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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3화 (14/232)

013화

물고기가 사는 수조 안에 탄산음료를 들이붓는 엽기행각을 벌이고 도망치듯 수족관을 나왔다.

내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

‘괜찮으려나?!’

일급수에서만 서식하는 물고기면 100% 죽을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아가미에 끈적끈적한 설탕이 들어가면 호흡이 힘들지 않을까?

나는 물고기의 생태계를 공부한 사육사나 의사가 아닌 탓에 더욱 안심이 안 됐다.

힐끔, 힐끔...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탄산음료를 마신 물고기들이 멀쩡하길 기도했다.

“뭐해?”

유명한 옷가게가 즐비한 백화점의 여성 코너를 나란히 걷던 송선영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누가 쫓아오나 신경 쓰여서.”

겁이 많은 좀도둑처럼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됐다.

“괜찮은 거 알잖아?”

“알긴 아는데...”

시간을 되돌리면 전부 없었던 일이 된다는 걸 알아도 불안했다.

“문수야. 이 옷, 어때?”

팔랑팔랑~

걸음을 멈춘 송선영이 삼각형 천조각을 내 앞에 흔들었다.

“괜찮네.”

“제대로 보고 말해.”

“어흠! 봐도 잘 모르겠는데.”

억울했다.

남자인 내가 여성 속옷에 대해 알 리 없잖는가!

“내게 어울릴 것 같아?”

“어울릴 것 같아.”

“......”

“......”

갑작스럽게 찾아온 침묵.

‘내가 뭘 실수했나?’

이마와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까부터 계속 뒤만 보네.”

“그건...”

“수족관 일은 잊어버려. 누가 쫓아와서 항의하면 큰일 나? 어차피 곧 기억도 못 할 텐데.”

“그렇지.”

전부 맞는 말이다.

“잘 들어. 인간 강문수가 걱정할 문제는 수족관 관계자나 물고기가 아닌 나, 송선영의 기분이야. 과거로 돌아가도 안 잊으니까.”

“아...”

이것도 맞는 말이다.

“마지막 기회를 줄 게. 잘 봐.”

“어. 잘 볼게.”

나는 눈에 힘을 주고 집중했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쳐다보란 의미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아까보다는 훨씬 낫네.”

“이제 됐어?”

“아니. 가까이 대볼 테니 어떤지 말해줘.”

“응? 가까이 대본다고...? 그게 무슨- 헉!”

그녀의 말을 바로 해석하지 못해서 되묻던 나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스윽-

반대편 손으로 자신의 교복 치마를 들친 송선영이 정말로 옷을 대본 탓이다.

“어때?”

“미, 미쳤어?! 당장 내려! 사람들이 보면 어쩌려고?!”

“...어떠냐고 물었잖아. 그리고 저것들이 좀 보면 어때? 어차피 기억도 못 할-”

“알겠으니 일단 내려! 내리면 말할게! 얼른~!”

“그래.”

슥-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들쳤던 교복 치마를 내려놨다.

“후우...”

“얼른 대답해. 아니면 또 한다?”

“진짜 예뻐! 심장 뛰는 게 느껴질 정도로!”

이건 진심이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심장이?”

“어! 심장이!”

“...나랑 똑같네. 나도 심장 뛰는 게 느껴지고 있거든.”

“그래.”

‘그런 짓을 해놓고 아무렇지 않으면 비정상이지!’

어째선지 나는 안도하고 있었다.

“이제 가자.”

탁.

표정이 밝아진 송선영은 옷을 제자리에 걸고 발걸음을 뗐다.

“저 속옷, 마음에 들어서 사는 거 아니었어?”

“안 사. 사도 금방 사라질 테니까.”

“뭐... 그건 그렇지.”

어느새 해가 떨어지면서 하늘이 어두컴컴해졌다.

‘벌써 시간이...’

우리가 돌아다닐 때까지만 해도 한산했던 백화점은 퇴근한 직장인들이 몰리면서 붐비기 시작했다.

“저녁도 먹을래?”

“흠... 먹는 도중에 경찰관과 선생님이 들이닥칠 것 같은데.”

스마트폰을 꺼둬도 도시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와 카드 명세서로 추적하는 듯했다.

‘혹시 모르니.’

여기는 매번 가던 체육대학 수영장이 아니라서 빨리 안 잡힐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면 어쩔 수 없네. 붙잡히면 귀찮아지니까.”

“잘 생각했어.”

“옥상으로 가자.”

“엘리베이터는 저쪽이야.”

우리는 학교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갈 필요가 없으니까.

띵!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아직 구경하지 못한 층들을 건너뛰고 단번에 백화점의 옥상으로 이동했다.

“안 막아놨네.”

“공중주차장으로 쓰니까.”

“처음부터 알고 여기로 정한 거였어?”

“당연하지.”

옥상의 출입을 막아둔 건물도 종종 있는데, 이 백화점은 이 여유 공간을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난간이 높네.”

“엎드려. 등을 밟고 올라가게.”

“그래.”

“...속옷 보면 가만 안 둬.”

“안 봐.”

‘자기가 보여줄 때는 언제고?’

종잡을 수가 없다.

휙!

엎드린 내 등을 송선영이 밟고 올라가는 무게감도 잠시,

“이따가 기대해.”

“뭘?”

“비밀~♪”

곧 자살하는 사람답지 않게 명랑하게 말한 그녀가 백화점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1초, 2초, 3초, 4초, 5초...

“...뭐지?”

송선영은 확실하게 죽었다. 이 높이에서 살았을 가능성은 전무(全無)하니까.

중력가속도로 봤을 때, 그녀가 뛰어내리고 5초 후에는 시야가 학교 교실로 바뀌어야 정상.

“......”

기다렸다.

‘10초는 지난 것 같은데...?’

과거로 돌아갈 시기가 한참 지났는데, 시간은 하염없이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

그래도 기다렸다.

“......”

나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이상한데.”

침착함이 깨졌다.

두근두근!

아무리 기다려도 오컬트가 발동하지 않았던 탓이다.

‘이대로 시간이 계속 흘러간다면...?’

“아, 안 돼...!”

조금 전까지 백화점에서 즐겁게 놀던 여학생이 자살했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으리라.

그러면 추론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제삼자에 의한 타살뿐!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쭉 내가 있었다.

“신이시여...”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살인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공포에.

그리고 그녀를 다시는 못 보게 된다는 절망이 나를 휘감았다.

‘말렸어야 했어!’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이 최악의 상황에서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제발!”

아이러니하게도 오컬트뿐이었다.

“제발...!”

털썩!

나는 무릎 꿇고 울부짖었다.

‘신이시여!’

믿지도 않는 신에게도 기도했다.

“강문수 학생. 나와서 338쪽의 3번 문제를 풀어보세요.”

“제발...!”

“제발?”

“아!”

단순히 내 기분 탓이었던 걸까? 오컬트가 발동했다.

두근두근!

하지만 너무 놀란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강문수 학생?”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급히 가봐야 해서.”

나는 이번에도 교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며 생각했다.

‘진짜 다행이야!’

후회하지 않을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라고.

* * *

내 또래들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예쁜 여자애랑 돈 걱정 없이 놀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쭉 암울하고 처절했던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나저나...

“늦네.”

늘 내가 송선영보다 먼저 수영장에 입수(入水)하지만, 이번에는 유독 오래 걸렸다.

‘무슨 일이 생겼나?’

그럴 리 없다고 확신하면서도, 최근에 이상해진 송선영의 태도를 생각하면 살짝 불안했다.

“뭐... 상관없나.”

이론은 다 배웠으니까. 지금도 내가 무의식적으로 놓치는 부분을 잡아주긴 하지만, 지적받는 횟수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조금만 더 하면...’

내가 수영으로 그녀를 이기는 날이 조만간 올 것 같다.

“문수야.”

넋 놓고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나를 부르는 송선영의 목소리.

그녀가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왜 이리 늦었... 어?”

“어때?”

수영장 이용시간이 거의 끝날 때쯤에 나타난 송선영이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며 물었다.

“......”

“왜 말이 없어?”

“어... 비키니네?”

그녀는 늘 입던 일체형 수영복이 아니었다.

물에서 속도를 내면 대참사가 벌어질 것 같은 아찔한 디자인!

위에 얇은 끈 하나만 당기면 홀라당 벗겨질 것 같다.

“어떠냐고 물었잖아.”

“예뻐.”

“그게 끝?”

“정말로 예뻐! 수영복 모델을 해도 될 것 같아!”

가슴이 좀 커진 것 같지만, 내 기분 탓일 것이다.

“...반응이 재미없네.”

찰랑~

내 감상이 불만이란 듯이 코를 찡그린 송선영이 발부터 천천히 물 안으로 들어왔다.

“시합할 수 있겠어?”

“당연히 못 하지.”

“......”

아찔한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그녀가 무슨 생각 중인지 모르겠다.

“문수야.”

“왜?”

“너랑 돈 걱정 없이 마음껏 놀면서 깨달았어.”

“뭘?”

“그동안 참 바보 같았다고. 적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무슨 말이야?”

“생각해봐. 우리는 주식을 손금 보듯 알 수 있어. 경기의 승무패를 맞추는 스포츠 도박도 안전하게 찍을 수 있고. 내 말이 틀렸어?”

“아니, 다 맞아.”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쓰이는 전개라서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오컬트가 아니라서 단념했다.

주식으로 돈을 쓸어 담아도 회귀하면 물거품이 되니까!

하지만 송선영은 제어할 수 있어서 나랑 다르다.

“내 말이 맞지?”

“맞아.”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부자가 되는 건 순식간이야.”

“그렇겠지.”

“돈이 많아서 일할 필요가 사라지면 적성에 연연하지 않아도 돼.”

“......”

송선영의 말이 전적으로 맞다.

돈이 많다면?

우리의 적성은 무한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단이 아닌, 취미나 특기로 전락할 것이다.

“너도 좋아하지 않는 무당이 될 필요 없어.”

설득력 있는 송선영의 목소리가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하게 내 귀를 자극했다.

“나는...”

무당이 싫다.

하지만 그녀처럼 뚜렷한 이유가 있어서 싫은 건 아니다. 좋고 나쁘고를 평가할 최소한의 기준도 없는 상태니까.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귀신 퇴치는 돈벌이가 안 된다는 막연한 편견 때문이다.

“좋아해.”

“뭐-?”

“좋아한다고, 너를.”

“......”

최근에 좀 이상해졌다고 느끼긴 했지만,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송선영의 고백.

그녀가 새빨개진 뺨을 부풀리며 재촉했다.

“빨리 대답해! 나만 이상해진 것 같잖아!”

“...왜?”

“바보야! 지금, 그걸 대답이라고 한 거야?!”

“미안.”

내가 생각해봐도 정말 한심한 대답이었다.

“나는 네가 최강훈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 2학년은 인기 많다고 해서 한 번 찔러본 것뿐이거든? 진짜로 좋아하는 건 아니었어. 그래서 만난 직후에 바로 자살했잖아.”

“그러냐...”

최강훈에게 고백한 송선영은 거절당하자마자 자존심 상해서 회귀한 모양이다. 그러면 고백도 없었던 일이 되니까.

“하지만 너는 달라.”

그녀가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서 너만 사람으로, 남자로 보여.”

“그게 무슨...?”

“다른 사람은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마네킹 같아.”

“......”

“그들은 과거로 돌아갈 때마다 기계처럼 똑같은 대사와 행동을 반복하니까. 마네킹이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이 못 받아들여. 너는 어때?”

“...나도 똑같아.”

수업 도중에 뛰쳐나가고 출석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나를 걱정할 선생님이 귀찮아서 스마트폰도 꺼두고.

내가 여태까지 쌓아 올린 인간관계와 당연히 지켜야 하는 사회의 질서를 무시하는 처사!

‘맞아. 비정상이지.’

어느 순간부터 나 또한 송선영처럼 타인을 대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있었다.

“이 세상에 남자가 너뿐이면 좋아할 수밖에 없잖아.”

“...그렇겠지.”

아담과 이브, 무인도에 떨어진 한 쌍의 남녀처럼.

남자로서는 자존심 상하지만, 그녀가 나를 이성(異性)으로서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했다.

“너는 어때? 나만 여자로 보여?”

“...보여.”

찰랑~

서로의 눈을 피하지 않고 바라본 우리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

“......”

점점 더, 입술이 닿을 만큼-

삑~!

“손님! 이용시간이 다 됐... 어흠! 너무 늦진 마세요.”

호루라기에서 입술을 뗀 안전요원이 조용히 자리를 비워줬다.

‘고마워요, 감독님!’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꼭 보답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기에.

“선영아.”

“말해.”

상기된 그녀의 촉촉해진 눈동자가 내 눈을 바라봤다.

“선영아.”

“말하라니까.”

“미안해.”

“응?”

기대한 답변이 아니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송선영.

행복에 젖은 내 영혼이 옥죄듯 가슴이 아려왔다.

‘그래도...’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폭주하는 그녀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기에.

“시합해줘.”

“......”

싫은 소리를 해야만 하는 내가 너무나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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