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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28화 (29/232)
  • 028화

    [2장-4절] 공포가 엄습하더라.

    병원에서는 최강민이랑 똑같은 증상을 보였던 내 몸을 정밀검사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되고말고!’

    그 인간을 위해 내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거참...”

    그렇게 싫은 티를 팍팍 내도 서혜주 과장님은 정말 집요했다. 비싼 검사를 무료로 해준다고 계속 꼬드겼으니까!

    하지만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간단한 검사만 받고 퇴원했다.

    “형~!”

    집들이한다면서 두루마리 휴지를 잔뜩 산 최강훈.

    저 정도 양이면 1년 뒤에 기숙사를 나갈 때까지 써도 남을 듯했다.

    “왜?”

    “대단해서 불러봤어.”

    “......”

    사차원적인 이유였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칭찬.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던 한마디가 나를 이토록 구원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형.”

    “또 왜?”

    “형님이 나을 수 있을까?”

    “......”

    나는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힘들겠지.’

    최강민은 꿈에서 깨어날 마음이 전혀 없으니까. 현실의 간섭으로 깨우지 못하는 이상, 그의 죽음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

    연민?

    그런 건 없다.

    내 개인적인 유감을 빼고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최강민은 행복에 젖은 상태로 최후를 맞이하니까.

    그에게는 꿈이 현실이다.

    “...강훈아.”

    “응.”

    “나를 얼마나 믿냐?”

    “으음... 아! 형이 외계인이라고 해도 믿어!”

    “그렇구나!”

    너무 많이 믿는걸!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병원에서 꿈을 꿨어. 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가는 꿈.”

    “내가?!”

    “그리고 나는 세상의 적이 된 너를 구하려고 변호사가 됐어.”

    또 다른 나의 이야기다.

    “......”

    “......”

    “...형? 그래서 그 뒤에는 어떻게 됐어?”

    “너에게 누명을 씌워서 감옥에 보낸 범인에게 암살당했어.”

    “아앗...!”

    “그 뒷이야기는 집 정리가 끝난 후에 해줄게.”

    “응!”

    각색하더라도 제법 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 * *

    최강훈은 조심성이 많은 편이다.

    용감한 남자 같지 않다는 이유로 본인은 싫어하지만, 주위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꼼꼼하다고.

    철저하다고.

    나쁘긴커녕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뭉친 대기업을 경영하는 부친도 포함해서.

    “조심히 가.”

    “응! 또 놀러 올게!”

    기숙사 방을 정리한 후, 체육대학교 정문 근처의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고 헤어졌다.

    그리고 몇 초 뒤,

    “도련님. 일은 다 끝나셨습니까?”

    “차를 준비해뒀습니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차림의 남녀가 최강훈에게 정중히 인사하며 말했다.

    젊은 신혼부부처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지만, 그 정체는 특수부대 출신의 호위!

    최강훈이 용돈으로 고용한 사람들이다.

    “병원으로 가요.”

    “네.”

    찜찜해서 당장 확인하고 싶은 사안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승용차.

    하지만 방탄유리를 비롯한 각종 안전장치와 편의시설이 내장된 특제품이다.

    최강훈은 푹신한 뒷좌석에 앉아 차창 밖을 내다보며 혼잣말로 작게 중얼거렸다.

    “형은 믿지. 항상, 늘...”

    어릴 적부터 의지해온 한 살 터울의 동네 형, 강문수는 무조건 신뢰할 수 있다.

    왜?

    첫 만남은 초등학생 강문수의 저돌적인 정의감에서 비롯됐다.

    또래들에게 여자애 같다고 놀림 받는 최강훈을 발견한 그가 못 본 척하지 않고 나선 게 계기.

    ‘외면보다는 내면이 중요하다고, 했었지.’

    당시에는 강문수도 어려서 직관적으로 설명하진 못했지만, 그 대신에 행동으로 보여줬다.

    어떻게?

    맨손으로 촛불 끄기!

    성별에 상관없이 겁먹지 않으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촛불 앞에서 손을 머뭇거리면 뜨거워져서 못 만지게 되는...

    부모와 선생에게 불은 위험하다고만 배운 코흘리개 꼬마들에게, 맨손으로 불을 끄는 강문수는 그야말로 상남자!

    그렇게 감탄한 꼬마 중에는 최강훈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수상해.”

    어릴 적부터 그의 우상이었던 강문수가 뜬금없이 이야기한 꿈.

    그리고 이 꿈에는 ‘최강훈’도 등장했다.

    그렇기에,

    ‘평범한 꿈이 아니야.’

    경고.

    최강훈의 머릿속에는 이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감옥에 간다는 이야기를 굳이 그에게 공유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구체적이다.

    “도련님.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로비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최강훈은 엘몰랑스 병원의 접수처 로 향하는 대신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저장해둔 전화번호를 누르자마자 상대가 받았다.

    “최강훈입니다. 업무시간 중에 연락 드려서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동생분이 무슨 일로 저에게...?)

    이복형 최강민의 주치의인 서혜주 과장이 의아하다는 어조로 그에게 질문했다.

    “상담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바쁘니 질문은 짧게 해주세요.)

    “민감한 주제라서 통화 말고 직접 뵐 수 있을까요? 지금, 병원 1층에 있습니다.”

    (그건 더욱 힘들...)

    “문수 형에 관한 겁니다.”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군요. 계신 곳으로 안내자를 보내겠습니다.)

    “무리한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지금 하는 일의 연장선이니까요. 그런데 무슨 내용인지 미리 알 수 있을까요?)

    “꿈입니다.”

    (꿈?)

    “꿈속에서 최강민 형님을 만난 것 같습니다.”

    강문수의 생각만큼 이 동생은 만만하지 않았다.

    * * *

    “참 희안하네.”

    내가 무신경한 걸까?

    팔다리가 절단되는 끔찍한 경험을 했지만, 안정적인 식사와 잠자리가 보장된 직장(?)에 나가기 1시간 전부터 마음이 들뜨면서 평소의 나로 돌아왔다.

    똑똑.

    심호흡 후,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인 체육대학교 수영장 건물 2층의 집무실 앞에서 가볍게 노크했다.

    “강문수입니다.”

    “들어오세요.”

    수영 감독님의 목소리가 방의 안쪽에서 들려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살짝 격양된 어조.

    ‘무슨 일이 있나?’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 늦지 않게 왔네요.”

    “기숙사가 코앞인데, 늦으면 말이 안 되죠.”

    “제가 지금까지 여러 선수를 가르쳐본 결과, 지각은 거리랑 크게 상관없더군요. 중요한 건 배우려는 마음가짐이죠. 아무튼, 제시간에 잘 왔습니다.”

    수영 감독님이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줬다.

    “뭐부터 할까요?”

    “하하! 의욕은 좋지만, 오늘은 훈련하기에 앞서서 꼭 필요한 개인용품을 준비할 겁니다. 일단, 강문수 선수가 임시로 쓸 수영복부터 구매하러 갑시다.”

    “선수...”

    그 호칭은 이른 것 같은데...

    후보생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지금부터 당신은 어엿한 수영선수입니다. 그 점을 명심하며 생활해야 합니다. 예로, 폐활량에 치명적인 담배는 금지입니다. 간접흡연도 포함해서.”

    “아, 네.”

    나보다 감독님의 의욕이 더 앞선 것 같은데?

    좋은 징조다.

    “마음 같아서는 전용 수영복을 한 벌 맞추고 싶지만, 강문수 선수는 몸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보류했습니다.”

    “제 몸이요?”

    “근육이 조금- 훨씬 많이 붙어야 합니다. 혹시, 집에 단백질 보충제가 있나요?”

    “없습니다.”

    “역시... 마음 같아서는 제가 고기라도 사서 먹이고 싶은데, 월급이 넉넉하지 않아서.”

    “괜찮습니다.”

    내가 직접 겪어봐서 안다. 없는 살림을 억지로 쥐어짜면 금방 탈이 난다는 것을.

    “라커룸은 이걸 쓰면 됩니다. 위치를 기억해두세요.”

    “네.”

    선수용은 다를 줄 알았는데, 내가 송선영이랑 다니면서 지겹도록 이용하던 탈의실의 라커룸이었다.

    ‘잘 지내려나...?’

    그녀의 안부가 조금 궁금해졌다.

    “강문수 선수?”

    “...아! 네.”

    “제 설명에 집중해주세요.”

    “죄송합니다.”

    “현재, 당신은 정식 기록이 없기에 3군에 속합니다. 1군은 국가대표 후보팀, 2군은 대학 대표팀, 3군은 대기조입니다.”

    “이해했습니다.”

    “실력을 인정받아서 1군이나 2군으로 올라가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도 좋아집니다.”

    “......”

    최강훈에게 수영을 가르친 국가대표 감독님을 만났다면 곧바로 좋은 시설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누굴 탓하겠어.’

    동생을 믿지 못한 내 업보다.

    * * *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한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기숙사를 나와서 체육대학교 외곽을 뛰었다.

    내가 운동을 좋아해서?

    전혀 아니다. 시간이 있으면 땀을 흘리지 않고 부족한 잠을 더 자는 쪽이랄까.

    “후우! 후우!”

    그런데도 내가 졸린 눈을 억지로 떠서 달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힘이 필요해.’

    마법소년으로 변신한 최강민에게 일방적으로 농락당하는 내가 얼마나 한심했던가?

    그때의 원통함을 잊을 수 없다.

    “조금만 더...!”

    이렇게 운동한다고 해서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건 마법소년도 마찬가지다.

    꿈이 아닌 현실에는 빛처럼 빠른 인간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체력만 키워도 쉽게 당하지 않는다.

    힘(Power)!

    앞으로 내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가치로 급부상했다.

    이런 힘을 키우려면 운동과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즉,

    “많이 주세요!”

    “호호! 학생, 많이 먹어.”

    다양한 영양소를 일일권장량 이상으로 충분히 섭취할 필요가 있다.

    ‘운이 좋았어.’

    이곳은 체육대학교. 건강관리가 중요한 학생과 선수가 많기에 교내식당은 영양소를 고려한 균형 잡힌 식단으로 짜여 있다.

    끝으로,

    “강문수 선수.”

    “네.”

    “예전에 다른 감독에게 수영을 배운 적 있습니까?”

    “없어요.”

    적성이 수영선수인 다리 긴 여자애에게 조금 배우긴 했지만요!

    태권도나 격투기 같은 종목은 아니지만, 운동계열 감독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놀라울 정도로 자세가 잘 잡혀 있습니다. 지금은 미세한 자세교정보다는 몸을 집중적으로 만드는 편이 좋을 듯하군요.”

    “네.”

    “늦어도 모레부터 교내 헬스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할게요. 그리고 앞서 며칠은 제가 동행하면서 수영에 필요한 근육과 운동기구 사용법을 가르쳐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아르바이트에 치여서 뒷전으로 미뤄둔 것들이 하나하나 갖춰졌다.

    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식사.

    충분한 수면.

    주말에는 교내식당이 문을 안 열고 수중에 돈은 없기에 식량을 얻을 다른 공급수단이 필요했다.

    이건 그 결과,

    “안녕하세요, 서혜주 과장님!”

    출근을 안 하는 첫 주말의 새벽부터 병원을 찾아갔다.

    “강문수 씨는 검사를 안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먼저 연락을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오늘은 주말이니까요! 시간이 많습니다.”

    셋 끼를 다 챙겨주면 온종일 검사받을 의향이 있습니다!

    “그나저나...”

    눈을 게슴츠레 뜬 서혜주 과장님이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뇨. 며칠밖에 안 지났는데, 잠깐 안 본 사이에 몸이 좋아졌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나는 물 만난 스펀지처럼 하루가 다르게 살이 붙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살의 대부분은 근육!

    운동을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너무 무리하면 허리를 다칠 수 있다는 경고를 듣긴 했지만, 현재까지는 별 탈 없었다.

    “좋은 판단입니다. 단시간에 두 차례나 쓰러졌으니까요.”

    “조사하셨군요.”

    “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어디까지나 의사로서 환자의 진단기록을 살펴본 것뿐이니.”

    “압니다.”

    기분 나쁘지 않았다.

    싫기는커녕, 최강훈의 칭찬처럼 서혜주 과장님의 이런 관심이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래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뭐가요?”

    “강문수 씨가 쓰러진 두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똑같은 증상으로 먼저 쓰러진 환자가 있었다는 점이죠. 송선영 양, 최강민 씨.”

    “...우연입니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갑자기 진지해졌다.

    “정말로 우연인가요?”

    “......”

    “당신의 적성은 무당입니다. 뭔가 짚이는 부분이 없나요?”

    “전혀요.”

    해줄 말이 없다.

    “이건 한 사람의 목숨이 걸린 문제입니다. 솔직하게 대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과장님. 저에게 무슨 대답을 듣고 싶으세요?”

    “치료비.”

    “저는 할 말이... 네?”

    “최강민 씨가 회복됐을 때, 지급되는 치료비를 강문수 씨에게 전부 드리겠습니다.”

    “......”

    “......”

    “얼마인가요?”

    갑자기 할 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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