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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26화 (27/232)
  • 026화

    “무당...?”

    “변호사는 내 적성이 아니야. 그건 형도 알지?”

    “......”

    “나는 귀신이 아니다.”

    “무당이 귀신만 찾아다닌다는 건 오해야.”

    “...더는 못 들어주겠군. 하! 꿈이라고? 이렇게 생생한 꿈이 있나? 그러면 그 꿈에서 어떻게 깨어나지?”

    “그건...”

    나도 모른다.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모르는데, 나가는 방법이라고 알겠는가?

    “지금이 꿈이라면 당장 나를 깨워봐라.”

    “......”

    “못 하는군.”

    “맞아. 못 해.”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런데 네 말을 믿으라고?”

    “나도 억지란 건 알아. 하지만 형도 알 거야. 본인의 능력이 비현실적이란 걸.”

    “이상한 말을 하는군. 나는 마법소년이 아니다.”

    “흠...”

    최강민의 단호한 목소리에 주춤하고 말았다.

    ‘정말로 아닌가?’

    그의 정체가 마법소년이란 뚜렷한 정황과 확신이 있음에도 한순간 흔들리고 말았다.

    “다시 묻지. 내가 뭐라고?”

    “내 대답은 똑같아. 형은 마법소년이 틀림없어.”

    “......”

    “형. 정신 차려. 사람이 아무런 장비 없이 하늘을 나는 건 불가능해.”

    “불쾌하군. 남들이랑 똑같이 취급하지 마라. 나는 특별하다.”

    송선영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나는 특별하다고.

    “형이 남들보다 특별해서 그런 힘을 얻었다는 거야?”

    “그런 힘이 아니라 마법이다.”

    “...마법을 얻었다는 거야?”

    “그래.”

    쭉 발뺌하던 최강민이 드디어 자신의 정체를 인정했다.

    특별한 인간이라고.

    마법소년이라고.

    “형의 어디가 특별한데? 혈통? 출생? 그거라면 최강훈도 똑같아.”

    “그 녀석이랑 어디가 똑같지? 나온 배가 다른데.”

    친모(親母)가 다른 이복동생이랑 비교당했다고 느낀 최강민의 말투가 날카롭게 변했다.

    “강훈이만이 아니야. 여성의 배에서 나왔다는 건 모두가 똑같잖아?”

    “말장난하지 마라.”

    “이게 말장난으로 들려?”

    “...이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한 시간 낭비 같군.”

    휙.

    최강민이 번뇌로 가득한 얼굴을 감추듯 돌아섰다.

    “형. 잊지 마. 100일 안에 못 깨어나면 형은 죽어!”

    “......”

    내 경고를 무시한 그는 도망치듯 그곳을 떠났다.

    * * *

    세계에서 가장 높기로 유명한 빌딩의 최정상.

    최강민은 투명한 벽창 너머에 안개처럼 펼쳐진 구름 아래의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강문수... 하지만 어떻게...?”

    그는 택시를 타고 있는 한 남자를 관찰하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15년 전에 확실하게 죽었을 터!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직접 병원에 침투해서 눈엣가시 같은 변호사 강문수를 처리했다.

    ‘어떻게 잊겠어.’

    그의 성공에 방해되는 경쟁자이자 이복동생인 최강훈을 지키려고 애쓰던 인간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뿐이라면 비슷한 사람이 여럿 있기에 지금까지 기억하진 않았을 터.

    “강문수 변호사...”

    최강훈을 구하기 위해 직접 변호사가 된 강문수는 터무니없는 업적을 이뤄냈다.

    편중된 언론을 포함한 온갖 악조건을 뚫고 최고의 변호사들을 상대로 승소한 사건!

    ‘그때, 내 자존심에 상처를 냈지.’

    적성을 초월한 강문수는 순식간에 인기인이 됐다.

    단 한 번도 내려간 적이 없는 마법소년의 인기를 며칠 동안 뛰어넘을 정도로.

    그게 이유였다.

    강문수를 죽인 진짜 이유.

    이복동생을 도왔기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오랜 감옥 생활로 지지층과 기반을 잃은 최강훈은 이미 그의 적수가 안 됐기에.

    “하! 꿈이라고?”

    정말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다.

    삐-

    (회장님. 바쁘십니까?)

    가업을 이어받은 초창기부터 그를 보좌해온 비서가 업무용 수화기 너머에서 묻는다.

    “아니. 무슨 일이 있나?”

    비서에게 역으로 되묻는 최강민의 질문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다.

    (평화롭습니다.)

    몸담은 회사가 평화롭다는 의미가아니다.

    지구, 인류.

    최강민이 최신뉴스를 항상 주시할 순 없기에 ‘마법소년의 눈과 귀’가 되어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비서는 그중 하나.

    마법소년을 지지하는 최고의 후원자이자 세계적인 사업가인 최강민의 정체가 마법소년 당사자란 비밀을 아는 몇 안 되는 최측근이다.

    “그러면 무슨 일이지?”

    (사모님께서 통화가 안 돼서 걱정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나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세계가 멸망한 후겠지.”

    (그토록 안전한 분이 통화가 안 돼서 더 걱정하신 모양입니다.)

    남편의 숨겨진 정체를 몰라서 생긴 괜한 걱정.

    “저번처럼 자네가 대신 대충 둘러대지 그랬나.”

    (아드님의 문제로 직접 얘기하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또 사고 쳤나.”

    참으로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아버지는 세상을 지키는 정의의 사도인데, 그 아들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니...

    (통화하는 사모님의 목소리가 어두우신 것으로 보아, 회장님의 예상이 맞으실 겁니다.)

    “흠. 그러면 1시간 뒤에 통화하자고 대신 전해주게. 지금은 생각할 게 많아서.”

    (알겠습니다.)

    삑-

    비서의 목소리가 사라지면서 최상층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생각이라? 이게 고민할 문젯거리가 되나?’

    바로 조금 전에 직접 말해놓고도 우스웠던 걸까?

    피식 웃은 최강민은 창문 너머의 구름에 가려진 지상에서 벌레처럼 걸어가는 강문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내가 저딴 놈 때문에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다니...’

    푹신한 소파 위에 대충 던져둔 개인용 휴대전화에 부재중 통화가 3건이나 있었다.

    세계적인 배우였던 아내.

    오만한 아내를 닮은 아들!

    정의로운 마법소년의 아내와 아들로는 자격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 이 세계가 꿈이라면 지금의 가족과 인연도 전부 거짓이란 얘기가 된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

    가당치도 않다.

    애초에 꿈이 20년 동안 이어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최강민은 강문수가 콕 찍어서 지적한 ‘그런 힘’은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그렇기에 더욱,

    ‘안 되지.’

    힘들게 쌓아 올린 그의 인생을 통째로 부정하는 강문수의 존재 자체가 거슬렸다.

    거슬리면?

    “정의의 사도가 나설 차례군.”

    내 판단이 곧 정의다.

    * * *

    거물이 된 최강민을 운 좋게 만날 수 있었지만, 설득에 실패한 나는 곧바로 택시를 탔다.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엘몰랑스 병원으로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병원에 일찍 돌아가봤자 할 일도 없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이나 계획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젠 어쩐다...?’

    서혜주 주치의는 최강민에게 남은 시간이 100일도 안 된다고 했다.

    이대로 최강민이 자연사할 때까지 기다릴까?

    이곳이 현실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여기서 1년만 버티면 된다.

    ...정말로 그럴까?

    최강민이 죽으면 이 꿈에서 해방된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나저나...

    “막히네요.”

    차도 한복판에 멈춰선 택시는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걸어서 가는 편이 훨씬 빠르지 않을까?

    “기사님.”

    “네.”

    “제가 이 근방을 처음 와봐서 그러는데, 평소에도 이렇게 막히나요?”

    “설마요. 자주 막히는 곳이었으면 내비게이션이 이 길로 안내하지 않았을 겁니다. 저도 피해갔을 테고. 순전히 사고 때문입니다.”

    “사고...”

    내 운이 나쁜 걸까?

    굉장히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택시 운전기사 아저씨가 운전대에서 완전히 손을 떼며 말했다.

    “바로 조금 전에 이 앞에서 교통사고가 크게 난 모양입니다.”

    “우회할 수 없나요?”

    “주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건 좀 힘듭니다.”

    “흠...”

    함께 멈춘 버스와 승용차들이 사방에서 빈틈없이 막고 있어서 택시는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다렸더니...

    “대체 뭐야!”

    “급해 죽겠는데!”

    “미치겠구먼!”

    나처럼 이 상황이 답답했던 사람들이 운전석을 박차고 차도(車道) 한복판으로 나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궁금했던 나는 기다렸다가 되돌아오는 운전자에게 질문했다.

    “무슨 일인가요?”

    “커다란 바위가 도로 한복판에 떨어졌습니다.”

    “바위...?”

    도시 한복판에 콘크리트 덩어리도 아니고 바위가?

    현실성이 없었다.

    “그걸 피하려던 차들이 줄줄이 충돌했습니다.”

    “전혀 안 놀라시네요.”

    “외계인의 비행선이 추락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아하! 듣고 보니 그렇네요.”

    재난에 익숙한 운전자의 태도가 내 마음을 짠하게 했다.

    이런 일에 익숙한 사람이 바로 옆에도 한 명 있었다.

    “손님. 길이 정리되려면 한참 걸릴 듯하니 지하철을 이용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돈은 안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탁.

    택시에서 내린 나는 도망치듯 거리를 달렸다.

    왜?

    ‘위험해!’

    차도 한복판에 커다란 바위가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내 생존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조심하라고.

    일단, 어둡고 좁은 골목 같은 사람의 왕래가 적은 장소는 무조건 가지 말아야-

    “엌?!”

    택시 운전기사 아저씨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가까운 지하철로 향하던 내 몸이 붕 떠올랐다.

    덥석!

    올빼미가 낚아서 하늘로 끌고 간 들쥐처럼 내가 납치당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큭...!”인적이 뜸한 공원에 거칠게 내동댕이쳐진 후였다.

    그리고 이런 내 앞에,

    “나는 세계의 평화와 적성을 수호하는 마법소-”

    “최강민...!”

    “...내 얼굴에는 인식을 방해하는 마법이 걸려 있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

    “병원에서 변신한 나를 단번에 알아봤을 때는 우연으로 치부했었는데, 너에게는 내 마법이 안 통하는 것 같군. 참 이상해.”

    “내 질문에 대답해!”

    “지난 20년 동안 나를 의심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내 마법에 모두가 속아 넘어갔다.”

    펄럭~

    앳된 소년의 외모로 변신한 최강민이 붉은색 망토를 휘날리며 내게 다가왔다.

    “질문이라고 했나? 이미 답했을 텐데? 세계의 평화와 적성을 수호하는 마법소년이라고.”

    “나는 무슨 짓이냐고 물었어!”

    “그게 내 대답이다. 너는 이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

    “그런 억지를...!”

    “강문수를 자칭하는 자여. 너야말로 정체가 뭐지? 마법의 시조(始祖)조차 내 마법을 완벽하게 방어할 수 없었다.”

    “최강민. 내 정체가 궁금해?”

    아주 좋은 질문이다!

    “...그렇다.”

    “꿈이 현실의 인간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리 없잖아. 내 존재 자체가 꿈이란 증거야!”

    “......”

    “나는 형의 꿈에 어울려주는 광대가 아니니까...!”

    “여기까지 와서도 꿈 타령인가.”

    “형이야말로 정신 차려!”

    “뭐, 됐다. 네가 진짜 강문수라도 상관없어. 이번에야말로 절대 부활할 수 없도록- 아니, 또 부활해도 내 앞에 못 나타나도록 철저하게 교육시켜주지.”

    “교육? 그게 무슨- 아아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오른팔이 사라졌다!

    “확실히... 네 말대로 정신에 영향을 주는 마법만 아니면 상관없는 모양이군.”

    휙~

    가슴이 웅장해지는 유아용 장난감처럼 생긴 지팡이를 한 손으로 빙그르르 돌리면서 웃는 최강민.

    그 지팡이 끝에 박힌 구슬이 무지갯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전혀 인지하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최강민이 무언가를 했다는 방증.

    “아아악...!”

    절단된 오른쪽 어깨의 통증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파! 아파! 꿈인데 아파! 꿈이 아닌가? 꿈이 아니야?!’

    이성적인 판단이 되질 않았다.

    “다음은...”

    “살려주세요! 여길 보세요! 마법소년이 미쳤어요...!”

    “하하! 외부에 도움을 요청해도 소용없어. 이 공간은 마법으로 분리되어 있으니까. 다음은 여기.”

    “헛?!”

    휘청!

    최강민의 설명을 무시하고 등을 보이며 도망치던 나는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발이 꼬여서?

    아니.

    내 오른팔에 이어서 왼발도 소리 없이 사라진 탓이다.

    털썩!

    ‘젠장! 젠장! 젠장...!’

    나는 최강민에게 대항은커녕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우냐?”

    “그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無力)한 내가 너무나 한심하고 분해서 눈물이 났다.

    “하하! 진짜 꼴사납군!”

    “그건 내가 할 말이다! 꿈에서 우쭐대니 좋냐? 이 병신아...!”

    “...아직도 그 소리군.”

    “몇 번이고- 아악?!”

    “야. 편히 죽을 생각은 버려. 교육할 게 많으니까.”

    그리고 나는 지옥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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