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49화 (50/232)

049화

내가 주로 읽었던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 동료들처럼.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 주인공의 남자들도 특기와 역할이 하나씩 있다.

미남A는 주인공을 지키고, 미남B는 자금을 대고, 미남C는 잡일을 하고, 미남D는 권력을 쓰고, 미남E는 인맥을 빌려주고...

그들의 상호보완을 통해 ‘안질리나 치맥’은 실패와 포기를 모르는 완벽한 인간이 된다.

“아몰랑 남작님. 제가 할 일이 뭡니까?”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보육원 동생들을 돌보는 것.”

“동생들을 돌보는 일은 늘 제가 해오던 겁니다.”

“빚이라고 생각되면 나중에 왕이 된 후에 갚아.”

“...알겠습니다.”

훗날, 사막왕국의 왕이 되는 소년의 역할은 주인공의 변호사.

그녀가 신경 쓰지 못한 미남들이 섭섭해하지 않도록 대신 챙겨주는 중요한 일을 한다.

어떻게?

예를 들어, 주인공이 새로운 미남을 데려오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소년이 대신 설명한다.

당사자(주인공)가 설명하면 구차한 변명이지만, 제삼자가 변호하면 객관적인 사실처럼 들리니까.

‘하지만 그것도 끝이지.’

주인공은 앞으로 새로운 미남을 늘릴 때마다 변명과 뻔뻔한 태도로 버틸 수밖에 없다.

“발렌타인 경. 이들이 소맥 공작령에 무사히 정착할 수 있도록 조치해주세요. 제가 공작님께 보낼 편지도 함께.”

“네. 바로 이들을 수송할 마차와 호위할 용병들을 구하겠습니다.”

작업은 신속하게!

주인공이 이변을 눈치채기 전에 소맥 공작령으로 보내야 한다.

‘자, 이제...’

사막왕국의 내란이 끝날 때까지 신경 쓸 필요 없는 소년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적진(敵陣)이나 다름없는 치맥 백작령에 온 원래의 목적을 향해 가보기로 했다.

“술집으로.”

왕자를 도발해보자.

* * *

주인공의 자태를 본 미남K는 사랑에 빠졌다더라!

...라는 똑같은 전개를 미남의 이름과 외모만 바꿔서 반복하면 독자들도 질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의 작가도 미남들이 주인공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다양하게 설정했는데...

호위기사는 가신의 아들.

약혼자는 태중 혼약.

황제는 어린 시절의 추억.

소년은 보육원 봉사활동.

...왕자는?

평민으로 위장하고 여행하다가 곤란한 상황에 빠졌을 때, 주인공의 도움을 받았다.

‘환자가 원작의 주인공 흉내를 잘했기를.’

나는 왕자가 애용하는 술집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 * *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서민 체험을 하듯이, 누가 봐도 귀족인 왕자도 평민 행세를 했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서민 체험 도중에 저지르는 몰상식한 실수를 왕자도 하게 되는데...

“발렌타인 경. 이 나라의 후계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만나본 적이 없어서 들리는 소문으로 판단하자면, 다방면으로 뛰어나고 영애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소설 작가가 ‘왕자’의 인물 설정으로 못을 박아뒀으니까.

다만,

“이 왕자는 금전 감각이 심각하게 엉터리입니다. 그리고 사람 보는 눈이 없죠.”

이 또한 사실인데, 왕자와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는 에피소드를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보육원에 가는 길에 아이들에게 줄 빵을 사러 빵집에 들른 주인공 ‘안질리나 치맥’은 이상한 손님을 보게 되는데...

그 잘생긴 청년은 빵값의 500배 가치가 있는 금화를 내면서 거스름돈을 안 받겠다는 것 아닌가?

“흠. 서민이 주는 거스름돈을 받기 싫거나, 재산을 과시하기 위해 안 받는 귀족이 종종 있습니다.”

“안질리나 치맥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야.”

왕자는 거스름돈을 안 받으면 빵집 사장이 그만큼 이득을 보기 때문에 좋은 일이 아니냐고 반박했다.

그리고 주인공은 노력한 만큼 돈을 벌어야 가치가 있다는...

상식을 이야기한다.

“금전 감각이 없다는 건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왕자가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근거는 안 보이는데요.”

“그건 그 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평민으로 위장하더라도, 일국의 후계자가 단독으로 여행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래서 멀리서 따라오는 호위기사 외에도 가까이서 동행하는 비슷한 또래의 귀족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문제가 있었군요?”

“맞습니다.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산다면서 왕자에게 돈을 받으면서 조금씩 빼돌렸죠.”

그리고 주인공이 지적하기 전까지 왕자는 ‘신하’의 횡령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의미!

소설 작가는 이 활약으로 일개 귀족의 여식에 지나지 않는 주인공을 돋보이게 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왕자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생기고 말았다.

“정말 심각하군요. 왕자가 최측근의 배신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니...”

“충격적이죠?”

“...아몰랑 남작님.”

“네.”

“당신이 보기에 저는 어떤 기사입니까?”

“저는 왕의 그릇이 아니라서 모릅니다. 하지만 소맥 남작님의 눈을 믿기에 발렌타인 경의 충의(忠義)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겸손하시군요.”

“사실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에 등장하는 미남 중에서 ‘사람 보는 눈’을 가진 능력자는 주인공의 약혼자였던 소맥 남작이 유일하니까.

지구의 평범한 문화시민인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남작님. 왕자가 옵니다.”

밖에서 염탐을 하던 발렌타인 경의 종자가 조용히 가르쳐줬다.

“혼자인가요?”

“브로콜린 남작이 동행 중입니다.”

“...특이한 조합이군요.”

그는 군사왕국의 재상 브로콜린 백작이 자랑하는 아들.

브로콜린 남작은 금전 감각이 부족한 왕자를 돌려서 까는 취미가 있었던 탓에 두 사람의 관계는 결코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사랑의 경쟁자이기도 하고.

그런데 함께 술을 마신다는 건?

‘정상적인 전개가 아니야.’

안질리나 치맥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서로를 헐뜯으며 싸워도 모자랄 판국에...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끼익-

“어이쿠! 어서 오십시오! 나리!”

“오늘은 아주 독한 놈으로 부탁하네. 안주는 늘 먹던 것으로.”

“네! 편한 자리에 앉으시면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술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바텐더에게 빠르게 주문한 후에 구석진 자리에 마주 앉는 두 미남.

그들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엿듣고 싶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은 탓에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혼자 왔다면 주저하지 않고 만났을 텐데, 친하지 않은 경쟁자랑 동행했다는 변수가 마음에 걸렸다.

“발렌타인 경.”

“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여나 시비가 붙으면 나를 구하지 말고 탈출하십시오.”

“그건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공작님께 아몰랑 남작님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목숨이랑 바꿔서라도.”

“흠. 그러면 조금만 어울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탈출만 아니라면 무엇이든지.”

“제 아내가 되어주세요.”

“예?”

“결혼이 간절한 총각은 유부남의 조언을 무시하지 못하니까요.”

주인공에 버금가는 미녀를 쟁취한 선배의 가르침이라면 더욱!

“안 들킬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들은 사람 보는 눈이 없으니까요.”

우리는 빠르게 입을 맞췄다.

* * *

“실례합니다! 두 신사분. 동석해도 되겠습니까? 허락해주시면 첫술은 제가 사겠습니다!”

“사람을 잘못 찾아왔소.”

“다른 사람을 알아보시오.”

왕자와 남작은 바로 거절의 뜻을 내비쳤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넉살스럽게 말했다.

“하하! 조금만 봐주십시오. 제가 워낙 변변찮은 탓에 아내의 눈이 호강할 기회가 별로 없거든요.”

“두 번 말하...”

“우리는... 어...”

주인공을 사모하는 두 미남은 내 아내(가짜)의 외모를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넋을 놔버렸다.

호화로운 왕족, 귀족의 삶을 살면서 아름다운 귀부인, 영애를 숱하게 보아왔을 터.

하지만 이런 누추한 술집에서 마주칠 줄 몰랐던 탓일까? 그들의 두 눈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오빠. 너무 보채지 말아요. 싫다는 오빠들에게 실례잖아요.”

오빠!

가문의 이익을 생각하는 소맥 남작이 약혼녀를 놔두고 한눈팔 정도의 마성을 담은 교성(嬌聲).

내 아내를 연기하는 발렌타인 경이 팔짱을 끼며 살짝 당겼다.

‘...살짝이 맞나?’

하마터면 그녀에게 끌려갈 뻔했다.

“어흠! 앉으십시오.”

“싫다는 건 오해입니다.”

처음에는 거절했던 두 미남은 우리의 합석을 흔쾌히 수락했다.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오빠들.”

“큼!”

“흠흠!”

여자의 변신은 무죄(無罪)라고 했지만, 발렌타인 경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사람이 맞아?’

외모는 그대로인데 표정과 말투가 전혀 다른 사람이다. 이중인격이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

배우 해도 될 것 같다.

“두 분은 부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오빠랑 작년에 결혼했어요. 아직 소식은 없지만.”

발렌타인 경은 애정을 과시하듯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두근두근!

연기인 줄 알면서도 내 심장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정말 부럽군요...”

“잘 어울리십니다...”

쟁쟁한 경쟁자가 너무 많은 연애를 힘겹게 붙잡고 있는 두 미남은 씁쓸한 미소로 우리를 축복해줬다.

분위기만 봐도 여태 홀몸.

그래도 나는 모르는 척하면서 아픈 상처를 후벼팠다!

“두 분은 결혼하셨습니까?”

“아직...”

“못했습니다.”

우리는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그들을 위로했다.

“어머! 힘내세요.”

...그게 끝?

발렌타인 경은 사랑에 목을 매는 두 미남을 응원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는 듯했다.

“하하! 저처럼 평범한 남자도 아름다운 아내를 얻지 않았습니까? 용모가 출중하신 두 신사분께서 못 만날 이유가 없죠.”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쉽지 않소.”

똑같은 여자를 사랑하는 경쟁 관계인 두 남자는 서로를 힐끔 쳐다보며 말을 아꼈다.

그리고 마음이 불편했던 둘은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기사이신 장인어른께 검술 지도를 받던 어느 날, 아내를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진실 속에 거짓말을!

발렌타인 경의 절제된 동작과 손바닥의 굳은살 등은 평범한 여성에게 없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사의 딸이라면?

그녀를 향한 모든 의혹을 불식시키면서, 부부라는 거짓 관계를 교묘하게 감출 수 있다.

“부인. 실례가 되겠지만, 부군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습니까?”

“그건-”

“쉿! 안 됩니다. 저는 부인께 질문드렸습니다.”

이건 사전에 입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에 끼어들려고 했지만, 두 미남은 허락해주지 않았다.

‘어쩌지?’

내 걱정을 비웃듯, 발렌타인 경이 거침없이 답했다.

“재능이 부족해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점. 재능이 넘쳐도 자만하지 않는 점. 하지만 오빠를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어요.”

“그게 뭡니까?”

“정말 궁금하군요.”

“언제부턴가 제 주위에 남자라고는 오빠밖에 안 보이더라고요?”

“......”

“......”

그녀의 대답에 충격받은 두 미남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그러니 어쩌겠어요? 이 오빠랑 결혼할 수밖에.”

“하하!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보다 뛰어난 신사분들이 알아서 양보해준 덕분입니다.”

“......”

“......”

내 말을 조금도 믿지 않는 왕자와 브로콜린 남작.

올바른 청중의 자세다.

“제가 아내만 바라보는 것처럼 그녀도 저만 바라보길 원했습니다.”

“오빠가 이래요. 지금처럼 보채지 않으면 잘생긴 오빠들을 쳐다보지도 못하게 한다니까요?”

“사랑하니까.”

“그러니 결혼해줬죠.”

발렌타인 경이 내 기대 이상으로 잘해줬다.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지?’

탁! 탁!

왕자와 브로콜린 남작은 술잔에 남은 맥주를 쭉 들이켠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배울 점이 많은 유익한 대화였습니다.”

우리는 떠나가는 그들의 앞날을 축복해줬다.

“발렌타인 경. 건배할까요?”

“살짝 과음해서... 물로 해도 괜찮으시다면.”

“당연히 좋죠. 두 총각이 결혼하길 빌며! 건배!”

“건배. 남작님을 위해...”

술집에서 만난 부부에게 자극받은 왕자는 전쟁을 선포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