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9화 (10/232)
  • 009화

    [1장-3절] 수영선수가 싫다.

    송선영의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은 다른 여학생들이랑 특별히 다르거나 대단하진 않았다.

    그저,

    “선영아.”

    “왜?”

    “혹시, 남자친구 있어?”

    청춘과 낭만이 낄 기회가 매우 많았을 뿐.

    “없는데.”

    모델처럼 다리가 길고 늘씬한 그녀의 주위로 심심찮게 남학생들이 꼬인 까닭이다.

    “아! 그러면 같이 영화 보러...”

    “미안. 바빠서.”

    “오늘이 아니어도 돼! 네가 편한 시간에 내가 맞출게!”

    “미안. 매일 바빠서.”

    “그, 그래.”

    그리고 이때마다 송선영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남자친구?

    고등학교 3학년 막바지에 실시하는 적성검사의 결과를 보기 전까지는 생각 없었다.

    “선영아. 솔직하게 말해줘. 나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들어?”

    “적성.”

    “적성? 적성검사는 아직 안 봐서 모르잖아.”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

    “그게 무슨...?”

    “다시 말해줄게. 네 적성을 몰라서 마음에 안 든다고.”

    “아...”

    나라마다 ‘성인’의 기준이 달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적성검사는 만 19세 전후로 받는다.

    즉, 어른이 되기 전에는 적성을 알 수 없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하게 될지를.

    “그래도 나랑 사귀자! 적성은 나중에 3학년이 되면-”

    “미안. 나중에 생각해볼게.”

    “......”

    “신경 쓰지 마. 내가 예민한 거니까. 예민하지 않은 평범한 여자애를 만나봐.”

    돌아오지 않는 10대를 만끽하다가 애인의 적성이 마음에 안 들면 그때 헤어지기도 하지만, 송선영은 그럴 수 없었다.

    한 번 마음의 문을 열면 활짝 열어젖히는 성격 탓!

    그래서 ‘첫 남자친구’가 남편까지 직행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했다.

    ‘조심해야지.’

    못 헤어진다고 단정하는 그녀의 판단은 섣부르지만, 배우자의 적성을 따지는 조심성은 정상이다. 20대 미혼자(未婚者) 중 상당수가 마음에 드는 이성을 발견하면 적성부터 확인하니까.

    왜?

    자본주의사회에서 가난한 직업은 인기가 없다.

    “또 차였데.”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선영이는 무리지.”

    “적성 때문에...”

    주위에서 기웃거리는 남자애들이 뭐라고 쑥덕거리든 송선영의 생각은 변함없었다.

    그리고 먼 미래의 배우자 이상으로 자신의 적성을 걱정했다.

    ‘제발!’

    예체능만은 피하길!

    학교 체육관에서 적성검사를 받은 후, 그녀도 친구들처럼 결과를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했다.

    “12번, 송선영.”

    “네.”

    그녀는 담임선생에게 넘겨받은 봉투의 내용물을 활짝 펼쳤다.

    스윽-

    “아, 안 돼...”

    「수영선수」

    반드시 피하고 싶었던 예체능이 나왔다.

    * * *

    “...그래서 자살했어.”

    학교 옥상의 난간에 위태롭게 선 송선영의 넋두리가 마침내 끝났다.

    “음? 정말로 끝?”

    “어. 여기서 더 무슨 설명과 사족이 필요해?”

    “남자들에게 인기 많다는 불필요한 사족이 낀 네 설명을 요약하면, 적성이 마음에 안 들어서 자살했다는 거네.”

    “맞아.”

    “그게 하나뿐인 목숨이랑 바꿀 만큼 심각한 문제야?”

    “맞아!”

    “흠...”

    나로선 송선영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적성에서 ‘무당’이 나왔을 때는 어떻게 살지 막막했고, 그건 지금도 변함없지만, 인생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질문 하나만.”

    “해.”

    “자살을 5번째 하고 있잖아. 무섭지 않아?”

    나는 절대로 못 한다.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땅에 떨어질 때 죽을 만큼 아플 테니까.

    내 질문에 송선영이 시큰둥한 어조로 답했다.

    “전혀.”

    “전혀?”

    “아! 그렇다고 오해하진 마. 처음에는 나도 무서웠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과거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안 뒤부터는 아무렇지 않아.”

    “그래도 죽을 만큼 아프잖아.”

    “안 아프던데?”

    “음?”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의식이 사라져.”

    “아하!”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과거로 돌아간다는 거군?

    아무튼, 송선영이 자살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이유를 알았다.

    “나도 질문.”

    “해봐.”

    “내가 5번 자살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야?”

    “음? 그야...”

    슬슬 나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틀렸어.”

    “그러면 6번째인가...?”

    “완전히 잘못 짚었어. 나는 42번 자살했거든.”

    “......”

    그녀가 자살을 쉽게 상각하는 이유를 아주 잘 이해했다.

    * * *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

    고대부터 죽음을 두려워한 인간들은 다양한 주장을 했다.

    첫째, 쳇바퀴처럼 삶과 죽음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윤회(輪迴).

    둘째, 선택받은 자만 다른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는 전생(轉生).

    셋째, 심판받고 천국이나 지옥에서 영원히 사는 부활(復活).

    넷째, 전원을 끈 전자제품처럼 모든 활동을 중단하는 종말(終末).

    다섯째...

    급기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생명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마저 등장했으니!

    즉, 인간 사후(死後)의 견해는 개인의 가치관과 종교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내 생각은?

    ‘죽으면 그걸로 끝이지.’

    인간.

    이 영장류, 포유동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뚜렷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내 생각도 하나의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랬는데-

    “망할 오컬트.”

    타인의 주장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나조차도 송선영의 현상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오컬트?”

    “너무 불공평하잖아.”

    “뭐가?

    “생각해봐. 네가 자살해서 과거로 돌아왔다면, 네가 자살하고 없는 세계는 어떻게 될까?”

    “사라지겠지.”

    진지한 내 질문에 송선영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에너지보존법칙은 아니?”

    “들어봤어.”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전환될 때, 전환 전후의 에너지 총합은 항상 일정하다는 법칙이야.”

    “그게 어쨌는데?”

    “우주의 모든 질량이 사라져서 에너지로 바뀌면-”

    “그만~!”

    갑자기 송선영이 손바닥으로 양쪽 귀를 막으며 소리를 질렀다.

    “왜?! 무슨 일이야?!”

    “미안. 과학은 질색이라서.”

    “......”

    과학에 근거한 지성인의 대화를 기대한 내가 바보 같았다.

    ‘맞아. 내가 바보지.’

    이미 벌어진 오컬트 상황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면서 부정하는 내 고집이 문제이리라.

    그래도,

    “과거로 돌아가는 오컬트의 조건부터 말이 안 돼. 지구 어딘가에서 사람이 계속 죽으니까. 그때마다 우주가 사라진다면 이처럼 시간이 흐를 리 없어.”

    인간A가 죽어서 회귀, 인간B가 죽어서 회귀, 인간C가 죽어서 회귀, 인간D가 죽어서 회귀...

    시간이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건 고사하고 역주행할 것이다.

    “무당 씨.”

    송선영이 무척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 내 말이 틀렸어?”

    “다른 사람이랑 내가 같아? 똑같이 보면 안 되지~”

    “뭐가 다른데?”

    “이 우주에 송선영은 단 한 명뿐이니까.”

    “나도 한 명뿐인데?”

    밤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고등학교 3학년 강문수는 이 우주에 ‘나’ 하나밖에 없다고 장담한다.

    그래서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말도 있잖은가?

    “너는 평범하잖아.”

    “너는 안 평범해?”

    모두가 주인공인 이야기에서는 모두가 조연이기도 하다.

    “당연하지. 죽으면 이렇게 과거로 다시 돌아오니까. 이건 나만 가진 능력이야.”

    “결과론적인 얘기네.”

    “성적표도 그렇잖아? 공부를 얼마나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지.”

    “흠...”

    틀린 말은 아니다. 노력과 성적이 정비례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진 마. 무당인 너도 평범하진 않으니까. 기억을 잃지 않잖아?”

    “뭐...”

    송선영이 나도 ‘특별한 동류’로 묶어버리는 바람에 반박할 말이 궁색해졌다.

    ‘듣고 보니 그렇네.’

    특별하지 않은 내가 어째서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먼저 꺼낸 말이긴 하지만, 그녀의 착각처럼 내가 ‘무당’이기 때문일까?

    알 수 없다.

    “솔직히 놀랐어. 무당이 과학을 따질 줄은 몰랐거든.”

    “......”

    적성이 ‘무당’일 뿐, 유일암처럼 진짜 무당이 된 건 아니다. 기반 지식이 하나도 없으니까.

    ‘...유일암에게 물어볼까?’

    그건 아니지.

    너무 앞서간 것 같다.

    “아무튼, 무당 씨. 머리 아픈 과학은 나중에 혼자 따져.”

    “그래.”

    “내가 너랑 편의점에서 헤어진 후에 곧바로 자살한 이유는 확인하기 위해서야.”

    “뭘?”

    “정말로 기억이 보존되는지를.”

    “그래서 확인한 소감은?”

    “만족해.”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옥상 난간 위에 선 송선영의 눈꼬리가 살포시 내려가며 눈웃음을 지었다.

    구원받은 표정.

    조금 과장하면 환희(歡喜)!

    발을 살짝만 헛디뎌도 추락하는 아찔한 상황에서 보일 얼굴은 절대 아니었다.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어.”

    “왜? 부모님도 있고, 선생님도 있고, 친구도 있고...”

    “허무했거든. 과거로 돌아가면 다 잊어버리니까.”

    “......”

    그게 싫으면 자살하지 않으면 된다고, 핀잔주려다가 말았다.

    그 이유가 짐작됐기에.

    “42번. 일이 안 풀릴 때마다 자살한 횟수야.”

    “흠...”

    만사(萬事)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되돌릴 수 없기에 우리는 꾹 참고 차선을 선택한다.

    그런데 인위적으로 되돌리는 게 가능하다면?

    이건 악마의 유혹이다.

    “도와줘.”

    “내가 너를?”

    “어.”

    “같은 상황을 42번이나 반복하고도 해결하지 못한 일이 있어?”

    불가능에 도전하거나 어딘가 장애가 있지 않은 이상, 그렇게 많이 실패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있어.”

    “내가 뭘 도와주면 되는데?”

    “그전에 우선, 무조건 도와주겠다고 약속해.”

    “......”

    매우 수상했다.

    “무당 씨도 나를 도와주는 편이 좋을걸? 매일 똑같은 수업을 받기 싫다면.”

    “...약속할게.”

    “정말?”

    “정말로. 그러니 말해봐.”

    나도 338쪽 3번 문제는 그만 풀고 싶다.

    * * *

    정체불명의 발명가, 통칭 ‘P’가 공개한 적성검사기는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놨다.

    정치, 문화, 경제, 레저, 스포츠, 서비스, 교육, 과학...

    모든 분야가 전문화되면서 비효율적인 인력, 재능 낭비가 말끔히 사라진 까닭이다.

    “내 적성은 수영선수야.”

    “그건 맨 처음에 말해줘서 알고 있어. 싫어한다는 것도.”

    아무리 좋은 정책도 부작용이 있기 마련.

    선진국부터 개발도상국까지, 모든 나라에서 극찬하며 도입한 P의 적성검사기도 예외는 아니다.

    “적성을 바꾸고 싶어.”

    “포기해.”

    나도 판타지 소설을 열심히 읽으면서 발버둥 쳐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약속했잖아. 도와준다고.”

    “나도 도와주고 싶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어떻게 도와줘?”

    “그래도 도와줘. 도와준다고 약속했잖아. 약! 속!”

    “거참...”

    “도와줄 거지?”

    “...그래. 적성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줄게.”

    “야호!”

    내가 약속을 어길 것 같아서 조마조마했던 걸까?

    송선영은 눈에 띄게 좋아했다.

    ‘하지만 가능할 리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 P의 적성검사기가 지금처럼 상용화되기 전에는 ‘적성을 바꾸는 약’을 파는 사기꾼들이 기승이었다.

    그리고 현재는?

    검증할 방법이 없는 ‘좋은 적성이 나오는 약’이 암시장에서 성황리에 팔리는 중이다.

    “약은 진즉 해봤을 테고...”

    “응. 과다복용으로 적성검사도 못 받고 죽은 적도 있어.”

    “자랑처럼 말하지 마!”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않아도 송선영이 죽으면 오컬트가 발동하는 모양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봤어.”

    “전부 다?”

    “어. 전부 다.”

    “그런데 혼자서 못하는 노력도 있어?”

    “있어.”

    “그럴 리가...”

    적성도 결국은 자기 계발. 남이 대신해줄 수 없다.

    “들어봐. 적성은 정신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고 해.”

    “정신? 영혼 같은?”

    오컬트는 이제 사양하고 싶다.

    “믿음. 내가 이 분야를 잘한다는 확고한 자신감.”

    “흠...”

    송선영이 어딘가에서 주워온 이론은 오컬트만큼이나 의심쩍었다.

    ‘다 사기인데.’

    적성이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 진짜였던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차라리 외계인을 봤다는 목격담이 훨씬 신빙성 있으리라.

    적성을 바꿔주는 무언가는 사람들의 간절함과 불안감을 이용한 돈벌이에 지나지 않는다.

    P가 발명한 적성검사기는 약물이나 기도 정도로 바뀔 만큼 허술하지 않으니까.

    역사가 증명해준다.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해. 혼자서는 어렵거든.”

    “꼭 해야 해?”

    “꼭!”

    “......”

    “다른 방법은 다 해봤어. 이제 마지막이야.”

    마지막.

    내 도움이 필요한 이 방법마저 실패하면 깔끔히 포기하겠다는 의미.

    그녀가 포기하면?

    오컬트도 끝난다.

    ‘어쩔 수 없나.’

    그녀가 자살하지 못하도록 온종일 감시하거나 감금할 게 아니라면.

    다른 선택지가 없다.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

    “혹시, 수영 잘해?”

    “음?”

    이때부터 나는 불가능에 도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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