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51화 (52/232)

051화

진정한 사랑만이 보물을 찾을 수 있다고 했지만, 허점으로 가득한 설정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을 주인공만 했을까?

‘사랑을 모욕하는 거지.’

한 남자, 한 여자만 100% 사랑하는 부부를 무시하는 처사다.

이 당시에 주인공이 미남들에게 주는 사랑을 공평하게 나누면 12%쯤 될까?

음식을 예로 들어보자.

라면도 사랑하고, 짜장면도 사랑하고, 국수도 사랑하고, 스파게티도 사랑하고, 냉면도 사랑하고...

이쯤 되면 면 종류는 전부 좋아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자기에게 친절한 미남이면 다 좋아하는 주인공이 진정한 사랑? 그건 사랑에 대한 모독이지!’

사라락~

하지만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사랑한 수많은 부부가 찾지 못한 오두막을 주인공이 발견했다.

그러니 ‘진실한 사랑’이란 건 헛소문이고, 특정한 조건만 만족하면 누구나 찾을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초콜릿, 케이크, 커피, 수영, 시합, 승자, 남자, 여자.’

이 요소 중에 불필요한 조건도 분명 있었겠지만, 굳이 검증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찾았으면 됐잖아?

“남작님. 원두막 안에 보물이 있을까요?”

“아뇨. 발렌타인 경. 이 주위에 우물이 있을 겁니다. 전설의 검은 그 안에 빠져 있고요.”

원두막 안에는 주인공과 미남들이 ‘부부’를 체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용품이 준비되어 있다.

빨래, 청소, 요리, 육아...

가사노동을 해본 적 없는 귀족 미남들에게 주인공이 시범을 보여주면서 가르쳐주는 에피소드.

미남들이 걸음마를 배우듯 서툴게 가사를 하면서 웃고 떠드는 훈훈한 이야기다.

전설의 검은 덤!

전투를 싫어하는 소설 작가가 그냥 넣은 무기가 내 목표다.

“어머! 정말로 우물이...?”

“얼른 조사하죠.”

“남작님은 이곳에 와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뇨. 제가 와봤다면 온종일 헤매지 않았겠죠.”

“다행이네요.”

“예?”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얼른 살펴보죠.”

깊고 어두컴컴한 우물 밑에 정말로 검으로 추측되는 날붙이가 있었다.

“흠...”

이걸 어떻게 꺼내지?

고민하는 내게 발렌타인 경이 손끝으로 도구를 가리켰다.

“저것을 이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낚싯바늘처럼 생긴 갈고리가 끝에 달린 밧줄이 우물 옆에 친절하게 놓여있었다.

‘이걸 쓰라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네!’

퐁당!

나는 도구를 활용해서 우물 아래에 잠든 보물을 손쉽게 꺼냈다.

그런데...

“정말 아름다운 검이에요...”

“유치한 게 아니고요?”

칼날과 손잡이 사이의 가드(Guard)가 분홍색 하트 모양! 그리고 그 하트 안쪽에 작은 하트 모양의 붉은색 보석이 박혀 있었다.

‘도저히 못 들겠네!’

그래도 일단은 성능부터 확인해보기로 했다.

서걱- 쩌억!

폐허에 널브러진 커다란 바위가 아무런 저항감 없이 푸딩처럼 간단히 절단됐다.

“휘유~♪”

그 결과를 보자마자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검의 날이 면도날처럼 얇은 것도 아닌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절삭력이지 않은가?

판타지는 판타지였다.

“너무 날카로워서 마땅한 검집이 있을지 걱정되네요.”

“그러면 어떻게 하죠?”

“일단, 천으로 칼날을 둘둘 감싼 후에 풀어지지 않도록 끈으로 묶어둘 수밖에 없습니다. 검집은 나중에 실력 좋은 대장장이에게 맞춤 제작하면 될 겁니다.”

“그러면 오두막에서 천이랑 끈을 구해- 어?”

뿅!

내 손에 쥐어져 있던 전설의 검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어디로 사라진 거야?!’

소설 원작에는 이런 얘기가 없었기에 더욱 당혹스러웠다.

아니-

언급이 아예 없었다. 전설의 검은 소설이 완결될 때까지 두 번 다시 등장하지 않으니까.

전설의 검은 주인공이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는 증표로 그 이용 가치가 끝났기 때문이다.

“검이... 사라졌네요.”

“......”

우울해졌다.

“남작님. 너무 괘념치 마세요. 전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잖아요?”

“하아... 힘들게 찾았-”

뿅!

내 한탄이 끝나기도 전에 사라졌던 전설의 검이 다시 등장했다.

“......”

“......”

물리법칙을 무시한 판타지 현상에 나도, 판타지 세계의 원주민도 놀란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어떻게 하셨어요?”

“제가 한 게...”

뿅!

전설의 검을 내 의지로 자유롭게 소환할 수 있음을 눈치챘다.

“검집이 필요 없겠는데요?”

“...그렇군요.”

“아몰랑 남작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전설의 주인이 되셨군요.”

“어... 감사합니다.”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판타지에 얼떨결한 기분.

그래도 빠르게 정신을 수습한 나는 발렌타인 경에게 말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만 여기서 나가죠. 밖에서 우리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네.”

우리는 소설 작가의 욕망과 취향이 집약된 오두막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밖으로 향했다.

사라락~

그런데 다시 등장한 오두막!

다른 오두막이란 의심도 잠깐 했지만, 우물 옆에 버려둔 갈고리의 위치까지 똑같았다.

즉, 제자리걸음을 한 셈.

“...이상하네요.”

“...다시 가보죠.”

사라락~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도 오두막으로 되돌아왔다.

달리고, 중간에 방향을 틀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무슨 짓을 해도 결국에는 오두막이 보였다.

“남작님. 갇힌 것 같습니다.”

“이건... 예상 밖이네요.”

“탈출할 방법이 없을까요?”

“들어온 길로 나가는 방법이 있겠죠. 그 방법을 모를 뿐.”

“남작님. 제 사견입니다만, 아직 조사해보지 않은 집에 숨겨진 단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좋아요. 가보죠.”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던 나는 발렌타인 경의 의견을 따랐다.

* * *

건장한 성인 남성 10명과 주인공을 수용하고도 남을 커다란 원두막.

그 내부는 엉망이었다.

“바닥에 먼지가 쌓였군요. 설거지도 되어있지 않고.”

잠겨 있지 않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끔찍한 내부 환경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바로 조사할까요?”

“2층을 부탁합니다. 저는 1층을 살펴보겠습니다.”

“네. 남작님.”

이곳에 탈출의 단서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간단히 포기할 순 없잖은가?

부엌, 욕조, 침실, 창고...

먼지가 쌓일 만큼 장시간 버려진 집이라고 보기에는 무리한 설정이 곳곳에 보였다.

특히,

“술은 안 썩는다고 쳐도, 생고기와 채소는 심하잖아!”

내 목소리를 들을 리 없는 이 세계의 창조자에게 핀잔을 주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꼬르륵.

“...죄송합니다.”

현실성보다 주인공의 생존과 낭만을 중요하게 생각한 작가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공복을 달래주기 위해 창고에서 먹거리들을 넉넉하게 챙긴 후, 부엌으로 향했다.

‘살려면 어쩔 수 없지.’

청결하지 않은 손으로 음식물을 집어 먹을 게 아니라면 설거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우물에서 물을 떠오고...

달그락달그락.

정체를 알 수 없는 세제로 식기를 닦았다.

“어머! 제가 하겠습니다!”

조사를 마치고 2층에서 내려오던 발렌타인 경이 나를 발견하고는 설거지를 돕기 위해 달려왔다.

“거의 끝나갑니다. 발렌타인 경은 식탁만 닦아주십시오.”

“...네.”

굳게 닫힌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키고, 먼지 때문에 도저히 앉을 수 없는 의자도 청소했다.

그 뒤에는?

“아... 아몰랑 남작님은 요리도 할 줄 아시나요?”

“아주 조금요. 발렌타인 경이 자신 있으면 양보...”

“아니요. 저는 수프에 아무거나 막 넣고 간을 맞추는 정도밖에 할 줄 모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푹 숙이는 발렌타인 경.

나는 당근을 썰며 말했다.

“요리를 못할 수도 있죠. 대신에 발렌타인 경은 검술이 뛰어나지 않습니까? 그러니 부끄러워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오늘은 좀 이상하네요.”

“쉬고 있어요.”

“......”

나는 뒤통수에 닿는 그녀의 시선을 느끼며, 혼자 살기 위해 억지로 터득한 요리 실력을 발휘했다.

‘이렇게 쓰일 줄이야.’

식당에 취업하려고 칼질 등을 연습하고, 다양한 조미료와 조리법을 암기했다.

그때랑 차이라면?

부엌에 수도꼭지가 없고 불을 피울 수 없어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불편함이 약간 있었다.

탁!

“드세요. 싱거우면 말하고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창고에 커피콩도 있었지만, 귀찮아서 넘어가고 술통에서 맥주와 포도주만 꺼내서 가져왔다.

콸콸!

두 잔을 가득 채운 후에 발렌타인 경에게 제안했다.

“건배할까요?”

“네.”

“무사히 탈출하길 빌며! 건배!”

“건배. 남작님을 위해.”

짠!

나는 수영 감독님이 소고기를 사준 날에 배운 건배가 좋다.

액체가 담긴 투명한 유리잔이 맞닿으며 영롱한 소리가 날 때, 영혼이 통하는 것 같다고 할까?

지금도 그렇다.

“발렌타인 경. 저를 믿고 따라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저야말로... 남작님을 모실 수 있어서 기쁩니다.”

“그런데 오늘은 과음해도 돼요?”

“여긴 안전해서 괜찮습니다.”

짠!

우리는 은은한 분위기 속에서 술을 즐겼다.

* * *

“끄응... 응? 뭐지?”

정신이 든 나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묵직한 무언가에 결박되어 그럴 수 없었다.

감긴 눈을 슬그머니 떠보니...

“새근새근.”

“......”

발렌타인 경이 팔다리를 내 가슴과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자세로 옆에서 자고 있었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내 기억으로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맥주와 포도주를 섞어 마신 탓에 금방 취해버린 나는 먼저 침대로 향했으니까.

즉, 내가 잠든 사이에 그녀가 멋대로 옆에 누운 것이다.

“......”

송선영이 자살하지 못하도록 집에 초대해서 같이 자긴 했다.

하지만 그때는 침대를 그녀에게 양보하고 나는 바닥에서 잤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았는데...

두근두근!

지금은 심장에 살짝 무리가 왔다.

“...일어나셨나요?”

“어? 안 자고 있었어요?”

깊이 잠든 줄 알았던 발렌타인 경이 눈을 떴다. 하지만 나처럼 졸린 눈이 아닌 밝고 뚜렷한 시선.

“잤습니다.”

일찍 깨어난 후에 눈을 감고 명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호위 중이었습니다.”

“아하!”

“...제가 불편하셨나요?”

“그럴 리가요. 눈을 뜨자마자 코 닿는 거리에 아름다운 숙녀가 있어서 놀랐을 뿐입니다.”

“...남작님.”

“네.”

“저는 전설을 믿습니다.”

“그건- 읍?!”

발렌타인 경에게 입술을 기습당한 나는 잠이 확 달아났다.

* * *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고 침실을 나선 나는 1층 부엌에서 들려오는 남정네들의 소리에 놀랐다.

“좋은 아침입니다! 남작님!”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더 늦게 오셔도 되는데...”

발렌타인 경의 종자와 수행원들이 내가 만들고 남은 요리를 먹으면서 아침 인사를 건냈다.

이 오두막을 못 찾도록 방해하던 판타지가 사라진 걸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표정들이 너무 음흉한걸. 뭘 상상하는 건가요?”

“흐흐...”

“후후...”

그들은 하나같이 음침한 눈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다 알면서 뭘 묻냐는 듯이.

그때,

“남작님. 이들에게 우리의 수색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뒤따라 계단을 내려온 발렌타인 경이 옳은 말을 했다.

“그렇지. 주목! 잘 보도록!”

뿅!

나는 전설의 검을 소환해서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번쩍 들었다.

“헉! 전설의 검입니까?!”

“그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오! 정말 축하드립니다!”

뿅!

검의 소환을 해제한 나는 씨익 웃으며 그들에게 회답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전설의 검을 찾아서 축하한다는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내 기분 탓이겠지?

“아몰랑 남작님. 앉으세요. 따뜻한 수프를 드시면 놀란 속이 가라앉으실 겁니다.”

“네.”

“다른 계획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소설 작가가 주인공을 위해 숨겨둔 보물이 더 있지만, 실용성이 없어서 원정을 떠날 생각은 없다.

고대 여왕의 거울, 인어의 반지, 마녀의 목걸이, 여신의 귀걸이...

전쟁에 도움이 안 된다.

“그러면 바로 돌아가나요?”

“물론입니다. 지금쯤이면 소맥 공작님이 저를 애타게 찾고 계실 테니까요.”

주인공의 결혼식이 보름밖에 안 남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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