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60화 (61/232)
  • 060화

    ‘생각보다 쉽네.’

    국외로 추방당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걱정했다.

    그러나 출산율 세계 꼴찌, 자살률 세계 1위로 생산인구에 적신호가 들어온 나라 ‘대한민국’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줬으니!

    대한민국의 언어까지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나는 주민등록증을 금방 취득할 수 있었다.

    “자, 그러면...”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려면 돈이 꼭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준비물인 주민등록증은 확보.

    대한민국 정부에서 정착자금이라면서 챙겨준 현실성 없는 푼돈이 나의 사업자금이었다.

    ‘조금 아쉽네.’

    역사책을 통해서 대략적인 세계의 흐름을 아는 내가 돈을 벌 방법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전쟁, 재난, 기후, 문화...

    여기에 더해, 국경선과 해안선이 바뀌면서 발견되는 유적과 보물의 대략적인 위치도 알고 있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남해수 씨는 안 찾고 보물을 찾으러 떠나고 있었다.

    수영복, 물안경, 나침판, 구형 스마트폰, 손전등, 비상식량, 가방...

    나라에서 준 푼돈을 탈탈 털어서 원정 준비를 한 후에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

    “모래사장...?”

    내가 너무 안일했음을 뒤늦게 자각했다.

    ‘주변 풍경이 너무 다르잖아!’

    아직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박물관도 없었고, 나중에 박물관이 들어설 해변은 들어가지 못하게 철조망으로 막혀 있었다.

    이대로 포기?

    당연히 아니다.

    “전설의 검이 아쉽네.”

    무엇이든 푸딩처럼 베어버리는 그 검이라면 철조망도 간단히 철거할 수 있을 텐데...

    개구멍 같은 빈틈을 찾기 위해 철조망을 따라서 걷던 내 시야에 건설현장이 보였다.

    초소를 짓는 걸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웃차!”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나는 긴 철봉을 어깨에 짊어졌다.

    ‘잠깐 빌릴게요.’

    휙~!

    여러 공구와 비상식량이 든 가방부터 철조망 반대편으로 던져서 넘긴 후, 공사장에서 가져온 철봉으로 장대높이뛰기를 시도했다.

    “하압!”

    실패해서 철조망의 가시에 찔리면 생채기로 끝나지 않을 터!

    그러나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의 세계에서 참혹한 전쟁을 몸소 경험한 내게 이 정도 난관은 아무것도 아니다.

    탁!

    철봉을 바닥에 찍고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오른 나는 철조망 반대편에 부드럽게 착지!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좋아.”

    이젠 철봉이 없기에 되돌아갈 때가 살짝 걱정됐지만, 그건 유물을 찾은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으리라.

    사락사락.

    해변을 걸으면서 해안선에 우뚝 솟은 암초들을 관찰했다.

    ‘그때는 몰랐지.’

    부모님의 손을 잡고 이곳에 올 때만 해도 혼자가 되는 미래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모래뿐인 이곳에 거대란 박물관이 생긴다.

    “...아! 저기 있네.”

    박물관에서 역사현장답사랍시고 보트를 타고 바위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체험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화강암.

    하지만 저 암초에 부딪혀서 침몰한 배의 유물은 진짜다.

    ‘조금 흥분되네.’

    풍덩!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안경을 쓴 후에 바다로 뛰어들었다.

    * * *

    내가 찾는 유물은 투박하게 생긴 보석함이다.

    침몰한 배는 바로 인양돼서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고, 현재는 해초와 산호 등에 가려진 골동품만 쓰레기처럼 쌓여 있는 상태.

    ‘과거는 과거구나...’

    박물관에 이것들이 전시되어 있을 때는 유물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단순한 해양쓰레기.

    달그락.

    보석함을 찾기 위해 그것들을 헤집으며 옆으로 치웠다.

    ‘어디 있으려나~’

    미래의 고고학자들이 보면 거품을 물면서 내 멱살을 잡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은 물고기들의 보금자리로 쓰이는 쓰레기다.

    “후웁!”

    폐활량이 비정상적으로 좋은 나조차 15번을 왕복할 만큼 긴 시간이 흐르고...

    해가 서서히 떨어지고 어두컴컴해지면서 수색이 힘들어진 상황.

    깔끔히 포기하고 내일을 기약하기로 할 때였다.

    탁.

    쓰레기더미 사이에 파묻힌 금속 상자를 발견했다.

    ‘오오!’

    촤아아-

    그것을 들고 옷을 숨겨둔 해변으로 돌아왔다.

    “끙!”

    잠겨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살아있는 조개처럼 상자의 뚜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탁.

    손으로 상자의 겉면을 닦고 손전등으로 비춰본 결과, 내가 찾고 있던 유물이 확실했다.

    ‘찾았으면 된... 음?’

    가방에 보석상자를 넣고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오싹한 기분이 들어서 뒤를 돌아봤다.

    번뜩.

    양손에 긴 칼을 한 자루씩 든 알몸의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뭔...?”

    내 상식을 벗어난 엽기적인 상황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뚜렷해지는 여자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숨을 삼켰다.

    “미친!”

    여자가 아니었다. 가느다란 체형에 내가 멋대로 착각했을 뿐.

    끼기긱.

    “검귀가 왜?!”

    검귀(劍鬼)

    손발이 없는 팔다리가 칼날처럼 생긴 유인원(類人猿).

    성별을 구별할 생식기와 특징이 없는 몸에 붙은 2쌍의 팔과 1쌍의 다리는 사마귀를 연상시켰고, 이런 몸이랑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얼굴이 그 이질감을 더해줬다.

    “어... 안녕?”

    “......”

    대화는 이번에도 무리.

    마법소년 최강민의 꿈속에서 마주치고 두 번째였다.

    끼기기긱-!

    영혼이 빠진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던 검귀가 팔다리를 비비면서 소름 돋는 소리를 냈다.

    그 직후,

    ‘온다!’

    폭발적으로 속도를 올린 검귀가 칼날처럼 생긴 두 다리로 모래를 가르며 일직선으로 내게 돌격했다.

    사사삭-

    저 괴물의 접근을 허용하면 정육점 고기처럼 순식간에 해체되리라.

    ‘어디로 도망치지?!’

    내가 발렌타인에게 검술을 배운 건 사실이지만, 팔이 4개인 사도류(四刀流)의 괴물은 무리였다.

    심지어 다리도 칼날!

    발차기를 맞으면 내 하반신이 싹둑 잘려나가리라.

    “반칙 같은 새끼!”

    끼기기긱-!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저 소리가 가장 마음에 안 든다.

    탁!

    땅을 박차며 달렸다.

    ‘바다로... 안 돼.’

    팔다리가 칼날처럼 생긴 검귀의 신체로 헤엄치는 모습이 상상되질 않았지만, 만에 하나 가능하다면 꼼짝없이 살해될 테니까.

    게다가 모래는 발이 푹푹 빠져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바다에 입수하기 전에 따라잡히리라.

    남은 방법은?

    달린다.

    또 달린다.

    계속 달린다!

    철조망을 지키고 있는 해안경비초소가 보일 때까지.

    “살려주세요!”

    찰칵!

    나의 간절한 외침을 들은 초소경비병들이 반응을 보였다.

    “무슨 일...”

    “헛! 저건 뭐지...?”

    나를 쫓아오는 검귀를 발견한 그들은 총을 쏘거나 위협할 생각을 못 하고 우왕좌왕했다.

    ‘미치겠네!’

    괴한에게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으면 방아쇠부터 당기는 경찰과 군인만 봐온 나로선 생소한 경험.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나는 해안초소의 계단을 밟고 무작정 올라갔다.

    “헛! 아저씨! 잠깐만요!”

    “여기는 함부로 올라오시면-”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된 그들이 답답해서 소리를 질렀다.

    “살려달라고...!”

    서걱-

    철강을 용접해서 만든 해안초소가 검귀의 칼질 한두 번에 밑동이 수수깡처럼 절단됐다.

    “으아아아?!”

    “무, 무너진다?!”

    편하게 도움을 받으려다가 피해만 더 늘어날 상황!

    이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나도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에서 화살 공격을 받았을 때, 도망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경험의 차이지.’

    이들의 적성이 빠른 대응력을 요구하는 소방관, 경찰, 군인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문제.

    그러나 이해한다고 이 상황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내놔!”

    폭삭 주저앉지 않고 도미노처럼 기우는 해안초소.

    안 떨어지려고 양팔로 막사의 기둥을 붙잡기 바쁜 군인들이 어깨에 멘 총을 빼앗았다.

    총을 쏴본 경험?

    방아쇠를 당기면 되는-

    “이거 왜 안 쏴져?!”

    아무리 힘을 줘도 방아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전장치를 풀어야- 으아악?!”

    “본부! 본부! 빨리- 암구호나 할 때가 아니야! 살려줘...!”

    쨍그랑!

    나는 해안초소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지면에 충돌하기 직전에 창문으로 탈출했다.

    ‘무기! 무기가 필요해!’

    총 쏘는 방법도 나중에 배워둬야겠다고 다짐하며, 근처에 떨어진 야전삽을 들며 외쳤다.

    “기회가 오면 쏴요!”

    “으으...”

    “아으으...”

    탈출에 실패한 군인들의 신음이 잔해 속에서 들렸다.

    나랑 비슷한 또래.

    그들의 평화로운 군 생활을 깬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이게 군인의 역할이고 의무이지 않은가?

    나도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이 나라의 국민이다.

    “덤벼.”

    “......”

    검귀가 잔해를 베어내면서 내게 돌격했다.

    무조건 일직선!

    개성이 뚜렷해서 정말 다행이다.

    서걱-

    바위도 푸딩처럼 절단하는 저 칼날을 쳐낸다는 생각은 단념하고, 무조건 회피다.

    ‘지금!’

    야전삽을 놈의 아름다운 얼굴을 향해 던지면서 바닥을 굴렀다.

    덥석.

    검귀가 사선으로 베어내서 끝이 뾰족한 철봉을 양손으로 쥐고, 철조망 뒤로 숨었다.

    끼기긱!

    얼굴로 날아오는 야전삽을 순식간에 수십 토막을 내버리는 기예를 선보인 검귀.

    우회한다는 쉬운 선택지를 놔두고 철조망을 향해 돌진했다.

    ‘온다!’

    이 괴물은 앞만 보는 일방통행이지만,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탓에 예측이 어렵고 빠르다.

    4개의 팔과 2개의 다리는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고...

    불도저 앞에 선 기분!

    서걱-

    철조망을 솜사탕처럼 베어내는 광경에 헛웃음밖에 안 나왔지만, 그렇다고 실패한 작전은 아니었다.

    “아프지?”

    “......”

    철조망에 듬성듬성 박힌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검귀에 얼굴과 몸을 긁으면서 뒤엉켰다.

    끼긱-

    피부도 철판처럼 단단한 걸까?

    사람이었다면 피투성이가 됐을 텐데, 검귀는 철조망을 베거나 무시하며 계속 움직였다.

    그렇다면,

    “이건 어때?”

    푹!

    창처럼 뾰족한 철봉을 놈의 가슴을 향해 내질렀다.

    “......”

    휘청.

    철조망의 방해로 방어가 늦은 검귀의 가슴에 철봉이 파고들었다.

    “하아?”

    완전히 꿰뚫어서 관통하기는 어렵다고 예상했지만, 피부가 판금 갑옷처럼 찌그러질 줄은 몰랐다.

    생채기 미만 수준?

    나를 쳐다보는 검귀의 눈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제발...!’

    내 기도가 닿은 걸까?

    타앙!

    탕! 탕!

    총성이 고막을 때리기도 전에 반응한 검귀의 팔들이 허공을 베었다.

    툭, 툭, 툭...

    ‘실화냐?’

    10m도 안 되는 짧은 거리에서 쏘아진 총알을 벴다고?

    괴물의 비현실적인 기교에 전의를 상실할 뻔했지만, 전부 막아내지는 못했음을 눈치챘다.

    주르륵...

    총알이 박힌 복부에서 수은 같은 은색의 피가 흘러내렸다.

    “꺼져.”

    푹!

    나는 벌어진 상처에 철봉을 힘껏 쑤셔 넣었다.

    “......”

    서걱-

    검귀는 상처에 박힌 철봉을 베어냈지만, 손이 없어서 몸에 파고든 부분을 처리하지 못했다.

    탕!

    그리고 복부에 이어 관자놀이에 명중한 총알.

    이만한 치명상에도 죽지 않는 검귀가 처음으로 군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헉!”

    “허업!”

    총알이 다 떨어진 군인들의 얼굴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 마음 이해한다. 머리에 총을 맞고도 안 죽는 생명체는 지구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야.”

    끼기긱-?

    푹!

    내게서 처음으로 시선을 뗀 검귀의 관자놀이에도 철봉을 쑤셔줬다.

    “이래도 안 죽냐?”

    “......”

    털썩.

    내 질문에 응답하듯 마침내 쓰러진 괴물은 힘겹게 팔다리를 비비기 시작했다.

    끼, 끼기긱, 끼익...

    그것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미사곡의 바이올린 독주(獨奏)처럼 애절했으나,

    푸욱!

    어울려줄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던 나는 살짝 벌어진 놈의 입에 철봉을 찌르고 목구멍까지 깊숙이 밀어 넣었다.

    “......”

    끼긱- 뚝.

    드디어 검귀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돈 벌기 참 힘드네.”

    “저, 저기요?”

    “누구세요?”

    정신을 반쯤 놓은 군인들의 물음에 나는 솔직하게 대답해줬다.

    “무당입니다.”

    일할 때마다 돈이 없는 거지 같은 업종이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