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19화 (20/232)
  • 019화

    [2장-1절] 적성이 중요한가요?

    “무당?”

    “신경 쓰지 마세요.”

    “학생. 적성을 신경 쓰지 않으면 뭘 보고 아르바이트생을 뽑아?”

    “......”

    청소업체 사장님의 합리적인 지적에 말문이 탁 막혔다.

    이 사장님이 똑똑해서?

    아니.

    내가 알아본 곳들은 하나 같이 적성을 따졌다. 그게 일용직이든 정규직이든 간에.

    ‘어렵네...’

    아예 구인광고에 ‘이 적성 외에는 신청받지 않음!’이라고 못을 박아둔 곳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면접이라도 볼 수 있는 선택지 또한 매우 한정적!

    찾기도 힘들다.

    “무당은 귀신을 잡는 일이잖아.”

    “그렇다고 다른 일을 아예 못 하는 건 아니에요. 편의점에서 오랫동안 아르바이트한 경험도 있고.”

    “흠...”

    청소업체 사장님이 고민했다.

    “노파심에 미리 말해두겠는데, 우리는 집에 숨어있는 쥐와 해충을 잡는 일이야. 귀신이 아니라고.”

    “네.”

    “유일암처럼 춤을 추거나 고함을 지르면...”

    “절대 안 그럽니다!”

    “유일암도 안 한다고 안심시킨 후에 기습적으로 귀신을 잡지. 그래야 귀신이 눈치채지 못한다고...”

    “저는 정말로 안 그럽니다! 그때는 바로 해고하세요!”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는 무당의 이미지가 밑바닥을 맴도는 이유가 다 있었다.

    ‘또 유일암이냐!’

    그럴 리 없지만, 그의 제자 제안을 거절한 보복을 당하는 기분이다.

    유일암이 이 근처 어딘가에 숨어서 나를 훔쳐보며 통쾌하게 웃고 있지 않을까?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학생.”

    “네.”

    “의욕 하나는 마음에 드니 연락처를 남겨놔.”

    “감사합니다!”

    드디어 취업됐다!

    “기다려. 일을 주겠다는 건 아직 아니니까.”

    “그러면…?”

    “한 번 고민해본다는 의미였어.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으면 안 된 줄 알고.”

    “네.”

    앞으로 일주일 동안 ‘무당’보다 괜찮은 적성의 희망자가 없으면 채용하겠다는 의미.

    가망이 없다고 봐야 했다.

    * * *

    “환장하겠네!”

    정규직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지만, 일용직마저 줄줄이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하필...’

    간과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P의 적성검사를 받고 들뜬 졸업생들이 부모님의 용돈 이상의 목돈을 마련하려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시기.

    그래서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다.

    아니-

    편하거나 시급이 높은 일자리는 늘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당장 쓸 생활비도 없어서 편의를 따지지 않았음에도 취업이 힘든 건 순전히 내 적성 탓!

    “편견이 참...”

    이게 다 유일암 탓이다.

    ‘이젠 어쩐다?’

    털레털레.

    나는 아무런 성과 없이 집으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일자리를 좀 더 알아보고 싶지만, 퇴원하고 하루도 안 지난 상태에서 너무 무리했다.

    “형!”

    “......”

    환청이 들릴 만큼.

    “형! 문수 형~!”

    덥석!

    양팔로 뒤에서 내 몸을 끌어안으면서 이름을 부른다.

    무척 낯익은 목소리.

    굳이 얼굴을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뭐야? 강훈이잖아?”

    최강훈.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친한 동생.

    ‘우연이네.’

    아버지가 재산을 전부 날리고 돌아가시면서 가세(家勢)가 급격히 기울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웃하는 동네 주민이었다. 그래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학교가 아니면 만나기 힘들어졌다.

    그리고 내가 학교를 졸업하면 더욱 보기 힘들어지리라.

    “형~!”

    “......”

    나도 만나서 반갑긴 한데, 이 녀석은 눈가에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너무 호들갑이었다.

    무슨 일이지?

    “병원에서 깨어났으면 깨어났다고 말을 해줘야지! 헛걸음했잖아!”

    “아... 미안. 네가 병문안 왔었을 줄은 몰랐네.”

    정말로 몰랐다.

    형제처럼 친하긴 하지만, 서로를 걱정해준 적이 여태 없었으니까.

    ‘그건 아닌가...?’

    돈 걱정 없는 부잣집 도련님에다가 외모마저 승리자인 최강훈을 걱정해줄 일이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여자애 같다면서 놀림 받는 녀석의 눈물을 닦아주며 등을 토닥여준 게 마지막.

    “너무해! 방명록도 작성했는데!”

    “그랬냐...”

    “깨어나자마자 하루 만에 퇴원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 같이 쓰러진 선배는 아직도 입원해 있는데.”

    “송선영?”

    “이름은 몰라.”

    “학교에서 들어본 적도 없어?”

    “응. 전혀 없어.”

    “그렇구나.”

    짐작하긴 했지만, 꿈을 공유하는 건 송선영과 나뿐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형!”

    “학원 가는 길이었지? 지각하지 말고 얼른 가.”

    “너무해! 형은 오랜만에 만난 내가 반갑지도 않아?”

    무척 서운해하는 얼굴.

    물벼락 맞은 강아치 같아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쭉 잠들어 있었잖아. 어제 만난 기분인걸.”

    “아! 문수 형은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네!”

    바로 표정이 밝아진 최강훈. 하지만 떠날 기미가 안 보였다.

    “얼른 가. 학원 늦겠어.”

    “괜찮아. 학원이 아니라 견학 가는 길이었거든.”

    “견학? 아직 적성검사도 안 받았는데 뭐하러?”

    직업 견학은 적성검사를 받은 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

    역으로, 괜히 설레발 쳤다가 엉뚱한 적성이 나오면 낭패를 보니까.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전에 견학하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적다.

    “아빠 회사라서.”

    “아하!”

    가업(家業)은 예외다.

    물론, 적성이 너무 안 맞으면 가업을 말아먹을 수가 있어서 무조건 강요하진 못하지만.

    “아빠의 비서에게 못 간다고 연락하면 돼.”

    “그래도 약속인데...”

    “괜찮아. 오늘만 견학 가는 게 아닌걸? 모든 부서를 돌아다니려면 며칠은 걸려. 하루쯤은 미뤄도 돼.”

    “그렇구나...”

    가업의 규모가 너무 커도 예외다!

    “형은 시간 돼?”

    “나 때문에 약속을 미루진 마.”

    “바빠?”

    “바쁘지.”

    “왜? 방학이잖아. 방학 끝나면 바로 졸업이고.”

    “흠...”

    이 이상은 굳이 설명해줄 필요 없지만, 최강민을 보내기 위해 솔직하게 답해주기로 했다.

    “취업해야 해서.”

    “와! 형은 어른이구나! 멋져!”

    “뭐...”

    비꼬는 게 아닌 정말 순수한 감탄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영 찜찜했다.

    ‘취업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는 녀석이 감탄은...’

    견학도 그 일환이리라. 이걸 후계자 수업이라고 하던가? 아니면 조기교육?

    뭐가 됐든 장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인생이라서 살짝 부럽다.

    “부러워. 나는 아빠가 적성은 신경 쓰지 말고 회사 일을 하나씩 배우라고 해서...”

    “그러냐.”

    배부른 동생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는 모양이다.

    “형!”

    “그만 불러. 나는 간다.”

    “같이 가!”

    “이 형은 어른이 될 준비로 매우 바쁘단다. 그리고 나 때문에 견학을 빼먹지 마.”

    “싫어! 회사 일은 형님이 아파서 억지로 떠맡았을 뿐인걸! 나는 형님의 대용품이 아니야!”

    “지, 진정해.”

    인생에 굴곡이 전혀 없는 고속도로일 것 같은 최강훈에게는 이복형이 한 명 있다.

    최강민.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불치병에 걸려서 병원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온다고 했다.

    “나를 진정시키고 싶다면 놀아줘.”

    “네가 어린애냐...”

    핀잔을 주면서도 내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간파한 최강훈은 더욱 밀어붙였다.

    “형! 아주 좋은 생각이 났어!”

    “뭔데?”

    “내가 형의 취업을 도와줄게!”

    “네가 무슨 수로?”

    “아빠 찬스.”

    “아!”

    적성을 무시한 인맥의 횡포는 근절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양심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어때?”

    “...고민해볼게.”

    고민은 내 마지막 양심이다.

    “형. 그러지 말고 지금 가서 물어보자.”

    “누구에게? 실장? 부장?”

    “당연히 아빠지! 집에 계셔.”

    “쿨럭!”

    나는 정말 오랜만에 최강훈의 집에 놀러- 아니, 면접 보러 갔다.

    * * *

    최강훈은 이 근방에서 가장 비싸기로 소문난 역세권 오피스텔의 최상층에 살고 있다.

    이 최상층은 전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존재하며, 카드키가 없으면 가동하지 않는다.

    덤으로,

    (최강훈 도련님 외 1인이 오셨습니다.)

    최상층에 도착하면 엘리베이터의 자동문이 열리면서 집주인에게 알리는 기능도 있다.

    딩동!

    드르륵-

    “어서 오십시오, 도련님.”

    “어서 오세요, 도련님.”

    “어서 오세요, 도련님.”

    그 소리를 들은 집사와 가정부들이 엘리베이터 출입구 좌우에 일렬로 선 채로 공손히 인사했다.

    ‘와...’

    어릴 적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들 사이를 지나갔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부담됐다.

    내가 뭐라고 이런 대접을?

    대충 이런 기분이다.

    “도련님. 옆은 친구분입니까?”

    “어머! 일찍 돌아오셨네요.”

    “도련님이 집에 친구를? 신기한 일이네요.”

    형식적인 인사를 마친 집사와 가정부들이 친근한 어조로 최강훈에게 한마디씩 건넸다.

    이에,

    “문수 형이야!”

    집주인의 둘째 아드님이 나를 아주 간략하게 소개했다.

    “오! 맙소사! 너무 크셔서 못 알아봤습니다.”

    내가 이 집에 놀러 오는 걸 탐탁치 않게 여기던 집사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밑에서 올려다보던 그때는 무서운 아저씨였는데...

    이렇게 훌쩍 커서 마주 보니 인상 좋은 아저씨였다.

    “아! 도련님이 매일 칭찬하시던 그분이었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강문수 씨. 도련님 덕분에 처음 같지 않지만요.”

    “외투는 저에게 주세요.”

    집사를 제외한 가정부들은 예외 없이 젊은 미모의 여성. 그리고 애교가 많았다.

    이건 집주인의 취향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또한 변하지 않았다.

    ‘그립네.’

    세상 물정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자주 놀러 왔었는데.

    그때는 곳곳에 진열된 값비싼 예술품과 장식품보다 공짜 간식에 훨씬관심이 많았다.

    ‘와! 이것 중에 하나만 슬쩍해서 팔아도... 흠흠!’

    그릇된 생각을 자연스럽게 품는 것을 보면 나도 속물적인 어른이 됐다는 뜻일까?

    옛날이랑 바뀐 건 벽에 걸린 커다란 가족사진뿐인데, 그때처럼 순수하게 바라보지 못했다.

    “형! 형!”

    “...왜?”

    “예전에 형이 놀러 왔을 때랑 거의 똑같지?”

    “그런 것 같네.”

    무상한 세월의 흐름을 반영한 가족사진 외에는 가구 위치까지 내 기억 그대로였다.

    ‘형님이 빠졌네.’

    가족사진에 최강훈의 이복형인 최강민만 없었다.

    “강훈이냐?”

    “아빠!”

    “어흠! 손님 앞에서는 아버지라고 하라니까...”

    헤벌쭉 벌어지려는 입술을 씰룩이면서 표정 관리에 힘쓰는 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가 최강훈의 부친(父親).

    알코올이 퇴적층처럼 축적된 똥배만 빼고 보면, 최강훈의 이마에 주름만 조금 추가한 것 같다.

    즉, 미중년이다.

    “지금은 괜찮잖아.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누구길래... 음?”

    “아빠도 기억하지? 어릴 적에 자주 놀러 왔던 강문수 형이야!”

    “오! 그 밥도둑이 왔다고?”

    “응!”

    세월이 제법 흘렀음에도 나를 제대로 기억하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그래. 학교에서 쓰러져서 입원했다더니 꼴이 엉망이구나. 옛날에는 볼이 토실토실해서 잡아당기기 좋았는데.”

    “하, 하... 어쩌다 보니...”

    우리는 테니스장처럼 넓은 거실의 긴 소파로 이동해서 이야기보따리를 마저 풀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니?”

    “일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일? 아, 그렇군! 내 아들보다 1살 많았었지. 그러면 적성검사도 받았겠구나.”

    “네.”

    “적성을 알 수 있을까? 비싼 과자만 골라 먹던 네가 커서 뭐가 될지 늘 궁금했단다.”

    “무당입니다.”

    “쓰레기였군.”

    “예?”

    기습적으로 튀어나온 단어에 어리벙벙했다.

    방금, 뭐라고...

    “무당은 입만 열면 거짓말인 쓰레기다.”

    “......”

    입가의 미소가 사라지며 정색하는 아저씨의 시선에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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