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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23화 (24/232)

023화

[2장-2절] 이 세계의 평화를 위해!

예전에 송선영의 사건 때도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을 보자마자 의심했었다.

이건 꿈이 아닐까, 라고.

사람이 날개나 추진기 없이 날아다니는 현상을 보면서 나는 똑같은 의심을 품었다.

‘이것도 꿈이려나?’

정황적 근거가 있었다.

나는 송선영의 꿈에 빠져들기 직전에 학교 옥상에 쓰러져 있던 그녀를 발견하고 곁에 있었다.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 장소는 달랐지만, 병원에 입원한 최강민 형을 병문안 갔다.

게다가,

‘너무 공교로워.’

송선영과 최강민 형의 증상은 똑같았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고, 치료도 안 되는 의식불명 상태!

의사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자는 중이라고 한다. 외부의 물리적인 자극으로는 깨지 않을 만큼 아주 깊은 수면.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사, 살려...”

“아악! 의사! 의사~!”

“머리에서 피가...!

이 상황이 영화 촬영 중이라면 카메라와 관계자들이 이곳에 잔뜩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보라.

“으으...”

“아으으...”

유리창이 깨지면서 튄 파편에 피부를 긁히거나,

“아악! 내 눈...!”

“눈! 눈이 안 보여~!”

눈에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박힌 심각한 환자도 있었다.

‘말도 안 되지.’

한 번의 촬영을 위해 관련 없는 민간인들을 끌어들였을 리 없다.

즉, 이건 실제 상황!

동시에 꿈이기도 하다.

‘아마도.’

엘몰랑스 병원 VIP 병동의 유리창을 깨며 난입한 괴한을 추격하던 남자는 최강민이 틀림없다.

틀림없긴 한데...

‘어째서 멀쩡한 거지?’

이집트 미라처럼 삐쩍 말랐던 그가 하늘을 날아다닐 만큼 건강한 이유를 모르겠다.

“괜찮으십니까?”

“네.”

구급대원들이 사태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중환자부터 빨리! 서둘러!”

“의사! 의사를 불러줘...!”

“경상자는 이쪽으로!”

여긴 세계 최고의 엘몰랑스 병원이었다. 다친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한다고 고생할 필요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정밀진단을 받아보십시오. 병원에서 이번 사고에 휩쓸린 분들에게는 무상으로 지원해줍니다.”

“공짜로요?”

“네. 공짜입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정부에서 마법소년이 관련된 사건의 피해자는 전폭적으로 지원해줍니다.”

“아! 그렇군요. 꼭 진단을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짜는 늘 옳으니까!

그나저나...

‘마법소년이라...?’

아까부터 사람들이 계속 언급하던 생소한 고유명사.

마법소년!

동심(童心)을 자극하는 단어를 다 큰 성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언급하고 있었다.

“마법소년을 봤어?”

“엄마. 나는 커서 마법소년이랑 결혼할 거야!”

“오! 마법소년이 또 불가능한 사건을 해결했군.”

“사랑해요! 마법소년!”

대화를 대충 짜깁기해보면, 마법소년은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쯤 되는 것 같았다.

“강민 형...”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최강민 형이 대단하다거나 부럽다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왜?

‘다 죽어가는 형이 꿈속에서 영웅 놀이에 심취해 있다니...’

여러 정황을 통해서 이곳을 꿈의 세계라고 단정했을 때, 착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최강민 형이 너무 측은했다.

아무튼,

“실례합니다.”

“예? 뭐죠?”

사람이 다치고 응급대원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혼란스러운 상황.

하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고 계신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마법소년이 누군가요?”

“그걸 왜 저에게 묻나요?”

한가해 보여서요!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순 없는 노릇이기에 혀에 꿀을 바르기로 했다.

“잘 아실 것 같아서요. 마법소년이랑 비슷한 판타지 장르를 보고 계시길래.”

“어머! 아직도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었네. 이봐요. 똑바로 잘 들으세요. 이건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을 기반으로 한 현대물입니다.”

“그, 그렇군요.”

사람이 덤프트럭을 던지고 안구(眼球)에서 광선이 나가는 판타지가 현실이 되면 현대물로 분류되는군.

“됐어요. 마법소년도 모르는 분께 뭘 기대하겠어요.”

“......”

“마법소년은 강대한 힘을 악용하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아니, 유일한 영웅이에요!”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당신 손에 들린 스마트폰은 장식인가요? 나머지는 직접 검색해서 알아보세요.”

“...장식일 리가요. 인터넷에 떠도는 무분별한 정보가 아닌, 살아있는 지식을 듣고 싶었을 뿐입니다.”

“말은 잘하네요. 현대물이 뭔지도 몰랐으면서.”

“하하!”

나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마법소년은 아무런 대가 없이 10년 넘게 지구를 지켜왔어요. 초거대 운석, 미친 과학자, 돌연변이, 외계생명체, 마법소녀, 흉악범... 셀 수 없이 많은 위기로부터요.”

“그렇군요.”

국가 혹은 세계가 힘을 합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개인이 나서서 해낸 모양이다.

그야말로 마법!

좀 더 알고 싶었지만, 아주머니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

“아직도 질문이 남았나요?”

“아니요.”

여기서 ‘네.’라고 대답하는 건 눈치 없는 행동이리라.

“아직도 마법소년에 대해 궁금하면 스마트폰을 이용하세요.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던가.”

“네. 상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독서 되세요.”

다른 사람에게 또 질문할 필요성을 못 느낀 나는 대기표를 뽑은 후, 대기석에 앉아서 내 차례가 오길 차분히 기다렸다.

‘진짜네.’

마법소년의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을 무상으로 치료, 검사해 준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거참...”

아주머니의 핀잔 같은 조언이 떠올랐다.

스마트폰은 장식이냐?

‘네! 제 스마트폰은 장식입니다!’

아까부터 내 스마트폰에는 경고문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신호가 잡히지 않습니다. USIM 카드를 교체해주세요.」

그 탓에 인터넷은커녕 대부분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

13년 전- 아니지. 16년 전에 나온 구형 기종이라서 이동통신 단말기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아! 혹시? 이런...’

엘몰랑스 병원의 공용 와이파이(Wi-Fi)도 잡히지 않았다.

딩동!

“음? 벌써 내 차례네.”

번호표를 들고 접수처로 향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19층의 사고로...”

“여기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작성해주세요.”

“네.”

“아프신 곳이 있으면 상세히 적어주세요.”

“네.”

스윽-

잽싸게 기록해서 재출했다.

“접수를 바로... 응?”

타자기를 부지런히 두드리던 간호사가 멈칫했다.

“왜요?”

“...제대로 기재하셨는지 한 번 더 확인해주세요.”

“네. 맞아요.”

“그러면 전산상의 오류가 있는 것 같아요.”

“무슨 오류길래….”

“가끔 있는 문제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접수가 완료됐습니다. 저 복도를 따라 쭉 가셔서 이 접수증을 제출하신 후에 기다리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스마트폰도 고장이나 다름없는 상태이기 때문일까?

살짝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간호사의 말처럼 중요한 문제는 아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 뒤에는?

“강문수 씨.”

“네.”

“저 남성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으신 후, 4번 검사실 앞에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네.”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 * *

뼈에 금이 가거나 부러졌는지 확인하는 X선 촬영(X-ray) 정도의 간단한 검사만 받을 줄 알았다.

내 소변을 재취하고, 피를 뽑아갈 때도 그러려니….

그게 3시간 전의 일이다.

‘뭔가 좀 많은데…!’

처음에는 대기가 길어서 오래 걸렸지만, 이젠 검사가 끝나면 대기나 순서를 무시하고 곧바로 다음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도 오래 걸릴 정도로 다양한 검사를 받고 있었다.

“강문수 씨.”

“네.”

“대장내시경을 받아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이걸 꼭 받아야 하나요?”

내 엉덩이를 생판 모르는 남자에게 보여주기 꺼려졌다.

“필수입니다. 사람의 몸을 지배하는 기생충이 등장한 뒤부터 대장내시경은 국가의 안보가 걸린 의무사항이 됐습니다.”

“......”

‘이 세계는 진짜 뭐야?! 그런 흉흉한 기생충이 존재한다고?!’

소름이 돋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수면 마취를 할 겁니다. 자고 일어나면 다 끝나 있을 겁니다.”

“저기, 의사 선생님.”

“검사는 언제 끝나나요? 벌써 3시간 넘게 받아서요.”

“...그건 제 담당이 아니라서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물어봐야...”

“자, 이제 약물이 투여됩니다. 마음속으로 열을 세세요.”

“네? 네.”

‘하나, 둘, 셋, 넷-’

열까지 전부 셀 수 없었다.

* * *

그 뒤에 상당히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던 것 같다.

“으으... 여긴?”

수면 마취에 쓰인 약물이 독했던 걸까? 눈꺼풀이 무거웠다.

하지만 애써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전혀 다른 장소.

나는 깔끔한 병실의 푹신한 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녹색 커튼으로 가려진 탓에 창문 밖은 보이지 않았지만, 정면의 벽에 걸린 시계를 통해서 지금이 한밤중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스르륵-

“깨어나셨군요.”

병실의 자동문이 열리면서 간호사가 들어왔다.

“제가 얼마나 잤죠?”

“수면 마취에 들어간 뒤부터 4시간쯤 지났습니다.”

“아...”

“몸은 좀 어떠신가요?”

“무겁네요.”

“아직 마취가 덜 풀려서 그럴 거예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로 오고 계시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직접 오신다고요?”

“네. 슬슬 도착하실 시간이... 아! 오셨네요.”

스르륵-

소리 없이 열린 자동문 앞에 선 의사 선생님이 보였다.

“강문수 씨. 몸은 어떻습니까?”

“괜찮은 것 같습니다.”

대장내시경을 처음 받아봤다.

체감상으로는 순식간에 끝나서 아프거나 수치스럽진 않았지만, 내 기분 탓일까?

또 받고 싶진 않았다.

정확히는, 수면 마취를 받고 싶지 않았다.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드디어...”

너무 오래 걸려서 몸에 문제가 있는지 걱정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매우 건강하십니다.”

“매우요?”

“네. 매우.”

매우 허탈한 답변이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 이런 몸인데 건강하다는 건가요?”

뼈만 남은 내 손목을 힘없이 흔들면서 검사 결과에 딴죽을 걸었다.

그러나,

“네.”

의사 선생님은 관련 자료를 내 앞에 제시하면서 단언했다.

그 바람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지만, 검사를 받는다고 고생한 내 시간과 정성이 아까워서 고분고분 물러설 순 없었다.

“선생님. 이걸 보세요. 걷는 것도 시원찮다고요.”

“강문수 씨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영양적인 문제는 마법소년이랑 연관성이 없으므로 본원에서 해결해드릴 수 없습니다.”

“아하!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해주셨어야죠. 그랬다면 오해가 없었을 텐데.”

“아니요. 오해가 아닙니다. 강문수 씨의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까요. 건강의학과 의사로서 굳이 조언하자면, 다이어트를 적당히 하실 것을 권합니다.”

“......”

‘다이어트라고? 내가?’

황당했다.

하지만 관련 자료까지 보여주며 설명하는 의사 선생님께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질문이 있습니다.”

“저에게요?”

“네. 정말 중요한 겁니다.”

“...하세요.”

의사가 환자의 건강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궁금했다.

“정말로 강문수 씨가 맞습니까?”

“네?”

“본원에 제출하신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은 15년 전에 사망하신 강문수 씨의 것입니다.”

“......”

“강문수 씨를 자칭하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

내가 15년 전에 죽었다고?

다이어트보다 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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