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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34화 (35/232)
  • 034화

    “아이고...”

    산(山)을 잘 아는 약초꾼이나 다닐 법한 절벽 아래에 검은색 핸드백이 분실물처럼 떨어져 있었다.

    ‘정말로 분실한 것처럼 위장해서 돈을 놔두셨네!’

    보복이 두려웠던 서혜주 부원장님은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철저하게 짜서 꼬리를 잘랐다.

    내가 발설하지만 않으면 우리의 연결고리를 절대 못 찾을 터.

    실패하면 안 된다는 부담을 덜 수 있어서 나도 이편이 좋았다.

    이게 설사 꿈일지라도.

    그나저나...

    “이젠 어떻게 한다?”

    핸드백을 무사히 회수한 것까지는 좋은데, 왔던 길을 되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계획은 보물을 찾는 사람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걸까?

    서혜주 부원장님은 돈다발이 든 가방을 절벽 밑으로 슬쩍 던지면 끝나지만, 그걸 찾아서 다시 절벽 위로 올라가거나 산을 헤집고 내려가야 하는 나로선 무척 암울한 상황.

    그나마 다행이라면?

    수영선수로 활동하며 키워둔 체력이 아주 큰 도움이 됐다.

    “...음?”

    갑자기 등 뒤로 오싹한 기분이 들었던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고-

    ‘미, 미친!’

    망설임 없이 달렸다.

    방향? 길?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가만히 있는 것만 아니라면.

    왜?

    끼기기긱-!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장담할 수 있는, 괴상한 이족보행 생명체를 본 탓이다!

    “저건 대체 뭐야?!”

    손발이 없는 2쌍의 팔과 1쌍의 발은 칼날처럼 생겼고, 몸통은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처럼 갈비뼈와 척추에 살가죽이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머리는,

    “......”

    산화철 같은 붉은빛 머릿결이 이색적인 미모의 여성.

    넋이 나간 사람처럼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끼이이익-!

    “으아~!”

    그 괴물은 팔(칼날)과 다리(칼날)를 맞대고 바이올린 연주하듯이 계속 긁어댔다.

    끼이이이-!

    “진짜 환장하겠네!”

    위협으로 마법소년 최강민만 경계하고 있었던 나로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봉변을 당한 셈.

    사사삭-

    괴물은 날카로운 팔다리로 수풀을 가르면서 매우 빠른 속도로 내게 접근했다.

    그 움직임은 스케이트 선수!

    ‘저게 가능해?!’

    미끄러운 빙판 위였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여기는 바닥에 자갈과 나뭇가지 등의 장애물이 많은 흙바닥.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삭-

    괴물이 풀을 베어내는 섬뜩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는다...!’

    최강민의 꿈에 등장한 괴물에 대한 불평불만은 나중에! 저 괴물에게 난도질당하지 않기 위해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발끝(칼끝)만 살짝 땅에 닿은 상태로 빠르게 질주하는 괴물.

    하지만 그 대가로-

    “읍!”

    정면을 막아선 바위를 박차며 이동 방향을 수직으로 틀었다.

    반면,

    끼기기기-?

    콰당!

    괴물은 방향을 틀지 못하고 바위랑 정면으로 충돌했다.

    ‘예상대로네!’

    스케이트 선수처럼 지면을 미끄러지는 특이한 이동 방식. 그래서 빠르긴 했지만, 마찰이 없다시피 달리는 놈은 관성에 취약했다.

    “후!”

    생각 없이 도망치며 좁혀졌던 거리를 다시 벌린 덕분에 숨을 고를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뒤돌아볼 시간도.

    ‘이대로 포기해주면 좋겠는데... 너무 많은 걸 바랬나?’

    서걱-

    콰르르르...

    충돌한 바위를 토막 내며 화풀이한 괴물이 계속 뒤쫓아오고 있었다.

    끼기기긱!

    “젠장!”

    서걱-

    조그마한 장애물은 그냥 잘라버리기 때문에 저 괴물의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

    즉, 커다란 바위를 계속 발견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따라잡힐 터.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하지만 어떻게?’

    바위를 두부처럼 썰어버리는 괴물이랑 싸우는 건 자살행위.

    하물며 나는 아무런 무기도 없는 맨손이었다.

    “큭!”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풀과 나뭇가지가 내 피부를 긁으며 생긴 생채기가 가득했고, 체력은 빠르게 고갈되는 중.

    반면에,

    끼이이이익!

    저 괴물은 지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조금만 더...!”

    여기는 도시 한복판에 있는 아담한 산이다. 주변을 빙글빙글 돌지만 않는다면 사람이 있는 안전지대가 금방 나올 터.

    그 근처까지만 가면 괴물도 더는 추적해오지 않으리라.

    확신하는 이유?

    영역을 구분하지 못하는 괴물이었다면 진즉 존재가 발각되어 토벌당했을 테니까.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적이 내게도 있었다.

    “응? 꺅!”

    “괴, 괴물이다...!”

    “사람 살려~!”

    “허걱!”

    산의 초입에서 동료나 가족을 기다리던 등산객들이 나를 쫓아오는 괴물을 보자마자 기겁하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나는,

    “괴물아! 여기다...!”

    지금까지의 행동이랑 완전히 반대되는 선택을 했다.

    끼기긱?

    “덤벼! 네 사냥감은 나잖아!”

    도주를 멈추고 놈을 도발했다. 이 결정으로 일찍 죽게 될지라도.

    어차피 꿈이잖아?

    그런 안일한 생각도 크게 한몫한 것 같다.

    “......”

    “히익?!”

    괴물은 도망치다가 넘어진 등산객을 절단하기 위해 치켜들었던 팔을 내리며 몸을 틀었다.

    나를 향해 똑바로.

    그리고 우리 사이에는 장애물이 하나도 없었다.

    드르륵-

    수풀과 흙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갈 때랑 다른 소리를 내면서 괴물이 일직선으로 돌격해왔다.

    ‘...죽겠네.’

    호기롭게 외치긴 했지만, 저 괴물을 쓰러트릴 비책이 준비되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나 때문에 누군가가 죽거나 다치는 게 싫었을 뿐.

    그 사람이 허구의 존재(꿈)일지라도 말이다.

    끼기긱!

    “빨리 도망치세요!”

    넘어진 등산객에게 외친 후에 나도 되돌아서 달렸다. 금방 따라잡혀서 놈에게 살해되더라도 최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

    탕!

    그때 들려온 총성.

    끼긱-?!

    괴물이 균형을 잃고 옆으로 나뒹굴었다.

    대체 누가 총을 쏜 걸까?

    정답은 하늘에 있었다.

    두두두두-

    저격수를 태운 헬리콥터가 천천히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확성기 목소리.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괴물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구연합군이 왔습니다!”

    끼, 끼기기기...

    탕! 탕! 탕!

    괴물은 하늘에서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군인들을 향해 헛된 칼질을 반복하다가 토벌됐다.

    * *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아닙니다. 지구방위군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다치신 곳을 보여주십시오.”

    “괜찮습니다.”

    “그런 몸으로 돌아다니면 다른 시민들이 놀랍니다.”

    “...그러면 부탁합니다.”

    지구방위군.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힘을 가진 마법소년이 큼직한 사건들을 해결한다면, 지구방위군은 사소한 문제들을 처리한다.

    악(惡)의 졸개를 상대하는 조연이라고 할까?

    P의 적성검사로 검증된 최정예로만 구성되어 있지만,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들이 워낙 비상식적이라서 잡일꾼 취급이라고...

    그들의 헬리콥터를 타고 엘몰랑스 병원의 옥상까지 이동하며 들은 푸념이었다.

    “금방 뵙는군요.”

    “하, 하, 하... 그러게요.”

    예전에 유전자공학과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의사 선생님을 또 만나게 되었다.

    극심한 빈혈과 피로 때문에 현장 근처의 병원을 가고 싶었지만, 주민등록증이 없는 나를 순순히 받아줄 곳은 여기밖에 없었던 탓.

    “운이 나쁘셨네요. 검귀랑 마주치다니...”

    “그걸 검귀라고 부르는군요.”

    검귀(Blade Demon).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직관적인 이름이었다.

    또한, 꿈이기에 존재할 수 있는 ‘가상의 괴물’이기도 했다.

    다만,

    ‘최강민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세계라고 보기에는 너무 구체적이라서 마음에 걸리지만...’

    지금은 느긋하게 오컬트나 탐구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마법소년 최강민.

    이 인간을 꿈에서 현실로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니까. 그래도 주의사항 정도는 머릿속에 입력했다.

    “검귀는 최근에 출현한 새로운 형태의 괴물입니다.”

    “최근...”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검귀는 살아있는 인간을 향한 적개심이 매우 강합니다. 마치... 살아있는 인간을 질투하는 망자처럼.”

    “그렇군요.”

    “저도 전해 들은 얘기지만, 검귀는 혼자 다니는 사람들을 기습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등산할 때는 절대 길을 이탈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나도 이탈하고 싶어서 이탈한 게 아니다. 서혜주 부원장님이 돈을 그런 곳에 숨겨둔 탓이지!

    마음 같아서는 부원장실을 찾아가서 한마디 해주고 싶지만, 괜히 다시 만나서 그녀를 위험에 빠트릴 순 없었다.

    “강문수 씨.”

    “네.”

    “치료한 김에 정밀검사를 한 번 해보시는 편이-”

    “안 받아요! 절대로!”

    의사 선생님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후, 도망치듯 엘몰랑스 병원을 빠져나왔다.

    ‘자, 그러면...’

    그 괴물에게 목숨이 노려지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돈이 든 핸드백을 버리지 않았다.

    돈만 안 버렸을까?

    아니다.

    “USB의 데이터도 무사히 복사됐으면 좋겠는데...”

    현실에서 꿈으로 이동할 때, 입고 있는 옷을 포함한 소지품도 반영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서혜주 과장님이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도 그중 하나.

    내가 준비한 것은 종이로 된 편지가 아닌 동영상이다.

    그전에 일단,

    “숨어야지.”

    빛의 속도로 사람을 죽이는 최강민을 직접 만나서 전달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으니까.

    목숨을 건 숨바꼭질을 시작하자.

    * * *

    최근에 몸이 좀 이상해서 불안감과 찜찜함에 휩싸인 최강민.

    그는 외모 하나만 보고 뽑은 여직원의 몸을 희롱하면서 기분을 풀고 있었다.

    “회, 회장님! 죄송합니다! 너무 아파서 이젠...!”

    “누가 말하라고 했지?”

    “......”

    나이를 먹으면서 그의 체력을 감당 못 하게 된 아내랑 달리, 직원은 배터리처럼 몇 번이고 교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야 좀 기분이...

    탕!

    “회장님! 큰일났습니다!”

    집무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비서가 뛰어들어왔다.

    “꺅!”

    화들짝 놀란 여직원이 양팔로 상체를 가리며 책상 밑으로 숨었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하지만 급히 아셔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

    “...나가라.”

    눈물 때문에 얼굴 화장이 엉망이 된 여직원이 집무실의 문을 닫으며 조용히 퇴장했다.

    회장과 비서.

    비밀을 공유할 만큼 가까운 두 남자만 남았다.

    “큰일이라고?”

    “네.”

    “내가 늦게 와서 피해가 커졌다고 지껄이는 쓰레기 여론보다 큰일이 있나?”

    “마법소년의 평판을 신경 쓰실 때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텔레비전 뉴스에 예고도 없이 속보로 떴습니다!”

    마법소년은 정의의 사도이기 때문에 불만을 호소할 수 없지만, 사업가 겸 정치인인 ‘최강민 회장’은 다르다.

    그를 비방하는 자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처리해왔다.

    그런데 공영방송에서?

    회사가 망하고 싶지 않은 이상, 그에게 밉보이는 짓을 할 리 없다.

    “어디지?”

    “대부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너무 대범했다.

    그가 법적으로 대응하거나 보복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한 약점을 쥐었다는 의미.

    즉, 상황이 심각했다.

    “...당장 켜.”

    “네!”

    (강민아. 네가 친구들을 부추겨서 동생 강훈이를 괴롭힌 사실로부터 언제까지 도망칠 셈이냐?)

    “헙?!”

    텔레비전을 틀자마자 보이는 부친의 얼굴에 최강민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전율했다.

    “이, 이건...!”

    (혹시라도 내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차남 최강훈에게 모든 재산을 상속한다. 이 영상이 부디 정의로운 사람에게 전달되길.)

    “20년 전에 돌아가신 전 회장님의 녹취록입니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었다고-”

    “이건 사기야!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조작이 확실해...!”

    20년이나 지난 과거의 악몽이 떠오른 최강민은 발악하듯 외쳤다.

    누가 이런 짓을?

    ‘강문수!’

    쭉 마음에 걸렸던 남자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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