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25화 (26/232)
  • 025화

    [2장-3절] 정체를 밝혀라!

    마법소년이 있는 이 세계에는 괴상한 법이 존재한다.

    이름하여, 마법소년 특별법!

    마법소년이 정의로운 일을 하다가 발생한 모든 피해의 보상은 그 지역이 속한 나라가 한다!

    ...라는 초현실적인 법이다.

    사람이 죽어도.

    건물이 무너져도.

    도로가 마비돼도.

    직장을 잃어도.

    마법소년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뜻이다.

    ‘의도는 좋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영웅이 기물파손과 인명피해가 두려워서 소극적으로 나선다면 더욱 큰 재앙을 초래하게 될 테니까.

    그래서 준 면책권.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큰, 치명적인 맹점이 있다.

    ‘위험해.’

    그 정의의 사도가 정의롭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이 세계는 사람을 죽여도 벌을 받지 않는 무법자의 놀이터로 전락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 무법자가 나를 ‘또’ 노릴 건 자명했다.

    아무튼,

    “아주머니. 더 주세요.”

    “호호! 총각. 많이 먹어요.”

    “감사합니다!”

    나중에 죽더라도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에 대한 흥미가 식지 않은 서혜주 부원장이 병원에서 ‘환자’ 신분으로 좀 더 머물 것을 권했다.

    그리고 나는 이 제안을 망설임 없이 덥석 물었다.

    왜?

    ‘해부하지 않은 게 어디야.’

    인권(人權)을 무조건 보장받는다는 막연한 믿음은 좋지 않다.

    정밀검사를 한 엘몰랑스 병원에서 나쁜 의도가 있었다면 매우 위험했을 아찔한 상황.

    하지만 아무것도 안 했기에 믿는 것이다.

    단지 그뿐... 와우!

    ‘대박! 반찬에 소고기를 이렇게 많이 넣다니...!’

    엘몰랑스 병원의 직원식당은 내게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머릿속에 산처럼 쌓여있던 걱정과 경계심이 싹 사라졌다. 수영장 감독님이랑 한 약속도 포함해서.

    다만,

    「속보입니다! 하늘에 외계인의 비행선이 출현했습니다!」

    「맙소사! 외계인이 남편의 복수를 선언했습니다!」

    「피하십시오! 외계인이 무차별적인 학살을 시작했습니다!」

    「마법소년이 나타났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화면으로 보이십니까?! 마법소년이 비행선을 걷어찼습니다!」

    식당 곳곳에 설치된 커다란 텔레비전의 생중계가 매우 시끄럽고 거슬렸다.

    여기에 더해,

    “와아아!”

    “마법소년이다!”

    “힘내라! 마법소년...!”

    숟가락을 내려놓은 시청자들의 함성과 응원까지!

    ‘아씨! 시끄러워서 밥을 못 먹겠네...!’

    마법소년, 마법소년, 마법소년...

    내가 예민한 걸까? 이러다가 노이로제에 걸리겠다.

    “하아...”

    하지만 답답해도 당분간은 어쩔 수 없다.

    서혜주 부원장의 권유로 당분간은 엘몰랑스 병원에서 생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불안하긴 하지만.’

    내가 당장 이 세계(꿈)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이상, 숙식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그 첫 단계.

    내가 법정에서 ‘강문수’로 인정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왜?

    여기는 자본주의사회니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마법소년 특별법의 피해보상금을 받기 전에는 대중교통조차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다. 꿈에서 아르바이트할 게 아니라면.

    ‘그것도 무리지.’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된 상태라서 불법적인 경로 외에는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다.

    “마법소년~!”

    “최고다! 마법소년!”

    “또 이겼다...!”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정상이 아니야.’

    허구한 날마다 이런 재앙이 터진다면 멀쩡한 도시가 없을 터.

    그래도 사람들은 꿈과 희망으로 가득해 보였다.

    * * *

    ‘흠. 미래의 지구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별거 없네.’

    SF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없었다. 생김새는 변했어도 여전히 바퀴로 땅 위를 굴러가고 있었다.

    서혜주 부원장의 말만 들으면 수명을 정복한 것 같은데, 길거리를 걷는 사람의 대부분은 얼굴에 주름 가득한 노인! 고령화 사회가 매우 심각했다.

    그리고,

    “팝니다! 마법소년 변신 의상!”

    “마법소년의 마법봉! 지금 구매하면 하나 더!”

    “사장님이 손수 만들었습니다! 마법소년의 명장면 모음집!”

    “20년 전통의 마법소년 국밥!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미래는 마법소년으로 가득했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꿈나무들의 상상력을 초월한 미래.

    이런 미래는 사양하고 싶다.

    ‘꿈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어떻게 해야 빠져나갈 수 있는지는 미지수.

    그래도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 아니라서 추측은 할 수 있었다.

    이 세계(꿈)의 중심은 최강민.

    예전에 송선영을 중심으로 세상이 굴러갔던 것처럼 이곳은 마법소년 최강민이 주인공이었다.

    둘의 차이가 있다면?

    ‘태도겠지.’

    송선영은 내게 호의적이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인간, 남자로 생각해줬다.

    하지만 최강민은?

    “호의는 무슨.”

    나를 만나면 죽이려고 하지 않을까? 정의의 가면을 쓴 탓에 대놓고 죽이진 못하더라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죽으면 꿈에서 깨어날까?’

    굳이 자살해서 확인하고 싶진 않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가 현실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건 틀림없었다.

    일단,

    “손님. 어디로 갈까요?”

    서혜주 부원장이 챙겨준 용돈으로 택시를 잡았다.

    저렴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를 시비나 사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 같아서는...’

    감옥에 20년 가까이 있었던 최강훈을 만나고 싶다. 하지만 신분증도 없는 수상한 인간의 면담이 받아들여질 리 없다.

    결국, 내 선택은 하나뿐.

    “최강민 회장의 사옥(社屋)까지 부탁합니다.”

    정면승부다.

    * * *

    “와... 실화냐...”

    고개를 90도 젖혀서 봐도 구름에 가려져서 꼭대기가 안 보이는 초고층 빌딩.

    가면서 말문을 튼 택시 운전기사 아저씨의 설명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라고 한다.

    삑-

    “엑?”

    주변의 사람들처럼 아무 생각 없이 자동문 안으로 한 발자국 내딛자마자 경고음이 울었다.

    “실례지만, 이곳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입니다.”

    자동문 옆에 마네킹처럼 가만히 서 있던, 검은색 정장과 선글라스로 비밀요원 같은 복장을 한 남자가 사무적으로 말했다.

    “최강민 회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이상하군요. 약속을 잡으셨다면 출입증으로 이용되는 회장님의 명함을 소지하고 계실 텐데요.”

    “약속은 잡지 않았습니다.”

    “그러시면 약속을 잡으신 후에 다시 와주십시오.”

    자주 겪는 일인 걸까? 남자는 짜증이 전혀 섞이지 않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말을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안 됩니다.”

    부탁할 때부터 큰 기대를 안 했기에 실망도 없었다.

    “안 들어가고 이 앞에서 기다리는 건 상관없겠죠?”

    “상관없습니다. 회장님은 수직이착륙기를 주로 이용하시기 때문에 뵐 가능성은 적지만.”

    “......”

    재벌은 지상의 공기를 안 마시는 모양이다.

    “지금 서 계신 곳은 길을 막으니 저쪽에서 기다리십시오.”

    “...그건 곤란합니다.”

    “안 가시면 저도 곤란합니다. 경찰을 부를-”

    “앞으로 1년 동안 제 의식주를 책임질 수영장 감독님이랑 이틀 뒤에 만나기로 약속했거든요.”

    “그게 무슨...?”

    “한가하게 기다릴 만큼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못 들어갑니다.”

    짙은 검은색 선글라스에 가려져서 보이진 않았지만, 입구를 막아서 남자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안 들어갑니다.”

    한 걸음 물러선 나는 숨을 한껏 들이켰다가 내뱉으며 외쳤다.

    “최강민 형! 듣고 있지? 후회하기 싫으면 당장 나와! 내 목소리를 기억하지? 강문수가 왔어!”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읔?!”

    꾹.

    남자가 내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며 힘주어 말했다.

    ‘아프잖아!’

    이렇게 아픈데도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는 게 놀랍다.

    “최강민 형...!”

    “따라오십시오.”

    남자가 힘으로 나를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멀리, 건물 밖으로.

    이젠 입구에서 기다리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됐지만, 목적은 달성했기에 상관없다.

    “뭐지? 뭔 일이야?”

    “강문수? 아는 사람?”

    “누가 소란을...”

    이 건물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시선을 끌어서?

    아니다.

    ‘곧 내려오겠지.’

    이건 기대나 희망이 아닌 확신.

    잘난 마법소년이니까!

    지구를 혼자 지키다시피 하는 능력자가 방음벽과 거리 때문에 내 목소리를 못 들었을 리 없다.

    못 들었다면 사실은 능력이 변변찮다는...

    “시끄럽군.”

    “회, 회장님?!”

    그리고 몇 초도 안 지나서 정말 등장했다.

    최강민.

    뿔테 안경을 쓴 그는 왼쪽 가슴에 붉은색 장미꽃이 장식된 흰색 턱시도 차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병원 19층에서 봤던 소년의 모습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었네.’

    20년 미래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젊었지만, ‘소년’이라고 부르긴 힘들었다.

    “시끄럽다고 했네.”

    “죄송합니다! 이 사람이 소란을 일으켜서-”

    “자네의 변명이 시끄럽군.”

    “......”

    최강민의 차가운 한마디에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이며 침묵했다.

    “형. 오랜만이야.”

    “...정말로 강문수, 너냐?”

    “당연하지. 의심되면 옛날에 같이 놀았던 일도 얘기할 수 있어.”

    “......”

    반갑다는 환영 인사 대신, 눈을 게슴츠레 뜬 최강민은 나를 탐색하듯 위아래로 훑어봤다.

    “아직도 못 믿겠어?”

    “...너는 강문수가 될 수 없어. 강문수는 15년 전에 죽었다.”

    “하지만 여기 있지.”

    부정해도 소용없다. 진실은 가까이에 있으니까!

    “아니. 네가 정말로 강문수라면 지금 같은 태도를 보일 수 없다.”

    “왜?”

    “그 이유를 모른다면 너는 강문수가 아니다.”

    “분노하지 않아서?”

    “......”

    최강민은 무거운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감시카메라가 빼곡하게 설치된 엘몰랑스 병원에 침투해서 환자를 암살할 수 있는 능력자.

    마법소년밖에 없다.

    “형.”

    “정체를 밝혀라.”

    “응? 아직도 못 믿어?”

    “악당 중에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힘을 가진 자도 있지.”

    “아하!”

    진짜 성가신 세계네!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고인(故人)을 모욕한 너를 마법소년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정말로 악당이었으면 형의 정체부터 밝혔겠지. 안 그래?”

    “......”

    아까부터 계속 나를 노려보던 최강민이 시선을 뗐다.

    그리고는 뒤편을 힐끔 보며, 배경처럼 조용히 대기 중인 남자를 향해 손목을 까딱거렸다.

    멀리 떨어져 있으란 의미.

    손짓의 의미를 눈치챈 그는 거리를 벌린 후, 행인들이 우리의 근처에 못 오도록 막아섰다.

    “지구를 지키는 마법소년 씨. 대화할 마음이 생겼어?”

    “착각하지 마라. 너를 강문수라고 인정한 건 아니다. 목적이 뭐냐?”

    “형을 깨우는 것.”

    “깨운다고? 나를?”

    “형은 사람이 날개나 추진기도 없이 하늘을 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의심해본 적 없어?”

    “자연과학을 논할 생각이라면 전문가랑 상담해라.”

    “나는 진지해.”

    “나는 특별하다.”

    돌고래 뺨칠 정도로 수영을 잘하는 어떤 여학생도 비슷한 발언을 했었는데.

    추억을 곱씹으며 재차 받아쳤다.

    “전부 꿈이야.”

    “강문수로 변장하더니 이번에는 꿈 타령인가.”

    “형은 엘몰랑스 병원의 1906호 병실에 식물인간처럼 누워있어.”

    “......”

    내 진심이 조금은 통한 걸까?

    코웃음 치던 최강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여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아. 현실은 아직 10년도 지나지 않았거든.”

    “헛소리.”

    “형의 주치의가 말했어. 100일 안에 못 깨어나면 합병증으로 죽는다고. 이곳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1년 정도-”

    “닥쳐!”

    “......”

    “정체를 밝혀라!”

    처음이랑 같지만 다른 요구.

    그래서 나도 다르게 대답해줬다.

    “무당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