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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0화 (11/232)

010화

우리 학교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유명한 체육대학이 있다.

체육대학인 만큼 수영장 시설도 굉장히 좋은 편인데, 공식적인 시합이 없는 날에는 유료로 외부인들에게 개방한다.

“수영장은 질색인데.”

“왜?”

대단한 비밀은 아니라서 송선영의 물음에 바로 답했다.

“몸에 자신이 없거든.”

편의점에서 짐을 나르면서 저절로 근육이 단련됐으면 좋았겠지만, 돈을 아끼려고 라면과 냉동식품으로 끼니를 때운 대가.

‘근육도 단백질과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해야 생기지!’

내 주식은 탄수화물, 유지방, 콜레스테롤, 화학조미료였다.

여기에 알코올, 니코틴까지 들어가면 30살 전에 요절하지 않을까?

아무튼,

“이건 미친 짓이야.”

“왜?”

“말했잖아. 나는 개헤엄밖에 할 줄 모른다고.”

“괜찮아. 내가 가르쳐줄게.”

“으으...”

수영가방을 등에 멘 송선영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다시 한번 설명해줄게. 적성은 어떤 분야를 내가 잘한다는 자신감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그러니 무당 씨가 수영으로 나를 꺾으면 돼.”

“말을 참 쉽게 하네.”

“쉽잖아?”

“나도 다시 한번 물어볼게. 그게 가능하겠냐?”

내 적성은 ‘무당’이다.

반면, 내 옆에서 늘씬한 몸매와 긴 다리로 우월함을 과시하는 이 여자애의 적성은 수영선수!

적성이 괜히 적성이겠는가?

이건 몇 번을 생각해봐도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시간은 많아.”

“적성검사가 코앞인데?”

“회귀.”

“아...”

이론상, 내가 적성검사 전에 수영을 배우고 연습할 시간은 무한.

그녀가 굳이 나를 선택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눈치챈 것 같네. 과거로 돌아가도 기억을 잃지 않는 무당 씨는 나를 이길 때까지 연습할 수 있어.”

“몸은?”

불량식품에 찌든 내 몸은 기억처럼 보존되지 않는다.

“나도 몸을 관리한 적은 없어.”

“......”

신경 쓰지 않은 몸이 저렇다고?

이 애는 그냥 타고났다.

“이젠 불만 없지? 조건은 거의 동등해. 네가 남자라서 유리한 부분도 있으니까. 순수한 기량으로 나를 이기면 돼.”

“...해보자고.”

노력으로 뒤집힐 재능이라면 적성검사기가 그냥 무시했을 것이다.

‘그건 알지만.’

현재는 달리 떠오르는 방법도 없었다. 있었다면 ‘무당’인 내가 먼저 시도해봤으리라.

“안에서 봐.”

“그래.”

송선영이 손을 흔들며 여성 탈의실로 들어갔다.

“오! 학생. 능력 좋네~”

“예?”

‘능력? 내가?’

남성 탈의실에서 막 나온 아저씨가 내게 짓궂은 눈웃음을 지었다.

“여자 친구가 미인이야.”

“...감사합니다.”

‘아저씨. 겉모습에 속지 마세요! 적성이 마음에 안 든다고 42번이나 자살한 여자애예요!’

그리고 여자 친구도 아니다.

* * *

“좀 끼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마지막으로 입었던 수영복.

내 육체가 성장한 만큼 치수가 맞지 않는 건 당연했다.

‘그때가 좋았지.’

근심 하나 없이 마냥 행복했던 중학생 시절이랑 너무 달라진 현재를 대변해주는 듯했다. 작아서 맞지 않는 이 수영복처럼.

“무당 씨. 그 유치원생 수영복은 어디서 났어?”

“내가 뭘 입든 무슨 상관...”

뒤편에서 살짝 울리듯 들려온 송선영의 목소리.

유치원생이란 말에 울컥해서 한마디 해주고자 고개를 돌린 나는 말끝을 흐렸다.

‘관세음보살, 옴마니밧메훔….’

그녀의 신체 비율이 좋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바뀐 복장 때문에 좀 더 두드러졌다.

피부에 착 달라붙는 수영복이 잘 어울리는 몸매.

비키니처럼 노출이 많은 것도 아닌데도 시선을 떼기 어려웠다.

특히,

‘다리 모델을 해도 되겠는데...?’

곧바로 쇠고랑 찰 것 같아서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왜?”

“어... 예쁘네.”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에 갈 때마다 자주 들어.”

“......”

남성 탈의실 앞에서 마주친 아저씨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걸 본인 입으로 말하기는 좀 부끄럽지도 않나?

저것도 타고난 것 같다.

“무당 씨. 혹여나 싶어서 묻는 건데, 고양이처럼 물을 무서워하는 건 아니지?”

“전혀.”

이 녀석, 수영장에 오고부터 사람을 너무 깔보네!

본때를 보여주고 싶다.

“그건 다행이네. 다음은... 아! 시범을 보여줄게.”

“그래.”

본때를 보여주려면 송선영의 수영 실력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전에,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셋, 넷...”

물에 빠져 죽기 싫으면 준비운동은 필수!

우득, 우드득-!

평소에 안 쓰던 관절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반면,

“...유연하네.”

송선영의 팔다리와 허리는 기형적인 각도까지 꺾였다.

“여자니까.”

“세상 모든 여자의 관절이 너 같지는 않아.”

“알 바 아니야.”

“거참...”

먼저 준비운동을 마친 송선영이 수영장으로 다이빙했다.

풍덩!

‘다이빙하는 자세부터 전문성이 느껴지는데...?’

나중에 본때를 보여줄 수 있을지 벌써 불안해졌다.

“무당 씨. 잠깐! 시범을 보여준다고 했잖아. 거기서 지켜봐.”

“그래.”

“...잘 봐.”

첨벙!

목걸이처럼 목에 건 수경(水鏡)을 쓴 송선영이 수영장의 모서리를 박차며 헤엄치기 시작했다.

‘와...’

시간을 재고 있진 않지만, 그냥 보기에도 빨랐다.

인간의 탈을 쓴 물고기!

적성검사에서 ‘수영선수’가 취미로 나온 게 아님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저건 여유일까?

촤악~!

수영장 반대편 모서리를 찍고 되돌아오던 그녀는 돌고래처럼 물 위로 튀어 오르는 묘기마저 선보였다.

“오...”

“와아...”

그 광경을 우연히 본 사람들의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내 심정은?

“돌겠네.”

감탄 대신 욕이 나왔다.

* * *

인간 돌고래, 송선영에게 물장구치는 요령 같은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배워갔다.

“무릎은 접지 말고 항상 펴.”

“왜?”

“수영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거든. 다리의 모든 관절을 쓰지 않고 무릎만 까딱거리는 거. 너의 개헤엄처럼.”

“아하!”

“그래서 습관이 들 때까지 무릎은 봉인. 어색하고 불편해도 다른 관절만 쓸 거야. 이해했어?”

“이해했어.”

따지고 보면 억지로 수영을 배우는 중인데,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이게 얼마 만이야?’

학교 외의 시간은 아르바이트와 휴식으로 채웠었다.

그래서 늘 시간이 쫓겼는데, 그런 내가 여유롭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게 신선했다.

“벽을 잡고 다시 물장구쳐봐.”

“그래.”

첨벙첨벙~

나는 송선영이 시키는 대로 수영장 모서리를 잡은 후, 두 다리를 앞뒤로 휘저었다.

“무릎을 접지 말라니깐.”

“말처럼 쉽지 않네!”

“...그리고 수영복 하나 사. 계속 보기 힘들어.”

“뭐가?”

갑자기 웬 시비?

“무당 씨. 남의 눈도 소중하게 생각해주지 않을래? 수영복이 엉덩이 사이에 꼈잖아.”

“......”

분하게도 반박할 수가 없었다.

“호흡은 최대한 짧게. 물속에서 코로 숨을 내뱉고, 물 밖으로 나올 때마다 입으로 마시는 거야.”

“...콜록콜록!”

코로 물이 들어갔다!

“아하하하! 완전 웃겨! 네가 물고기야? 반대로 하면 어떡해!”

양손으로 배꼽을 잡고 허리까지 젖혀가며 웃는 송선영.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그렇게 재미있나?

“젠장- 콜록콜록!”

나중에 본때를 보여주겠다.

* * *

“강문수 학생. 나와서 338쪽의 3번 문제를 풀어보세요.”

“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학교 수업을 빠지고 수영장에서 물장구치는 건 정상은 아니다.

‘경찰까지 동원될 줄이야!’

내게 훈계할 부모님이 없다는 가정사를 아시는 담임선생님이 2배로 잔소리하셨다.

그렇게 몇 시간 후, 내가 담임선생님의 잔소리에 초주검이 됐을 때쯤에 오컬트가 발동했다.

슥, 스윽-

“어... 강문수 학생?”

“네.”

“이거, 직접 푼 것 맞나요?”

“맞습니다.”

이 문제만큼은 은하계에서 가장 잘 푼다고 확신한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오네요! 선생님이 역으로 배워야 할 만큼 완벽한 답안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젠 그만 풀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선생님의 극찬에도 전혀 기쁘지 않은 수업이 마침내 끝나고...

드르륵!

“야! 무당- 강문수!”

교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들어온 송선영이 앙칼진 어조로 나를 불렀다.

“...왜?”

“안 나와서 한참 기다렸잖아!”

“기다렸다고? 나를? 왜? 너도 수업이 있잖아.”

“나는 바로 빠져나왔지.”

“아하!”

조금 전까지 담임선생님께 정신교육을 받았던 나로선 생각지도 못한 송선영의 탈주.

기가 막혔다.

“어? 송선영이잖아.”

“강문수! 지옥에나 떨어져라!”

“뭐야?! 무슨 상황이야!”

“설마, 둘이 사귀냐?!”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헛소리하는 친구들도 제정신 같진 않았다.

“이 반도 머리 아픈 환자가 많네.”

“너 때문이잖아!”

다짜고짜 남의 교실로 쳐들어온 송선영이 문제다.

“뭐래? 네가 먼저 시작했거든?”

“아, 그렇네.”

휘릭~

우리는 좀도둑처럼 학교 담장을 넘어서 빠져나왔다.

“어머! 분위기가 달라졌네.”

“한 번 해봤으니까.”

처음에는 누가 안 따라오는지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확인할 정도로 불안했는데, 고작 2번째 만에 죄책감이나 망설임이 사라졌다.

‘아, 그렇지.’

쭉 궁금했던 게 떠오른 나는 앞장서서 걷는 송선영을 불렀다.

“강사님.”

“이름으로 불러.”

“선영.”

“왜?”

“수영장은 같이 갔는데, 너는 어떻게 그냥 넘어갔냐?”

“초범(初犯)이 아니라서. 부모님도, 담임선생님도 진즉 포기했거든.”

“아하!”

아주 명쾌한 답이었다.

“앞으로는 너도 수업받지 말고 바로 나와. 기다리기 싫으니까.”

“거참...”

쉬는 시간도 아니고 수업 도중에 학교를 탈주한다니?

오컬트가 아니었다면 상상조차 못 했을 기행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어디서 뭘 하든 관심 없으셔.”

“그렇구나~”

부모님이 없는 나로선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쁜 부모보다는 많지 않을까?

송선영이 말했다.

“너는 어때? 나처럼 부모님의 연락이 없었잖아.”

“비슷해.”

저승에는 전화국이나 광통신이 없으니 말이다.

* * *

집에서 수영복을 챙긴 후, 학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이기에 금방 수영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풍덩!

그런데 먼저 탈의하고 수영장에 들어간 나를 내려다보는 송선영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먼저 샤워하고 준비운동도 했어.”

“아니, 내가 그 수영복은 입지 말라고 했잖아.”

“집에 이것밖에 없는데?”

“새로 사.”

“돈 없어.”

“사줄게. 내 눈은 소중하니까.”

“오! 정말?”

“죽으면 되돌아올 돈이야. 그러니 펑펑 써도 돼.”

“아, 그렇네.”

흥청망청 써서 지갑이 얇아져도 과거로 돌아가면 다시 두둑해진다.

‘똑똑한데?’

절약이 몸에 밴 나로선 상상도 못 했던 방법이다.

“호흡할 때는 절대로 고개를 들면 안 돼. 균형을 잃으면서 상체가 물에 잠기거든. 이러면 숨쉬기가 더 힘들어져.”

“그러면?”

“몸을 돌려.”

“나는 천재가 아니거든? 그렇게 말하면 못 알아들어.”

“허리를 쓰라고.”

“아하!”

세상은 오차 없이 쳇바퀴처럼 반복되었지만, 내 수영 실력은 매번 바뀌고 있었다.

하루, 이틀, 닷새, 보름...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던 송선영의 꽁무니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가 빨라질수록 우리의 거리도 좁혀졌다.

“자, 잠깐!”

먼저 완주한 후에 내가 도착하길 기다리던 송선영이 화들짝 놀라면서 뒤로 쭉 물러났다.

“왜?”

“너무 가깝잖아!”

“......”

그동안 내 수영 실력만 바뀐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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