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45화 (46/232)
  • 045화

    [3장-4절] 이것이 관점의 차이!

    다른 로맨스 판타지 소설도 비슷한지는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남자들’은 개성이 매우 강하다.

    나이, 성격, 신분, 재능...

    주인공에게 집착하고 미남이란 점을 제외하면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적성이 특히 뚜렷하지.’

    주인공이 곤란한 상황에 빠지면 그 분야에 천재적인 미남이 등장해서 공짜로 도와준다는 전개.

    예를 들자면?

    어려운 숙제로 힘들면, 우연히 마주친 잘생기고 똑똑한 남학생이 공짜로 도와주는 식이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약혼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으니!

    “만나서 반갑습니다, 소맥 공작 각하. 그리고 남작님. 저는 치맥 백작령에서 온 강문수라고 합니다.”

    “깡문쑤? 특이한 이름이군.”

    “환영합니다.”

    표범을 연상시키는 날렵한 체형의 중년 남자가 소맥 공작이고, 그 옆의 작은 표범은 주인공의 약혼자이자 후계자인 소맥 남작.

    왕가와 개국공신의 피를 물려받은 소맥 가문은 대대로 애주가이자 타고난 전사란 설정이다.

    ‘별 의미 없었지만.’

    소설이 완결될 때까지 전쟁이 한 번도 없었던 까닭에 소맥 가문의 재능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소맥 남작은 주인공의 약혼자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으로는 부족한 인물처럼 묘사됐다.

    “나를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네.”

    “소원을 이뤘군.”

    “......”

    내 인사를 받아준 귀족 부자(父子)는 나랑 오래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듯했다.

    “떠나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공작님께서 제국의 식민지를 칠 목적으로 맥주를 모으고-”

    벌떡!

    내 발언에 놀란 소맥 공작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너는 누구냐!”

    “강문수입니다.”

    “그 정보를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지? 살아서 여길 나가고 싶다면 당장 고하라!”

    “사람이 아닌 책에서 봤습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책...?”

    “미래가 기록된 책이었습니다.”

    현재까지가 2권 분량.

    앞으로 3권 분량의 미래 정보가 내게 있다!

    ...라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소설로 알 수 있는 미래의 정보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어쩔 수 없지.’

    작가는 주인공을 혼기를 놓친 노처녀로 만들기 싫었던 게 아닐까?

    소설은 아름다운 귀족 소녀 ‘안질리나 치맥’의 일생이 아닌 16살 생일부터 20살 생일까지 4년의 이야기만 다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르의 특성상, 주인공의 연애로 치우쳐져 있어서 굵직한 역사만 대충 알고 있다. 이마저도 주인공의 주요활동무대였던 왕국과 제국의 수도로 제한...

    세계적인 정세는 전혀 모른다.

    “헛소리.”

    “그러면 다른 정보도 드리지요. 소맥 남작님.”

    “뭡니까?”

    “이 여성의 이름을 알고 계실 겁니다. 발렌타인-”

    탕!

    이번에는 아들이 탁자를 내리치며 일어섰다.

    “어떻게 일았지?!”

    “조금 전에 책에서 봤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남작님께서 약혼녀 몰래 만나던 여인이죠.”

    “만난 건 사실이지만, 오해받을 짓은 하지 않았다!”

    “압니다. 저는 미래를 말씀드린 겁니다.”

    “아!”

    주인공의 실수가 없었던 원작 소설의 전개는 이랬다.

    약혼자인 소맥 남작은 바람을 피운 사실이 들통나지만, 아들이 귀했던 공작가에서는 두둔하고...

    이에 화난 주인공이 맞불을 놓으면서 무분별한 미남 수집(연애)의 서막을 알리게 된다.

    ‘이미 글렀지만.’

    먼저 바람을 피우다가 들키면서 명분 없는 파혼이 돼버렸다. 무고한 백성들이 두 가문의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고...

    비난을 안 받는 게 신기하달까?

    ‘정말 이상해.’

    보이지 않는 힘이 환자를 지켜주는 것 같았다.

    “호위기사랑 입맞춤하다가 들킨 안질리나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너도 발렌타인이란 여자를 만나고 있지 않냐고.”

    “그녀에게도 저와 비슷한 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 없군.”

    하지만 쫓아내지 않고 내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는 두 귀족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거의 넘어왔음을.

    내 말을 완전히 믿기까지 한 발자국 정도 남았다.

    “제국은 젊은 황제의 훌륭한 통치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역대 황제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죠.”

    이건 내 주관적인 평가가 아닌 소설 설정이기 때문에 확실하다.

    “...맞다”

    공작도 인정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뛰어난 탓에 귀족들의 불만이 커지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넘쳐나는 제국의 힘을 가만히 썩혀두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거죠.”

    “...그것도 맞다.”

    원작 소설 3권의 줄거리 일부를 요약하면 이렇다.

    불만을 품은 제국의 귀족 대표가 대단한 미남이었는데, 황제를 만나고 나오는 주인공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면서 전쟁을 단념!

    이러니 전쟁이 나겠는가?

    아무튼, 미래를 아는 덕분에 대화의 주도권을 간단히 가져올 수 있었던 나는 여유가 생겼다.

    “공작 각하. 다른 궁금한 점이 있으십니까?”

    이젠 역으로 공작에게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불편한 기색 없이,

    “소맥 가문은 어떻게 되지?”

    “사라집니다.”

    “뭣이라?!”

    탕!

    이러다가 탁자가 부서질 것 같다.

    “약혼녀였던 안질리나 치맥이 공작가의 아이를 낳지 않아서 대가 끊기고 맙니다.”

    “허허...”

    털썩!

    반박할 줄 알았던 소맥 공작은 의외로 순순히 납득하는 태도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왜?

    아버지를 대신해서 소맥 남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깡문쑤, 네 말대로 제국의 힘은 무서운 속도로 커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왕국의 모든 힘을 합쳐서 맞서 싸워야 하지. 다툴 여유가 없다.”

    “그런데 왕자란 놈이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찾아와서 왕국의 힘을 쪼개고 있으니...!”

    소맥 공작이 분통을 터트렸다.

    “나는 치맥 영애를 용서하고 빠르게 결혼할 생각이었다. 과거에 하나였던 두 가문이 다시 힘을 합쳐서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하지만 왕자가 끼어들면서 엉망이 됐다.”

    참 아이러니하다.

    소맥 공작은 제국의 야망에 대비해서 힘을 키우는 중이고, 왕자는 이런 공작의 힘을 견제하기 위해 결혼을 방해하는...

    ‘꼬여도 아주 단단히 꼬였네?’

    내가 굳이 참견하지 않아도 알아서 망하지 않을까!

    웃고 싶다.

    “나는 가문의 수입원 중 하나인 철광석 광산을 치맥 백작가에 넘기는 한이 있더라도 관계를 회복시킬 생각이었다. 이대로면 이 왕국은 멸망하고 말 테니까.”

    “아버지?”

    “하지만 깡문쑤, 네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나라가 존속해도 가문이 사라지면 의미없지.”

    정정한다.

    나의 간섭이 없었다면 원작이랑 비슷한 전개로 흘러갔으리라.

    “제 말을 믿으시나요?”

    “믿어야지. 왕국의 단 하나뿐인 공작인 나조차 간신히 파악한 제국의 정세를 훤히 알고 있는데.”

    믿는 이유가 단순하면서도 너무나 당연했다.

    여기는 중세시대니까!

    인터넷에 접속하면 1초 안에 지구 반대편의 소식까지 세세하게 알 수 있는 현대 지구랑 다르다.

    “다행이네요.”

    “슬슬 듣고 싶군. 미래를 아는 자네가 수많은 왕족과 귀족 중에 하필이면 나를 찾아온 이유를.”

    소맥 공작이 예리한 시선으로 나를 보며 핵심을 짚었다.

    ‘멋지네.’

    골라 먹는 아이스크림처럼 다양한 미남을 추구했던 소설 작가는 비호감이거나 불필요하고 생각되는 개성을 약혼자에게 전부 몰아줬다.

    바람기, 다혈질, 호전성, 전투력...

    그래서 소설 독자들에게 이 남자랑 결혼하기에는 주인공이 너무 아깝다는 인식과 정당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이건 몰랐을걸?

    “소맥 제국.”

    “뭣...?”

    “술을 사랑하는 나라를 만들고 싶지 않으십니까?”

    창조자에게 미움받는 이 미남은 타고난 폭군(暴君)이다.

    * * *

    전쟁은 시대를 막론하고 백성의 삶을 힘들게 한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킨 지도자를 우리는 ‘폭군’이라고 부르는데, 역사학자들은 땅따먹기에 성공한 폭군에게만 다른 칭호를 붙였다.

    대제, 성군, 영웅, 패왕...

    천 명을 죽이면 살인자고, 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다.

    즉,

    ‘폭군이 꼭 나쁜 건 아니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대국적인 시각으로 보면 다르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책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성공한 폭군의 ‘업적’으로 포장해서 역사를 기록하기 때문이다.

    “깡문쑤, 자네는 오늘부터 내 아들의 스승이네.”

    “예?”

    “미래를 아는 자네가 사석에서 눈치 안 보고 훈수하려면 스승이란 직함이 제격이야.”

    “아!”

    그런 깊은 뜻이!

    “그리고 남작으로 봉하지. 영지가 없는 단승귀족이지만, 외부활동에 도움이 될 걸세.”

    “감사합니다!”

    내가 귀족이 되는 날이 오다니!

    “가신들의 반발 때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네. 자네가 무슨 목적으로 나를 찾아왔는지는 모르지만, 출세하고 싶다면 확실한 공적을 세우게.”

    “물론입니다.”

    “정식으로 공표하는 날은 조금 후가 되겠지만, 앞으로 잘 부탁하네. 아몰랑 남작!”

    “아몰랑...”

    부모님이 주신 ‘강’이란 성(姓)이 있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꿈이니까.’

    잠깐 쓰고 버릴 가문 이름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아몰랑의 기원을 아는가?”

    “아뇨.”

    궁금하지 않습니다만?

    “세상의 모든 비밀을 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대현자가 키우던 애완동물의 이름이네.”

    “아, 네.”

    애완동물의 이름이라니...

    모르는 편이 나았다.

    “아몰랑 남작.”

    “네.”

    “내가 치맥 백작가에 심어둔 심복의 말에 의하면 창술에 상당한 소질이 있다더군.”

    “체력이 좋을 뿐입니다.”

    “겸손은 귀족에게 양날의 검과 같지. 명심하게. 다른 귀족이나 평민에게 얕보이지 않으려면 허세도 부릴 줄 알아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저택 뒤편의 연무장으로 가보게. 남작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기사단장이 그 실력을 보고 싶다는군.”

    “...알겠습니다.”

    아무런 공적도 없는 평민의 신분 상승이 마음에 안 들겠지.

    세상에 공짜가 없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소맥을 위해.”

    “소맥을 위해.”

    횃불 대신 술잔을 든 ‘자유의 여신상’ 같은 자세로 외치는 구호!

    소맥 가문 대대로 전해지는 전통적인 예법이라고 한다.

    ‘이런 설정은 소설에 없었는데...’

    그것을 소맥 공작과 함께한 후에 집무실에서 나왔다.

    뒤편이라고 했지?

    이 저택에서 벼락치기로 귀족의 예법을 배우며 이틀을 보냈지만, 워낙 넓어서 여전히 길을 헤맸다.

    “여긴 어디... 음?”

    “하아...”

    소맥 공작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깬 여인이 힘없는 발걸음으로 저택을 나서고 있었다.

    “뜻대로 안 되신 모양이네요.”

    “마음껏 비웃으세요.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대의를 위해 사소한 원한과 유감은 넘어가기로 했다.

    “제가 도와줄 수도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죠?”

    “저는 소맥 남작님을 가르치는 아몰랑 남작입니다.”

    “예?”

    “아주 가까운 사이라고요.”

    “앗! 저를 속였군요?!”

    “약속을 어긴 당신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 그렇네요. 죄송합니다, 아몰랑 남작님.”

    귀족이란 말에 바로 위축된 여인의 태도가 공손해졌다.

    ‘허세도 미덕이지!’

    소맥 공작에게 배운 귀족의 마음가짐을 실천하는 중이다.

    “저는 그 아가씨-”

    “안밀리나 치맥 영애입니다.”

    “......”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아몰랑 남작님.”

    “저는 치맥 영애가 소맥 남작님이랑 이어질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습니다.”

    “정말인가요?!”

    “하지만 치맥 영애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두 가문의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사실이기에.”

    “부디 말씀해주세요. 안밀리나 아가씨는 진심으로 소맥 남작님을 사모하십니다!”

    “치맥 백작의 뜻에 반(反)하게 되더라도?”

    “...아가씨는 소맥 공작부인으로 불리길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남자랑 결혼할 수 있다면 가족도 배신할 수 있다는 의미!

    폭군의 아내로 제격이다.

    “좋은 대답이네요. 저도 소맥 남작님을 설득할 시간이 필요해서 이틀 뒤에 다시 뵙죠.”

    “정말 감사합니다! 아몰랑 남작님!”

    “괜찮습니다.”

    나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위험한 법이지.’

    정신이 번쩍 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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