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화
국내의 체육대학교 인재들이 총집합한 1군 선수들은 2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개최일까지 1군의 자리를 지키면 국가대표로 선발된다.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수영종목만 1군의 대우가 유독 좋은데...
“투자가 많거든.”
장서연 감독님이 내 상태를 점검하면서 그 이유를 가르쳐줬다.
“왜요?”
“수영의 황제로 불리는 남해수 씨가 매년 막대한 후원금을 국제수영연맹에 보내기 때문이지.”
“아하!”
수영의 황제 남해수.
수영선수 중에서 올림픽 메달을 가장 많이 딴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남해수 씨는 연금의 황제라고도 불려.”
“그럴 것 같네요.”
올림픽 메달을 많이 딸수록 연금도 늘어나니까!
정말 부러운 인생이다.
“하지만 이뿐이면 존경보다는 질투를 많이 받았겠지?”
“듣고 보니 그렇네요.”
“남해수 씨는 그 많은 연금과 재산을 후배 양성에 쓰고 있어. 이 호화여객선도 그분의 소유야.”
“와... 진짜 대단한 분이시네요.”
연금을 받으면 꼬박꼬박 저축해서 노후자금으로 쓸 생각뿐인 내가 괜히 부끄러워졌다.
“문수야. 몸의 피로는 다 풀렸어?”
“네.”
애초에 피로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만.
“...진짜 대단한 체력이구나. 보통은 마라톤이 끝나면 며칠 동안 잠만 자는데.”
“선수도요?”
“당연하지! 조금이라도 기록을 단축하려면 체력을 전부 쏟아부어야 하니까.”
선수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마라톤 완주에 걸리는 시간뿐, 힘든 건 똑같다고 한다.
즉,
“마음에 안 드네요.”
휴식할 시간을 충분히 안 주고 또 10km를 헤엄치라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평범한 선수였다면 기록도 제대로 안 나올뿐더러, 마라톤 도중에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요구.
“그러면 연기할까?”
“연기할 수 있어요?”
“못할 건 없지. 앵무새처럼 조작이란 말만 되풀이하는 선수와 감독들만 무시하면 돼.”
“흠... 식사 때마다 듣기 거북하니 그냥 할게요.”
“그래도 괜찮겠어?”
“네.”
“절대로 무리하지 마. 자만하다가 건강을 망치면 나처럼 돼.”
0.1초 차이로 메달을 놓친 전직 국가대표의 조언이었다.
“명심할게요.”
풍덩! 풍덩! 풍덩!
나를 포함한 1군 선수들이 바다에 몸을 담근 채 일렬로 대기했다.
‘나까지 25명이면... 전부 나온 셈이네.’
자유형 100m, 300m 같은 상대적으로 짧은 종목의 수영선수들까지 예외 없이 참가했다.
위이잉~
구명보트에 탄 감독이 확성기로 외쳤다.
“몸이 안 좋은 선수는 객기부리지 말고 지금이라도 말하도록!”
저건 모든 선수에게 하는 충고일 텐데, 굳이 나만 쳐다보며 말하는 심보는 대체...?
내 감독님을 빼고 전부 마음에 안 들었다.
‘두고 보자!’
종목별 2명씩이란 규칙 때문에 전원은 힘들지만, 선수와 감독 중 절반은 짐 싸서 2군으로 떠나게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
“......”
“없는 모양이군. 준비... 출발!”
풍덩! 풍덩! 풍덩!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모든 선수가 섬을 향해 빠르게 헤엄쳤다.
“푸하!”
“푸후!”
시작부터 거리가 크게 벌어지면서 나는 금세 꼴찌가 되었다.
‘괜찮아.’
이미 예상했던 결과니까. 2군의 상위권 선수들도 나보다는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다.
하물며 1군이라면?
적성을 보유한 천재 중에서도 최고만 모아놓았다. 여기에 끝없는 노력과 경쟁, 최고의 지원과 교육까지 곁들여졌으니!
인간의 탈을 쓴 돌고래들이었다.
그러나,
“후...”
“푸후...”
성별이 다른 나랑 경쟁할 필요성을 못 느낀 여성 선수들이 속도를 줄이며 체력을 아끼기 시작했다.
휙~
속도가 처음부터 일정했던 나는 그녀들을 하나둘 추월했다.
‘이상하네.’
하지만 남성 선수들은 거리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처럼 체력이 넘치는 걸까?
다시 2군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걱정이 슬금슬금 올라올 때였다.
위이잉!
멀리서 지켜보던 구명보트가 가까이 접근했다.
“빨리!”
“저기야!”
풍덩! 풍덩!
잠수복을 입고 구명보트에서 대기 중이던 안전요원들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무슨 일이야?’
다급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궁금했지만, 시합 중이란 사실을 상기했다.
찰랑찰랑!
나는 구명보트가 일으킨 거센 파도와 해류를 뚫고 계속 나아갔다.
처음으로 체력이 깎여나간 기분.
“푸하!”
하지만 이 정도로는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 세계에서 ‘해신’으로 추앙받으며 동상까지 세워진 나를 막을 수 없다.
동동.
바다에 표류하다시피 거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남성 선수들이 하나둘 보였다.
“......”
“......”
그들은 내가 추월하는 광경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모하네.’
체력 분배에 실패한 그들은 10km를 완주하지 못하고 구명보트를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구명보트가 못 찾거나 안 오면 꼼짝없이 죽은 목숨!
선수답지 못한 실수다.
촤아-!
“도착...!”
약속한 해수욕장에 도착한 나는 상큼하게 외쳤다.
그곳에 대기 중이던 감독이 나와 초시계를 번갈아 보며,
“사, 사람인가...?”
매우 무례한 질문을 했다.
“기록은요?”
“...중간에 탈진해서 구명보트를 탔다가 내린 건가?”
“그런 짓을 허용할 감독님이 있을까요?”
“나보고 이 터무니없는 기록을 믿으라고?”
“싫으면 관두세요. 그런다고 현실이 바뀌진 않겠지만.”
“건방진...!”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참을 만큼 참았지!’
발끈하는 감독의 눈을 지그시 쳐다보며 되받아쳤다.
“이름 모를 감독님. 방금 발언, 감당하실 수 있으세요? 당신 때문에 제가 다른 나라로 이민 가서 국가대표가 된다고 하면?”
“그, 그런...!”
“못할 것 같나요?”
나라에서 올림픽 금메달과 일개 감독 중에서 누구를 선택할지는 안 봐도 훤하다.
“...강문수 선수.”
“네.”
“제가 실언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감독이 바로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오늘 일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완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던 나는 저자세를 고집했었다.
그러나 1군의 실상과 그들이 받는 과분한 대우를 본 뒤부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메달이 최고네.’
1군은 오직 그것만을 바라보는 인간들의 집합체였다.
친분? 우정? 동료애? 신뢰?
축구나 야구처럼 팀을 이루지 않는 수영은 성별이 같으면 모두가 눈엣가시 같은 경쟁자!
그래서 친해지려는 노력은커녕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위이잉~
내가 도착하고부터 대략 1시간쯤 지났을 때, 구명보트가 하나둘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냈다.
“......”
“......”
구명보트로 이동한 선수들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느릿느릿 모래사장에 내렸다.
그리고 다시 30분쯤 뒤,
“후하!”
“푸아!”
일찌감치 속도를 줄이고 체력 분배에 들어갔던 여성 선수들은 10km를 무사히 완주했다.
그녀들의 안전을 책임진 장서연 감독님도 도착. 내 기록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물론,
“역시 내 사위야!”
이미 예상해서 시큰둥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감독님. 선영이가 화낼 발언을 사람들 보는 앞에서 막 하시면...”
“괜찮아. 괜찮아. 사위 사랑은 장모란 말도 있잖니?”
“어흠!”
지금까지 무당이란 편견에 가려졌던 나는 주목받기 시작했다.
* * *
“과장님. 집에 가서 쉬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나도 그렇고 싶었어.”
한숨을 푹 내쉰 서혜주 과장님은 국제수영연맹이랑 나눈 통화 내용을 설명했다.
“또 약물 타령인가요.”
“네가 너무 심했어. 세계신기록에서 1시간이나 단축하면 누구라도 의심할 거야.”
“그런 약물이 있긴 해요?”
“없지. 선수와 감독들조차 종종 착각하는데, 약물은 몸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속이는 거야. 마취약으로 고통을 못 느낀다고 해서 몸이 건강한 건 아니듯이.”
“아하!”
약물은 일시적으로 몸을 속여서 한계 이상으로 혹사하여 성적을 끌어올리는 방식.
하지만 없는 체력을 만들어낼 순 없기에 약물에도 한계가 있다고...
“평범한 선수는 약물을 써도 너처럼은 안 돼. 피로를 못 느끼는 채로 탈진해서 죽어버릴걸?”
“무섭네요.”
“따끔해도 참아.”
“네.”
꾸욱-
주삿바늘이 내 팔을 찌르고, 피가 소량 빠져나갔다.
“기분 나빠도 참아. 네가 특이해서 그런 거니까.”
“예외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없어. 선수들은 자신의 적성이 아닌 스포츠도 일반인 이상으로 잘하긴 하지만.”
“흠...”
“귀신을 쫓는 무당이랑 수영선수는 연관성을 찾기 힘들지.”
“물귀신을 잡으려면 체력과 수영 실력이 중요하니까요.”
장서연 감독님의 추측이다.
“오! 그럴싸한 논리인걸? 약물 검사 결과는... 예상대로 전부 음성이네. 이래도 안 믿으면 명예 훼손으로 신고해버려.”
“굳이...”
“피해보상금이 제법 되는데?”
“그러면 해야죠!”
“저기...”
뒤편에서 조용히 감시하고 있던 국제수영연맹의 관계자가 우리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부정행위라도 발견하셨나요?”
“그건 아닙니다만...”
서혜주 과장님의 물음에 관계자가 이마를 찡그렸다.
“불법을 방지하고 공정과 상식을 위해 노력하는 연맹에 명예 훼손을 운운하는 건... 저희를 너무 무시하는 처사 아닙니까?”
“없는 사람 취급하라면서요?”
“...이 일로 부담 갖지 말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만족하셨나요?”
“물론입니다. 국제수영연맹은 약물 의혹이 제기됐던 강문수 선수의 기록을 인정합니다. 강문수 선수. 불편을 끼친 점을 사과드립니다.”
“흠... 네.”
관계자의 정중한 사과에 나도 더는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내 기록이 너무 좋아서 생긴 문제니까.
국제수영연맹에 마음의 빚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연맹에서는 올림픽 메달이 유력한 선수를 0군으로 분류하고 다양한 특혜를 줍니다.”
“아하!”
우수한 선수를 다른 나라에 빼앗기지 않기 위한 대책.
“다만... 강문수 선수처럼 메달이 확실한 사례는 처음이라 내부회의가 필요합니다.”
유력(有力)이 아닌 확정(確定)!
내 건강에 문제가 없는 한, 수영종목 자유형 10km 마라톤 금메달은 따놓은 거나 다름없다.
“괜히 부담되네요.”
“강문수 선수에게 최대한 맞추도록 노력할 겁니다. 아! 감독은 당장에라도 교체해드릴 수 있습니다.”
“장서연 감독님은 마음에 듭니다.”
감독보다는 이해심 많은 누나 같아서 좋다. 송선영의 모친이란 점이 유일한 흠이랄까!
“그렇군요... 아! 서혜주 선생님. 황제께서 도착하시면 그때 따로 뵙겠습니다.”
“네.”
국제수영연맹 관계자는 할 말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떠났다.
그리고 나는,
“과장님. 황제가 이 섬에 와요?”
“안 그래도 그 얘기를 네게 하려고 했어.”
“저에게요?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듭니다만...”
“수영의 황제 남해수.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겠지?”
“네.”
최근에 장서연 감독님께 들었다.
황제의 후원 덕분에 수영은 다른 종목의 1군 선수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대우를 받는다고...
호화여객선의 뷔페는 나를 행복한 돼지로 만들었다.
‘오시면 감사하다고 꼭 전해야지!’
기대됐다.
“언제 오세요?”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서 제법 걸릴 거야.”
“헛! 어디가 아프세요?”
훌륭한 위인이 아프다는 소식에 괜히 걱정됐다.
“그건 진단해봐야 알겠지만... 미리 각오해두는 편이 좋을 거야.”
“설마...?”
“궁금하지 않아? 수영의 황제는 어떤 꿈을 꿀까?”
“전혀 안 궁금해요.”
“돌고래로 태어났을 수도...”
“과장님. 그런 불길한 소리는 제발 하지 마세요. 돌고래를 무슨 수로 설득합니까.”
아니길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