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화
“문수, 너. 수영선수가 됐더라?”
“어쩌다 보니...”
내 생계를 책임지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 잘린 후, 적성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무당.
평판과 인식이 나빠서 아예 채용해주질 않으니 어쩌겠는가?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식당 경영자의 관점에서는, 적성이 무당인 젊은이보다 요리사가 훨씬 매력적일 테니까. 다른 직장도 마찬가지고.
“나를 이긴 네가 남에게 지면 자존심 상하니까. 올림픽에서 피메달을 꼭 따.”
“피메달을 참 쉽게 말하네!”
피메달(P-medal).
P의 적성검사기가 등장하면서 올림픽은 재능이 넘쳐나는 초인들의 전쟁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시작된 호기심.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운동 천재는 누구인가?
“어려울 건 없잖아. 올림픽에서 가장 메달을 많이 따면 돼.”
“말은 쉽지!”
피메달은 그해의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딴 선수에게 주는 명예로운 메달!
하지만 자신의 적성이 아닌 종목에서 메달을 따내는 건 불가능해서 국가 차원의 꼼수가 필요하다.
어떻게?
축구, 농구, 야구 같은 단체전 종목에 발을 걸쳐서 참가하는 시늉만 하는 것이다.
“문수야. 피메달을 따면 내가 결혼해줄게. 구미가 당기지?”
“아, 네.”
꿈도 희망도 없는 제안에 의욕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야.”
“왜?”
“반응이 시큰둥해서. 너, 여자 생긴 건 아니지?”
“아닙니다.”
“...너는 거짓말하면 얼굴에 다 티가 나거든? 당장 말해.”
“정말로 없어.”
없다고 말하는 내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좋아. 믿어줄게.”
“야, 송선영. 내가 누구랑 사귀든 말든 뭔 상관이야.”
“말했잖아. 피메달을 따면 결혼해준다고.”
“그걸 말이라고...”
제멋대로인 동갑내기 소녀랑 논리적으로 대화하길 포기했다.
“안 궁금해?”
“뭐가?”
“네가 모델 하라고 했잖아. 말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어...”
갑자기 논리적으로 공격해오네.
“안 궁금해?”
“...정말 궁금합니다. 수영복 모델은 할만해?”
“귀찮게 하는 인간들만 빼면 그럭저럭. 최근에 팬카페도 생겼어.”
“오우! 축하해.”
송선영은 일이 편해서 마음에 든다고 했지만, 그건 모델의 생명인 외모에 자신 있기 때문이다.
적성이 모델인 사람들은?
P의 적성검사는 사람의 주관적인 심미안보다 ‘신체비율’과 ‘정신력’을 높게 본다고 알려져 있다.
즉, 여기에 외모까지 갖춘 송선영은 경쟁력이 있다는 의미.
반면에 나는...
“감독이 잘렸다며?”
“어떻게 알았어?”
“뉴스에 나왔으니까. 그리고 그걸 본 엄마가 빈 감독 자리에 욕심을 내시더라고. 학교가 가까워서 출퇴근하기 편리하다면서.”
“감독이 아니시잖아.”
송선영의 모친은 적성이 수영선수다. 아무리 국가대표란 전적이 있어도 힘들지 않을까.
“너도 선수가 아니잖아?”
“그건... 그렇네.”
“네가 아직 이 바닥의 생태계를 잘 모르는 모양인데, 적성은 신앙이고 종교야. 적성을 초월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피메달이 꼼수 싸움으로 얼룩질 만큼.”
“그러면 나는?”
“그래서 정상이 아닌 감독이 붙은 거잖아?”
“......”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엄마는 잘린 감독이 맡았던 선수의 적성이 수영선수가 아닌 줄 몰랐어.”
“실망하셨겠네.”
“아니. 좋아하셨는데?”
“음?”
“엄마는 이 선수를 맡겠다는 감독이 없어서 취업하기 쉽겠다고 무척 기뻐하셨어.”
“그랬구나!”
차별과 편견이 가득한 현실이 잘 반영된 답안이었다.
딩동♪
“아! 오신 모양이네.”
어느새 소파에 편히 누워서 대화하던 송선영.
그녀는 객실 초인종 소리를 듣자마자 날렵하게 일어서더니 현관문으로 향했다.
“잠깐! 여기는 네 호텔 객실이 아니거든?! 누가 오는데?”
“너의 새로운 감독님.”
“그걸 선수도 아닌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여보세요?”
딸각.
송선영은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객실 문을 활짝 열었다.
“실례합니다.”
차분한 어조로 인사하며 객실로 들어오는 새로운 감독님.
흰색 모자와 선글라스, 비키니 수영복이 훤히 비치는 카디건과 늘씬한 다리를 부각한 핫팬츠가 돋보이는 여성이었다.
‘감독이 맞나...?’
남편이랑 신혼여행을 온 관광객 같은 분위기.
조금 당혹스럽긴 했지만, 인사를 받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문수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강문수 씨. 당신에 대한 칭찬을 귀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전 감독님이...”
“아뇨. 딸아이에게 들었습니다. 오는 내내 지겹도록.”
슥-
선글라스를 벗은 감독님의 얼굴을 본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송선영...?’
그녀보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눈가의 잔주름만 빼고 보면 친언니라고 소개해도 믿어질 지경!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엄마! 그 복장은 대체 뭐야?! 너무 야하잖아!”
“엄마는 선수 시절에 보수적인 감독이 마음에 안 들었거든. 선수랑 빨리 친해지려면...”
“아빠 앞에서나 그렇게 입어!”
“입만 열면 잔소리인 그 아저씨랑은 안 친해져도 돼.”
“빨리 갈아입고 와!”
“선영아. 엄마의 첫 출근을 방해하지 말고 이만 나가주겠니?”
“아, 진짜...!”
만나자마자 싸우는 모녀(母女) 때문에 내 정신이 혼미해졌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감독님이 송선영의 어머니라고...?’
송선영이 그런 뉘앙스로 이야기하긴 했지만, 나를 맡겠다는 ‘정상적인 감독’이 한 명도 없을 줄은 생각지도 못 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호텔 객실의 목욕 가운을 걸치는 선에서 딸이랑 타협한 감독님이 내게 악수를 청했다.
“강문수 씨. 앞으로 잘 부탁해요.”
“편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제가 부담스러워서...”
“그래도 될까?”
“네.”
“고마워! 사실, 나는 딱딱한 관계를 싫어하거든. 잘 부탁해!”
“네. 감독님.”
“어머! 문수도 앞으로 편하게 부르렴. 감독보다는 아주머니... 아! 장모님이라고 불러도 돼.”
“엄마...!”
평화로웠던 내 선수생활이 대격변을 맞이했다.
* * *
나는 연습 경기에서 올림픽 메달을 노릴 수 있는 수준의 유의미한 성적을 낸 선수다.
특히, 지구력이 좋아서 수영종목 자유형 4000m는 출전하기만 해도 메달이 확실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우수한 편.
아직 측정하지 않은 10km 마라톤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도,
(강문수 선수. 유감스럽게도 기존의 감독들은 이미 선수 배정이 끝나서 당신을 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오해하거나 불쾌하셨다면 이해를 바랍니다.)
“네.”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접한 대학교에서도 연락이 왔다.
(새롭게 전담하게 될 장서연 감독은 감독이 아니지만, 국가대표로 활동한 경력이 있습니다. 강문수 선수도 국가대표를 목표로 하는 만큼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겁니다.)
“네.”
(강문수 선수?)
“네.”
(제대로 듣고 계십니까?)
“네.”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그만 말했으면 좋겠다.
(...혹여나 불만이라면 당신의 건강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잦은 실신과 공백기는 선수에게 치명적입니다. 건강에 좀 더 유념해주십시오.)
“네. 유념하겠습니다.”
‘건강 탓이 아닌데...’
여기서 남의 꿈에 들어갔다고 변명하면 ‘무당’이란 편견만 더욱 심해지리라!
그러니 잠자코 듣자.
(애초에 적성이 안 맞았던 강문수 선수를 너무 다그치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괜찮습니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다소 지체됐는데, 자세한 일정은 장서연 감독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네.”
장서연 감독.
전(前) 여자친구의 어머니!
감독과 선수의 편안한 관계를 지향한다고 하셨지만, 만성 소화불량에 걸릴 것 같다.
뚝.
지루한 통화를 마친 나는 외출할 채비를 했다.
‘가볼까.’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의 주인공에게 빙의한 김은정 양이 있는 객실로.
* * *
“정말 미안해요. 바로 찾아가서 감사 인사를 해야 했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김은정 양은 어떤가요?”
“딸아이는... 흑!”
김은정 환자의 모친은 갑자기 눈물을 터트리며 말끝을 흐렸다.
‘감동의 눈물 같지는 않고...’
깨어나긴 했지만, 상태가 썩 좋지 않은 모양이다.
호텔 객실에는 그녀의 부친으로 짐작되는 중년 남성도 있었는데, 그는 무척 진지한 얼굴로 서혜주 과장님이랑 상담 중.
환자가 깨어난 이상, 내 역할은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자고 있지 않다면 김은정 양을 볼 수 있을까요?”
“그건 상관없지만...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어서...”
“괜찮습니다.”
기분 나쁘다고 내 팔다리를 자르지만 않으면 뭐든 괜찮다.
드르륵-
부부용 침대가 있는 큰 방의 여닫이문을 열었다.
‘오우!’
손톱 크기보다 작게 찢어진 종잇조각이 침대를 중심으로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
찌익-
침대에 앉아서 소설책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를 한 장씩 천천히 찢고 분쇄하는 김은정.
보물처럼 양팔로 꽉 끌어안고 있던 과거랑 대조적이었다.
움찔.
초점 없던 그녀의 눈동자가 내 목소리에 반응했다.
“김은정 양. 무사히 깨어나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뭐하러 왔나요? 1년 동안 망상에 빠졌던 저를 비웃으러?”
“그럴 리가요.”
나는 화장대의 간이의자 위에 가져온 책을 올려놨다.
“그건 뭐죠?”
“선물입니다. 작가가 2년 넘게 휴재하는 바람에 당신이 읽지 못한 5권, 완결이죠.”
“...주인공은 마지막에 누구랑 결혼하죠?”
“열린 결말입니다.”
한 남자를 선택할 수 없을 만큼 꼬여버린 관계를 해결하지 못하고 독자의 상상력에 맡겼다.
“조금 위안이 되네요. 원작 주인공의 미래도 저랑 다를 것 없다는 사실에.”
“어쩔 수 없죠.”
모든 남자랑 결혼한다는 전개는?
불가능하다.
왜?
귀족 가문의 혈통이 끊기지 않으려면 주인공이 ‘반드시’ 후계자를 출산해줘야 하니까.
그런데 한 명씩만 낳아줘도 최소 20년이 걸리네?
바로바로 임신이 된다는 보장도 없고, 산후조리까지 고려하면 훨씬 오랜 시간이...
‘미친 짓이지.’
씨가 섞이지 않도록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남편들이나, 갱년기까지 애만 낳는 주인공이나...
모두가 불행한 미래다.
“저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예뻐지고 싶었어요.”
“예뻐지면 남자들이 좋아해서?”
“네.”
부정하지 않겠다.
사회생활에 유리한 예쁘고 잘생긴 외모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본능.
평범한 인간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아무리 예뻐도 주위에 남자가 많은 여자는 안 좋아합니다.”
“하지만 안 예쁘면 남자가 아예 없잖아요?”
“궤변은 적당히 하시죠. 당신이 찬 남자들은 남자가 아닙니까?”
“엄마...”
반박하지 못한 김은정은 자신의 과거를 발설한 모친을 째려봤다.
“내 딸이 인기 많았다고 자랑하려다 보니... 항상 네가 걷어찼지. 키가 작다. 머리숱이 적다. 배가 나왔다. 눈이 작다. 사실이잖니?”
“윽!”
소심한 듯하면서도 딸에게 할 말은 다 하는 어머니!
딩동♪
그때, 수세에 몰린 김은정을 구해주듯 객실 초인종이 울었다.
“어머! 참 빨리 왔네.”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듯 후다닥 현관문으로 달려가는 환자의 모친.
누가 온 걸까?
드르륵-
큰 방의 미닫이문이 열리면서 말끔한 차림의 20대 남성이 꽃다발과 과일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은정아. 몸은 좀... 어?”
“안녕하세요.”
선객인 나랑 눈이 마주친 남자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어... 미, 미안. 남자친구가 있었을 줄은 몰랐네. 깨어나서 정말 다행이야. 그러면 이만...”
“잠깐!”
벌떡!
환자가 다급하게 상체를 일으키며 외쳤다.
“몰래 찾아와서 미안-”
“이 남자는 의사 선생님이 데려온 간호사야! 그리고 내가 남자 보는 눈이 높은 건 알지?”
“아주 잘 알지.”
“얍삽하게 생긴 이 남자가 내 취향으로 보여?”
“아니.”
갑자기 인신공격을 당한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비행기 타고 온 거야?”
“응. 당일표는 못 구해서 시간이 좀 걸렸지만.”
“나를 만나려고?”
“당연하지.”
“...나, 미쳤나 봐. 갑자기 네가 잘생겨 보여.”
“그, 그래?”
스스로 미쳤음을 시인한 환자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간호사 아저씨. 할 말 없으면 이만 나가주세요.”
“아, 네.”
현실 로맨스를 방해하지 않고 군말 없이 빠져줬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해피엔딩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