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14화 (15/232)

014화

“어째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송선영이 내게 화를 냈다.

“이해해.”

“아니, 너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이해했다면 시합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 텐데...!”

“무의미하지 않아.”

“뭐가-!”

“내가 이기면 네가 자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까.”

“그게 중요해?”

“중요해. 미래의 정보로 쉽게 부자가 되는 것보다 훨씬.”

원수처럼 노려보는 그녀의 눈을 보며 단언했다.

“......”

“......”

먼저 시선을 피한 송선영이 조금 차분해진 어조로 말했다.

“강문수, 오직 너만이 이 세상에서 나를 이해할 수 있어. 과거로 돌아가도 기억을 잃지 않으니까. 내 말이 틀려?”

“맞아.”

그녀가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무엇을 주문했으며, 수족관의 물고기에게 뭘 먹였는지...

기억하는 건 나뿐이다.

“아무리 다퉈도 다른 사람들은 기억이 지워져서 괜찮아. 하지만 너는 아니야.”

우리는 회귀해도 기억은 그대로 남는다.

그렇기에, 한 번 사이가 틀어지면 과거로 돌아가도 손바닥 뒤집듯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다.

“문수야. 나는 너랑 다투고 싶지 않아.”

“나도 마찬가지야.”

그녀와 내가 수영장에서 수영만 했던 건 아니다.

웃고, 놀고, 대화하고...

즐거운 일도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늘 함께였다.

“알면서 왜...?”

송선영이 당장에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욱씬.

그녀의 이런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지만,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선영아. 나는 네가 절대 모르는 기억이 있어.”

“절대 모르는 기억? 그런 게 있을 리가-”

“네가 죽는 광경.”

“......”

자살을 쉽게 생각하는 그녀가 침묵했다.

“너는 죽기 전에 의식을 잃어서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끝까지 다 지켜봤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로 떨어지며 부서지는 가녀린 몸.

방금까지 함께 웃던 여자애의 표정이 사라지고, 새빨갛게 물드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안 보면 되잖아.”

“안 본다고 해서 네가 안 죽는 건 아니야.”

“......”

“나는 좋아하는 여자가 더는 안 죽었으면 좋겠어.”

“아...”

“그러니 시합해줘.”

내 설득에 잠시 멈칫한 송선영이 쥐어짜듯 다시 입술을 뗐다.

“그래도 싫어.”

“왜?”

“몰라서 물어? 죽으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잖아. 나는 부자가 돼서 적성에 얽매이지 않고 살 거야.”

“흠...”

‘예상대로 쉽지 않네.’

하지만 나도 충동적으로 그녀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건 아니다.

“선영아, 좋아해.”

“못 믿겠어. 정말로 좋아한다면 내 의견을 따라줘.”

“아니, 좋아하기에 따를 수 없는 거야.”

“그건 궤변이야!”

“나는 두려워. 좋아하는 여자가 정말로 죽어버릴 것 같아서. 네가 자살했는데 과거로 못 돌아가면? 그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그럴 리 없어.”

송선영이 자신감 없는 어조로 부정했다.

“선영아. 우리는 신이 아니야. 어째서 이런 특혜를 받는지도 모르는 나약한 인간이지.”

“......”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마. 이번이 마지막 목숨일 수도 있어.”

원리가 없다.

선례가 없다.

출처가 없다.

우리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오컬트를 무모하게 남용하는 중이다.

‘그 끝이 좋을 리 없어.’

오만과 후회를 반복해온 인류의 역사가 그 증거.

나는 후회하고 싶지 않다.

“겁주지 마. 여태 괜찮았잖아. 다음에도-”

“다음은 다를 수 있어.”

“......”

“......”

고민하는 얼굴이 된 송선영이 목을 쥐어짜듯 힘겹게 답했다.

“...시합해줄게.”

“고마워!”

와락!

감격한 나는 양팔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는지 잘 알기에.

“...그 대신, 나도 조건이 있어.”

“뭔데?”

“다음이 마지막 시합이야. 그리고 이때 내가 이기면...”

“네가 이기면?”

“나의 아담이 되어줘. 영원히.”

“......”

얼른 그녀에게 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버렸다.

* * *

마지막 시합 전까지 자살하지 않기로 합의한 송선영이랑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진짜 오랜만인걸.”

도와주기로 약속한 뒤부터 늘 옆에 그녀가 있었기 때문일까?

갑자기 허전해졌다.

또한,

“아이고...”

수영을 배우는 동안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던 스마트폰이 나를 난처하게 했다.

「부재중 전화(14건)」

「읽지 않은 문자(5건)」

오컬트만 믿고, 주위의 인간관계와 사회규칙을 신경 쓰지 않은 대가.

딱 한 번만 더 회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안 돼.’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니까.

이렇게 시작부터 마음이 흔들리면 송선영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여기도 오랜만이고.”

철컥, 끼익-

내가 사는 집은 허름한 상가건물 3층 구석의 단칸방.

원래는 창고로 쓰이던 곳이라서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최악의 주거공간이지만, 월세가 매우 저렴하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

내가 무당의 재능에 눈을 떠서 귀신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여기서 가장 먼저 찾지 않을까?

“......”

한 장의 가족사진조차 걸려 있지 않은 삭막한 집의 구석에 쓰레기가 쌓여있다.

학교에서 평범한 척하기 위해 빨래와 목욕 같은 청결은 철저하게 유지하는 편이지만, 그 외에는 대충한 결과라고 할까.

청소할 시간과 체력을 온전히 아르바이트에 쏟아부은 탓이다.

‘주식으로 부자라...’

비키니를 입은 송선영이 했던 말이 악마의 유혹처럼 떠올랐다.

내 판단이 정녕 옳은 걸까?

부자가 되면 이런 누추한 단칸방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 그녀의 야한 수영복 차림도 매일 볼 수 있고!

“벌써 후회가-”

똑똑!

“문수야, 집에 있니? 선생님이야.”

“아...”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와 함께, 현관문 밖에서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맙소사! 연락이 안 돼서 직접 찾아오신 건가!’

오랫동안 정리하지 않은 집을 보여드리기 싫어서 부랴부랴 정리했다.

‘송선영은 뭐하러 청소하냐고 비웃겠지만.’

오컬트가 발동하면 또 지저분해질 테니까.

그래도 나는 청소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면 송선영처럼 안주해버릴 것 같아서.

‘더는 안 돼.’

그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마네킹처럼 보이는 삶은 잘못됐다.

한가롭게 헤엄치는 물고기가 기분 나쁘다고 탄산음료를 먹인 것도 포함해서!

나도, 송선영도, 담임선생님도, 친구도, 이웃도...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다.

똑똑!

“문수야!”

“네! 선생님! 잠시만요!”

집에 없는 척하지 않고 똑바로 대답했다.

‘이게 대체 얼마만이람?’

정말 오랜만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행동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게 싫지 않았다.

철컥.

잠금장치를 풀고 조심스럽게 연 현관문 앞에 과일바구니를 든 담임선생님이 계셨다.

“몸은 괜찮니?”

그녀의 첫마디는 훈계가 아닌 내 걱정이었다.

“괜찮습니다.”

“정말로? 아픈 곳 없어?”

“네.”

“문수가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교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죄송합니다, 선생님.”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평범하게 계단으로 내려가는 시간이 아깝다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다니?

내가 미쳤었다.

“그래도 나중에 꼭 정형외과에 가서 진단을 받으렴. 뼈에 금이 갔을 수도 있으니.”

“네.”

성실하게 대답은 했지만, 의사에게 진단받을 생각은 없다. 전력(全力)으로 수영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으니까.

“이제... 이유를 들어볼까?”

올 것이 왔다.

“적성검사결과로 인생이 결정된다는 압박이 심했던 것 같아요.”

“......”

“......”

“...그래. 예상하긴 했지만, 직접 들으니 마음이 아픈걸.”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먹혔다!’

나도 예상했다.

적성검사가 가까워지는 이 시기가 되면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예민해지니까.

이름하여, 고3병!

고유명사로 인정받을 만큼 악명 높은 ‘고3병’은 내 또래들에게 아주 유용한 변명거리다.

폭식, 욕설, 폭력, 외도, 탈주...

모든 상황에 끼워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교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짓도 포함해서!

‘거참...’

이성적인 문화시민이라고 자부하는 내가 변명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집이 좀 엉망이네.”

“아르바이트로 바쁘다보니...”

나에게 이 단칸방은 잠만 자는 곳이다.

“청소도구는 어디에 있니?”

“예?”

“보호자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짐작했어야 했는데. 선생님이 너무 무심했네.”

“아, 아뇨! 괜찮아요. 주말에 제가 청소할게요!”

“됐어. 어디에- 아, 여기 있네.”

“정말 괜찮은데...”

내가 부끄럽게 느끼는 집이라서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청소까지?

너무 부담스러워서 담임선생님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여긴 학교도 아닌데...”

“강문수 학생. 교사에게 학교는 월급 주는 직장이 아닙니다. 흩어져 사는 제자들이랑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일 뿐이죠.”

“아...”

“청소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겁니다. 그러니 부담 가질 필요가 전혀 없어요.”

“저도 도울게요.”

탁탁.

지금의 내 마음처럼 어지럽혀져 있던 집이 빠르게 정리했다.

“어떤 적성이 나오더라도 선생님은 강문수 학생을 응원합니다.”

“압니다.”

그래서 무당 유일암을 학교로 초대하셨죠!

“음?”

“선생님이 항상 저를 신경 써주신다는 걸 안다는 의미였습니다.”

“안다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 같은 위험한 행동은 앞으로 하지 마세요.”

“네.”

선생님과 나는 땀까지 흘려가면서 열심히 집을 청소했다.

‘회귀하면 또...’

간단히 포기하고 약해지려는 마음을 계속 다잡았다.

슥, 슥슥-

“저도 강문수 학생처럼 갈팡질팡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청소도구를 정리하던 담임선생님이 툭 던지듯 말했다.

“네? 선생님은 적성에 맞춰서 수학 교사가 되셨다고 하셨잖아요?”

“그 과정이 평탄했다고는 말한 적은 없습니다.”

“아...”

듣고 보니 그렇네?

“저는 수학보다 역사를 좋아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역사요...?”

“수학보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인류의 역사는 굉장히 흥미로웠으니까요.”

“아, 네.”

공감은 안 됐다.

“역사는 명확한 답이 없어요. 모두가 비난하는 전쟁조차 과학과 의학의 발전을 가속합니다. 반면에 수학은 풀이법이 다양할 순 있어도 정답은 단 하나뿐이죠.”

“아... 전혀 몰랐어요. 염세적인 말씀은 종종 하셨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기억력이 떨어지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그래서 담임선생님이 역사 과목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 그 반대의 느낌은 종종 받았지만.

“무슨 소리니? 이 선생님이 역사를 얼마나 잘 아는데! 같은 실수를 연도만 바꿔서 하는 머저리들의 이름을 외우면 그만이에요. 그래서 가르치는 건 포기했지만.”

“왜요?”

“반복되는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서요.”

“아...”

그 과목을 잘해도 본인의 성격이랑 안 맞으면 ‘적성’이 아닌 걸까.

맹점이었다.

“이런! 푸념하려고 온 게 아니었는데... P의 적성검사를 받은 옛날 생각이 갑자기 나버렸네.”

“아닙니다.”

“강문수 학생은 역사처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마세요.”

“반복...”

“처음이라서 봐주는 겁니다.”

쿡쿡!

같은 잘못을 반복 중인 내 사정을 알 리 없는 담임선생님의 한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명심하겠습니다.”

더는 반복하지 않겠다.

“강문수 학생. 내일은 밝아진 모습으로 교실에서 봐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담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역사 이상으로 여러분을 좋아하고요.”

“...저도요, 선생님.”

지금을 기억하는 담임선생님을 잃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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