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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35화 (36/232)
  • 035화

    사지(死地), 적진(敵陣)이나 다름없는 최강민의 꿈으로 향하기 전, 현실에서 아저씨랑 머리를 맞대고 대책회의를 했다.

    어떻게 설득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이 주제에 대해, 아저씨는 매우 간단하게 정의했다.

    “회사를 둘째에게 넘기면 돼.”

    “그게 될까요?”

    꿈속의 최강훈은 무려 20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

    정신이 멀쩡한지도 걱정이지만, 회사의 모든 이권이 최강민에게 진즉 넘어가서 철근 콘크리트처럼 단단히 굳어버린 상태.

    뒤집긴 힘들어 보였다.

    “그 방법은 지금부터 ‘같이’ 고민해봐야지.”

    “아, 네.”

    “하하!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그냥 해본 소리다. 13년 뒤에 상속법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뒤집긴 힘들 거다. 전 회장인 내가 살아있지 않는 한...”

    “아저씨. 꼭 살아있어야 하나요?”

    “그게 무슨 말이냐?”

    “유언장으로 안 되나요?”

    “첫째가 저렇게 된 뒤부터 유언장은 생각조차 안 했지. 내가 사고로 잘못되면 자연스럽게 둘째가 이어받을 테니까.”

    유언장은 없다. 설사 있더라도 최강민이 진즉 제거했을 테고.

    그렇다면,

    “지금부터 쓰면 되겠네요.”

    “...문수야. 이 아저씨에게 벌써 죽으라는 건 너무하지 않냐?”

    “오해하지 마세요. 꿈속에서 사용할 생각이니까.”

    “도통 무슨 소리인지...”

    내 의도를 아직 이해하지 못한 아저씨가 이마를 찡그렸다.

    “꿈속에 처음 들어갔을 때, 제 호주머니 안에 스마트폰이 들어 있었어요.”

    “스마트폰? 호주머니 안의 스마트폰이 어쨌다- 아! 그렇구나!”

    탁!

    말하다가 눈치챈 아저씨가 무릎을 치며 쾌재를 불렀다.

    “유언장을 호주머니 안에 미리 넣어두면 꿈속으로 이동할 때 함께 딸려올 거예요.”

    “정말 좋은 계획이구나!”

    “그렇죠?”

    “하지만 실패다.”

    “켁! 왜요?”

    “유언장이 법적인 효력이 있으려면 그것이 본인의 의사임을 증명해줄 제삼자가 꼭 필요하다. 자필(自筆)은 예외이지만, 이 또한 직접 썼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지.”

    “...그렇겠네요.”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건 아저씨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내 자문위원들을 소집하고 싶은데...”

    “설명하실 자신 있으세요?”

    “같이 갈래?”

    “사양하겠습니다.”

    내가 최강민의 꿈속에 들어가서 한 가지 배운 점이 있다.

    튀지 말것!

    나를 남들과 다른 ‘특별한 인간’으로 오해한 의사들의 관심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지!’

    하지만 이대로 아무런 대책 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는 아니다.

    그렇다면,

    “아저씨”

    “방법이 떠오른 얼굴이구나.”

    “네. 회사를 순식간에 망하게 하실 수 있으세요?”

    “...구멍가게인 줄 아냐? 그전에 주주총회로 퇴출당하겠지.”

    “저를 믿으세요?”

    “음?”

    “믿으시냐고요.”

    “당연히 믿지. 10년 넘게 내 보물을 지켜줬는데.”

    내게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회답하는 아저씨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물론, 그 믿음이 어떤 사안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단서를 붙이셨다.

    “지금부터 동영상을 찍을 거예요.”

    “유언장?”

    “네.”

    “증인이 없는 동영상은 법적인 효력이 없어.”

    “괜찮아요. 법원에 안 가고 인터넷에 뿌릴 거라서요.”

    “......”

    내 계획을 들은 아저씨의 입이 떡 벌어졌다.

    “물론, 꿈속에만 뿌릴 겁니다.”

    “그래서 믿느냐고 물었던 거구나.”

    “네.”

    “...신뢰 이상의 담력이 필요한 도박이지만, 아들의 목숨으로 저울질할 순 없지.”

    아저씨가 탄식했다.

    “거북하시면...”

    “하자. 강민이가 꿈에 틀어박힌 원인에는 내 지분이 크니까.”

    “그러면 지금부터 찍-”

    “잠깐!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화질 좋은 카메라로.”

    “알겠습니다.

    우리는 최강민을 환장하게 만들 종합선물세트를 준비했다.

    * * *

    그런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동영상의 여파는 굉장했다!

    “순조롭군.”

    이곳은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휴양지에 세워진 어느 호텔.

    나는 해수욕장이 보이는 테라스 앞에 권태롭게 앉아서 미래의 스마트폰을 체험하고 있었다.

    (강민아. 네가 친구들을 부추겨서 동생 강훈이를 괴롭힌 사실로부터 언제까지 도망칠 셈이냐?)

    “식겁했겠지?”

    이 동영상을 본 최강민의 표정을 못 봐서 아쉽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마주치면 벌레처럼 또 농락당할 텐데.

    호텔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저렴한 단칸방에 들어갈생각이었지만, 서혜주 부원장님이 챙겨준 돈이 내 상상을 초월해서 계획을 바꿨다.

    ‘이런 호사를 언제 누려보겠어?’

    꿈이라서 아쉽지만, 꿈이기에 가능한 상황이기도 했다.

    과거의 자신이 보낸 편지에 설득당하는 전개는 현실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으니까.

    “오!”

    출렁~

    침대를 향해 다이빙한 내 몸을 구름처럼 새하얀 매트릭스가 부드럽게 받아줬다.

    ‘돈이 좋긴 좋구나!’

    체육대학교 기숙사의 침대도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이건 아예 차원이 달랐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독이랄까?

    이 기회에 한껏 즐겨주겠다.

    (혹시라도 내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차남 최강훈에게 모든 재산을 상속한다. 이 영상이 부디 정의로운 사람에게 전달되길.)

    내가 인터넷에 뿌린 동영상이 전염병처럼 매우 빠른 속도로 각종 언론매체에 퍼졌다.

    급기야 뉴스까지!

    가짜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런 반응도 예상하고 준비한 동영상이라서 문제없었다.

    (이 영상의 진위를 의심하겠지. 그래서 경영진만 아는 정보들을 공개하겠다. 기밀서류를 보관하는 금고의 비밀번호는...)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내용을 싹 뿌렸다.

    이러면 믿을 수밖에 없잖아?

    나도 아저씨의 동영상을 찍으면서 그 ‘수위’에 식겁했다.

    “참 대단한 분이야.”

    내가 제안하긴 했지만, 내가 아저씨였다면 다른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너무 위험하니까!

    그리고 이것이 그 결과. 위험한 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최강민 회장에게 묻는다!」

    「후계자는 차남 최강훈!」

    「대주주 증언: 영상은 진짜다.」

    「출렁이는 주식 시장...」

    아저씨의 회사가 구멍가게는 아닌 까닭에 세상이 떠들썩했다.

    죽어서 입막음 당한 사람이 범인의 정체를 밝힌 상황이랄까?

    꿈이라서 가능했다.

    “최강민이 어떻게 나올지 무척 궁금한걸.”

    띵~♪

    호텔의 전자레인지로 튀긴 팝콘을 먹으며 지켜보자.

    * * *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재산이 엉뚱한 사람에게 넘어간 채로 2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냥 무시할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돌려줄까?

    웬만한 사건에는 무관심한 사람들도 세계적인 기업의 상속 문제에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

    “...법무팀을 불러.”

    장난으로 치부하고 넘길 수 없는 기밀정보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20년도 더 된 쓸모없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때를 기억하는 회사 간부들은 다르다.

    인터넷에 떠도는 저 동영상이 진짜라면?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회장님. 문의전화가-”

    “내 말이 안 들려? 법무팀을 부르라고! 당장...!”

    “알겠습니다.”

    상황이, 여론이 매우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귀를 기울이면 지구 반대편에서 나누는 대화도 엿들을 수 있는 마법소년이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이 더욱 실감됐다.

    ‘와! 어떻게 저런 짓을...’

    ‘훈계했다고 부친을 살해하다니!’

    ‘미친 거 아니야?’

    ‘동생 최강훈이 불쌍해.’

    재벌 2세인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은 늘 있었지만, 이건 성질이 전혀 달랐다.

    맹비난!

    마법소년을 등에 업고 오만방자하게 경영하는 최강민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자들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군중을 선동한 결과다.

    “안 돼... 이건 아니야...”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최강민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안 좋은 여론?

    초법적인 존재인 ‘마법소년’이 나서서 ‘최강민 회장’을 옹호하면 반강제로 침묵시킬 수 있다. 20년 전에도 비슷한 방법으로 죄없이 동생에게 누명을 씌웠으니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강민아. 너의 죄를 하나뿐인 동생에게 떠넘기고 감옥에 보내서 기쁘더냐? 못난 놈. 철 좀 들어라.)

    “아버지가...”

    그를 저격한 아버지의 독설보다 동영상에 뜬 얼굴의 이마 주름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아버지보다 나이 든 모습.

    어딘가에 멀쩡히 살아계신다는 증거였다.

    즉,

    ‘꿈이라고...?’

    그를 혼란에 빠트렸던 악당 ‘가짜 강문수’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자신은 7년 동안 식물인간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 하, 하...”

    핵폭탄도 두렵지 않은 마법소년 최강민의 입에서 영혼 없는 헛웃음이 나왔다.

    이건 미련일까?

    눈앞에 뚜렷한 증거가 나왔음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미각, 촉각, 시각, 청각, 후각...

    그가 20년 동안 느낀 모든 것이 진짜 같았기 때문이다.

    “...강문수.”

    이 모든 일의 원흉.

    그 이름을 부르는 최강민의 얼굴은 증오로 가득했다.

    ‘차라리 몰랐다면.’

    강문수만 안 나타났다면!

    불편한 진실을 모르는 편이 행복할 때도 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 아닐까.

    삑-

    수화기를 든 최강민은 비서에게 지시했다.

    “강문수를 찾아.”

    “예? 그는 이미 죽은 게...”

    “찾으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당장...!”

    “...네. 회장님.”

    탁!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은 최강민은 마법소년으로 변신했다.

    어른에서 아이로.

    하지만 이미지 관리를 위해 항상 유지해오던 천진난만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강문수!’

    펄럭~

    최강민은 원흉을 직접 찾기 위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 * *

    나를 찾고 있을 최강민의 감시망을 피하려면 얼굴을 절대 노출해선 안 된다.

    하지만 식사 중에는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내려야 하잖는가?

    그래서 감시카메라와 사람이 있는 식당은 피했다.

    ‘내 신세도 참... 돈이 있어도 쓸 수가 없다니!’

    배달이 식당보다는 낫지만, 이 또한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요리는?

    편의점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로 데우는 것이 전부다. 억지로 쥐어짜자면 라면 정도...

    아무튼,

    “읔! 무거워.”

    호텔 지하 1층의 편의점에서 냉동식품과 즉석식품을 잔뜩 샀다.

    이 정도 양이면 최소 열흘은 끄떡없지 않을까?

    찰칵- 끼익-

    카드키로 내 호텔 객실의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흐응~ 흥~♪”

    “......”

    뚝.

    객실 안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콧노래 때문에 발걸음을 멈췄다.

    ‘누가? 어떻게?’

    호텔 직원은 아닐 터.

    여성이기 때문에 최강민 또한 아니다. 녀석이 ‘마법소녀’로도 변신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강문수 씨.”

    “......”

    심지어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고 침입했다.

    ‘도망칠까?’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갈팡질팡했다.

    “언제까지 문 앞에 서 있을 거예요? 어서 들어와요.”

    “...헛!”

    침입자의 정체가 궁금해서 목소리의 근원지로 향한 나는 놀라서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 이상한 손님이잖아?’

    예전에 편의점을 찾아온 마법사 복장의 여성이 다리를 꼰 자세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검은색 고깔모자를 깊게 눌러쓴 탓에 갸름한 턱선 외에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도-

    “이걸로 두 번째 만남이군요.”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 여자는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님을.

    “제가 여기에 있는 게 신기한가요?”

    “어떻게 들어왔죠?”

    “어머! 설마, 당신만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건가요?”

    “어흠!”

    정곡을 찔린 나는 무안해서 말문이 막혔다.

    무당.

    이 적성이 실존하지 않는다고 오해할 만큼 희귀하다는 설명을 들은 뒤부터였을까?

    나만 특별하다는 착각을 은연중에 해왔던 것 같다.

    “저는 지금 매우 불쾌해요.”

    “저도 당신이 멋대로 들어와서 불쾌합니다.”

    “참 뻔뻔하네요. 먼저 멋대로 들어온 건 당신이잖아요?”

    “제가요?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신 것 같은데...”

    나는 살면서 남의 집에 무단침입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여기.”

    “여기는 제 객실입니다.”

    “이 세계요.”

    “음?”

    “당신이 제멋대로 들어와서 훼방을 놓았잖아요? 아직도 아니라고 잡아뗄 셈인가요?”

    “......”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마법사 차림을 한 이 여자는 매우 위험하다고.

    본능이 경고했다.

    “어머! 벌써 주인공이 올 시간이 됐네요. 저는 이만.”

    “잠깐! 주인공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어라?”

    또 자기 할 말만 하고 떠나는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다.

    ‘어디로 간 거야?’

    뒤따라 호텔 테라스로 뛰어나간 나는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설마?”

    자살하는 송선영의 방식이 생각난 나는 테라스 난간에 기대어 밑도 살펴보았다.

    “......”

    없다. 사라졌다. 뛰어내렸다면 시체라도 있어야 하는데...

    “헉!”

    “너...!”

    이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호텔 주차장 위를 날고 있던 마법소년이랑 눈이 딱 마주쳤다!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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