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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8화 (19/232)
  • 018화

    나처럼 오랫동안 혼수상태였던 송선영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뺨이 움푹 들어간 핼쑥한 얼굴.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녀랑 비교하면 나는 매우 양호한 편이었다.

    “...안녕?”

    먼저 말문을 텄다.

    ‘이런! 근육처럼 뇌도 굳었나...?’

    자기소개부터 했어야 맞는데, 원래부터 알던 지인처럼 무심코 인사해버렸다.

    이런 나를 송선영이 얼마나 이상하게 여길까?

    “안녕.”

    다행히도, 그녀는 내 인사를 무시하거나 수상하게 여기지 않고 무난하게 받아줬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

    “......”

    처음 만난 사이처럼 굉장히 어색한 기류.

    당연했다.

    우리가 만난 건 꿈속이고, 나와 추억을 공유한 ‘송선영’은 허구의 존재니까. 지금 내 눈앞의 여학생이 ‘진짜 송선영’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게 초면. 학교 복도에서 스치듯 마주친 적이 몇 번 있었을지는 몰라도.

    그 외에는 인연이라고 할 게 아무것도 없다.

    ‘침착해, 강문수.’

    꿈은 꿈일 뿐.

    꿈에 미련을 갖고 머뭇거리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절대로.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무당이란 희귀한 적성으로 학교를 떠들썩하게 했던 강문수야.”

    “알아.”

    “...너는 송선영이지? 의사 선생님께 들었어. 나랑 똑같은 증상을 보이는 동급생이 있다고.”

    의사 선생님은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나는 뭘 하는 거지?’

    거짓말까지 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려고 애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나도 들었어.”

    “그렇구나...”

    “......”

    “......”

    낯가림은 없는 편이지만,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기로써 할 수 있는 대화는 딱 여기까지.

    그 이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병원 한복판에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환자를 붙잡아 두기도 미안하고.

    “......”

    그런 내 얼굴을 송선영은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그녀는 무슨 생각 중일까?

    나를 어떤 식으로 보고 있을까?

    선택의 시간이다.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이라서 눈치 보이네. 병원 옥상으로 갈래? 거기도 정원처럼 예쁘게 꾸며놨대.”

    무의미한 대화로 송선영을 계속 붙잡아두긴 싫었다.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오랫동안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고.

    그녀가 동행을 거절하면 끝.

    미련 없이 헤어지리라!

    “그래.”

    하지만 그녀는 같은 학교의 학생일 뿐인 처음 보는 남자애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설마...?’

    두근두근.

    차갑게 식어가던 심장이 다시 뜨겁게 뛰기 시작했다.

    * * *

    지붕이 없는 콘크리트 건물 옥상은 우리에게 여러 의미가 담긴 특별한 장소다.

    띵! 드르륵-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단번에 병원 옥상으로 이동했다.

    “와! 철장으로 아주 철저하게 막아놨네. 환자가 자살할 수 없도록.”

    옥상 난간에 빈틈없이 높게 설치된 쇠창살과 감시카메라.

    불미스러운 사건을 완벽하게 예방하고 있었다.

    “그러게.”

    내 옆에서 옥상을 슥 훑어본 송선영도 동의했다.

    “저 벤치에 앉자.”

    “좋아.”

    이유가 뭐든 간에 여기까지 나를 따라왔다는 건, 대화를 길게 이어갈 생각이 있다는 의미일 터.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 있는 질문을 과감하게 하기로 했다.

    “그-”

    “수영 잘해?”

    지금까지 쭉 수동적으로 대답만 하던 송선영이 벤치에 앉자마자 먼저 질문해왔다.

    수영.

    우리에게는 이것 또한 아주 큰 의미가 있다.

    “원래는 개헤엄밖에 못 하는데, 지금은 잘해.”

    “...어떻게?”

    “꿈속에서 수영선수가 적성인 예쁜 여자애에게 배웠거든.”

    정말이다.

    그녀에게 배운 수영 기술과 지식이 여전히 내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그 여자애, 얼마나 예뻐?”

    “다리가 길고 늘씬해서 수영복 모델을 해도 될 만큼.”

    “나네?”

    “응. 너야.”

    “......”

    “......”

    서로의 눈을 바라본 우리는 같은 생각 중일 것이다.

    ‘나만 꾼 꿈이 아니구나!’

    하지만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라서 쉽사리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 더 시험을, 이번에는 내가 질문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보여?”

    무당 유일암에게도 물어봤던 똑같은 문제.

    “마네킹.”

    “지금도 그렇게 보여?”

    “음... 아니. 지금은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으니까.”

    “...그러면 나는?”

    “무당 씨?”

    “나는 어떻게 보여?”

    우리의 대화 속에 꿈과 현실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아니.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사람. 하지만 남자로는 안 보여.”

    “그렇군!”

    그리고 자연스럽게 차였다!

    * * *

    “나는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렸다고 쭉 생각했어. 아니, 믿었어. 그런데... 웃지 마.”

    “안 웃어.”

    “사실은 죽는 게 무서워서 담장 앞에 기절해 있었다는 거야...”

    “누가 그렇게 말했어?”

    “의사가.”

    몸에 물리적인 외상이 하나도 없어서 내린 결론.

    그렇게 진단한 의사를 무능하다고 비난할 순 없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꿈을 공유한 시점에 이미 과학의 영역을 초월한 셈이니까.

    “무시해버려. 차라리 유일암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을걸?”

    “맞아. 그 사람도 왔었어. 자기가 나를 치료했다나? 그러면서 내 부모님께 치료비를 달라고 어깃장을 놓더라고. 진짜 기가 막혀서!”

    “그래서 줬어?”

    “당연히 안 줬지. 내 아빠도 의사야. 과학을 신봉하는 너처럼, 의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병은 없다고 굳게 믿으셔.”

    “그렇구나. 잘했어. 유일암은 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거든.”

    “무슨 질문?”

    “마네킹.”

    “아하! 사기꾼이었네.”

    꿈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뒤부터 우리는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애인이 아닌 친구로서!

    ‘어쩔 수 없지.’

    송선영이 나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잘 아니까.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유일한 남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할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주위를 둘러봐도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수두룩했다.

    그리고 여자도...

    ‘잠이 덜 깬 모양이네.’

    금방 현실에 적응한 송선영이랑 달리, 나는 시간이 조금- 아니, 많이 필요해 보였다.

    “무당 씨.”

    “왜?”

    “나는 모델이 될 거야.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꿈이었다. 지금은 현실이고.

    주위의 사람들을 더는 마네킹 취급할 수 없다.

    송선영이 적성을 무시하고 모델이 됐을 때, 사방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녀는 못 한다고 했었다.

    내가 설득했고.

    ‘아니지.’

    기껏 마음을 다잡은 그녀에게 약한 소리를 하면 안 된다.

    “응원할게.”

    설득하면서 약속했으니까.

    “무당 씨. 꿈에서 한 약속은 신경 쓰지 마.”

    “그래도...”

    “수영보다 잘할 자신 있어.”

    “그래.”

    자연스럽게 또 차인 기분이다. 기분 탓이겠지?

    “그전에 엉망이 된 몸부터 다시 만들어야겠지만.”

    송선영이 웃으면서 자신의 삐쩍 마른 손목을 장난스럽게 흔들었다.

    흐느적거리는 팔.

    지금은 모델보다 좀비 영화의 조연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엄마가 나를 끌어안고 울면서 도와준다고 하셨어. 성형외과 의사인 아빠는 말할 것도 없고.”

    “그렇구나...”

    가족이 무사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아닐까.

    “무당 씨.”

    “왜?”

    “입만 열면 거짓말인 그 사기꾼은 안 믿지만 너는 믿어. 내가 직접 겪어봤으니까. 분명히 대단한 무당이 될 거야.”

    “고마워.”

    유일암 같은 무당이 될 생각은 없지만.

    “몸이 춥네. 나 먼저 갈게.”

    송선영이 어깨를 쓸어내리면서 일어섰다.

    “잘 가.”

    “...저기, 문수야.”

    “왜?”

    떠나던 발걸음을 멈춘 그녀가 되돌아선 채로 말했다.

    “졸업한 후에도 꿈에서 본 집에서 계속 살 거야?”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괜찮은 집으로 이사할 돈이 없거든.”

    “그렇구나. 안녕.”

    “안녕.”

    꿈에서 만난 우리는 현실에서 헤어졌다.

    * * *

    꿈속에서 송선영에게 한 말은 나에게도 해당했다.

    적성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일을 찾으면 된다.

    무척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일.

    그만큼 P의 적성검사기가 인류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전에.’

    내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부터 어떻게든 해야 했다.

    “오! 문수야! 무사했구나!”

    “네. 잘 지내셨죠?”

    “나야 늘 똑같지. 하하!”

    여전히 불안한 발걸음으로 비틀거리며 편의점을 찾아온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사장님.

    “그런데 문수야.”

    “네.

    “정말 미안하다.”

    “......”

    여자보다 게임을 사랑하는 편의점 사장님이 내게 사과했다.

    ‘어쩔 수 없지.’

    예상했던 전개였기에 나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괜찮습니다. 정말로요.”

    “너의 담임선생에게 사고 소식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아르바이트생을 안 뽑은 채 하염없이 기다릴 순 없었어.”

    “네. 충분히 이해합니다.”

    내가 해고당하는 건 당연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보름 넘게 아르바이트를 못 나갔으니까. 편의점의 특성상, 매일 누군가가 관리해줘야 하기도 하고.

    ‘큰일이네.’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현실에 벌써 눈앞이 캄캄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곧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때문에 시간이 매우 많았다. 대학교 진학은 진즉 단념했고.

    “그동안 수고했다. 네가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해준 덕분에 마음 편히 게임을 즐길 수 있었어.”

    언제나 결론은 게임.

    이분은 늘 그랬다.

    “저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본업을 착각하신 사장님 덕분에 수입이 제법 쏠쏠했어요.”

    “어허! 착각이 아니야. 내 본업은 게임이다.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내 이름을 아느냐고 물어봐.”

    “잘 알죠. 유명하신 거.”

    “정말이야! 좀 믿어!”

    “정말로 믿어요. 신문에 나왔다면서 보여주신 노출증 미남이 사장님이라면서요?”

    “노출증... 아니, 그건...”

    “사장님. 그동안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셔서 감사드리고, 하시는 가상현실게임이 앞으로도 잘되길 빌어드릴게요.”

    “이미 잘되고 있다. 너만 모를 뿐이지.”

    “이만 가볼게요.”

    인기에 집착하는 편의점 사장님의 핀잔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몸을 돌렸다.

    “아무튼, 고맙다. 그리고 가끔 찾아와! 뭐라도 줄 테니.”

    “네. 종종 놀러 올게요.”

    딸랑~♪

    그때, 이국적인 분위기의 손님이 편의점에 들어왔다.

    ‘복장이 진짜 특이하네.’

    뾰족한 고깔모자와 검은색 망토가 마녀(魔女)를 연상시켰고, 고딕풍의 짧은 치마와 검은색 망사스타킹이 시선을 계속 끌어 내렸다.

    ‘정말로 마녀인가? 요즘 시대에?’

    적성이 무당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어서 오십시오!”

    “......”

    “크, 큰일이네. 번역기를 내가 어디에 뒀더라? 끙...”

    사장님은 인사에도 반응이 없는 손님 때문에 진땀을 흘리면서 계산대 아래의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

    “당신이로군요.”

    “예?”

    “의외네요. 좀 더 비범하게 생겼을 줄 알았는데.”

    “무슨...?”

    굽이 높은 검은색 장화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내게 다가와서 아주 작게 속삭이는 손님.

    그 목소리는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운 악마를 연상시켰다.

    ‘대체 누구지?’

    고깔모자를 깊게 눌러쓴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살짝 보이는 갸름한 턱선과 도톰한 입술이 미인을 짐작하게 했다.

    “설마, 모르고 한 건가요?”

    “......”

    “재미있군요.”

    “저기... 죄송하지만, 사람을 잘못 찾으신 것 같은데요.”

    “다음에도 방해할 수 있을지 지켜보죠.”

    “저기요?”

    딸랑~♪

    무당 유일암만큼이나 제멋대로인 손님이 커다란 가방을 끌면서 편의점을 떠났다.

    ‘편의점에 나를 만나러 찾아왔다고? 내가 뭐라고?’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에 뒀었군! 쓸 일이 없어서 이런 구석에- 응? 손님은?”

    “떠났어요.”

    “이런...”

    “사장님. 저는 가볼게요.”

    “그래. 자주 놀러 와.”

    “네.”

    딸랑~♪

    이 기회에 적성이란 운명을 거부하면서 그럴싸한 직장을 찾아보자.

    ‘송선영도 하는데.’

    인간 돌고래인 그녀를 수영으로 이긴 내가 못 할 리 없다.

    ...그래야 이치에 맞지 않을까?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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