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화
최강민의 과거사는 세계와 인류의 운명이 걸린 수준의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역으로 시시하달까?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다르리라.
“초등학생 때, 강훈이는 여자애 같다고 자주 놀림을 받았었지.”
“잘 알죠.”
그때마다 내가 지켜줬으니까!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네?”
이상하다고?
“개인차가 있지만, 그 나이는 성별의 특징이 뚜렷해지는 2차 성장기 전이다. 여자애 같은 남자애도, 남자애 같은 여자애도 많지.”
“...듣고 보니 그렇네요.”
“하지만 유독 강훈이만 여자애 같다고 놀림을 받았다. 왜일까? 성격이 나빠서? 얼굴이 못생겨서? 부모가 없어서?”
“......”
최강훈은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그 반대!
고등학교에서 최강훈이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그가 남자다워졌기 때문이 아니다.
녀석은 바뀌지 않았다.
‘정말로 왜지?’
이미 지나간 과거라서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말로 이상했다.
“강민이가 뒤에서 꾸민 짓이다. 내 동생을 괴롭혀달라고.”
“......”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서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돈으로 주위의 아이들을 매수해서 놀리도록 부추겼지.”
“...강훈이도 아나요?”
“모른다. 알았다면 자기 형이 이대로 죽기를 바랬겠지.”
“하긴...”
하지만 최강훈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나에게 부탁했다.
형님을 치료해달라고.
“조금만 조사해보면 금방 들통날 짓이었지만, 내가 그 아이들을 돈으로 전부 입막음시켰거든.”
“어째서 그런 짓을...?”
“부모의 작은 욕심이다. 자식들이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
“아...”
머리로는 이해했다. 가슴이 받아들이길 거부했지만.
“아저씨-”
“강민이는 교통사고로 자기 어미를 일찍 잃었다.”
“......”
“그리고 나는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당시에 가정부로 일하던 지금의 아내를 맞이했지.”
“...잘못하셨네요.”
“너도 나중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날이 오면 이 아저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다! 아무튼, 그 탓에 강민이에게는 늘 마음의 빚이 있어.”
“그래서 묵인하셨군요.”
“맞다.”
친모(親母)의 사랑을 받지 못한 첫째 아들이 불쌍해서 감싸줬다는 이야기.
“그게 다인가요?”
“뭐가?”
“어릴 적에는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니까요. 어른이 된 후에도 고쳐지지 않으면 문제지만.”
최강민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졌다.
“그 어릴 적에 돈으로 동네 조폭들을 고용했다면?”
“......”
“네가 강훈이를 지켜주는 바람에 꼬마들로 괴롭히기 힘들어지자마자 강민이가 생각해낸 방법이다.”
“좀... 심하네요.”
어리다는 이유로 용서받을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회사 지분까지 언급하면서 확실하게 제거해달라고 했지.”
“미친!”
어른도 입에 담기 힘든 발언을 초등학생이 했다고?
미쳤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강민이의 이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막으셨군요.”
“그래.”
“휴...”
나는 철렁할 뻔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사전에 막지 못했다면?
조폭들의 표적이 된 최강훈을 지켜주던 나까지 위험했으리라.
“생각해보니 그렇군.”
“뭐가요?”
“강민이가 쓰러진 시기 말이다. 이 아비에게 전부 들켰음을 눈치챈 날이었지.”
“아!”
인과(因果)가 딱딱 맞았다.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한 걸까? 아저씨가 허탈하게 웃으셨다.
“어쩌면 강민이의 불치병은 현실도피일지도 모르겠군.”
현실도피.
범죄 의혹을 극구 부인하던 정치인이 증거가 나오자마자 전 재산을 들고 국외로 탈주하듯이.
최강민은 꿈쏙으로 도망쳤다.
“그래서 아저씨의 도움이 필요해요.”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
“최강민이 그곳을 꿈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개인정보요.”
“흠...”
“없나요?”
“너무 많아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구나. 내 회사를 인수했다면 더욱. 대표만 알 수 있는 비밀이 특히 많아서.”
“오!”
마법소년을 쓰러트릴 치명적인 비수(匕首)가 차곡차곡 쌓였다.
* * *
새 학기(學期)가 시작됐다.
운동에 적성이 있는 수많은 신입생이 체육대학교로 몰려들었고, 본가가 멀거나 자취방을 구하지 못한 학생들은 기숙사로 향했다.
‘혼자 쓰니 좋구나!’
하지만 수영 감독님의 흉계(?)로 시합 내기에서 이긴 나는 2인용 기숙사를 독차지하게 됐다.
누군가랑 함께 썼었다면 만족도가 훨씬 높았겠지만, 방학 기간 내내 혼자였기에 ‘내 집’을 지켜냈다는 느낌이 강하다는 게 유일한 흠.
그리고 주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다.
“......”
“......”
이전까지 송사리 취급이었다면 현재는 숭어쯤 될까?
지난 시합에서 나쁘지 않은 기록을 보여준 덕분이다.
수영은 기록 싸움.
축구나 태권도 같은 경기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수영은 내가 누구랑 대결한다고 해서 더 빨라지거나 느려지지 않으니까.
같은 종목에서 나보다 기록이 나쁜 선수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건,
“저 선수인가...”
“적성도 아닌데...”
그 선수를 지도하는 감독들도 마찬가지.
감독이 인정받으려면 자신의 선수가 공식적인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야 하니까. 경쟁자의 출현이 떨떠름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은 직장만 구하면 바로 은퇴할 생각이다.
내 적성은 ‘수영선수’가 아니니까. 하위권에서 잠깐 반짝할 순 있지만, 잠재력이 부족해서 결국에는 추월당할 것이다.
“감독님.”
“또 소고기가 필요해?”
감독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를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야? 한마디만 해주자.
“사주시면 좋죠.”
이런 거라면 더욱 무시해주세요!
“하하! 내가 조만간 또 판을 깔아보마!”
“......”
소고기를 공짜로 사줄 마음은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냐? 무언가를 부탁하려는 표정인데.”
“맞아요.”
적성이 ‘감독’이기 때문일까? 수개월을 함께한 사이도 아닌데,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말해봐.”
“며칠만 쉬고 싶어서요.”
“며칠? 방학- 아니군. 휴가가 필요하다는 뜻이지?”
“네.”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휴가를 보내느냐에 따라 다르겠는데. 여기는 학생의 자율이 보장된 학교가 아니니까.”
“아!”
학생의 방학과 주말을 간섭하는 선생님이 없어서 착각했다.
‘맞아! 나는 선수였지!’
학생이 아닌 어엿한 직장인!
그리고 눈앞의 남자는 학교 교사가 아닌 스포츠 감독이다.
선수가 나태해지지 않도록 감시하고 훈계할 권리가 있는 사람.
여기에는 술, 담배, 마약, 도박처럼 선수의 경기력에 악영향을 주는 행동도 포함되어 있다.
“휴가라고 해서 노는 건 아니에요. 병원에 갑니다.”
“병원? 어디가 아파?”
느슨했던 감독님의 표정이 단번에 진지해졌다.
‘말을 잘해야 해.’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최강민을 깨우려면 내가 그의 꿈에 들어가야만 했다.
여기서 문제.
나도 어엿한 직장인이라서 평일에는 여기로 출근해야 하니까. 꿈속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
“제가 특수체질이라서요.”
“희귀병?”
“그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유일암의 방송에 나온 귀신 때문인가?”
“...그 연장선입니다.”
놀랐다.
‘나는 말한 적이 없는데?’
내 표정을 읽은 감독님이 어이없다는 듯이 답했다.
“강문수 선수. 내가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나요? 잘 들어. 이건 나만 그런 게 아니야. 감독은 선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해.”
“아...”
“이번 기회에 좀 더 알아두는 편이 좋겠군. 너를 담당하는 의사의 연락처와 진단서를 제출해. 그러면 휴가를 보내주마.”
“네.”
조건이 붙긴 했지만, 휴가를 보내준다는 말에 안도했다.
감독님이 안 된다고 했다면?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왔다.
“야! 가장 중요한 걸 말해줘야지. 언제부터 며칠이나 쉴 거야?”
“아마... 3일 정도요. 날짜는 주말만 끼면 언제든 상관없어요. 빠를수록 좋지만.”
3일.
시간이 약 3배 빠르게 흘러가는 꿈속에서는 9일인 셈.
급하게 진행하다가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휴가를 넉넉하게 잡았다.
“그러면 당장 쉬어라.”
“네? 그래도...”
“괜찮아. 우리가 수영장을 양보하면 쓸 인간은 넘쳐나니까.”
“......”
“왜?”
“감사합니다.”
“알면 건강히 돌아와라. 몸이 굳지 않도록 새벽마다 달리고.”
“그건... 노력해볼게요.”
침대에 쭉 누워있을 예정이라서 지키긴 힘들 것 같지만.
‘좋아.’
이걸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 * *
“걱정하지 마세요. 진단서는 제가 그럴싸한 전문용어로 도배해서 휴대전화로 보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서혜주 과장님이 하던 일정을 전부 제쳐두고 신속하게 추진했다.
“감사합니다. 혹여나 감독님께 연락이 오더라도 잘 부탁합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하는 것은 의사의 기본소양입니다.”
“알죠. 그래도 잘 부탁합니다. 제 밥줄이라서요.”
“수영선수요? 실례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네요.”
“정말 실례네요!”
우리는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최강민이 누워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1906호 병실?
아니다.
이곳은 오늘을 위해 잠시 빌린 엘몰랑스 병원 부원장실!
내가 꿈속에 난입할 때, 현실이랑 같은 장소로 이동한다는 점을 고려해서 선택된 장소다.
서혜주 ‘부원장’의 곁으로.
즉, 안전지대다.
“강문수 씨. 꿈속의 저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네.”
“하지만 이렇게 말만 해두면 심심하겠죠? 이 편지를 20년 미래의 저에게 전해주세요.”
“...준비를 많이 하셨네요.”
“그야 당연하죠! 흔치 않은 경험이니까요!”
흔치 않은 경험.
그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환자의 생명을 연장해주는 수많은 의료기기에 둘러싸인 최강민에게 다가갔다.
“야.”
“......”
마법소년이란 망상에 사로잡힌 그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최강민. 꼼짝하지 말고 기다려라.’
내가 거기로 간다!
“강문수 씨. 가장 중요한 건데, 할 수 있겠어요?”
“물론입니다.”
우연이 아닌 내 의지로 남의 꿈속에 난입해본 적은 없다.
가능할까?
그런 의문이나 걱정은 없었다. 반드시 된다는 막연한 확신이 본능적으로 들었기에.
“후우...”
그래도 처음이라서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옆의 침대에 누우세요.”
“네.”
내가 정신을 잃으면서 바닥에 머리를 박는 등의 불상사가 있으면 안 되니까.
편한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후, 최강민 옆에 바른 자세로 누웠다.
“...과장님. 뭐하세요?”
그녀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각종 의료기기를 내 몸에 덕지덕지 붙이기 시작했다.
“타인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강문수 씨의 신체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아, 네.”
사전에 합의되지 않긴 했지만, 사소한 일이기에 제지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최강민이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그는 마법소년에 심취한 채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리라.
‘그렇게는 안 되지!’
마법소년이 망상의 산물이란 사실을 깨닫고 절망하는 그의 모습을 꼭 보고 싶다.
“자! 갑니다!”
나는 썩은 고목처럼 삐쩍 마른 최강민의 손을 맞잡았다.
덥석.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물리적인 힘으로는 마법소년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최강민. 눈이 확 뜨일 거다.’
정정당당하게 팩트(fact)로 때려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