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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27화 (28/232)

027화

“허엌...!”

두 눈이 번뜩 뜨이자마자 내가 한 행동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것이었다.

늘 먹는 공기가 이렇게 맛있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 아닐까!

‘아아!’

참으로 깨끗하지 않은가! 지금 마시는 공기에는 오물 섞인 피비린내가 전혀 없고... 음?

“살아났어요!”

“이건 기적이야!”

“완전히 멈췄었는데…?”

“다행이군!”

주위의 소란스러운 목소리 덕분에 혼자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건 무슨 상황?’

나는 새하얀 침대에 바지런히 누워있었고, 그 침대 주위에는 의사와 간호사로 짐작되는 사람들이 잔뜩 서 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은 채.

“여긴...?”

“엘몰랑스 부속병원입니다!”

내 질문에 의사 선생님이 시원시원하게 답해줬다.

“...살았군요?”

“맞습니다! 진짜 기적적으로!”

“......”

나는 마법소년으로 변신한 최강민에게 살해됐다.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그럴 리 없지!’

지옥을 경험한 내 상태는 현대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수준이었다.

병원으로 빠르게 이송되어 목숨을 부지했더라도 이렇게 팔다리가 멀쩡할 리 없고.

의사 선생님이 이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1906호 병실에서 갑자기 쓰러지신 강문수 씨는 9시간 동안 의식불명 상태였습니다.”

“아...”

1906호.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내가 기적적으로 살아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꿈에서 깨어났구나!’

하지만 마냥 안심할 순 없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심장이 멈추셨습니다.”

“제 심장이요?”

“네. 그래서 심폐소생술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20분이 지나도 효과가 없어서 포기하려는 순간, 호흡이 돌아오며 깨어나신 겁니다.”

“...그랬군요.”

오싹했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 진짜로 죽을 뻔했다는 사실에!

그래도 지금은,

털썩.

의사 선생님의 말씀 덕분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었다.

‘살았구나... 살았어...’

위기가 있었지만, 어쨌든 살았다는 것 아닌가?

어깨의 힘을 풀고 부드러운 침대에 몸을 묻었다.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꿈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끔찍한 고통과 공포.

그때를 머릿속에 떠올린 것만으로도 팔이 덜덜 떨렸다.

“팔이 불편하십니까?”

“...조금.”

지독한 악몽 탓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건 정말로 꿈이었을까?

지나치게 생생했다.

“심장이 멈춘 후유증일 겁니다. 잠깐도 아니고 무려 20분 동안 정지했으니까요. 정밀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몸이 멀쩡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겁니다. 강문수 씨가 살아난 건 그야말로 기적이니까요.”

“기적... 인가요.”

기적.

트럭을 한 손으로 드는 터무니없는 괴물에게 노려진 절망적인 상황에서 탈출했으니 기적이 맞으리라.

“팔 외에 불편하신 곳이 있으십니까?”

“...배가 고프네요.”

“하하! 그건 참 다행입니다. 신진대사가 활발하다는 증거니까요! 아쉽게도 지금은 새벽 5시라서 먹을 게 마땅치 않습니다.”

“이런.”

“편의점에서 파는 죽이라도 괜찮으시다면-”

“계산은 어떻게 되죠?”

벌써 입원비와 치료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모든 비용은 최강훈 씨가 계산하신다고 했습니다. 아! 이 죽은 제가 사는 겁니다.”

“예? 왜...”

“눈앞에서 환자가 죽으면 며칠 동안 우울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제 기분을 살려준 보답입니다.”

“그런...?”

이유가 황당했다. 환자의 목숨을 살려준 의사 선생님이 역으로 감사해한다니?

그는 내게 빙그레 웃어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쉬고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넓은 병실에 홀로 남은 난 어두컴컴한 병원 천장을 바라봤다.

멍-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도,

‘녀석...’

최강훈만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병원비 때문이 아니다.

신분증이 없어서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꿈속의 최강훈은 굉장히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최강민은 말했다.

자기가 그랬노라고.

천진난만한 소년의 몸으로 나를 벌레처럼 짓밟으며-

‘생각하지 말자.’

머릿속을 다시 비웠다.

그때,

스르륵-

나 혼자 쓰는 병실의 문이 열리면서 새하얀 가운을 걸친 의사 선생님이 안으로 들어왔다.

“죽을 사주셔서 감사- 어?”

전자레인지로 데운 죽을 쟁반에 올려서 가져온 의사 선생님.

하지만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그 의사 선생님은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깨어나서 다행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서혜주 부원장이었다.

그녀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내 허리 위에 환자용 식탁을 직접 펼친 후, 죽과 식기를 올렸다.

“식기 전에 드세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서혜주입니다.”

이름은 기억하고 있다. 그녀가 이 새벽에 나를 찾아온 이유가 짐작되지 않을 뿐.

‘고민하지 말자.’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에 머리를 할애할 만큼 여유로운 상태도 아닌데.

바로 물어보기로 했다.

“서혜주 부원장님.”

“부원장? 진짜 부원장님이 들으시면 무척 섭섭해하실 겁니다. 저는 과장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서혜주 과장님. 다른 사람이랑 착각했어요.”

꿈속의 ‘서혜주’가 부원장이었던 탓에 당연히 똑같을 줄 알았다.

“제가 강문수 씨를 찾아온 이유가 궁금한 거겠죠?”

“그렇습니다.”

“너무 놀랐기 때문입니다.”

“네... 네?”

“최강민 씨랑 증상이 너무 똑같아서 놀랐습니다.”

“...그랬나요.”

서혜주 과장님은 최강민의 주치의.

바로 이해됐다.

“그리고 당신이 하루도 안 지나서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에 두 번째로 놀랐고, 20분 뒤에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에 세 번째로 놀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많이 놀라게 해드렸네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역으로 고마울 따름입니다.”

“제게요?”

“네. 당신 덕분에 희망이 보였으니까요. 제가 담당한 최강민 환자를 치료할 희망이.”

“아...”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녀는 앞으로 살날이 100일도 남지 않은 환자를 맡고 있으니까. 그래서 똑같은 증상이었던 나의 회복으로 ‘가능성’을 본 것이리라.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저는 굉장히 초조합니다.”

“최강민 때문에요?”

“네. 최강민 씨는 저희에게 매우 중요한 환자니까요. 그는 엘몰랑스의 주식을 제법 소유한 주주의 자식입니다. 무시할 수 없죠.”

“아하!”

꿈이랑 비슷했다.

주주의 자식이 아닌, 당사자가 대주주였다는 차이가 있지만.

“저는 원장님과 부원장님이 그를 포기했을 때, 출세할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기회가 아닌 오만이었죠.”

“그랬군요.”

지금은 ‘최강민’에 대해 일절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적당히 호응해주면서 듣는 시늉만 했다.

“어떻게 깨어나셨죠?”

“저도 모릅니다.”

정말로 모른다. 알았다면 그 지옥을 경험하지 않았을 터!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저를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내일부터 출근해야 해서.”

출근! 이 얼마나 가슴이 벅차오르는 단어인가!

적성 탓에 고생하긴 했지만, 그래도 최소 1년 동안 의식주까지 보장된 훌륭한 직장(?)을 구했다.

“일주일에 한 번.”

“죄송합니다.”

“공짜로 도와달라는 게 아닙니다.”

“...시급으로 주시나요?”

어쩔 수 없었다!

* * *

따뜻한 죽을 먹고 푹 잠든 나를 깨우는 시끄러운 목소리가 있었다.

“형~~!”

“...강훈이냐.”

피로가 덜 풀려서 살짝 짜증이 났지만, 두 눈이 토끼처럼 새빨개진 녀석을 보자마자 사르르 녹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만큼 나를 걱정해줬다는 뜻이니까. 절대로 치료비가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다.

“다행이야! 큰일 나는 줄 알았어!”

“괜찮아.”

이렇게 살아서 무사히 돌아오지 않았는가? 현실의 최강훈은 감옥에 가지 않았고.

그거면 된 거다.

“정말 미안해! 괜히 내가 도와달라고 해서 형을 위험에 빠트렸어!”

“나는 한 게 없는걸.”

“아니야! 형님이랑 똑같은 증상을 보였다며! 도우려다가 전염된 게 틀림없어!”

“흠... 틀린 말은 아니지.”

꿈속에서 제멋대로 사는 최강민을 만났다.

“역시! 형은 대단해!”

“실패했는걸.”

하지만 설득에 실패하고 힘으로 농락당했다. 놀이터의 꼬마에게 다리와 날개가 뜯긴 벌레처럼.

“그래도 대단해!”

“...고맙다.”

동생의 진심 어린 칭찬이 밑바닥까지 추락한 내 존엄성을 약간 회복시켜줬다.

“아! 그리고 아빠가 미안하다고 꼭 전해달래!”

“이미 괜찮아.”

“문수 형이 처음이래! 형님의 뇌파에 영향을 준 사람이. 전문용어가 많아서 나는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주치의 선생님이 아빠에게 잘 설명한 모양이야.”

“그랬구나.”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다.

“그래서 아빠가 사과의 뜻으로 치료비를 잔뜩 준다고 하셨어. 형의 통장 계좌번호만 알려달래.”

“내 통장? 번거롭게 굳이... 그냥 병원에 내는 편이 낫지 않아?”

“응? 아! 형의 치료비는 내가 미리 냈어! 아빠가 말한 치료비는 형님의 몫이야!”

“치료에 실패했는데?”

“그래도 형 덕분에 희망이 생겼다고 기뻐하셨어!”

희망.

아무래도 서혜주 과장님이 긍정적으로 설명한 영향인 것 같다.

“웃차!”

누워있던 몸을 애써 일으켰다.

“형. 벌써 움직여도 돼?”

“괜찮아. 그리고 수영 감독님이랑 내일 만나기로 약속했잖아. 그전에 집을 정리해둬야지.”

“아하! 집 정리는 내가 도와줄게!”

“됐어.”

“환자잖아! 사양할 것 없어!”

“...그래.”

보면 볼수록 최강훈이 안쓰러워서 마음대로 하게 놔뒀다.

‘이 녀석은 알까?’

이복형이 그를 장애물, 방해꾼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강훈아.”

“응!”

“...아무것도 아니야.”

최강민은 병문안을 올 가치도 없는 인간이라고, 이 순진한 녀석에게 충고해주고 싶었다.

“응? 뭔데, 뭔데?”

“그냥 불러봤어.”

“응!”

하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른 충동을 애써 삼켰다.

‘곧 죽을 인간인데.’

게다가 남의 가족을 험담해서 내게 득이 될 게 없다. 내 발언을 입증할 방법도 없고.

“형. 그냥 가면 안 돼. 퇴원하려면 의사 선생님의 진단과 허락이 꼭 있어야 해.”

“꼭?”

“꼭! 법으로 정해져 있어.”

“......”

내가 병원에 입원해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 아버지는 퇴원할 기회조차 없으셨고.

딩동♪

최강훈은 내 침대 옆에 초인종처럼 생긴 호출 버튼을 눌렀다.

(환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곧바로 스피커에서 간호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퇴원하고 싶어서요. 의사 선생님을 뵙게 해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최강훈의 주도로 여기까지 매우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잘하네.”

“형님을 보러 자주 왔으니까. 저절로 알게 되더라고.”

“...그래.”

호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벌써 퇴원하신다고요?”

“네. 집을 오래 비워둘 수 없는 처지라서요.”

나는 건강함을 과시하듯 팔다리를 가볍게 움직여 보였다.

“흠... 그래도 검사를 한 번 받아보십시오.”

“오래 걸리나요?”

꿈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검사를 받은 기억이 있어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래 안 걸립니다.”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세요.”

“......”

“......”

“...빨리 끝나면 8시간 정도-”

“안 받아요!”

내가 이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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