 보석함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끼익-

“...고생한 보람이 있네.”

내가 이 시대에 오래 머물 예정이었다면 땅을 샀을 것이다.

해수면 상승, 수온 상승, 전쟁, 사막화 현상, 화산 폭발, 지진, 자원 고갈, 이상기후...

앞으로 다가올 대재앙에 수많은 나라가 사라지고 새로운 도시가 세워지기 때문이다.

아직은 개발될 계획이 없어서 저렴한 그 땅을 야금야금 사두면...

그러나,

‘생활비는 이걸로 됐네.’

수영의 황제 남해수 씨를 찾아서 설득하면 끝나기 때문에 재산에 연연하지 않았다.

아몰랑 백작.

꿈의 세계에서 대제국의 개국공신으로 활약하고 얻은 교훈이다. 깨어나면 재산도, 명성도, 권력도, 신분도 전부 사라지니까.

사랑도 포함해서!

“하아... 갑자기 우울해지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 속보로 나를 습격한 검귀와 해안경비초소에서 근무하던 군인들의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쫓기던 20대 청년의 행방은...)

(사라진 탄피 회수에 총력...)

최강민의 꿈에서는 ‘검귀’란 명칭까지 뚜렷하게 존재할 만큼 알려진 괴물이었다.

하지만 남해수 씨의 꿈에서는 처음 발견된 생명체 혹은 돌연변이로 취급하는 분위기!

송선영과 김은정의 꿈에서는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았고...

‘차이가 뭐지?’

내 목숨을 2번이나 위협한 괴물에 대해 좀 더 알아두고 싶었지만,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뭐든지 절단하는 팔다리.

근거리에서 총알도 막는 반사신경.

철판처럼 단단한 피부.

뇌가 꿰뚫려도 버티는 생명력.

수은을 연상시키는 은색의 혈액.

마찰력을 무시하는 움직임.

......

전투에 관해서는 직접 겪어본 덕분에 제법 알게 됐지만, 그 외에는 최강민의 꿈에서 나를 구해준 지구방위군에게 들은 게 전부였다.

‘아쉽네.’

검귀를 또 마주치게 될 줄 알았다면 그때 좀 더 조사해뒀을 텐데.

보물찾기에 정신이 팔려서 몸을 지킬 무기를 준비하지 않은 나의 안일한 태도도 반성했다.

아무튼,

(용감히 맞서 싸운 군인들은...)

(1계급 특진과 8박 9일 휴가...)

(현장의 감시카메라는 파손...)

삑!

같은 소식의 뉴스를 반복하기 시작한 텔레비전을 끄고, 몸을 씻고 푹신한 침대에 누웠다.

“후우...”

체력은 여전히 넘쳤지만, 목숨을 위협받는 긴장감으로 정신적인 피로가 상당했다.

이전이랑 달라진 마음가짐.

꿈이기에 얼마든지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사라지면서 목숨에 집착하게 된 것 같다.

마치,

‘현실 같네.’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본격적인 수색을 시작하자.

* * *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 때문에 국가의 존속마저 위태로운 대한민국.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수영의 황제’를 찾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내가 내린 해결책은?

돈을 주고 탐정사무소에 의뢰하는 것이었다.

“사람을 찾으신다고요?”

“네.”

탐정사무소.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사건이나 문제를 도와주는 업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셜록 홈스?

하지만 ‘탐정’은 매우 희귀한 적성이라서 의뢰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나라에는 탐정이 넘쳐났다.

“찾으시는 분이랑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헤어진 여자친구, 이사 간 소꿉친구, 생명을 구해준 은인, 아내의 내연남...”

“그게 중요한가요?”

“네. 최근에 제가 아는 탐정사무소에서 이상한 의뢰인 때문에 고생했거든요. 초면의 여성을 찾아가서 불륜을 폭로하는 바람에 사생활침해로 법정까지 갔습니다.”

“아...”

전화상담이나 예약 없이 사무실을 찾아가서 바로 만난 이 탐정의 신중한 태도가 이해됐다.

“범죄에 가담하면 저희도 처벌받습니다. 몰랐다는 변명은 법정에서 통하지 않죠.”

“범죄요? 불륜을 폭로하는 일은 정의롭지 않나요?”

“법적인 부부가 아닌 이상, 타인의 사생활을 뒷조사하는 일은 범죄에 해당합니다.”

“그 타인이 범죄자라도요?”

“범죄자도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불륜은 이혼 사유가 될 순 있어도 범죄는 아닙니다. 간통죄가 2015년에 폐지됐거든요.”

“......”

이 시대는 불륜에 대단히 관대한 것 같다.

“성함과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제 주민등록증입니다.”

슥-

며칠 전에 발급받은 따끈따끈한 주민등록증을 탐정에게 보여줬다.

“흐음... 강문수 씨?”

“네.”

“찾으시려는 분이랑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모릅니다.”

“예?”

“저는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습니다. 그래서 찾으려는 사람의 이름과 나이만 알고 있습니다.”

“흠...”

떨떠름한 표정이 된 탐정이 고민하듯 턱을 쓰다듬었다.

“마음에 안 내키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탐정사무소는 많으니까. 수상쩍은 내 의뢰를 받는 탐정이 한 명쯤 있을 것이다.

다만,

‘기분이 싸하단 말이지.’

자신의 적성과 세계의 미래를 모를 리 없는 ‘남해수’가 인터넷에 검색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대체 왜?

수영이나 육상선수가 됐다면 올림픽을 또 한 번 휩쓸었을 테고,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했다면 장기적으로 엄청난 부자가 됐으리라.

그래서 탐정사무소에 의뢰하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찾으시려는 분의 어떤 정보를 원하십니까? 실주거지, 연락처, 재산상태, 가족관계, 경력, 직장...”

“존재요.”

“예?”

“이 사람이 지구에 실제로 존재하는지만 확인해주세요.”

“...굉장히 특이한 의뢰군요.”

“찾으시면 증거물로 사진을 찍어서 제게 보여주세요. 얼굴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거든요.”

살아있는지만 확인하는 의뢰였기에 탐정사무소에서 책임을 질 위험부담이 전혀 없다.

그걸 눈치챈 걸까?

탐정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름과 나이를 알려주십시오. 의뢰 결과는 내일 오후쯤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남해수. 25살입니다.”

“증거사진은 그분이 외출해야 찍을 수 있기에 내일까지 힘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요금이 추가됩니다.”

“이해했습니다.”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거짓말할 수도 있으니까. 돈이 좀 더 들더라도 확실하게 하는 편이 좋다.

“선금은 어떻게? 현금으로 결제하시면 할인이 있습니다.”

“그러면 현금으로 할게요.”

짤랑!

정부에서 준 정착자금이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고민이네. 금은방? 고물상? 내가 팔아봤어야 알지!’

탐정사무소의 의뢰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보석상자를 비싸게 처분할 곳을 알아보자!

* * *

인터넷으로 알아본 결과, 구시대는 정책적인 부분에서 현대랑 큰 차이가 있었다.

‘유물이 국가귀속이라...’

그래서 유물을 발견한 국민의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기에 보상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유물의 유출을 방지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보상이 미미하다면 유물의 발견 사실을 정부에 알리지 않는 사람이 틀림없이 나오리라.

나처럼.

“이겁니다.”

탁.

일주일도 안 된 국민에게 희생적인 애국심을 바라는 건 무리다.

“오오!”

“외국에 도난당한 유물을 되찾아오는 훌륭한 일을 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아주 잘 찾아왔네!”

고상한 취미가 있는 아저씨가 보석상자에 짙은 관심을 보였다.

“이 물건은...”

나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박물관을 견학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열심히 설명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가격을 쳐줄 테니까.

짝짝!

그랬더니 기립박수까지 받았다.

“놀라워! 젊은 친구가 정말 대단한 식견을 가졌군!”

“감사합니다.”

“어허! 이것의 역사와 예술적 가치를 너무 잘 알아서 가격을 후려칠 수가 없겠구먼!”

“조금 아는 건 사실이지만, 보자마자 그 가치를 간파한 선생님만 하겠습니까?”

“말도 잘하는군!”

“하하!”

“하하!”

짤랑!

우리는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수월하게 거래를 마쳤다!

* * *

수영의 황제를 찾고 있기에 올림픽이랑 관련된 기사를 꾸준히 살펴보게 됐다.

‘생소하네.’

30살이 넘은 운동선수들이 은퇴하지 않고 1군이나 국가대표로 꾸준히 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인은 인재 부족!

그래서 전성기가 지난 노장(老將)들을 계속 가용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P의 적성검사기는 19살까지 축구공을 만져본 적 없는 소년을 위대한 축구선수로 이끌 수 있다.

하지만 구시대는 축구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도 ‘기회’가 없으면 평범한 직장인으로 끝.

정치는 더욱 끔찍했다.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

(성접대 의혹을 강력히 부인….)

(허위사실유포로 실형….)

정치인이 과도한 애국심으로 타국을 비방해서 논란이 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는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성품, 양심, 청렴.

적성 중에서도 ‘정치인’은 인간성을 가장 많이 보기 때문이다.

‘서혜주 과장님은 이런 세상이 좋다는 건가?’

이해할 수 없었다.

“강문수 씨. 하루 사이에 멋쟁이가 되셨군요.”

“감사합니다.”

탐정사무실로 오는 길에 미용실과 백화점에 들러서 내 몸에 투자 좀 했다.

탐정은 책상 서랍에서 얇은 서류 뭉치를 꺼내며,

“의뢰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벌써 기대되네요.”

수영선수를 포기하고 새로운 인생을 선택한 남해수 씨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남해수. 25세.”

“네.”

“없습니다.”

“......”

“그래서 강문수 씨가 기억상실증이란 점을 고려하여 비슷한 또래를 조사했습니다.”

“아, 네.”

내가 남해수 씨의 나이를 잘못 알고 있을 리 없잖은가?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이 남자는 22세의 남해수입니다.”

슥-

탐정이 건넨 사진에는 대학생으로 짐작되는 남성이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닙니다.”

얼굴이 전혀 달랐다.

“그러면 이쪽은 어떻습니까? 29세의 남해수입니다.”

슥-

두 번째 사진은 대한민국 군복을 입은 장교였다.

“...이분도 아닙니다.”

“그러면 강문수 씨가 찾는 분은 대한민국에 없습니다. 이민이나 개명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건 추가 요금이 듭니다.”

“흠...”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없을 줄은 몰랐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돈만 있으면 남해수 씨를 금방 찾을 것 같았는데.

현실은 달랐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조사해주세요. 얼마를 더 드리면 될까요?”

“서비스입니다.”

“서비스요? 분명히 추가 요금이 든다고...”

공짜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탐정은 농담이 아니란 듯이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객 관리입니다. 이 업계는 경쟁이 치열하거든요.”

“아, 네.”

“다음부터 탐정사무소에 의뢰할 때는 꼼꼼히 확인하십시오. 불법적인 수단을 썼다가 걸리면 의뢰인도 처벌받습니다.”

“아...”

“그리고 의뢰 내용을 정확하게 명시해야 합니다. 비슷한 의뢰를 2번 하는 억울한 상황을 안 겪으시려면.”

“감사합니다.”

고객 관리가 정말 확실한 탐정사무소 같다.

“며칠 뒤에 오면 될까요?”

“안 오셔도 됩니다.”

“예?”

“강문수 씨가 찾는 사람은 지구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이민이나 개명하지도 않았습니다.”

“벌써 조사하신...?”

“그래서 서비스입니다. 성과도 없이 돈을 받기가 꺼려져서.”

슥-

탐정은 조사했다는 증거물로 짐작되는 서류를 내게 보여줬다.

「검색결과: 0건」

“아...”

“다음에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또 찾아주십시오.”

“네. 생기면 꼭 올게요.”

짤랑!

약속한 의뢰비를 내고 탐정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미치겠네.’

수영의 황제 남해수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의 주인공 안질리나 치맥이 된 김은정처럼.

남해수 씨도 ‘다른 인간’이 되었다는 의미!

“허허... 돌고래가 더 쉽겠는걸?”

계획을 싹 수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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