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31화 (32/232)

031화

혀를 즐겁게 해주는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은 늘 옳다!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롭지만, 그건 비타민도 똑같으니 논외!

나는 곧 소고기를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지만, 자신의 패배를 여전히 실감하지 못하는 상대에게 살짝 미안했다.

“말도 안 돼...”

“좋은 승부였습니다.”

나에게 소고기를 안겨다준 멋진 승부였다.

“이건 사기야!”

그 선수를 맡은 감독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인정해.”

“약물을 쓴 게 틀림없어! 저런 비실비실한 몸으로 이겼다고? 당장 검사해봐야 해!”

“약물이 아니면 어쩔 거지? 내 선수의 명예를 훼손한 보상을 어떻게 할 건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군.”

“큭!”

“없다면 사과받고 끝내지.”

시합의 결과를 놓고 감독끼리 2차전을 벌였다.

본경기보다 훨씬 흥미진진!

조용히 구경하면서 기다렸다가 소고기나...

“이건 명예 훼손이 아니다! 네 선수를 보면 약물을 의심할 수밖에 없잖아! 안 그래? 다리가 길어? 손발이 커? 몸도 삐쩍 말랐고.”

착각은 자유지만, 인신공격은 선을 넘은 것 아닐까?

“너의 그 방금 발언이 명예 훼손이란 거다.”

“흥! 틀린 말도 아니잖아?”

“졌으면 깔끔히 인정해. 지저분하게 굴지 말고.”

“뭐, 뭐-?! 지저분?!”

대화는 점점 내가 검사를 받는 쪽으로 기울었다.

‘검사라면 지긋지긋한데...’

최근에 검사를 너무 많은 받은 탓에 거절하고 싶지만, 분위기는 검증하자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때,

“감독님. 진정하세요. 조금 전의 경기는 공정했습니다.”

“처음에는 분명 우세했잖아요? 체력이 떨어져서 졌을 뿐입니다.”

“저 선수의 특기는 팔다리의 길이가 아닙니다.”

“매우 긴 폐활량이죠.”

관전하고 있던 선수들이 일어나서 한마디씩 했다.

그러자,

“그, 그걸 내가 몰라서 따지는 줄 알아?! 이건 폐활량을 늘려주는 기관지 확장제가 틀림없어...!”

나를 인신공격했다가 수세에 몰린 감독이 급히 말을 바꿨다.

‘기관지 확장제?’

목구멍을 넓혀주는 건가? 나는 그런 약물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 발언. 책임질 수 있어?”

내 감독님이 매우 언짢은 표정으로 재차 질문했다.

“물론이다!”

“어떻게 책임질 생각이지?”

“내가 잘못 봤다면 정식으로 사과하고 올해가 끝날 때까지 수영장 청소를 겸하겠다!”

오우! 수영장 청소!

너무 무리하는 것 같지만, 그만큼 확신한다는 걸까?

매우 유감이다.

물론,

“역으로 묻고 싶군. 약물을 복용한 게 사실로 밝혀지면 어떻게 책임질 거냐?”

“군말 없이 사퇴하지.”

“...좋다.”

감독을 그만두겠다는 선언.

수영장 청소 이상으로 강하게 나온 탓일까?

확신으로 가득했던 감독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갈등하는 눈치.

하지만 자신의 판단을 끝내 철회하지 않았다.

“얘기가 끝난 것 같으니 검사하러 갈까?”

“당연하지.”

“후회할 텐데...”

“내가 할 소리! 그 허세가 언제 깨지는지 두고 보자고.”

그리하여….

애꿎은 수영장 청소부 일자리만 하나 줄어들고 말았다.

* * *

이번 기회에 다양한 올림픽 금지물약을 알게 되었다.

특히, 천식(喘息) 치료제로 쓰이는 살부타몰과 포르모테롤은 선수의 폐활량을 늘려주기 때문에 가장 많은 의심을 받았다.

살부타몰(salbutamol).

포르모테롤(formoterol).

저 낯선 약물 이름을 내가 외워버릴 정도였으니까!

그 둘 외에도 내가 의심받았던 ‘조혈제(EPO)’는 적혈구 생산을 일시적으로 늘려서 산소 운반량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고...

“고생이 많았겠군요.”

내 푸념을 들은 서혜주 과장님이 피식 웃었다.

“말도 마세요. 그 감독이 약물중독을 검사한 의사 선생님까지 한패로 몰면서 억지를 부렸다니까요?”

“그 부분은 같은 의사로서 유감이군요.”

영혼 없는 대답만 보더라도, 내가 최근 한 주 동안 겪은 일에 일절 관심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내게 듣고 싶은 이야기는 딱 하나.

“몸은 좀 회복됐나요?”

“아직요.”

여기서 말하는 ‘몸’은 물리적인 육체만을 뜻하지 않는다.

정신(精神).

그만큼 마법소년 최강민에게 당한 후유증이 컸다.

“최강민 환자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예? 아직 2달 좀 넘게 남지 않았나요?”

“제가 전에 말한 100일은 보장된 최소 유예기간이 아닙니다. 그 반대죠. 최강민 환자는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

“참고로, 강문수 씨가 의심받은 약물인 살부타몰과 포르모테롤도 처방 중입니다. 환자가 앓는 합병증 중에 기관지에 염증이 생기는 천식도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아, 네.”

최강민이 무슨 병으로 죽는지는 알 바 아니다.

다만,

‘서둘러야겠는걸?’

서혜주 과장님이 약속한 치료비를 받고 싶으면, 지금처럼 여유 부릴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조급한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생명윤리, 도덕관, 사명감...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빠진 상태에서 최강민을 돕기로 한 탓이다. 지옥을 경험한 뒤부터 그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게 됐기에.

아무튼,

“꿈에 사로잡힌 최강민을 설득하려면 그곳이 꿈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목숨이 끊기기 전에 최강민을 깨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건 단순한 짐작이 아니다.

‘송선영도 그랬으니까.’

일이 뜻대로 안 풀릴 때마다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던 송선영.

그녀는 자살할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는 ‘비현실적인 현상’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자기만 특별하다고.

근거 없는 합리화를 했다.

“최강민은 자기가 초현실적인 힘을 가진 특별한 존재라고 굳게 믿고 있어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운 빠지네요. 저는 환자를 깨우려고 밤낮없이 노력 중인데, 정작 당사자는 꿈속에서 희희낙락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죠.”

최강민이 마음에 안 들지만, 이 부분만은 욕하지 않았다.

왜?

과학을 신봉한다고 자부하는 나조차 송선영의 꿈속이 현실이라고 믿고 말았으니까.

“그런데 강문수 씨. 생각해둔 방안이 있나요?”

“설득해야죠. 별 수 있나요.”

나의 설득으로 송선영이 오컬트를 포기한 순간, 우리는 현실인 줄 알았던 꿈에서 깨어났다.

‘그때는 운이 좋았지...’

그 당시의 나는 꿈인 줄 알고 한 행동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아니다.

그 변화의 증거로, 나는 주위의 환경이 비현실적으로 바뀌자마자 꿈이라고 단정했다.

“제압은... 무리겠군요.”

“네. 그건 절대 불가능합니다. 빛처럼 빠른 최강민을 제가 무슨 수로 이기겠어요.”

설득만이 유일한 해결책.

하지만 실패하면 또 지옥을 맛볼 게 뻔하므로 ‘증거’를 철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하지만 확실한 증거라...”

“......”

“......”

우리는 입을 꾹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몇 초 뒤,

“가족만 알고 있는 비밀.”

“꿈속에서 못 구하는 정보.”

나와 서혜주 과장님은 거의 동시에 각자의 생각을 말했다.

내용은 달라도 똑같은 결론.

만족한 우리는 서로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다녀올게요.”

“그동안 저는 보호자에게 협조를 당부하는 연락을 해두겠습니다.”

“오! 부탁드립니다.”

무턱대고 최강훈의 집을 찾아가봤자 카드키가 없어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막힐 터.

하지만 주치의이기도 한 서혜주 과장님이 미리 언질을 준다면 한결 편해질 것이다.

‘벌써 기대되는걸.’

어릴 적에 공포영화를 보다가 이불이나 소파에 똥을 쌌다던가?

본인과 부모만 아는 최강민의 흑역사가 많이 필요하다.

* * *

(예약된 손님이 오셨습니다.)

딩동!

드르륵-

오피스텔 최상층에서 멈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집사와 가정부들이 나를 환영해줬다.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세요, 손님.”

“어서 오세요, 강문수 씨!”

집주인의 취향이 100% 반영된 가정부들의 시선과 관심이 내게 집중된 순간, 내가 귀족 같은 대단한 신분이 된 기분에 휩싸였다.

“강문수 도련님?”

“아, 네.”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습니다.”

집사 아저씨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오해는 다 풀리셨으니까요.”

“......”

적성이 무당이라고 했다가 사기꾼으로 취급된 사건.

그때의 섭섭함은 내 통장에 적힌 숫자를 보자마자 사르르 풀렸다.

지금, 내 표정이 심각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어디까지 얘기해야 할까?’

최강민이 이복동생 최강훈을 모함해서 감옥에 보낸 이야기.

꿈속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그곳을 현실이라고 믿는 최강민의 판단과 행동은 진심이리라.

“회장님의 지시로 만찬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

“강문수 도련님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일류 주방장을 급히 섭외하셨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그만큼 회장님도 도련님께 진심이란 뜻입니다.”

“...그렇군요.”

진심(盡心).

어디까지 말씀드려야 좋을지 결정하지 못한 내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드는 단어였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똑똑.

“회장님. 강문-”

“어서 들어오거라!”

서재의 문을 노크한 집사 아저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들려온 집주인의 허락.

나를 사기꾼 취급하셨을 때의 말투랑 180도 달랐다.

“도련님. 들어가십시오. 저는 차를 준비해오겠습니다.”

“네.”

끼익-

나는 이래저래 신경 써주신 집사 아저씨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살포시 머리 숙여 인사한 후, 서재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실례합-

“문수야! 정말 미안하다!”

와락!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던 집주인의 뜨거운 포옹을 받았다.

“아, 안녕하세요?”

“저번에는 이 아저씨가 정말 미안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사과는 제 통장에 찍힌 숫자로 충분합니다.

“내가 그 뒤로 강훈이랑 눈만 마주치면 잔소리를 들었단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면서 이 아비를 어찌나 야단치던지...”

“그, 그러셨군요.”

불만을 토로하는 집주인의 목소리에서 아들 최강훈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절실히 느껴졌다.

그렇기에,

‘말해야겠지.’

그게 설사 꿈일지라도, 이 사랑을 질투, 증오하는 또 다른 아들이 있음을 말이다.

“회장님.”

“어허! 문수야. 옛날처럼 아저씨라고 불러도 돼. 아니, 불러줬으면 좋겠구나. 이 아저씨의 소원이다!”

“...아저씨.”

“그래! 하하!”

소원이 소박한 아저씨가 유쾌하게 웃으셨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아주 중요한...”

“꿈에 관해서?”

“네. 서혜주 과장님이 이미 말씀하신 모양이군요.”

“아니. 주치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단다. 곧 찾아올 무당에게 직접 들으라고만 했지.”

“그런데 어떻게...”

“강훈이에게 들었지.”

“강훈이가 제 꿈에서 감옥에 갔다고 투덜댔군요.”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아저씨에게 고자질하라고 들려준 얘기가 아니었는데...

“허! 강훈이가 감옥에 갔어? 무슨 죄로?”

“......”

내가 너무 앞서간 모양이다.

“강훈이는 별말 하지 않았단다. 진짜 무당인 네가 꿈속에서 강민이를 만났다고만 얘기했지.”

“그랬군요.”

그렇다면 안심이다.

“강민이가 하나뿐인 동생을 감옥에 보낸 거냐?”

“......”

“제대로 짚은 모양이군. 표정에 다 드러났다.”

“아저씨. 어떻게 아셨어요?”

서혜주 과장님이 정말로 얘기하지 않았는지 의심스러워졌다.

“그런 아들이니까.”

“예?”

“그래서 내 후계자는 강민이가 아닌 강훈이란다. 그 아이는 자기 형을 죽이진 않을 테니.”

“아...”

이게 부모란 걸까?

마음이 찡했다.

“그런데 내 후계자가 감옥에 갔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갔다는 소리겠지. 맞니?”

“맞습니다.”

아직 설명해주지 않았음에도 추론으로 다 맞추는 아저씨.

헛웃음이 나왔다.

“참 신기하단 말이야. 나를 죽이긴 쉽지 않은데...”

허세가 아니다. 이 서재만 봐도 알 수 있으리라.

“......”

“......”

방의 모퉁이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조용히 대기 중이다.

이들을 최강훈 혼자서?

현실성이 없다.

‘맞아.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

하지만 초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면, 마법소년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문수야.”

“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꿈속에서 강민이가 얘기 안 해줬니?”

“뭘요?”

“이 아비를 죽인 방법.”

“......”

이 아저씨는 첫째 아들의 무엇을 봤던 걸까?

여기에 내가 온 목적이 담겨있을 것 같다는 예감을 강하게 받았다.

“어째서 단정하시죠?”

“그런 아들이니까.”

“괜찮으시면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흠…. 그러마.”

아저씨의 이야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