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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36화 (37/232)
  • 036화

    [2장-6절] 남 탓하지 말지어다!

    세상의 모든 일이 내 뜻대로 풀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 편리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아버지가 어이없게 돌아가셨을 때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행운과 불행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으며, 때로는 잔인할 만큼 차별한다는 것을.

    “큭!”

    덥석!

    내가 인지했을 때는 이미 최강민에게 목을 붙잡힌 후였다.

    ‘운도 없지...!’

    호텔 주차장을 맴돌던 최강민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여기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온 것이 절대 아님을.

    우연이 틀림없다.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확률적으로 말이 안 되긴 하지만.

    “강문수! 너 따위 벌레가 감히...!”

    투둑.

    분노한 최강민에 의해 오른팔이 절단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

    하지만 나는 침착했다.

    고통스럽긴 했지만, 이미 한 번 겪어봤기 때문일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곳에 다시 돌아올 때부터 지금 같은 최악의 상황을 각오했었기 때문에 혼란도 없었다.

    “...뭐지?”

    “뭐가?”

    “마취도 없이 팔이 뜯겼는데, 어째서 비명을 지르지 않는 거냐? 살려달라고, 용서해달라고, 어째서 빌지 않는 거냐?”

    그건 나도 의문이다.

    편의점에서 상품을 옮기다가 손가락이 찍히면 소리를 지르며 발을 동동 구르던 ‘나’였으니까.

    팔다리가 절단되는 고통을 겪고도 침착한 이 상황이 신기하긴 했다.

    아무튼,

    “기대했어? 그것참 유감-”

    우득.

    최강민이 말하는 중인 내 왼쪽 다리를 수수깡처럼 부러트렸다.

    “어서 빌어...!”

    내가 질질 짜면서 용서를 구걸하기를 기대했던 걸까?

    내 눈에는,

    ‘사과하라고 구걸하는 것 같네.’

    하지만 나는 최강민의 압도적인 폭력에 굴복할 마음이 없었다.

    그런 비참한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두 번은 없다.

    “야. 대낮부터 술 마셨어?”

    “이놈!”

    퍽!

    호텔의 단단한 콘크리트 벽에 던져진 나는 맥없이 충돌하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미 객실 내부는 내 피와 살로 엉망진창인 상황.

    그래도 내 마음은 평온했다. 녀석에게 일침을 가할 만큼.

    “강민아. 철 좀 들어라.”

    “감히...!”

    내가 아저씨 말투를 흉내 냈음을 바로 눈치챈 최강민은 격노했다.

    와장창!

    * * *

    최강민이 강문수를 찾은 건 우연이 아니다.

    강한 이끌림.

    자석처럼 그를 끌어당기는 미지의 힘이 있었다. 강제성은 없었지만, 흙으로 된 비포장도로보다 아스팔트 고속도로를 선호하듯 자연스럽게 그 안내를 따랐다.

    그리고 마주친 강문수.

    보자마자 분노가 치밀었다.

    “너...!”

    가장 먼저 팔을 자르고, 그래도 화가 안 풀려서 다리도 분질렀다.

    그러나,

    ‘대체 왜! 어째서!’

    강문수의 팔다리를 망가트려서 평생 병신으로 살도록 만들었지만,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강문수의 태도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힘에 겁먹지 않고 하찮게 바라보는 눈빛.

    그리고 그의 이 담담한 태도를 당연하다고 수긍해버린 자신의 사고가 가장 큰 문제였다.

    ‘결국은 꿈이란 건가...’

    정말로 팔다리를 잃는 것도 아니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강문수가 말하는 듯했다.

    그래도,

    “어서 빌어...!”

    최강민은 이 잔인한 사실을 부정하듯 억지를 부렸다.

    “야. 대낮부터 술 마셨어?”

    하지만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할 말을 다 하는 강문수.

    농담마저 섞인 그의 가벼운 말투는 고통을 전혀 못 느끼는 것처럼 익살스러웠다.

    “이놈!”

    이에 또 한 번 격분한 최강민은 피투성이의 강문수를 호텔 객실 안쪽으로 던졌다.

    퍽!

    절단된 팔다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살이 벽과 바닥을 물들였다. 당연히 몸도 너덜너덜-

    “강민아. 철 좀 들어라.”

    그래도 강문수의 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감히...!”

    그가 고통뿐만 아니라 죽음의 공포도 없음을 뜻했다.

    정말로 죽음이 두렵지 않아서?

    아니.

    애초에 안 죽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이 세계(꿈)에서 확실하게 죽인 강문수가 멀쩡히 되살아나서 그의 앞에 나타났다.

    ‘안 돼...!’

    최강민은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거칠게 반발했다.

    와장창!

    * * *

    발끈해서 나를 죽일 줄 알았던 최강민.

    하지만 녀석은 흉흉한 마법봉으로 내 머리를 내려치지 않았다.

    그 대신, 호텔 객실의 값비싼 가구에 화풀이했다.

    “후우... 후우...”

    “최강민.”

    “......”

    “이만 인정해. 병원에서 아저씨가 너를 기다리고 있어. 첫째 아들이 잠에서 깨어나기를.”

    “...거짓말.”

    표정이 분리 수거된 깡통처럼 일그러트린 최강민은 쥐어짜듯 내 말을 부정했다.

    “이게 조작 같아?”

    “강문수. 하나만 묻겠다.”

    “해봐.”

    “나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나?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너무나 황당한 질문에 힘든 와중에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건가?’

    방금 듣고도 믿기지 않아서 재확인하기로 했다.

    “죽을 때까지 몰랐다면 좋았을 불편한 진실을 알려준 것? 왜 알려줘서 나를 괴롭히냐고 묻는 거야?”

    “......”

    여전히 인정하기 싫었던 최강민은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허! 진짜 바보 같은 질문이네! 나를 이 꼴로 만들어놓고도 그런 말이 나와? 벌써 잊었어?”

    “이건 네가 자초한...!”

    “저번에는?”

    “네가 헛소리한 탓이다.”

    “앞으로 얼마 못 산다고 가르쳐준 것이 헛소리인가? 의사에게 진료는 왜 받냐? 건강하지 않다고 하면 헛소리로 치부할 건데.”

    “그, 그건...”

    나의 완벽한 논리에 변명이 궁색해진 최강민은 말끝을 흐리며 침묵했다.

    “그때의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너를 구해주고 싶었어. 아무리 길어도 100일밖에 못 산다고 하니까. 이젠 50일도 안 남았네.”

    “이건 나를 구하는 게 아니다.”

    “행복한 꿈에 사로잡힌 채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게 놔뒀어야 한다는 거지?”

    “...그렇다.”

    “마약중독자가 할 법한 말이네. 나를 죽게 내버려 두라고.”

    “전혀 다르다. 나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니까.”

    “영웅은 재산 때문에 부모를 죽이고, 동생에게 죄를 뒤집어씌워서 감옥에 보내지 않아.”

    “그건 아버지가 자초한 일이다! 동생이 아닌 나를 후계자로 지목하셨어야 했어...!”

    최강민은 발악하듯 외쳤다.

    “그건 아저씨에게 직접 따져. 가족이 아닌 나에게 하소연해봐야 소용없어.”

    “큭!”

    반론의 여지를 안 주는 내 핀잔에 최강민이 또 한 번 침묵했다.

    그리고는,

    털썩.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초현실적인 힘이 있음에도 죄인처럼 두 무릎을 꿇으며 엎드렸다.

    “최강민.”

    “......”

    “아직도 미련이 남았어?”

    슬슬 빈혈로 어질어질한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송선영 때처럼 꿈이 끝나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건 이 세계(꿈)의 주인공인 최강민이 여전히 승복하지 않고 망설인다는 증거.

    수영시합에서 패배하면 자살하지 않기로 약속했던 송선영도 방황하며 괴로워했다.

    그때랑 비슷한 상황.

    ‘쉽지 않네.’

    최강민이 진심으로 ‘마법소년’이란 환상을 내려놓기 전까지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아버지는 새 여자가 낳은 아들만 예뻐하셨다.”

    “나는 네 가정사에 관심 없어. 알고 싶지도 않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아버지께-”

    “나는 녹음기가 아니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직접 해. 네가 아직도 어린애인 줄 알아? 마법소년으로 변신하면서 머리까지 어려졌냐?”

    내 독설에 발끈한 최강민이 나를 노려봤다.

    “죽고 싶은가?”

    “죽여봐. 그래봤자 꿈에서 깨어날 뿐이지.”

    “이놈!”

    퍽!

    이번에도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녀석의 화풀이에 당했다.

    ‘복부가 화끈거리는데...’

    철판처럼 무거워진 눈꺼풀이 떠지질 않아서 구체적으로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지 알 수 없었다.

    “콜록콜록! 이러다가 또 죽겠네.”

    “...아프지 않은 거냐?”

    “죽을 만큼 아프지!”

    이 새끼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최근에 부지런히 체력을 키우긴 했지만,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괴물이랑 싸우는 건 무리.

    하지만 이런 처참한 꼴이 되었음에도 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강문수. 내가 안 무섭나?”

    “별로.”

    “팔다리를 잃고 고통스러워도 결국은 꿈이란 거냐...”

    “그런 셈이지.”

    하지만 꿈이라고 해서 내가 고통을 못 느끼는 철인(鐵人)이 된 건 절대 아니다.

    허세, 오기로 버틴달까?

    물리적으로 상대가 안 되는 최강민을 이기려면 정신력으로 압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버텨! 좀만 더!’

    빨리 죽어서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온몸이 아팠다.

    “나는 어릴 적부터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새끼는 쉽게 져줄 마음이 없는 듯했다.

    이 시점에 푸념?

    환장하겠다.

    “아주 잘 기억하지. 놀이터에서 셋이서 상황극을 할 때, 너는 맨날 영웅 역할을 했으니까. 나랑 강훈이에게는 악역과 조연을 시키고.”

    “크흠!”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최강민은 영웅(hero)을 동경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맞다. 평범한 줄 알았다.

    뒤에서 동생을 괴롭혔다는 과거사를 전혀 몰랐을 때는.

    “동생에게 악당 역할을 시키고 나뭇가지로 콕콕 찌른 나날들. 그게 본심일 줄은 몰랐네.”

    철없는 아이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치부했었다.

    그런데 들켰지.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다. 지금도 마주보기가 두렵다.”

    “어이없네. 모든 악당이 두려워하는 마법소년이?”

    “이건 전혀 다른 문제다.”

    “네 잘못을 들켜서?”

    “강문수. 네 잘못이다.”

    “하아?”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네가 방해하지 않았다면 최강훈을 해친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 거다. 그러면 아버지께 들키지도 않았을 테고.”

    “와! 너, 양심은 있냐? 가족을 해코지한다는 사고부터가 잘못된 거야. 남 탓은 정도껏 해!”

    “후계 다툼은 자연의 순리다.”

    “그래? 그러면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의 인생을 방해하는 것도 자연의 순리겠군.”

    “......”

    억지를 부리다가 본전도 못 건진 최강민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최강민.”

    “듣고 싶지 않다.”

    “남의 가정사에 참견하고 싶지 않지만, 짜증 나서 한마디만 할게. 너는 배부른 투정을 하는 거야. 나는 훈계해줄 부모님도, 경쟁할 동생도 없어.”

    “좋겠군.”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그건 유감이군.”

    “......”

    나도 돈을 좋아하긴 하지만, 가족을 돈으로 평가하는 이 새끼는 뼛속까지 글러 먹은 것 같다.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하마. 나는 현실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대로 죽겠다고?”

    “그렇다.”

    “최강민. 현실의 네 몰골이 어떤지 사진으로 찍어뒀... 어라?”

    남은 팔로 힘겹게 호주머니를 뒤적인 나는 멈칫했다.

    ‘없어?’

    병실에 미라처럼 누워있는 최강민의 사진도 찍어서 챙겨왔었다.

    바닥을 구를 때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간 걸까?

    사진이 손끝에 잡히질 않았다.

    “사진?”

    “...사진으로 찍어뒀으면 좋았을 거란 얘기야.”

    “어떤 상태지?”

    “천식을 포함한 온갖 합병증으로 산소호흡기를 떼면 바로 세상이랑 작별할 상태지.”

    “......”

    “죽고 싶어?”

    “...죽고 싶은 인간도 있나?”

    “행복하게 죽고 싶다며? 조금 전에 말했잖아.”

    “그, 그건...”

    자기가 방금 내뱉은 발언 탓에 모순에 빠져버린 최강민은 묵비권을 행사했다.

    “웃기는 놈일세. 죽게 내버려 두라면서 화풀이하더니.”

    “......”

    입이 두 개라도 할 말 없을 터.

    “야. 살고 싶으면 눈을 떠.”

    “어떻게...”

    “여기가 꿈이란 걸 인정해.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받아들여.”

    무당이나 오컬트의 설명서를 읽고 하는 말이 아니다.

    경험.

    그리고 즉흥적인 본능!

    “최강민. 좋게 생각해. 현실의 너는 가족을 해치지 않았잖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 없어. 철없는 어린 시절의 실수일 뿐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아니,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표현이 옳겠지.”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가능할까?”

    하지만 더 살고 싶다는 욕망에 빠진 최강민을 설득하기에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당연하지!”

    “정말로?”

    “그건 네가 하기에 달렸지. 나는 미래를 보는 점쟁이가 아니니까.”

    무당이지.

    그리고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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