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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7화 (18/232)
  • 017화

    [1장-6절] 현실을 산다.

    “어째서 안 깨어나는 거야!”

    양손으로 아무런 잘못도 없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함을 지르는 남자가 있었다.

    평상시의 그를 아는 사람들이 봤다면 동일인물인지 의심했을 만큼 흐트러진 모습.

    왜냐하면 그가,

    “유일암 씨. 여긴 병원입니다. 조용히 해주세요. 화장실도 예외가 아닙니다.”

    귀신 퇴치가 전문인 ‘천재 무당’ 유일암이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강력한 귀신에 씐 송선영과 강문수 학생이 안타까워서 흥분하고 말았군요.”

    다양한 공영방송에 출연할 정도로 인기몰이 중인 천재 무당 유일암은 죽을 맛이었다.

    송선영.

    강문수.

    깨어날 기미가 안 보이는 두 고등학생이 혼수상태에 빠진 원흉으로 그가 지목된 탓이다.

    ‘환장하겠네!’

    강문수랑 몸싸움을 벌였던 장면이 생방송으로 고스란히 찍혔다.

    그뿐이었다면 이런저런 변명으로 흐지부지 넘겼을 텐데, 며칠이 지나도 안 깨어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해졌다.

    현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이미 혼수상태였던 송선영까지 그의 잘못처럼 분위기가 흘러가고...

    미칠 노릇이었다.

    “답답하신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주의해주십시오. 다른 환자들이 놀랍니다.”

    “네.”

    의사의 부탁에 순순히 그러겠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유일암이 병원에서 고함을 지르며 난동을 부린 건 이게 3번째였다.

    미칠 것 같으니까!

    이렇게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만큼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자꾸 이러시면 강문수 환자의 유일한 보호자이시더라도 출입금지 조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그를 더욱 열 받게 하는 원인은 강문수의 가정 형편이었다.

    부모 없음! 친척 없음!

    그나마 보호자 비슷한 위치인 담임선생마저도 개인 사정 때문에 장시간 있을 수 없고...

    그 탓에 유일암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갑갑한 병원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하필...!’

    생방송 도중에 사고가 나는 바람에 발뺌할 수가 없었다.

    강문수의 입원비도 문제지만,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평판과 인기가 그를 더욱 초조하게 했다.

    “유일암 씨의 답답함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희도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 나를 이해해? 너희는 태평하게 돈 벌어서 좋겠지! 무능한 놈들!’

    정밀검사해본 강문수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이 눈앞의 의사와 전문가들의 소견이었다.

    하지만 식물인간처럼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게 현실!

    그나마 위안이라면?

    학교 옥상에 쓰러져 있던 송선영도 같은 증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귀신 탓’으로 돌리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변호사를...’

    이대로 강문수가 영영 깨어나지 못한다면 꼼짝없이 상해죄에 걸릴 조짐이 보였기 때문이다.

    살짝 밀쳤다고 이런 일이?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억울해서 울화통이 치민다!

    “저는 다른 환자를 살펴야 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유일암은 의사가 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젠장! 적성이 무당이라고 해서 애써 왔는데 똥이었을 줄이야!’

    “어머! 선생님! 선생님! 환자가 깨어났어요!”

    “뭣?! 정말입니까?!”

    “네! 혼수상태였던 강문수 씨가 열흘 만에 깨어났어요!”

    “오오! 이런 기적이...!”

    “......”

    화장실 안까지 들릴 정도로 호들갑 떠는 의사와 간호사의 대화.

    유일암은 ‘너나 조용히 해!’라고 핀잔 줄 겨를이 없었다.

    ‘녀석이 깨어났다고?’

    반쯤 포기하고 있었던 그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당장 달려가서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지만, 유일암은 스마트폰부터 들었다.

    삑삑-

    (유일암 씨. 무슨 일로-)

    “카메라 들고 병원으로 최대한 빨리 와! 생방송 예고하고!”

    친근감과 존경심을 나타내는 ‘스승님’이란 호칭 대신 이름으로 부르면서 거리를 두는 제자.

    매우 괘씸했지만, 유일암은 개의치 않았다. 처음부터 서로 이용하는 관계였으니까.

    (예? 하지만 지금은 방송할 분위기가 아닌...)

    “녀석이 깨어났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그러니 내가 연락한 거 아니겠냐! 당장 와!”

    (네! 스승님!)

    뚝.

    짧은 통화를 마친 유일암은 화장실 거울을 보면서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했다.

    “잘만 구슬리면...”

    빠르게 계획을 구상하는 그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갔다.

    * * *

    “저기... 오늘 날짜가 어떻게 되나요?”

    메마른 목구멍과 혀 때문에 목소리가 잘 나오질 않았다.

    “1월 3일입니다.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강문수 씨.”

    간호사가 따뜻한 죽을 가져오면서 오늘 날짜를 가르쳐줬다.

    “1월 3일...”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토록 바랐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같은 날짜와 상황이 더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의미!

    거기까진 좋은데,

    ‘전부 꿈이었다고...?’

    멍-

    둔기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혼미해졌다.

    송선영이랑 함께한 시간, 그 모든 추억이 과학을 초월한 무언가가 아닌 꿈!

    과학에 입각해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됐을 때, 짐작했어야 했다.

    ‘아니지.’

    초창기에는 나도 꿈이라고 의심했었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갇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현실이라고 믿기 시작했을 뿐. 의심은 항상 했었다.

    지금도 꿈일 가능성은?

    없었다.

    그냥 아니다.

    지금은 현실이다!

    근거 없는 내 직감이지만, 병원에 누워있는 ‘지금의 나’는 현실에 있다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천천히 드세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입원비는 어떻게...”

    내 식욕을 사정없이 자극하는 눈앞의 죽그릇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

    모르는 상태에선 마음 편히 못 먹을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강문수 씨의 입원비는-”

    탕!

    병실의 문이 시원하게 열리면서 두 사내가 들어왔다.

    “하하하! 시청자 여러분, 보고 계십니까? 오랜 힘겨루기 끝에 드디어! 드디어 이 천재 무당 유일암이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한 명은 무당.

    “이번에 만난 귀신은 너무 강해서 힘들 줄 알았는데... 역시 스승님이십니다! 이건 기적입니다!”

    다른 한 명은 카메라를 어깨에 짊어진 그의 제자.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던 인간의 무례한 등장에 절로 내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유일암 씨가 병원비를 내주고 계세요.”

    “...오! 유일암 씨! 다시 만나서 정말 기뻐요!”

    간호사의 한마디를 듣자마자 내 입가에 영업용 미소가 그려졌다.

    * * *

    아버지 덕분에 알게 됐는데, 병원에 장시간 입원하게 되면 돈이 아주 많이 든다.

    먹고, 싸고, 자고...

    병실에서 숨만 쉬어도 돈이 줄줄 샌다는 느낌을 받는다.

    “저는 강문수 학생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왔습니다. 방송 전에 아무런 협의도 없었음을 맹세합니다. 의사 선생님?”

    “네. 말씀처럼 강문수 씨는 막 깨어났습니다. 지금은 안정을 취해야 해서 방송은 좀-”

    “협조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에게 필요한 대답만 듣고 밀어낸 무당 유일암.

    촤라락~

    태극이 그려진 부채를 멋지게 펼친 그는 특유의 유쾌한 어조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강력한 귀신에게 홀린 송선영 학생을 구하기 위해 강문수 학생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예?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제가 돕도록 유도했으니까요.”

    “......”

    가만히 있으라는 듯이 내 말을 자른 무당 유일암.

    그가 이어서 설명했다.

    “저는 송선영 학생을 삼킨 귀신의 힘을 줄이기 위해 강문수 학생에게 절반을 이전시켰습니다.”

    “스승님이 강문수 학생 쪽으로 귀신을 유인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못해서 정말 아쉽습니다!”

    카메라를 든 제자가 너무 아깝다는 어조로 맞장구쳤다.

    “괜찮다, 제자야.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지.”

    “그래도 저는 억울합니다! 스승님이 오해를 사서 시청자들에게 비난받은 걸 생각하면...”

    “하하! 그만큼 위험했지.”

    “그래도 저는 쭉 믿었습니다. 스승님이 귀신을 이기실 거라고.”

    “아무렴! 내가 누군데.”

    “국내- 아니, 세계 최고의 무당 유일암입니다!”

    “아부가 늘었구나, 제자야.”

    “진실이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거참...”

    스승과 제자가 막힘없이 대화를 쭉쭉 이어갔다.

    어디서부터가 허세고 진짜인지 분간이 전혀 안 될 정도로 매끄러운 방송 진행.

    그래서 나도 혼란스러웠다.

    ‘그의 말이 정말일까?’

    무당 유일암이 내게 무언가를 해서 꿈에 빠져든 걸까?

    슬쩍 찔러보기로 했다.

    “긴 꿈을 꿨어요.”

    “오! 강문수 학생. 그 꿈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네. 같은 시간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꿈이었어요.”

    송선영의 이야기는 쏙 빼고 아주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녀와 함께한 추억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유하고 싶지 않았기에.

    “정말 훌륭합니다! 제 기대 이상을 해줬군요!”

    “감사합니다.”

    “빈말이 아닙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어설펐는데, 그 짧은 시간에 훌륭한 무당으로 성장했군요!”

    “......”

    내 얼굴에 금칠하는 유일암의 마지막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내가 꿈속에서 무언가를 했던가?

    아니.

    자살하려는 송선영을 설득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모른 채 헤매기만 했다.

    “유일암 씨.”

    “앞으로는 저를 스승님이라고 부르세요. 사양할 필요 없어요.”

    “그건...”

    막대한 입원비 때문에 웬만하면 협조하려고 했는데, 이것만은 도저히 안 되겠다.

    그런 내 낌새를 눈치챈 걸까?

    유일암이 말을 덧붙였다.

    “강문수 학생.”

    “네.”

    “아직 자각하지 못했겠지만, 당신에게는 무한한 무당의 재능이 있습니다.”

    “정말로요?”

    “P의 적성검사기는 틀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걸로도 부족하다면 제 이름을 걸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

    나를 반드시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는 열망이 느껴졌다.

    “우수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수업료는 받지 않겠습니다.”

    “......”

    “또한, 이번처럼 제 일을 도와주면 섭섭하지 않을 만큼 수고비를 두둑히 챙겨주겠습니다.”

    움찔.

    수고비란 말에 한순간 흔들렸다.

    “나쁜 제안은 아닐 텐데요? 강문수 학생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볼 수 있겠네요.”

    내 적성에 맞는 일.

    무당(巫堂).

    귀신을 쫓는 일.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P의 적성검사기는 나에게 무당의 재능이 있다고 가르쳐줬다.

    “아직도 고민이 필요한가요?”

    슥.

    유일암이 내게 악수를 청하듯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에 나는,

    “죄송합니다.”

    온몸에 힘이 없어서 이전처럼 도망칠 순 없지만, 완고한 어조로 거절의 뜻을 전했다.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그런 꿈은 다시 겪고 싶지 않으니까요.”

    허무했다.

    송선영과 함께한 추억이 전부 거짓이었다는 사실에.

    무인도에 갇힌 남녀처럼 서로 좋아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고 해도 그 당시의 내 마음은 진짜였다.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다시는 안 시킬 테니.”

    “안 시키신다고 했는데, 어떤 꿈인지 정확히 아시나요? 직접 겪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물론이죠.”

    “그렇다면 꿈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보이던가요?”

    “......”

    “설마, 모르시나요?”

    “......”

    지금까지 술술 말하던 유일암의 입이 처음으로 꾹 다물어졌다.

    * * *

    뚜벅뚜벅.

    제법 오랫동안 굳어있던 근육을 풀어주는 재활 치료를 겸해서 병원의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큰일이네.’

    지팡이가 없으면 걷지 못하는 이런 꼴로 내일 퇴원해야 한다니?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은 내 입원비를 대주던 유일암의 제안을 거절한 대가니까.

    즉, 내 업보다.

    “음?”

    “응?”

    “......”

    “......”

    산책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랑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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