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화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엘몰랑스 대학 부속병원.
의료계 적성을 보유한 전문가 중에서도 각 분야의 최고들만 모아놓은 의학의 메카다.
엘몰랑스 병원에서 못 고치면 깔끔히 포기하란 말이 있을 정도!
그만큼 시설도 짱짱하지만, 이름값이 살인적이라서 나 같은 서민은 엄두도 못 낸다.
즉,
“와...”
동네에서 멀지 않음에도 처음 와봤다.
‘여기는 미래인가?’
출입구에 설치된 기계가 가습기처럼 액체를 분사해서 방문객과 환자들을 소독했다.
위이잉-
의사와 간호사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보조하거나 청소하는 로봇도 심심찮게 보이고...
그래도 만약 이뿐이었다면 그다지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삑-!
「건강합니다!」
출입구를 지나가는 그 짧은 시간에 내 건강 상태를 검사해서 결과까지 알려줬다!
이게 가능해?
믿을 수가 없었다. 검사 결과도 포함해서.
‘내가 건강하다고?’
영양부족으로 뼈만 남은 심각한 몰골이다.
나는 미심쩍은 시선으로 다른 사람의 결과를 살펴봤다.
「건강합니다!」
「건강합니다!」
「혈압이 낮습니다!」
「건강합니다!」
「체온이 높습니다!」
「건강합니다!」
.....
‘흠... 기본적인 검사만 할 수 있는 건가.’
그래도 신기하긴 했다. 백화점에 드나들 듯 출입문 하나를 통과했을 뿐인데.
내가 처음 보는 과학문물에 놀라고 감탄할 때,
“형! 이쪽이야!”
이 병원에 익숙한 최강훈이 벌써 접수를 마치고 나를 불렀다.
“갈게.”
“1906호야.”
“그러면 19층인가?”
“응!”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엘리베이터 앞의 안내 게시판에 적힌 층별 설명을 보니, 18층과 19층은 VIP 병실이었다.
“나는 형님이 빨리 건강해져서 아빠의 일을 도왔으면 좋겠어.”
“왜?”
“나는 이 일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 못 하겠어.”
“뭐...”
적성에 맞더라도 일을 순수하게 즐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나는 가만히 들었다. 이유가 더 있었기에.
“일하시는 분들이 형님과 나를 계속 비교해. 옛날에 형님은 이랬다는 식으로.”
“그건 어른들이 잘못했네.”
나는 형제가 없긴 하지만, 남이랑 비교하는 것만큼 스트레스받는 일도 드물다.
“그래서 생각했어. 이건 내게 어울리지 않는 일, 적성이라고.”
“그래...”
“문수 형. 형님을 치료해줘.”
“큰 기대는 하지 마. 나는 사람을 치료해본 적이 없으니까.”
“응. 치료를 못 해도 괜찮아. 여기에 같이 와보고 싶었을 뿐이야.”
“그러면 다행이고.”
띵! 드르륵-
VIP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단숨에 19층까지 온 우리는 부산스러운 복도를 걸었다.
‘와우!’
방송 매체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정치인, 연예인, 가수 등이 민간인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치료 혹은 병문안을 목적으로.
잘 보이는 벽에 붉은색 경고문이 잔뜩 붙어 있었다.
「인터뷰 금지」
「촬영 금지」
「사인회 금지」
......
남의 사생활에 관심 많은 세상이랑 분리된 휴식공간이란 느낌.
그걸 증명하듯,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윽코,
「1906호: 최강민 씨」
우리가 찾는 환자의 이름이 적힌 병실에 도착했다.
“잠깐만.”
최강훈이 접수처에서 발급받은 카드키를 그 이름표 아래에 댔다.
삑!
손잡이가 없는 자동문이 부드럽게 열리면서 병실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와!’
최강민 형은 매우 넓고 청결한 병실을 혼자 쓰고 있었다.
냉장고, 정수기, 책상, 컴퓨터, 텔레비전, 화장실, 가습기, 에어컨, 화분, 공기청정기, 소파...
내부 장식과 시설은 전부 최고급으로 갖춰져 있었으며, 혹시 모를 위급한 상황에 대비한 각종 의료기기가 한쪽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셋이 자도 될 만큼 넉넉한 침대 위에는,
“아...”
썩은 고목처럼 삐쩍 마른 사람이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엘몰랑스 병원 출입구에 설치된 검사기가 내게 ‘건강합니다!’라고 진단한 이유를 이해했다.
뭐든 상대적이니까.
새하얀 침대에 누워있는 최강민 형의 상태는 그만큼 심각했다.
‘맙소사...’
주삿바늘 자국으로 가득한 손목에는 링거가 여러 개 꽂혀 있었고, 해골처럼 홀쭉한 얼굴에는 산소호흡기를 쓰고 있었다.
그 탓일까?
“형님이야.”
“...그렇구나.”
과거에 건강했던 최강민 형의 얼굴을 기억하는 나조차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살아있는 거겠지...?’
살가죽이 뼈에 들러붙어 있는 모습이 이집트 미라를 연상시켰다. 이미 죽었다고 해도 믿어질 정도.
삐익, 삐익, 삐익...
맥박을 재는 규칙적인 기계음만이 그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였다.
그때,
삑!
병실의 자동문이 또 열리면서 새하얀 가운을 걸친 여성이 들어왔다.
“또 오셨네요, 최강훈 씨.”
그녀는 반가운 얼굴로 최강훈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의사 선생님!”
“보기 좋네요. 한창 친구들이랑 뛰어놀 나이에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헤헤.”
“최강민 씨가 부럽군요. 이렇게 밝고 착한 동생을 둬서.”
“별말씀을요!”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실례가 안 되도록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일단, 최강훈이 ‘의사 선생님’이라고 불렀으니 의사일 터.
그녀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엘몰랑스 병원에 소속된 의사답게 지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의학의 힘을 빌린 게 아니라면 30대 초반쯤 될까? 물결처럼 살짝 웨이브 진 진갈색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쪽은 관계가...?”
인사를 겸한 대화를 마친 의사 선생님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강문수라고 합니다. 최강훈이랑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네 형입니다. 여기에 누워있는 최강민 형도 아는 사이입니다.”
친하지는 않았지만요!
“의사 선생님. 문수 형은 평범한 동네 형이 아니에요. 무당이에요!”
“무당?”
최강훈이 눈치 없이 덧붙인 소개를 들은 의사 선생님의 눈썹이 단번에 찡그려졌다.
“하, 하, 하... 신경 쓰지 마세요.”
이 녀석이 괜한 소리를.
“그렇군요. 저는 최강민 씨의 주치의입니다.”
“안녕하세요.”
“최강민 씨의 뇌파를 정밀하게 검사해본 결과, 매우 깊은 수면에 빠졌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렇군요.”
“지금까지 수많은 무당이 깨우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그들은 환자의 몸에 못을 박는 미친 짓도 서슴지 않았죠.”
“그, 그랬군요.”
주르륵.
주치의의 설명을 듣는 내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게 웬 봉변이람.’
눈치 없는 동생 녀석 때문에 분위기가 매우 어색해졌다.
“최강민 씨는 외부의 물리적인 충격으로는 깨지 않습니다. 동생분이 신뢰하는 지인이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 합니다만.”
“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런 짓은 절대 안 하니까요.”
“그래도 노파심에 이 한마디는 꼭 해두고 싶군요.”
“말씀하세요.”
“환자를 봐서 알겠지만, 육체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이젠 기계의 도움 없이는 호흡도 힘든 상태죠. 그래서 아주 작은 충격에도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나에게는 먼 얘기가 아니었다.
“괜히 만졌다가 살인죄를 뒤집어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헉!”
이건 조금 먼 얘기였다!
살인죄.
상상만 해도 무서운 경고였다.
‘얌전히 있어야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지만, 지금부터는 최강민 형을 아예 쳐다보지도 말아야겠다.
충고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문수 형은 사기꾼이 아니에요!”
그때, 최강훈이 발끈했다.
‘동생아. 네가 왜 화를 내니?’
의사 선생님이 입술에 손끝을 대며 차분히 답했다.
“쉿! 여기는 환자들이 있는 병원입니다. 작게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저는 강문수 씨에게 사기꾼이라고 한 적 없습니다. 주치의로서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준 것뿐이죠.”
“형은 적성이 무당인 진짜 무당이라고요...!”
하지만 최강훈은 장소에 굴하지 않게 계속 큰 소리로 말했다.
“......”
“정말이에요! 제가 형의 적성검사표를 봤어요!”
“...잠깐만요, 최강훈 씨.”
“네.”
표정이 돌변한 의사 선생님은 핀잔 대신 질문을 했다.
“그 적성검사가 P의 적성검사를 말하는 건가요?”
“네!”
“...강문수 씨.”
의사 선생님이 흥미로운 생물을 발견한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허튼짓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녀가 하려는 말을 예상하고 대답했다.
살인죄는 곤란하지!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적성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최강민 씨의 몸은 손 쓸 도리가 없을 만큼 약해져 있습니다. 수술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죠.”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기적에 기대할 수밖에.”
“맞습니다. 기적. 부친께만 말씀드렸지만, 최강민 씨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현대의학의 힘으로는 아무리 길어도 100일. 그 안에 깨어나지 못하면 누적된 합병증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
친한 동생의 가족이 곧 죽는다는 의사 선생님의 단언에 절로 숙연해졌다.
“강문수 씨.”
“네.”
“병문안을 마치고 떠나기 전에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시간이 될까요?”
“흠... 죄송합니다. 오늘은 힘들 것 같습니다. 미뤄둔 이삿짐을 정리해야 해서.”
“아쉽군요. 최강민 씨는 걱정하지 말고 편히 있다가 가세요. 저는 바빠서 이만.”
전혀 아쉬워하는 말투가 아닌 의사 선생님이 병실을 떠났다.
“진짜 너무해!”
“누가?”
“의사 선생님! 좋은 분인 줄 알았는데, 무당이라고 하자마자 형을 무시하고!”
“괜찮아.”
나를 걱정해서 하신 충고니까. 그런 무시라면 100번이라도 웃으면서 받을 수 있다.
“형. 와줘서 고마워.”
“고마워할 필요 없어. 나는 빈손으로 그냥 따라왔을 뿐인걸.”
최강훈은 무거운 이삿짐을 옮기는 걸 도와줬다.
그리고 내가 살던 비루한 단칸방을 비웃지 않았다.
‘그때는 진짜 감동이었지...’
하지만 아무리 감동적이었다고 해도, 무슨 일이든 도와준다는 약속은 성급했다고 후회하는 중이다.
“형.”
“치료는 안 해.”
“알아.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면 섭섭하잖아. 형님께 인사라도 하자.”
“...강민 형. 오랜만이야. 얼른 눈을 떴으면 좋겠어.”
이건 내 진심이다. 가족을 잃는 경험은 최대한 늦게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니까.
* * *
“강훈아. 이젠 됐- 음?”
인사하고 돌아선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이 녀석이 그새 어디 간 거야? 설마, 내게 인사시켜놓고 자기는 화장실을 간 건가?’
그렇다면 좀 괘씸한걸.
“강민 형.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강훈이랑 또 올...
다시 침대로 시선을 돌린 나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곳에 누워있던 환자가 사라진 탓!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강훈아! 강훈아!”
너무 놀란 나는 동생을 부르면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노크도 안 하고,
탁!
문을 열어젖혔다.
‘뭐, 뭐야?!’
화장실에 갔다고 지레짐작한 최강훈도 사라진 탓이다.
“설마...”
나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병실 입구로 뛰쳐갔다.
「1906호: 」
‘없어!’
없었다.
병실을 이용하는 환자의 이름 칸이 비어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실례지만, 환자의 병실을 찾으시나요?”
지나가던 간호사가 혼란에 빠진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아, 네.”
“환자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최강민입니다.”
“잠시만요.”
삑, 삐삑-
자신을 졸졸 따라오는 로봇의 화면을 조작하기 시작한 간호사.
“......”
나는 차분히 기다렸다.
“실례지만, 입원한 환자 중에 최강민 씨는 없습니다.”
“그, 그럴 리가...”
“최강민 씨는 12년 전에 비뇨기과를 마지막으로 방문하셨습니다.”
“12년 전이요...?”
“네. 최근에 입원하거나 방문한 기록은 없습니다.”
“......”
간호사의 설명 덕분에 혼란만 더욱 심해졌다.
“손님. 19층은 VIP 병동입니다. 실례지만, 무단침입으로 의심되어 1층까지 동행해주셔야 합니다.”
“...네.”
최강훈을 따라온 나로선 억울했지만, 지금은 순순히 간호사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음?’
사람이 날아오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창문 밖을 구경하던 나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잖아!’
“엎드려...!”
쨍그랑!
경고하면서 바닥에 엎드린 직후에 가까운 유리창이 깨졌다.
“꺅?!”
“뭐야?!”
놀란 사람들의 비명!
그리고 창문을 깨며 난입한 사람의 분노에 찬 외침이 들렸다.
“마법소년! 두고 보자...!”
쨍그랑!
그 직후에 다른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이 높이에서 뛰어내린 건 아니겠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일어선 나는,
“이런... 또 놓쳤나...”
“어? 강민 형?”
이상한 복장을 한 최강민 형을 발견했다.
“...사람을 잘못 보셨습니다.”
펄럭~
하지만 정체를 부정한 형은 빨간 망토를 나부끼면서 깨진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흠...”
‘잘못 본 건가?’
내가 기억하는 건강한 시절의 최강민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는 뼈만 남은 처참한 몰골일 텐데...
“설마!”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깨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쾅! 퍼엉!
날개나 추진기가 없는 두 남자가 빌딩 사이를 날아다니면서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광경!
그 덕분에 혼란스러웠던 머리가 한 방에 정리됐다.
“여긴 어디야?”
내가 알던 지구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