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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1화 (12/232)

011화

[1장-4절] 제대로 하자.

나는 수영이 좋다.

피부를 스치는 물살에 휘감기는 감촉이 너무 좋고, 물 위에 둥둥 떠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또한, 수영 덕분에 내가 태어날 수 있었다.

“내가 그때는 어려서 미쳤지! 물에 빠진 남자를 구해준 것도 모자라서 결혼하다니!”

“하! 그건 내가 할 소리! 그런 일이 없었으면 수영선수인 여자랑 결혼하지 않았어...!”

하지만 수영선수는 싫다.

부모님이 자주 싸우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적성이 참 대단해. 그 머리로 어떻게 의사가 됐는지 몰라. 제발 결혼해달라고 애원했으면서.”

“애원한 적 없어!”

“했어! 여자 탈의실 앞에서 꽃다발 들고 애원했잖아!”

“......”

“내 말이 틀렸어?”

“...상황이 달라. 그때는 당신이 국가대표였으니까.”

“영원한 국가대표는 없어!”

평범한 직업은 나이가 들수록 경험과 지식이 쌓이면서 부족한 체력을 보완한다.

하지만 운동선수는 짧은 전성기 이후에 한없이 추락!

그전에 유의미한 성과를 못 내면 더욱 비참해진다.

“수영강사라도 해봐.”

“하고 싶어도 못 해. 내 적성은 강사가 아니라서.”

“그러면 집안일이라도 좀 더 꼼꼼히 해.”

“노력하고 있어.”

올림픽에 출진해서 메달을 따면 국가에서 평생 연금이 나온다.

하지만 못 따면?

“당신은 운이 좋다는 걸 알아야 해. 나처럼 능력 좋은 의사랑 결혼하기가 쉬운 줄 알아? 지금도 나를 유혹하려는 간호사와 환자들이-”

“알겠으니 그만해.”

“알면 더 잘해. 내가 벌어다준 돈을 쓸 생각만 하지 말고.”

“지금보다 어떻게 더 잘해...!”

서로를 바라보며 항상 웃으시던 부모님의 모습은 내 어린 날의 추억으로만 남았다.

또한,

“선영아. 엄마를 봐서 알겠지? 너는 절대로 운동하지 마.”

“선영아. 운동하는 사위는 절대 안 된다. 알겠지?”

“...네.”

나는 수영이 좋다.

하지만 수영선수는 싫다.

* * *

“수영 잘하네.”

“나도 알아.”

감탄 섞인 강문수의 칭찬에 시큰둥하게 답했다.

수영선수인 엄마의 유전자를 강하게 물려받고 수영도 배웠으니까. 잘하는 게 당연하지.

“이대로 적성을 살려서 수영선수가 돼보는 건 어때?”

“죽어도 싫어.”

“빈말이 아닌 건 확실하네.”

“무당 씨. 쉬었으면 준비해. 이번에는 기록을 잴 거야.”

“그래”

이론은 전부 가르쳤다. 앞으로는 꾸준히 연습하면서 미세한 습관이나 자세를 교정하는 것뿐.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0.1초로 승패가 갈리는 시합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출진했던 엄마도 0.2초 차이로 메달을 따지 못한 채 은퇴했으니까.

“준비- 출발!”

“흡!”

촤아아!

내 호령에 맞춰서 출발한 강문수가 힘차게 물살을 갈랐다.

“......”

열심히 수영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고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내 억지를 불만 없이 따라주고 있으니까.

엄마가 숨 쉬는 것까지 불만인 아빠랑 대조되어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두근.

‘어라? 방금 뭐였지?’

가슴이 따끔했던 것 같은데...

“푸하~!”

“아, 맞다.”

삑-

뭐였는지 생각할 틈을 안 주는 강문수 때문에 부랴부랴 초시계부터 멈췄다.

“아이고... 힘들다. 잘 나왔어?”

“기다려.”

앓는 소리를 하는 강문수의 최신기록을 살펴본 나는 살짝 놀랐다.

‘또 빨라졌잖아?’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엉덩이가 부담스러운 수영복을 입고 개헤엄을 치던 하룻강아지였는데...

수영강사가 아닌 내가 가르쳤음에도 강문수는 매우 빠른 속도로 수영법을 습득했다.

“어때?”

“...괜찮아.”

“너랑 몇 초 차이인데?”

“4초.”

“켁! 여전히 갈 길이 머네.”

“뭐래? 처음을 생각해봐. 42초 차이였어.”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보 때랑 비교하는 건 좀...”

“지금도 초보야.”

내가 진지하게 하면 지금도 5초쯤 차이 날 것이다.

“평가가 짜네!”

“그러니 더 열심히 해.”

“더 열심히 하면 뭘 해줄 건데?”

“없는데?”

“전혀?”

“전혀. 이번 기회에 수영을 배워두면 너에게 좋잖아. 그리고 나처럼 괜찮은 여자애에게 공짜로 배우는 것을 고마워해야지!”

나랑 사귀고 싶어 하는 남자애들이 발에 치일 정도로 많다.

두근.

‘어라? 방금, 또...?’

내 착각이 아니다. 가슴이 또 따끔했다.

“그래도 동기는 중요한 거야. 약속해줘. 내가 너를 이기면 더는 자살하지 않겠다고.”

“......”

“약속해줄 수 있어?”

“...약속할게. 그때는 내 적성도 바뀔 테니까.”

“안 바뀌더라도 약속해.”

“그래. 약속할게.”

강문수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질 리 없다.

* * *

모르는 바보가 거의 없지만, P의 적성검사기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자신의 재능을 썩히는 사람이 해수욕장의 모래알만큼 흔했다.

축구선수가 정치를.

의사가 요리를.

사업가가 야구를.

그래서 노력만 하면 1등은 어려워도 그럭저럭 성공할 수 있는 느슨한 사회였다.

반면,

“수영 잘하네.”

“나도 알아.”

“이대로 적성을 살려서 수영선수가 돼보는 건 어때?”

“죽어도 싫어.”

“빈말이 아닌 건 확실하네.”

적성이 마음에 안 든다고 정말로 자살했으니까.

“무당 씨. 쉬었으면 준비해. 이번에는 기록을 잴 거야.”

“그래”

현재는 P의 적성검사기 덕분에 누구나 자신을 재능을 알 수 있다.

축구선수는 축구만.

의사는 진료만.

요리사는 요리만.

사람들이 재능을 썩히지 않고 온전히 발휘하게 되면서 낭비 없는 완벽한 사회가 완성됐다.

그건 다시 말해,

“힘들어.”

재능만 믿고 설렁설렁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팍팍한 사회!

“수영이 힘들어?”

“스포츠 분야는 다 힘들어. 모든 직업군 중에서 은퇴 시기가 가장 빠르니까.”

“흠...”

직업혁명 전에는 운동선수가 은퇴하는 시기가 빠르지 않았다. 재능 있는 꿈나무를 찾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축구를 예로 들어보자.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는 국가대표만 17년 동안 했다. 유소년축구까지 포함하면 무려 29년!

그런데 만약, ‘젊은 디에고 마라도나’가 매년 수천 명씩 데뷔하면 어떻게 될까?

17년은 고사하고 3년도 장담하기 힘들어지리라!

현시대가 딱 그렇다.

“은퇴 후에 다른 일을 찾기도 쉽지 않아.”

“그렇겠지.”

디에고 마라도나는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 26년 동안, 죽을 때까지 감독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이것도 현시대에서는 무리!

적성으로 ‘감독’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퇴한 선수가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다.

“다른 이유도 있어.”

“뭔데?”

“힘들어.”

“같은 이유잖아.”

“틀려. 좀 더 들어봐. 국가대표가 되려면 재능만으로 부족해. 재능은 다들 넘치니까. 그래서 더 젊은 경쟁자들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피똥을 싸는 노력으로도 부족해.”

“매우 자세히 아네.”

“엄마가 국가대표셨어.”

“오우! 함자가...”

“말해줘도 모를 거야. 메달이 없어서 주목받지 못하셨거든.”

“그렇구나.”

송선영이 자신의 적성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딱히 해줄 말이 없네. 부모님처럼 피똥 싸라고 할 순 없고...’

그래도 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면 그녀에게 위로나 덕담을 해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결정했다.

“내가 확실하게 해줄게.”

“뭘?”

“나에게 패배할 수준이면 메달은커녕 국가대표도 못 되겠지.”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피똥 쌀 만큼 노력해서 너를 꼭 이겨줄게. 그때는 적성에 상관없이 다른 일을 찾아봐.”

“...초보가 건방지네.”

“그러니까 초보지.”

남자의 포부는 무조건 클수록 좋다고 아버지께 배웠다.

“...고마워.”

“뭐?”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래.”

“......”

“......”

괜히 패기를 부려서 분위기만 더 어색해졌다.

* * *

“강문수 학생. 나와서 338쪽의 3번 문제를 풀-”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강문수 학생?”

“오늘은 저에게 매우 중요한 날이라서 당장 가봐야 합니다! 담임선생님께는 제가 나중에 따로 설명하겠습니다!”

“간다니? 지금? 갑자기 무슨- 강문수 학생?!”

탁!

자세한 설명 대신 책상을 박차며 일어선 나는 교실 창문에 발을 걸친 후, 과감히 뛰어내렸다.

“꺅?!”

“미친?!”

“뭔?!”

뒤편에서 놀란 학우들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한두 번 겪은 상황이 아니라서 깔끔히 무시했다.

우직-!

미리 파악해둔 나뭇가지가 밟자마자 내 무게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졌다.

‘좋아!’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근처의 다른 나뭇가지를 계단처럼 밟았다.

우드득-

당장 부러질 기세로 휘어지는 나뭇가지. 내가 머뭇거리면 1초 뒤에 부러진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흡!”

그전에 묘기를 부리듯 휘어진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린 나는 포물선을 그리며 지상에 착지했다.

탁!

“...완벽해.”

이번에는 전혀 다치지 않았다.

“와아...”

“실화냐?”

“대박!”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아이들의 감탄사에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회답해줬다.

“절대 따라 하지 마! 발목이 부러지거나 머리 깨진다!”

반복되는 상황에 미쳐버린 경험자의 진심 어린 조언이다.

“또 뛰어내렸어?”

“어.”

“나를 너무 믿는 거 아니야?”

“믿으면 안 돼?”

심하게 다쳐도 송선영이 시간을 되돌리면 없었던 일이 되니까. 이런 확실한 보험이 없었다면 절대로 시도하지 않았다.

“...무당 씨.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가자.”

“그래.”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체육대학 수영장까지 전력 질주!

이런다고 체력이나 폐활량이 바로 좋아지진 않지만, 물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준비운동의 대용으로는 충분하다.

‘오늘이야말로!’

나는 탈의실에서 송선영이 사준 수영복으로 잽싸게 갈아입은 후, 몸의 열기가 식기 전에 수영장으로 달려가서 다이빙했다.

풍덩!

“무당 씨.”

“너도 얼른 들어와!”

내가 수영장을 3번 왕복했을 때쯤에 송선영이 왔다.

“지구력도 좋지 않으면서 너무 힘 빼는 거 아니야?”

“괜찮아. 한 번 왕복할 체력은 있으니까.”

“나중에 핑계대지 마.”

“물론이지.”

우리는 수영장의 출발선에 나란히 섰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셀 수 없을 만큼 패배했지만, 기록을 경신한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규칙은 늘 똑같아. 초침 바늘이 12시, 정각을 가리키면 출발이야.”

“좋아.”

나는 정면의 벽 중앙에 걸린 커다란 아날로그 시계를 노려봤다.

똑딱, 똑딱, 똑딱-

‘지금...!’

풍덩!

내 적성은 수영이랑 연관성이 하나도 없는 무당이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도 안 하는 수영선수에게 패배할 정도로 수영을 못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촤악~ 촤악~!

‘호흡은 물속에서 코로 내뱉고, 양팔은...’

그동안 송선영에게 배운 수영법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이미 습관처럼 몸에 배서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되지만, 되새김질하듯 일일이 확인했다.

‘제발~!’

그만큼 이기고 싶었다.

톡.

내 손끝이 수영장의 벽에 닿았다.

‘송선영은?!’

그리고 늘 먼저 도착해서 우쭐대던 송선영의 목소리는 아직 들려오지 않았다.

그 말은 즉,

“드디어 이겼다~!”

“내가 또 이겼어!”

촤아!

촤아악!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동시에 외친 나와 송선영.

“아니거든?”

“뭐가?”

“내가 더 빨랐어.”

“뭐래? 내가 먼저 도착하도록 속도를 조절했는데.”

“거짓말.”

“진짜거든!”

우리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채 지그시 노려보려 눈싸움을 벌였다.

그렇게 몇 초 뒤,

“네가 이겼다고 치자. 하지만 선수가 민간인을 상대로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건 쪽팔리지 않아?”

“...인정.”

“그러니 다음에는 심판관을 두고 제대로 하자.”

“좋아. 봐주지 않고 제대로 할게.”

제대로 시합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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