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화
“아빠?”
“...강훈아. 앞으로 강문수랑- 아니, 어떤 무당하고도 절대 어울리지 마라. 아예 말도 섞지 마.”
“아빠!”
휙~
방금까지 함께 과거를 곱씹으며 훈훈했던 최강훈의 부친은 일방적으로 통보한 후에 거실을 떠났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적성이 무당이라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문수 형...”
“괜찮아. 어쩔 수 없지.”
나는 최강훈의 만류를 뿌리치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때,
“흠흠.”
“아저씨?”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아저씨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그래도 회장님께서 축객령은 안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같은 것 아닌가요?”
“다릅니다. 오랫동안 회장님을 모셔왔기 때문에 잘 알지요. 정말 싫으셨으면 쫓아내라고 명확하게 지시하셨을 겁니다.”
“그래도...”
“초대한 손님을 빈손으로 보내는 건 예의가 아니지요. 식사라도 하고 가십시오.”
“...네.”
갑자기 심한 말을 들어서 기분 상하긴 했지만, 원초적인 본능인 식욕을 이길 순 없었다.
식당에서 면접 보러 온 수고비라며 준 국수 한 그릇 외에는 여태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까.
“집사님. 아빠가 화난 이유를 모르겠어요. 무당이랑 싸웠나요?”
“맞습니다.”
“예?”
“정말로 무당이랑 싸우셨습니다.”
“대체 왜...”
“일단 앉으십시오. 조금 긴 이야기가 될 테니까요.”
“네...”
레스토랑을 연상시키는 장소로 이동한 우리는 촛불로 장식된 긴 사각 테이블에 앉았다.
탁, 탁, 탁...
다양한 요리가 담긴 은쟁반이 한가득 차려졌다.
‘먹다가 남으면 포장 안 되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건 알지만, 내 위장에 남은 요리를 전부 저장해두고 싶다.
“식사예절은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드십시오.”
“아저씨. 편하게 말씀하세요.”
“회장님의 눈치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이 정도의 거리감이 딱 좋습니다.”
“......”
최후의 만찬이 이런 기분일까? 영원히 떠나는 사람에게 주는 작별선물을 받은 것 같다.
“집사님. 아빠와 무당이 어쩌다가 싸웠어요?”
당사자인 나보다 더 충격받은 최강훈이 재촉했다.
“무당이 회장님께 사기를 쳤습니다.”
“무슨 사기요?”
“거액을 주면 큰 도련님을 치료해 준다고 했습니다.”
“아!”
큰 도련님.
불치병에 걸린 이복형제 최강민을 뜻하리라.
“상당한 선수금을 챙긴 그들은 실패하면 공물이 부족한 탓이라며, 더욱 많은 돈을 요구했습니다.”
“아...”
“그때마다 회장님은 쫓아내고 다른 무당을 부르길 반복하셨습니다. 많이 지치신 상태입니다.”
“그런 일이...”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안 돼서 오컬트에 의지하신 모양이다.
성과는 전혀 없었고.
‘무당들이 너무했네.’
나까지 똑같은 사기꾼 취급을 당한 건 억울하지만, 처음보다는 기분이 나아졌다.
“그래도 아빠가 너무했어요!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그것도 이유가 있으셨습니다.”
“뭔데요?”
“무당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기꾼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무슨 공통점이요?”
잠자코 둘의 대화를 듣는 나도 궁금했다.
‘공통점이 뭘까?’
짐작이 가질 않았다.
“적성이 무당이었던 무당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
그 말뜻을 이해하기까지 몇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기에.
“그러니까... 무당의 적성이 무당이 아니었다고요? 단 한 명도?”
“네.”
아저씨는 없다고 재차 단언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너의 진짜 적성은 뭐냐고.
그렇게 묻는 듯했다.
* * *
“주민등록증만 나오면 바로 사과받을 테다!”
주민등록증의 이름 옆에 적성이 표시되니까. 그래서 P의 적성검사를 받지 않으면 주민등록증도 발급되지 않는다.
즉, 적성은 속일 수 없다.
‘억울해!’
내 적성검사결과는 전교생이 알고 있지만, 대기업 회장님이 그런 개인사까지 알 리 없다.
그래도 수확이 있다면?
내가 취업을 못 하는 이유를 아주 잘 알게 됐다.
“평판이 개판이네!”
무당이 아닌 다른 일을 하려고 해도 편견이 방해했다.
“형. 미안해.”
“그런데 강훈아.”
“응!”
“네가 왜 따라오냐?”
“미안해서!”
“아니, 나는 아무렇지 않으니 집에 돌아가도 돼.”
비싼 밥을 공짜로 얻어먹은 뒤부터 기분이 싹 풀렸다.
남은 음식도 포장해줬고!
냉동실에 넣어두면 이걸로 며칠은 버틸 수 있으리라.
“내가 미안해서 안 돼! 형이 취업할 때까지 도와줄게. 그런데 어떻게 도와주면 돼?”
대책 없이 따라온 모양이다.
‘대책이라...’
아직 주민등록증이 안 나왔다는 핑계로 적성을 속이고 위장 취업을 할 순 있다.
그렇게 일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았을 때쯤에 솔직하게 적성을 밝힌다는 그럴싸한 전개.
하지만 이런 드라마 같은 꼼수는 현실에서 힘들다. 적성을 속이는 건 중범죄에 해당하니까!
‘너무 위험하지...’
적성을 속여서 번 돈을 전부 뱉어내야 하고, 못 뱉으면 그만큼 징역살이를 해야 한다.
남은 방법은?
적성을 속이지 않고 처음부터 실력을 인정받는 정면승부뿐!
‘지금, 몇 시지?’
스마트폰의 시계를 확인해본 나는 다음 일정을 결정했다.
“강훈아.”
“응!”
“수영, 잘 해?”
“응?”
우리는 체육대학교 수영장으로 향했다.
송선영이랑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추억의 장소로...
* * *
“문수 형. 사람들이 막 쳐다봐.”
“무시해.”
“나도 그렇고 싶은데, 사람이 많은 수영장은 오랜만이라서 부끄러워.”
“...강훈아. 남자답게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어.”
“남자답게?”
“그래야 남자지.”
“응! 노력해볼게!”
사실, 이 녀석은 굳이 당당하게 걸을 필요가 없다.
평상복을 벗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최강훈은 당장 화보 촬영해도 될 정도로 멋졌으니까.
옷으로 가려진 호리호리한 체형 안쪽은 군살 하나 없는 매끈한 근육이 자리했다.
그게 살짝 젖으면서...
“어머!”
“저 애 좀 봐.”
“잘생겼다...”
최강훈을 본 여성들의 시선은 못이 박힌듯 떨어지질 않았다.
“형은 대단해.”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사람들이 쳐다봐도 태연하잖아.”
“그야...”
내가 아닌 최강훈을 보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부러워. 문수형은 남자답게 생겼잖아.”
“내가?”
진심을 담아서 아부하는 최강훈의 적성은 ‘간신배’가 아닐까?
“굶주린 하이에나 같아!”
“그거, 칭찬이지?”
“응!”
간신배가 되기에는 눈치가 살짝 부족한 것 같다.
아무튼,
‘안전요원은 어디에... 오! 안 바뀌고 여전히 계시네!’
꿈이랑 같다면, 수영장의 안전요원은 이 체육대학교에 소속된 수영 감독이다.
그는 잠재력 높은 수영선수 지망생을 찾고 있으며, 시간에 쫓기듯 상당히 초조해하고 있다.
‘보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직 내게도 기회가 있다는 소리다.
“일단은...”
수영복부터 점검했다. 꿈속에서 항상 대여하던 수영복이기에 차이는 없으리라고 생각되지만.
다음은 몸뚱이.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다. 평지를 걷는 것조차 아직 불편한 내가 물에서 헤엄칠 수 있을까?
해볼 수밖에 없다.
찰랑찰랑~
간단한 준비운동 후에 조심스럽게 수영장 물에 몸을 담갔다.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네.’
송선영에게 유치원생이나 할 법한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웠다.
“형. 수영을 배웠어?”
“조금. 너는?”
“나도 조금. 국가대표 감독에게 5년 정도 배웠어.”
“그, 그랬구나.”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
꿈속에서 배운 지식이 전부인 나랑 차원이 달랐다.
“거참…. 이게 뭐라고….”
꿈이 아닌 현실에서 수영한다는 생각에 바짝 긴장됐다.
첨벙첨벙~
물장구치며 앞으로 헤엄쳤다.
‘된다!’
그리고 그 직후에 온몸을 휘감는 짜릿한 희열(喜悅)!
꿈속에서 송선영에게 배운 수영이 현실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생긴 나는 모두가 보란 듯이 수영장 정중앙을 가로지르며 쭉쭉 나아갔다.
첨벙첨벙!
의식불명으로 허약해진 몸이 아직 덜 회복돼서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했고,
“푸하!”
숨을 참는 폐활량도 꿈에서만큼 길지 않았다.
‘괜찮아.’
지금은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헛되지 않았어.’
꿈은 깨어나면 사라지지만, 그때의 경험과 지식은 현실의 내게 힘이 되어줬다.
촤아아!
“푸하!”
헤엄쳐서 처음 자리로 돌아온 나를 최강훈이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형. 진짜 잘한다!”
“그래?”
“응. 아주 빨라!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거야?”
“얻어먹은 밥에서 얻은 힘이지.”
공짜는 늘 옳다.
“나도 같이 먹었는데...”
“강훈아.”
“응!”
“미안하다.”
“응?”
“형이랑 수영시합을 해주지 않을래?”
나의 제물이 되어줘!
양심이 찔리지만, 도와준다고 했으니 사양하지 않겠다.
“좋아! 하지만 그전에 나도 몸을 풀어야 하니까, 한 바퀴만 돌게.”
“그래라.”
“흡!”
진지한 눈빛이 된 최강훈이 수영장 벽을 박차며 나아갔다.
첨벙첨벙!
“...빠르잖아.”
국가대표 감독에게 5년 동안 배웠다는 건 허언이 아니었다.
‘질 수도 있겠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전문 감독도 아닌 선수 지망생에게 배운 내가 불리한 건 당연했다. 내 적성이 체육계도 아니고.
희망을 걸자면?
최강훈은 꿈속의 송선영처럼 압도적이지 않았다. 해볼 만하다는 수준이랄까.
촤아-!
“형! 형! 어때?”
벌써 한 바퀴를 돌고 돌아온 최강훈이 칭찬을 바라는 학생처럼 나를 쳐다봤다.
숨이 고른 것으로 봐서는 조금도 지치지 않은 듯했다.
‘1500m는 내가 무조건 지겠는걸.’
단거리로 해야겠다.
“진짜 빠르네. 잘하던걸.”
빈말이 아니다.
“헤헤!”
“그러면 이제 시합할까?”
“응!”
“잠시만 기다려. 심판을 봐줄 사람을 구해올게.”
구할 필요도 없었다. 예상대로 미끼를 문 물고기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여전하시네.’
우수한 선수를 영입하길 바라는 열망의 눈빛!
감독이 성공하려면?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성을 보유한 선수 중에서도 최고로 뛰어난 인재를 발굴해서 성공을, 유의미한 성과를 내야 한다.
적성이 같다고 해서 잠재력과 체질까지 똑같은 건 아니니까. 선수 개개인의 역량을 알아보는 것도 감독의 재량이자 역할이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시죠?”
시치미 뚝 떼고 놀란 척하면서 감독의 인사에 응했다.
“실례인 줄 알지만, 적성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옆에 동생은 아직 어려서 적성검사를 안 받았고, 저는 무당입니다.”
“무당...?”
“네. 무당이요.”
“그... 귀신을 쫓는...?”
“맞아요.”
“어... 음... 물에 사는 물귀신을 쫓아내려면 수영도 잘해야겠죠. 이해했습니다.”
살짝 실망한 눈치가 보이는 수영 감독.
하지만 포기한 건 아니었다.
“오신 김에 심판 한 번만 봐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초면에 적성을 묻는 무례를 저질렀는데, 그 정도는 당연히 해드려야죠.”
그렇게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초시계를 꺼내는 수영 감독.
이 또한 예상대로다.
“준비-”
“......”
“......”
나와 최강훈은 사전에 약속한 수영장 출발선 위에 섰다.
삐이이-!
우리는 수영 감독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서 출발했다.
풍덩!
풍덩!
* * *
그래서 결과는?
시합이 끝난 후, 안전요원으로 위장한 수영 감독은 초시계를 한참 동안 뚫어지게 쳐다봤다.
“...정말로 무당입니까?”
그리고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내게 질문했다.
“네. 아직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진 못했지만요.”
기록은 내 기대치보다 한참 낮았다.
최강훈을 간신히 이긴 수준.
하지만 감독은 초시계에 기록된 숫자 너머를 보고 있었다.
“근육만 키우면... 가능성이... 하지만 시간이... 흠...”
“......”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의 생각이 정리되길 기다렸다.
“문수 형?”
“쉿.”
“응.”
무언가를 느낀 최강훈도 조용히 대기했다.
이윽고,
“주민등록증이 아직 안 나왔다고 했지요?”
“네. 올해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합니다.”
“나이는 충분하고...”
감독이 질문하는 의도가 뻔히 보였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세요?”
“...사실, 저는 이 학교에서 선수들을 키우는 수영 감독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강문수요.”
“강문수 씨.”
“네.”
“딱 1년만 제 밑에서 수영을 배워볼 생각이 없습니까?”
“흠...”
‘됐다...!’
나는 대학생(?)으로 취업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