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화
[3장-1절] 방해하기 싫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스포츠 종목은 크게 2가지 부류로 나뉜다.
자신을 이기는 싸움.
상대를 이기는 싸움.
수영과 마라톤처럼 시간을 측정하는 종목은 ‘어제의 자신’이 세운 기록을 뛰어넘는 것이 목표다.
반면, 축구와 테니스 등은 쓰러트릴 경쟁자가 필요한 종목이기에 직접 만나서 대결해보기 전까지는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
당연히 있다.
“6분 23초?! 말도 안 돼!”
“어떻게 무당이...?”
“저러고도 약물이 아니라고?”
“와! 괴물인가!”
비실비실했던 몸에 근육이 붙으면서 기록이 눈에 띄게 좋아진 나는 빠른 속도로 주목받았다.
기록이 곧 실력이니까!
약물, 허위, 조작, 뇌물 등이 간섭하지 않았다는 뚜렷한 증거만 있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기록이 인정된 덕분이다.
“이 성장세면 국가대표도 꿈이 아니겠는걸!”
“그런가요?”
스슥-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고 있던 나는 흥분한 감독님의 야망에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왜?
‘무당이 올림픽 국가대표라니... 말도 안 되지.’
올림픽 같은 국제경기의 역사를 다 뒤져봐도 없다. 적성이 없는 사람이 국가대표로 출전해서 우수한 성적을 낸 사례는.
송선영에게 배운 덕분에 자신 있긴 했지만, 그걸 고려해도 감독님이 나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했다.
적성이 없는 내 재능의 한계가 곧 드러나리라.
“뭐냐, 그 가벼운 태도는! 농담인 것 같지? 봐라. 이게 저번 올림픽에 참가한 국가대표 기록이니까.”
눈살을 찌푸린 감독님이 정성스럽게 작성된 표를 보여줬다.
그것은 순위표.
순위와 이름 옆에 최고기록이 뚜렷하게 적혀 있었다.
“어... 저랑 별 차이 없네요?”
“맞아!”
“흠...”
나는 순위표를 자세히 살펴봤다.
그중에서도 장거리.
폐활량과 체력의 비중이 높을수록 기록이 잘 나온 까닭이다. 출발할 때의 속도를 마지막까지 유지할 수 있으니까.
“최근에 다른 감독과 선수들이 너를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
“뭔데요?”
“핵잠수함.”
“......”
멀쩡한 사람을 방사능 덩어리 취급하다니?
진짜 실례다.
“4000m를 지치지 않고 완주한 선수는 네가 처음이다.”
감독님이 초시계에 표시된 기록을 내게 보여주며 혀를 찼다.
“칭찬인가요?”
“당연하지.”
“표정은 영 아니신데요.”
내가 약물을 썼다고 의심하는 자들이랑 비슷한 눈빛이었던 탓이다.
“예전에는 그래도 체력의 한계가 보였었는데, 휴가를 다녀온 뒤부터 전혀 안 지치는 것 같아서.”
“그런 것 같네요.”
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긴 했다.
“휴가 중에 뭘 한 거야? 병원에서 검사만 받는다고 하지 않았어? 사실은 초인 수술을 했다거나...”
“감독님….”
“헉! 정말이야?!”
“판타지 영화와 소설을 너무 많이 보셨네요.”
“......”
수술은커녕 그 초인에게 죽을 만큼 얻어맞았다.
꿈이긴 하지만.
“그런데 감독님은 제가 정말로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생각이 아니라 확신이다.”
“단거리가 그 모양인데도요?”
올림픽 수영종목은 자유형 100m, 300m, 1000m, 2000m, 4000m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10km 마라톤이 있다.
과거에는 접영, 배영 등으로 나뉘었지만, 직업혁명 직후부터 선수들의 기량이 미친 듯이 오르면서 통합되어 사라졌다고...
수영의 역사에 관심 없는 탓에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네 말대로 100m, 300m, 1000m는 너보다 빠른 녀석들이 1군에 넘쳐나지.”
“킁.”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2000m와 4000m는 네가 독보적이지.”
“5종목 중에 2종목뿐이잖아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메달은 어차피 따로 계산되는데. 5종목을 전부 잘할 필요는 없어.”
“아...”
“5종목에서 전부 4등을 하는 것보다 1종목에서 3등이라도 차지한 선수가 더 나아.”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자신감이 좀 생기네요.”
“더 가져도 돼. 네 단거리 성적은 2군 중상위권 수준이지만, 괴물 같은 체력 덕분에 장거리는 1군도 가볍게 찍어누르니까.”
“헤에~”
정말로 자신감이 쑥쑥 성장하는 기분이었다.
빈말이 아닌 기록의 숫자를 토대로 한 발언이라서 더욱.
‘내가 국가대표?’
가장 먼저 ‘연금’이 떠올랐다.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해서 메달을 따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서 죽을 때까지 돈이 나오니까.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리고 네 특기는 2종목이 아니라 3종목이다. 10km 마라톤을 빼먹으면 섭섭하지.”
“하지만 저는 10km 기록이 없는데요?”
수영장을 여러 번 왕복하면 될 것 같지만, 10km 마라톤은 실내가 아닌 야외경기다.
수영장 벽 같은 장애물에 가로막히거나 방향을 바꾸는 구간이 없기에 기록을 잴 기회가 여태 없었다.
“없으면 만들어야지. 사실은 이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음?”
“태평양 한복판에서 훈련 중인 1군에서 너를 초청했다.”
“감독님은요?”
“당연히 나도 따라가지. 흐흐.”
음침하게 웃는 감독님은 무척 즐거워 보였다.
“언제 가는데요?”
“5일 뒤.”
“켁! 며칠 안 남았잖아요. 그걸 이제야 말씀해주시면 어떡해요?”
“왜? 그때 만나기로 약속한 여자라도 있어?”
“그건 아니지만... 아니, 여기서 애인 얘기가 왜 나와요?”
“신기하네. 너처럼 실력 좋은 국가대표 후보를 여학생들이 가만히 놔두다니...”
“뭐가 신기해요? 아직 후보로 확정된 것도 아닌데.”
“기록을 보면 알지. 아! 너, 여권은 있어?”
“아뇨.”
“그러면 이 기회에 만들어.”
“돈 없어요.”
“...내가 줄 테니 만들어.”
“네.”
“아니지. 오늘 신청해도 빠듯하겠는걸. 따라와. 당장 만들자. 여권에 넣을 얼굴 사진은?”
“없어요.”
“아이고... 할 일이 태산이군.”
나의 첫 국외여행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 * *
「건강합니다!」
“나도 알아.”
엘몰랑스 병원 출입문에 설치된 건강측정기의 기계음에 친절하게 회답할 만큼 방문에 익숙해졌다.
어느 정도냐?
“강문수 씨. 또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오늘도 서혜주 과장님이?”
“네.”
지나가던 간호사와 의사들이 나를 알아볼 정도.
물론, 이 같은 현상은 내가 자주 방문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7년 동안 식물인간처럼 누워있었던 최강민 환자가 깨어난 사건.
여러 공중파에도 소개된 재벌 2세를 치료한 ‘무당’이란 소문이 야금야금 퍼진 결과다.
‘그래도 다행이지.’
사람들은 유명인의 아들을 치료한 의사가 누구이며, 어떻게 치료했는지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그 덕분에 주목을 최소로 받은 나는 적성이 ‘무당’이란 사실도 자연스럽게 숨길 수 있었다.
무당이 부끄러운가?
그건 아니지만, 유일암 같은 선배들이 조장한 ‘무당’의 색안경을 끼고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싫다.
무당이 아닌 강문수로.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길 원한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어서 와.”
연구실 비밀번호를 가르쳐주면서 신뢰의 뜻을 내비친 서혜주 과장님이 편안한 어조로 환대해줬다.
“오늘도 바쁘시네요.”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아직은 말이지.”
아직은.
의미심장한 발언이었다.
“환자는 어때요?”
“최강민? 지난주랑 비슷하지. 세상의 모든 사람이 너처럼 회복이 빠르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제가 빠른 편인가요?”
“매우. 특이체질이라고 할까. 네가 최강민이었다면 3개월 안에 회복될 거야. 7년 동안 육체가 노화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그런 것도 알 수 있어요?”
“현대의학을 무시하지마. 네가 자는 동안의 신체 변화를 완벽하게 측정했으니까. 너의 2세까지.”
“농담이시죠?!”
“정말인데.”
이건 엄연한 성범죄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잠깐, 여태까지 쭉 미뤄왔던 대답을 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현재 직업에 만족해서요.”
“수영선수?”
“네.”
수영선수 행세를 하면서 1년만 버티자고 생각했었는데, 얼떨결에 실력을 인정받고 국가대표가 될 가능성마저 활짝 열린 상황.
무작정 뛰어드는 것도 아니다.
‘조금만 더.’
가장 최근에 열린 올림픽 수영기록을 살펴본 결과, 자유형 4000m는 나도 세계급 선수였다.
당장 출전해도 은메달!
그만큼 체력과 폐활량이 비정상적으로 뛰어났다.
“의외네. 돈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좋아하죠. 하지만 넘쳐날 만큼 필요하진 않아요. 노후까지 돈 걱정 없이 살 정도면 충분합니다.”
“안타깝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을 쓸 줄 모른다니.”
“...어쩔 수 없죠.”
통장에 있는 돈으로 제대로 된 옷 한 벌조차 구매하지 않았다.
아까우니 참자.
갈등하다가도 매번 이런 식이었기에 돈이 부족하다는 절박함이나 위기의식이 없었다.
“집도 구해야지.”
“나중에 저렴한 임대주택에 들어가려고요.”
국가유공자는 추첨에 가산점이 붙기 때문에 무주택 신혼부부 다음으로 유리하다고...
올림픽에 출전해서 유의미한 성적만 낼 수 있으면 문제 없다.
“차는?”
“운전면허증이 없어요. 앞으로 딸 생각도 없고.”
“결혼은?”
“...올해로 20살입니다. 결혼을 벌써 고민할 나이는 아니잖아요? 여자친구도 없고.”
송선영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살짝 쓰라렸다.
“정말 욕심이 없네. 사회 초년생이라서 그런가?”
“......”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발언에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표정 풀어. 뜻대로 안 풀려서 해본 말이야.”
“네.”
“하지만 이건 알아둬. 모든 의사가 돈을 목적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건 아니야.”
“알죠. 하지만 저는 남의 인생을 걱정하고 도울 만큼 도량이 넓지 않습니다.”
“풋! 친한 동생을 위해 변호사가 됐던 녀석이?”
“...그건 제가 아닙니다.”
“그것도 너야. 네가 준 화학식이 진짜인 것처럼.”
“이미 결정했어요.”
그녀의 설득에도 나는 단호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
“돈이 안 돼요.”
“거짓말. 네가 꿈에서 가져온 이 화학식만 실용화돼도 우리는 부자가 될 수 있어.”
“......”
내가 미래에서 가져온 화학식.
이것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준다는 서혜주 과장님의 주장을 순순히 믿을 수 없었다.
‘고작 꿈인데?’
내가 어젯밤에 읽은 판타지 소설의 세계가 현실로 바뀌었다는 설정만큼이나 허무맹랑했다.
아무튼,
“마녀를 만났어요.”
“마녀?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당연하죠.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어디서 만났는데?”
“꿈에서요. 현실에서도 만난 적이 있고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녀가 나를 찾아올 때마다 했던 말을.
“뭐라고 했는데?”
“자기 일을 방해하지 말라고 경고했어요.”
“방해...?”
“네. 그때 결심했어요. 이게 마지막이라고. 저의 참견 때문에 누군가가 피해받는 짓은 그만두자고요.”
“결심한 건 알겠는데, 너무 뜬금없잖아. 자세히 말해봐.”
“적성이 무당인 사람이 저 말고도 더 있었어요.”
“그 사람이 마녀?”
“네. 이름과 얼굴은 몰라요. 검은색 마법사 복장을 한 젊은 여성이란 것 외에는 아무것도.”
“흐음...”
고민하는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던 서혜주 과장님이 손짓했다.
“왜요?”
“이것만 봐줘. 그러면 더는 보채지 않을게.”
“뭔데요?”
나는 그녀가 가리킨 컴퓨터 모니터를 힐끔 쳐다봤다.
‘환자?’
덥수룩한 수염 때문에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남성이었다.
“3년 동안 저렇게 누워있었어.”
“......”
“원래는 다른 병원에 있었는데, 비슷한 증상이었던 최강민의 소식을 듣고 최근에 옮긴 환자야.”
“...그렇군요.”
“하지만 너도 이미 알 거야. 저 환자는 엘몰랑스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뭐가 세계 최고야? 무당보다 못하는데.”
“......”
“내 얘기는 끝났어.”
나는 모니터에 쥐죽은 듯이 누워있는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시선을 슬쩍 피했다.
“유감이네요.”
저 남자도 꿈의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
그래서 불쌍하다거나 구해줘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해.”
“바뀌어도 무리에요.”
“응?”
“태평양 한복판으로 합숙 훈련을 떠나거든요.”
나의 단기적인 미래가 걸린 중요한 일정이다.
“충격적인 소식인걸.”
“그래서 당분간은 주말에도 못 올 것 같아요.”
“언제 돌아와?”
“그건 저도 모르죠.”
나에게 저 환자의 행복을 깰 권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