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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50화 (51/232)
  • 050화

    [3장-6절] 똑같이 해봅시다!

    목적을 달성한 나와 발렌타인 경은 소맥 공작령으로 귀환했다.

    “오! 아몰랑 남작의 무사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

    “공작님께서도 일이 잘 풀리신 모양이군요.”

    팔 벌려 나를 환대해주는 공작의 밝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암! 아주 잘 풀렸지!”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이 모든 것을 꾸민 남작도 다 아는 건 아닌 모양이야?”

    “신(神)이 아니니까요.”

    “내게는 다 알지만 확인하고 싶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하, 하...”

    틀린 말은 아니다.

    “왕자가 결혼을 강행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전국이 혼란에 빠졌네. 안질리나 치맥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척하다니. 쯧쯧.”

    그랬다.

    정실(正室)이 아닌 첩실.

    왕위계승권이 없는 자식을 낳는 빈껍데기 아내.

    그래서 자존감이 강한 고위귀족 영애들은 무조건 꺼리는 자리였다.

    왕자는 그런 첩실을 제안할 만큼 안질리나 치맥에게 집착하지 않는 척했지만, 실상은 정반대.

    거래를 위한 포석이었다.

    “여태 망설이던 치맥 백작은 첩이 아닌 왕자비로 딸을 격상해주는 조건으로 혼사를 승낙했다는군.”

    “잘됐네요.”

    “아몰랑 남작의 예상을 벗어나길 은근히 기대했는데... 일말의 변수도 없이 현실이 되었어.”

    소맥 공작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투덜댔다.

    “먼저 보낸 친구는 잘 지내나요?”

    “사막왕국의 어린 왕족이라면 동생들이랑 얌전히 있지.”

    “잘 돌봐주세요.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돌려받으실 테니까요.”

    “...남작. 그가 정말로 사막왕국의 다음 왕이 되는가?”

    “됩니다. 그의 존재가 일찍 발각되지만 않는다면, 사막왕국의 내전이 끝나는 2년 안에 확실히.”

    “흠. 입단속하지.”

    소맥 공작령에 귀환하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집무실로 끌려가서 안심시켜줘야만 했다.

    ‘불안하겠지.’

    왕(王)이 된다는 것은 반역자가 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패하면 가문의 몰락!

    나의 예언만 믿고 충동적으로 시작했기에 좋든 싫든 무조건 의지할 수밖에 없다.

    “남작. 제국이 언제 선전포고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결혼식 전에는 합니다.”

    “흠. 전쟁 준비 외에 할 일이 있다면 기탄없이 말해보게.”

    “없습니다. 제국을 상대해야 하는 일입니다. 다른 일에 정신을 쏟을 여유가 있어선 안 됩니다.”

    “단시간에 끝나지 않는 전쟁인 모양이군...”

    내 말을 곡해한 공작의 표정이 긴장으로 바짝 굳었다.

    ‘정말로 할 일이 없는데?’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의 내용 99%가 주인공의 연애다.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아!

    “공작님.”

    “뭐가 필요하지?”

    “발렌타인 경을 며칠만 더 빌려주십시오.”

    “굳이 부탁할 필요 없네. 발렌타인 경은 앞으로 아몰랑 남작의 전속기사니까. 명색이 남작인데, 수행하는 기사가 한 명도 없으면 체면이 안 서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디를 또 갈 셈인가?”

    “멀리는 안 갑니다. 확인하고 싶은 보물이 있거든요.”

    “보물...?”

    공작이 황당하다는 시선으로 내 눈을 쳐다봤다.

    “안질리나 치맥이 가져가지 않았다면 있을 겁니다.”

    “중요한 보물인가?”

    “검입니다.”

    “...설마, 진정한 사랑으로만 찾을 수 있다는 전설의 검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 검이 맞습니다.”

    “이건 남작이라도 불가능해! 내가 그 검을 찾지 못해서 아내에게 얼마나 구박받은 줄 아는가? 나뿐만이 아니야. 소맥 영지의 남자라면 대부분 겪은 비화지!”

    “저런...”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나조차 공감되는 슬픈 사연이었다.

    “아니면 그만큼 남작의 사랑에 확신이 있다는 뜻인가?”

    “그럴 리가요. 장소만 알면 미신 따위 알 바 아니죠.”

    “허허! 미신이라...”

    “왜 웃으세요?”

    “한 번 찾아보게. 나는 여기서 남작이 실패할 날을 고대하지.”

    “아, 네.”

    땅주인에게 본때를 보여주자고 다짐했다.

    * * *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미남들에게 둘러싸인 채 소풍을 떠나는 발랄한 이야기도 종종 나왔다.

    꽃밭, 해변, 호수, 별장...

    반복을 싫어했던 작가는 장소를 매번 바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장소만 바뀌는 똑같은 소풍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걸까?

    작가는 기존이랑 차별된 소재를 담은 소풍을 고안해냈다.

    “아몰랑 남작님은 그 검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발렌타인 경도 공작님이랑 똑같은 질문을 하네요. 제가 못 찾을 것 같은가요?”

    “네. 다른 여자는 없다고 결백을 주장하시던 아버지는 그 검을 찾지 못해서 어머니께 3년 동안 시달리셨습니다.”

    “저런...”

    슬픈 사연이 너무 많은 동네다.

    ‘하지만 나는 다르지.’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소풍 장소를 자세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여기는 어떤 요리를 잘하고, 어떤 전설이 있고, 어떤 풍경이 있고, 어떤 소문이 떠돌고, 어떤...

    그건 내가 찾는 전설의 검이 숨겨진 장소도 예외는 아니다.

    ‘소맥 영지의 항구도시 남서쪽에 강이 흐르고,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넓은 평야가 나오는데, 아직 개간하지 않은 땅에 오래된 폐허와 원두막이 있다고 했지.’

    보물이 숨겨진 원두막의 대략적인 위치를 예측한 나는 발렌타인 경에게 말했다.

    “발렌타인 경. 지금부터 같이 원두막을 찾아보죠. 성인 10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큰 원두막이라서 찾기 쉬울 겁니다.”

    “없는 것 같은데요.”

    황금빛 밀밭이 펼쳐진 지평선에는 장애물 하나 없이 평평했다.

    “반드시 있습니다.”

    “...남작님께서 확신하시는 만큼 열심히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발렌타인 경. 수색 결과에 상관없이 해가 떨어지면 여기서 만나죠.”

    “네. 남작님.”

    그래서 나와 발레타인 경, 그녀의 종자와 수행원까지 총 8명이 흩어져서 수색해본 결과...

    ‘어째서 없는 거야?!’

    환자가 보물을 챙겼더라도 ‘보물이 숨겨진 장소’는 고스란히 남아있어야 정상이니까.

    하지만 성인 10명은커녕 1명이라도 들어갈 작은 원두막조차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남작님. 내일 해가 뜨면 좀 더 넓은 범위를 수색해보겠습니다.”

    “...아니요. 제가 조금 오만했던 것 같네요.”

    “포기하실 건가요?”

    “아뇨. 보물이 숨겨진 원두막으로 향하는 경로가 있어요. 내일은 그것을 충실히 따라볼 예정입니다.”

    원작 소설의 소풍을 똑같이 재현해보기로 했다.

    * * *

    “아몰랑 남작님. 보물을 찾고 계신 건가요?”

    “네. 열심히 찾는 중입니다.”

    “도시에서 사 온 초콜릿 케이크와 따뜻한 커피를 음미하면서요?”

    “......”

    발렌타인 경의 지적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날씨가 좋군요.”

    “잠이 솔솔 옵니다.”

    “흐음~ 커피 향이...”

    종자와 수행원들도 우리 옆에 돗자리 깔고 동참하는 중이다.

    ‘대충 비슷하군?’

    이곳에서 유일한 여성인 발렌타인 경이 안질리나 치맥을 맡고, 그녀 외에는 주인공의 남자 역할!

    남자들의 외모와 신분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 났지만, 성별의 균형은 맞췄으니 넘어가자.

    다음은?

    “지금부터 발렌타인 경을 제외하고 옷을 벗는다. 아! 속옷은 심의에 걸리니 절대 벗지 말고.”

    “심의요?”

    “그런 게 있습니다.”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는 전체연령이었던 까닭에 미남들의 옷을 전부 벗기지는 못했다.

    그리고 세상 밖으로 드러난 남자들의 근육질 몸매!

    ‘와...’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얼굴은 ‘주인공의 남자’들이 훨씬 낫지만, 얼굴 아래는 이들이 더 남자답다고...

    나만 빼고!

    “남작님. 물속에서 오두막을 찾을 생각이신가요?”

    내 지시로, 강가 옆의 평평한 바위 위에 앉은 발렌타인 경이 도도하게 흐르는 강을 보며 물었다.

    열심히 눈알을 굴리며 품평하기 바빴던 주인공이랑 달리, 남자들의 몸에 관심 없는 태도.

    그래도 이 정도로 넘어가자.

    “지금부터 남자들끼리 수영시합을 할 겁니다.”

    “좀 그렇네요. 여자라는 이유로 저만 시합에서 제외하신 것은 불공정한 처사입니다.”

    “어...”

    뭐라고 설명하지?!

    “하지만 남작님께서 결정한 사안이니 더는 묻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설 원작에서는 제국의 바다에서 자란 까닭에 수영을 잘했던 피마앙 남작이 모두를 도발한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남자들은 그 도발에 넘어가서 수영시합을 하게 되는데...

    “이 시합에서 이긴 남자는 발렌타인 경이랑 단둘이 산책할 수 있는 권리를 얻습니다.”

    “......”

    “......”

    남자들은 상관인 발렌타인 경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걸 눈치챈 그녀는,

    “아몰랑 남작님의 지시입니다. 의문을 품지 마십시오. 그리고 기사라면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것이 모시는 분의 명예를 훼손하게 될지라도.”

    “네!”

    “네!”

    수영시합의 세세한 규칙도 소설 원작을 준수했다.

    “출발.”

    풍덩! 풍덩! 풍덩...!

    강기슭에서 출발한 우리는 흘러내리는 강물의 저항을 견디면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질 수 없지!’

    남자 중에서 몸매는 꼴찌지만, 수영은 근육량과 체형만으로 결정되는 스포츠가 아니다.

    첨벙첨벙!

    기술과 체력에 자신 있었던 나는 다른 이들은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헤엄쳤다.

    그리고 마침내,

    촤아-!

    “푸하!”

    발렌타인 경이 보이는 물가로 올라온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없네?’

    그녀의 곁에 내가 첫 번째로 도달한 모양이다.

    “...아몰랑 남작님. 남자답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패기를 보여주신 멋진 대결이었습니다.”

    “고마워요, 발렌타인 경.”

    내 검술 실력이 수영의 절반만 돼도 좋을 텐데.

    나는 몸의 물기를 말리면서 나머지 인원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나를 봐주다가 늦은 거라면 대단히 자존심 상할 것 같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이윽코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촤아! 촤아!

    “헉헉!”

    “헉! 헉!”

    완전히 녹초가 된 남자들이 강가로 올라오자마자 드러누웠다.

    “흠. 힘들었던 모양이네요.”

    이들보다 몸이 안 좋은 주인공의 남자들도 무난하게 해냈는데?

    엄살이 틀림없다.

    “힘든 게 당연합니다. 최근에 비가 와서 강물이 범람했으니까요. 사망자가 안 나온 게 다행입니다.”

    “그렇다면야...”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범하게 넘어가는 척했지만, 마음속으로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건 진즉 말해줬어야지!’

    나는 이 동네의 원주민도 아니고 이 강도 처음 보니까. 평소에도 이 정도의 물살인 줄 알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사망자가 안 나와서 정말 다행이다.

    “아몰랑 남작님의 우승에 이견 있는 자가 있는가?”

    “없습니다.”

    “없습니다.”

    휴식을 취하는 종자와 기사들이 입을 모아 패배를 선언했다.

    “대결의 정당한 승자인 남작님. 에스코트도 해주시나요?”

    “서툴긴 하지만.”

    벗어둔 옷을 입은 나는 발렌타인 경에게 손을 뻗었다.

    슥.

    내가 내민 손바닥 위에 살포시, 굳은살로 딱딱한 자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올리는 그녀.

    “가실까요?”

    “어디든지요...”

    이 뒤에는 아무런 계획도 없다.

    산책 도중에 오두막을 발견하지 못하면 깔끔히 포기!

    하지만 이미 한 번 수색한 장소이기 때문에 기대하진 않았다.

    “......”

    “......”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묵묵히 강가를 따라 걸었다.

    사라락~

    보물을 찾지 못해서 실망한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다.

    “남작님!”

    “예?”

    “앞쪽에...!”

    “앞에 뭐가- 아!”

    바람에 물안개가 걷히듯 경치가 바뀌면서 오두막이 출현했다.

    “진실한 사랑... 그 전설이 사실이었다니...”

    “그러게요. 정말로 보물이 이곳에 숨겨져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

    “빨리 가보죠.”

    우리는 폐허 한복판에 세워진 오두막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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