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33화 (34/232)

033화

[2장-5절] 계란으로 바위 깨기!

“오! 해파리들! 안녕!”

시야가 반전하면서 영원히 사는 해파리가 바글바글한 원통형 수조가 보였다.

최강민의 꿈에 성공적으로 침투했다는 방증.

나는 서두르지 않고 방주인이 올 때까지 해파리나 구경하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아! 맞다! 편지는... 무사히 딸려왔네.’

서혜주 과장님이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이 몹시 궁금했지만, 먼저 읽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므로 호주머니 안에 가만히 놔뒀다.

“...심심한데.”

인터넷에 접속해서 최신뉴스라도 보고 싶지만, 원장실 컴퓨터에 암호가 걸려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툭.

“음?”

컴퓨터가 있는 책상을 기웃거리던 나는 손등에 닿은 서류 뭉텅이의 제목에 눈길이 갔다.

<강문수 님의 인증보고서>

“......”

내 이름이다. 이러면 안 읽어볼 수가 없잖아?

스윽-

주민등록증 재발급에 관한 안내문이 첫 장을 장식했다.

‘내가 홀연히 사라졌는데도 진행되고 있었네?’

현실보다 시간이 3배 빠르게 흐르는 탓에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도 서혜주 부원장님은 포기하지 않고 내 신분증명 절차를 차곡차곡 진행했던 걸까.

조금 감동했다.

“흠...”

서류를 좀 더 훑어봤다.

‘너무나 당연한가?’

내가 돌연변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은 없었다.

지극히 평범한 인간.

그리고 15년 전에 죽은 ‘강문수 변호사’랑 유전자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과학적 자료가 주를 이뤘다.

“...강문수 씨?”

“아!”

“그동안 어디에- 아니, 여길 어떻게 들어오셨죠? 방의 비밀번호를 가르쳐주거나 출입증을 준 기억이 없는데요.”

인기척 없이 유령처럼 다가온 서혜주 부원장님이 질문했다.

“음... 4차원 문을 통해서 들어왔다고 할까요?”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농담으로 취급했겠지만, 당신이 말하니 믿을 수밖에 없군요.”

벌써 차분해진 서혜주 부원장님.

푹신한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그녀는 대화하기 좋은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죠?”

“말씀드리기 전에 이것부터 봐주세요.”

나는 서혜주 과장님께 받은 편지를 전달했다.

“이건 뭔가요?”

“보시면 압니다.”

서혜주 부원장님은 호기심 찬 표정으로 봉합된 봉투를 뜯은 후,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이건?”

“내용은 저도 모릅니다.”

“......”

이마를 찡그린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문 채 편지에 집중했다.

‘뭐라고 쓰여 있을까?’

궁금했다.

나였다면 ‘13년 미래의 나’에게 뭐라고 했을까?

시시콜콜한 안부 인사만 하진 않으리라.

주식, 전쟁, 환경, 정치, 재난...

불안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질문을 하지 않을까.

“...충격적인 이야기가 많군요.”

“그런가요?”

“일단, 강문수 씨가 어째서 변호사 시절의 기억만 없었는지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마법소년 같은 괴물이 없는 세상. 정말 그립군요. 여기도 20년 전에는 그랬죠.”

마법소년이 없는 세상.

서혜주 과장님이 미래의 자신에게 전부 얘기한 모양이다.

“추가로 궁금하신 점이 있으면 설명해드릴게요.”

“나중에 생기면 질문하죠. 이 편지에 제법 상세히 적혀 있거든요. 제가 궁금해할 법한 것들을 몽땅 적어뒀어요.”

“아하!”

자기는 자기가 잘 안다는 걸까?

나로선 해야 할 일이 줄어들어서 좋았다.

“미리 말해줬으면 헛수고하지 않았을 텐데... 연구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네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으니. 부활이 아니었네요?”

“죄송합니다.”

“이 또한 이해해요. 저를 신뢰하기 힘들었겠죠. 하지만 지금은 신뢰한다는 뜻이겠지요?”

“네.”

고작 편지 한 장으로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걸까?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전체적인 분위기가 ‘현실의 서혜주’랑 매우 비슷해졌다.

“13년 과거의 제가 말하길, 마법소년이 사라지면 공정과 상식이 통했던 20년 전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하더군요.”

“사실입니다.”

“인류를 수호하는 영웅이 사실은 모든 위협의 흑막이었다... 자작극. 놀랍지도 않군요.”

“믿으시나요?”

“제가 저를 안 믿으면 누굴 믿겠어요? 13년 전이면 출세욕과 자신감이 최고조였던 시기- 흑역사입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하, 하...”

농담이 아님을 증명하듯 얼굴이 새빨개진 그녀는 손으로 부채질하며 달아오른 열을 식혔다.

그러면서 툭 던지듯,

“도와드릴게요.”

내가 원하는 답변을 해줬다.

“감사합니다!”

“마법소년의 정체가 최강민 회장이란 것은 확실한가요?”

“확실합니다. 마법으로 감춰왔다고 본인이 직접 말하기도 했어요.”

“그 직후에 살해됐고요?”

“네.”

덤으로 지옥을 경험했다.

“흐음... 굉장히 위험하네요. 힘의 상징인 마법소년과 정치계의 거물인 최강민 회장. 이길 수 없는 조합이에요.”

“그래서 정면승부는 안 합니다.”

“당신을 돕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저는 무사하기 힘들어요.”

“......”

그녀의 날카로운 한마디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금의 세계가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목숨을 걸 순 없어요.”

“...이해합니다.”

“그래서 제가 강문수 씨에게 해줄 수 있는 지원은 꼬리가 잡히지 않는 현금과 정보뿐입니다.”

“그거면 충분해요.”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으로 안 되는 일일 얼마나 될까?

돈만 있으면 주민등록증이 없어도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 여기에 정보까지!

즉, 내게 필요한 지원을 전부 받는 셈이다.

“현금을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하기로 하고...”

스슥-

볼펜을 든 서혜주 부원장님이 흰 종이 위에 오각형과 육각형 등을 그리고 선으로 이은 후, 알파벳과 숫자를 빼곡하게 적었다.

“이건 설마... 화학식인가요?”

“네. 재작년에 개발된 신약의 화학식입니다. 이것 때문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죠.”

“무슨 약인데요?”

“이 화학식을 완벽하게 암기하면 가르쳐줄게요.”

“아….”

화학식은 조금만 틀려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대충 암기할 수 없다.

“대화가 길어졌네요. 저는 하던 업무가 있어서 이만 나가볼게요. 그동안 외우고 계세요.”

“...부원장님?”

“화장실은 안에 있어요. 목이 마르거나 배고프면 냉장고에서 알아서 꺼내 먹고요.”

“그게 아니라, 이 화학식요. 사람이 외울 수 있는 건가요?”

“저는 외웠습니다.”

“아, 네.”

나는 종이에 빼곡하게 그려진 도형과 알파벳을 암울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 * *

문화와 환경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아이들은 사회에 물들지 않아서 순수한 편이다.

의뢰, 비밀, 신용, 책임, 배신….

이런 것을 일일이 생각하며 행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나를 왜 괴롭히는 거야?’

‘몰라. 네 형이 시켰어.’

...라는 황당한 전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의뢰인의 신원은 절대 발설해선 안 되는 ‘비밀’이지만, 이것을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여러분! 친구와 어른이 질문하면 성실하게 대답해주세요!

...라고, 초등학교와 유치원 선생님들이 가르치기 때문이다.

즉,

‘형님. 옛날처럼 순순히 당해주지 않을 겁니다.’

부친의 치밀한 정보차단에도 불구하고, 최강훈은 이복형 최강민이 벌인 짓임을 진즉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다정한 척했던 형님이랑 싸우기 싫었던 그는 꾹 참았다. 싸울 용기도 부족했고.

지금은?

“형님이 하루빨리 깨어났으면 좋겠네요.”

더는 도망치지 않는다.

“최강훈 도련님은 정말 훌륭한 동생이십니다.”

“형님이 깨어나시면 분명 자랑스러워하실 겁니다.”

운전석과 보조석에 앉은 호위들이 훈훈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걱정이에요. 괜히 제가 끌어들여서 형이 잘못되면….”

강문수의 심장이 멈췄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너무 놀라서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괜찮을 겁니다.”

“믿으십시오. 도련님이 인정한 남자가 아닙니까.”

“그렇겠죠?”

하지만 호위들의 위로에도 걱정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강문수 형이 죽어버리면?

꿈에 갇혀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맴돌면서 최강훈은 자신의 이기심에 혐오감마저 들었지만,

‘도저히 포기가 안 돼.’

최강민, 이 위선자가 사과 한마디도 없이 도망치는 꼴을 도저히 볼 수 없었다.

특히, 강문수 형이 툭 던지듯 말해준 ‘황당한 미래’를 들은 뒤부터 더욱 용납이 안 됐다.

마법소년 최강민.

동생을 감옥에 보내고 자기는 20년 동안 영웅 행세를 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는 이야기.

그게 설사 꿈일지라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형님의 치료가 무사히 됐으면 좋겠네요.”

무려 7년 동안 현실에서 고개를 돌린 이복형이 눈을 뜨면 반갑게 팔 벌려 맞이해주리라.

‘형님. 얼른 돌아오십시오. 이대로 떠나시면 섭섭합니다.’

최강훈은 점점 가까워지는 엘몰랑스 병원을 보며 기도했다.

* * *

P의 적성검사결과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학교 성적을 무시할 순 없다.

적성이 똑같을 때, 회사에서는 학교 성적과 생활기록부로 2차 심사를 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면...

“머리가 나빠졌나...?”

전교 1등은 아니어도 상위권을 늘 유지해왔다. 아르바이트만 없었다면 1위도 가능했다는 자부심마저 약간 있을 정도.

그런 내가, 화학식 하나를 못 외워서 8시간 동안 쳐다보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변호사 시험은 어떻게 통과했는지 의문이군요.”

“제가 통과한 게 아니거든요?!”

서혜주 부원장님의 핀잔에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두뇌 능력은 똑같잖아요?”

“끙...”

할 말이 없네!

“현금은 이 지도에 표시한 장소에 숨겨뒀어요.”

슥-

그녀가 내게 건넨 것은 손으로 대충 그린 약도였다.

‘산...?’

친절하게 등고선까지 표현한 고지대의 중간지점에 보이는 동그라미.

뜬금없이 등산하게 생겼다.

“보물찾기 같네요.”

“작은 보물이죠. 저의 소중한 월급을 담았으니까요.”

“감사합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지금 물어보세요. 성공하든 실패하든 마지막 만남이 될 테니.”

“흠... 당장은 없네요.”

웬만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전부 구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법소년 최강민의 일정은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러면 준비하세요. 제가 신호를 보내면 복도의 감시카메라가 30초 동안 작동을 멈출 거예요. 곧바로 오른쪽 모퉁이를 돌아서 비상계단으로 내려가면 됩니다.”

“철저하시네요.”

내가 부원장실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저는 당신처럼 과거로 도망칠 수 없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이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17시 58분. 준비하세요. 2분 남았습니다.”

“네.”

“......”

“......”

“아! 맞다. 이 화학식으로 만든 약의 효과가 뭐예요?”

8시간 동안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힘들게 암기했는데, 별거 아니면 허탈할 것 같다.

“하아... 아깝네요. 미래의 성과를 날치기하려는 과거의 저를 고생시키고 싶었는데.”

안 가르쳐주고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던 모양이다.

“얼른요.”

“정말로 궁금한가요?”

“네!”

씩씩하게 대답하는 내게 얼굴을 가릴 마스크와 모자를 건네는 서혜주 부원장님.

그녀가 야릇한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 젊음의 비결이죠.”

“헛! 그 말씀은-”

“벌써 시간이 다 됐네요. 얼른 출발하세요.”

“이런...”

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부원장실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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