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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8화 (9/232)
  • 008화

    낮에 학교에서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조사했음에도 ‘송선영’의 정보는 매우 적었다.

    그녀에게 호감을 품은 남학생이 은근히 많다는 정도?

    그래서 힘들었다. 대단한 보물 지도처럼 그녀에 대해 안 가르쳐주려고 해서.

    “무당...?”

    “네. 무당입니다.”

    “......”

    송선영이 관찰하는 시선으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녀는 무슨 생각일까?

    길 가던 사람을 붙잡은 후에 무당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보면서.

    “나는-”

    “기억났어요. 무당 강문수. 학교 선생님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이상한 적성이 나온 우등생.”

    “배신까지야...”

    학교 선생님들은 내 가정사를 알고 있으니까. 힘들게 사는 내가 적성이라도 잘 풀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신 말씀들이다.

    열심히 발버둥 친 만큼 또래의 아이들보다 여러 면에서 앞서간 건 사실이지만.

    내가 잘난 건 아니다.

    ‘예상이 맞았네.’

    회귀한 이번 세계에서는 아직 적성검사도 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송선영은 ‘무당 강문수’를 이미 알고 있었다.

    즉, 그녀는 회귀에 휘말린 피해자가 아닌 당사자란 의미.

    나랑 똑같다.

    “무당 씨. 동갑이니 편하게 말해도 되지?”

    “그래.”

    “어디까지 알고 있어?”

    “질문이 지나치게 포괄적인데.”

    “기억.”

    “네가 적성검사결과 발표날에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까지.”

    “...다 안다는 소리네.”

    송선영이 발뺌하지 않고 순순히 인정한 덕분에 대화가 술술 풀렸다.

    “어째서 계속 자살하는 거야?”

    “내 마음이야.”

    “이번에는 내가 질문할 차례.”

    “방금 했잖아.”

    “내가?”

    “자살하는 이유를 물었잖아. 다시 내 차례야.”

    “......”

    어디서 이런 양아치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더욱 짜증 났다.

    “다음 질문은 내일 할래.”

    “잠깐-”

    “지금이 몇 시인지 알아? 모두가 너처럼 아르바이트로 새벽을 보내는 건 아니야.”

    “......”

    나도 좋아서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얘기를 굳이 꺼내고 싶진 않았다.

    “학교에서 보자.”

    “그래. 자살하지 말고.”

    “...진짜 어이없네. 무당 씨, 네 걱정이나 해.”

    “나는 잘하고 있어.”

    “그래? 어떤 아줌마가 계산대 앞에서 널 기다리고 있는데?”

    “헉!”

    정말이었다.

    “이봐요. 어린 여학생은 보이고 내 컵라면은 안 보이나 보지?”

    S사 매운 컵라면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은 아가씨가 매우 불편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강문수! 정신 차려! 남의 목숨보다 내 밥줄이 우선이잖아!’

    물건 계산을 기다리는 손님을 앞에 두고 한눈팔다니?

    욕먹어도 할 말 없다.

    딸랑~♪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똑바로 해.”

    “네!”

    내 우렁찬 답변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기분이 풀린 아가씨가 컵라면이 든 봉투를 들고 떠났다.

    “휴~!”

    나는 손님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춘 후에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송선영은... 벌써 갔네.’

    살짝 어이없긴 했지만, 그녀의 말대로 내일 다시 대화하면 된다.

    딸랑~♪

    “어서 오세요!”

    나는 밝은 내일을 꿈꾸며 성실하게 아르바이트에 임했다.

    * * *

    “강문수 학생. 나와서 338쪽의 3번 문제를 풀어보세요.”

    “미치겠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가는 도중에 발동한 오컬트.

    이번에는 하루도 안 지나서 한밤중에 회귀했다. 정황상 송선영의 소행이 확실-

    “...강문수 학생. 아무리 문제를 풀기 싫어도 그런 말을 큰소리로 하면 안 되죠.”

    “죄송합니다, 선생님! 예습한 문제가 나와서 미치도록 기쁘다는 의미였습니다!”

    무려 3번이나 예습한 덕분에 미칠 것만 같다!

    “어머! 선생님의 오해였군요? 그러면 빨리 나와서 338쪽의 3번 문제를 풀어보세요. 얼마나 잘 예습했는지 궁금하네요.”

    “네!”

    이 문제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잘 푼다고 장담한다.

    * * *

    송선영의 변덕으로 또 미래가 바뀐 걸까? 이번에는 최강훈이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덕분에 명확해졌다.

    ‘송선영이 범인이야!’

    나는 오컬트를 제어하지 못하고 휘말릴 뿐이지만, 그녀는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이건 예측이 아닌 확신!

    그녀랑 대화를 나누고 얼마 안 지나서 회귀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작작 해야지!”

    무보수로 혹사당한 내 노동력이 아까워서 이젠 못 참겠다.

    자살?

    이젠 조금도 불쌍하지 않다. 본인이 원해서 계속하는 거니까. 제정신이라고 보기 힘들다.

    후다닥!

    분노에 휩싸인 나는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육상선수처럼 자리를 박차고 송선영의 교실로 달려갔다. 저번처럼 학교를 탈주할 틈을 안 주기 위해.

    “강문수 학생. 복도에서 뛰지-”

    “죄송합니다!”

    복도를 달리는 나를 발견한 선생님의 훈계도 무시하고 계속!

    “문수야. 점심시간에 축구 시합-”

    “너희끼리 해!”

    지금은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 기분이 아니다. 척추 빠지게 아르바이트하고 온 직후니까! 정신적으로 매우 피곤하다.

    탁!

    송선영의 교실 문을 당차게 열며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 있네!’

    그녀는 처음 봤을 때처럼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야!”

    “...정말이었네.”

    “송선영!”

    “잠깐. 목소리가 크잖아.”

    내 부름에 반응한 그녀가 눈살을 찡그렸다.

    “너, 딱 걸렸어!”

    “뭐가?”

    “네 짓이잖아! 그 탓에 나는 밤새 쉬지도 못했다고!”

    “확인해보고 싶었거든.”

    내가 정말로 기억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컬트를 발동했단다.

    “어이없네. 내일 운운하더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길어질 것 같아서.”

    “허!”

    좀 더 따지려는 그때, 주위에서 속닥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와! 밤새 못 쉬었다고?”

    “길어져서 송선영이 먼저 지쳤다는 얘기인가...”

    “남녀, 둘이서 어젯밤에 뭔 짓을 한 거야?”

    “강문수. 부러운 자식.”

    “지옥에나 떨어져라.”

    어째선지 터무니없는 오해들을 하고 있었다.

    “야! 따라와!”

    덥석!

    나는 송선영의 손목을 움켜쥐면서 교실 밖으로 끌고 나왔다.

    “아얏! 아프잖아! 알겠으니 살살 잡아- 아니, 놔!”

    “그래.”

    시끌벅적한 학교 복도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의 손목을 풀어줬다.

    “여기는 애들이 보잖아. 화장실로 가자.”

    “야. 갑자기 잡아끌어서 당황한 건 알겠는데, 나는 남자거든? 아니면 네가 남자 화장실로 올래?”

    “미쳤어?!”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야. 계단으로 와. 시간 없어.”

    “그래.”

    우리는 편하게 대화하기 위해 학생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계단으로 이동했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은밀한 장소로 이동하고 싶지만, 쉬는 시간이 5분도 안 남아서 어쩔 수 없다.

    “어떻게 회귀한 거야?”

    “비밀. 그리고 순서를 지켜. 내가 질문할 차례야.”

    “...해봐.”

    분노를 가라앉힌 나는 송선영이 질문하길 기다렸다.

    “어떻게 기억을 유지한 거야?”

    “무당이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무당...”

    “이번에는 내 차례. 어떻게 과거로 돌아온 거야?”

    “비밀.”

    “...자살이지?”

    “비밀.”

    “맞는 모양이네. 부정해도 소용없어. 표정에 다 드러났거든.”

    “......”

    똥 씹은 표정이 된 송선영. 그래서 더욱 만족스러웠다.

    ‘자살이라...?’

    신비한 마법의 주문이라도 읊는 건 아니었군.

    이건 내가 대충 찍어서 맞춘 게 아니다.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

    자살을 옹호할 마음은 없지만, 선택이나 판단의 실수로 사는 게 힘들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순 있다. 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에 그런 충동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과거로 다시 돌아와서 선택과 판단을 바로잡은 뒤에도 계속 자살을 한다?

    너무 이상하다.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도 간단히 삶을 포기하지만, 과거로 돌아온 뒤에는 미래의 정보를 활용해서 승승장구하기에 또 자살하지 않는다.

    ‘그런데 송선영은 계속했지.’

    그녀는 며칠 간격으로 반복해서 자살했다.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취미?

    안전장치도 없이 온몸의 뼈와 살이 뭉개지는 고통을 즐기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진 않다. 있더라도 진즉 이 세상을 떠났을 테고.

    “수업 늦겠네. 나는 간다. 다음 쉬는 시간에 보자.”

    “뭐?! 비겁하잖아! 너만 내 비밀을 듣고 튀지 마!”

    “말은 똑바로 해야지. 들은 게 아니라 스스로 알아냈거든?”

    진짜 뻔뻔하다.

    “...가지 마.”

    “싫은데?”

    “어차피 또 자살할 거야. 성실하게 출석해도 소용없어.”

    뚝.

    교실로 향하려던 내 발걸음이 그녀의 한마디에 멈췄다.

    ‘듣고 보니 그렇네?’

    여태까지는 오컬트의 발동 조건을 몰라서 현재에 충실했다.

    수업을 듣고, 적성검사를 받고, 아껴 쓰고, 아르바이트를 가고...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

    “질문해.”

    “생각이 바뀌었어?”

    “그래.”

    주도권을 송선영에게 빼앗긴 점은 마음에 안 들지만, 오컬트라는 칼자루를 쥔 건 그녀였다.

    “어떻게 기억을 보존했어?”

    “몰라.”

    “장난하세요? 성의 있게 대답해.”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든 송선영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나도 성의 있게 대답해주고 싶은데, 정말로 몰라서 그래. 너는 어떻게 회귀한 줄 알아?”

    “자살해서.”

    “참나! 너도 모르네.”

    “자살이라고.”

    “그게 모른다는 소리잖아.”

    “달라.”

    “뭐가 다른데?”

    “나는 죽으면 과거로 돌아간다는 규칙성이 있어.”

    “나도 네가 죽으면 과거로 돌아간다는 규칙성이 있어.”

    “......”

    “......”

    나의 완벽한 논리 때문에 잠시 말문이 막힌 송선영. 그녀가 애써 고집을 부리며 반박했다.

    “틀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기억을 잃어야 정상이야. 지금까지 그랬고.”

    “세상이 너를 중심으로 굴러간다는 생각은 좀….”

    “중2병 취급하지 마!”

    “사실이 그렇잖아. 너만 신비한 힘이 있는 특별한 인간이란 자신감이 너무 어이없달까.”

    “...알겠어. 이 문제는 이젠 그만 얘기해. 아까부터 나만 바보 되는 것 같으니까.”

    “잘 생각했어.”

    “무당 씨. 옥상으로 가자.”

    땡~♬

    그때,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이젠 엎질러진 물.

    아직 늦지 않았다는 천사의 환청이 들렸지만, 눈앞의 송선영이란 악마가 너무 거대했다.

    ‘내가 학교 수업을 무단으로 빼먹는 날이 올 줄이야!’

    수면 부족으로 쓰러져서 양호실에 온종일 누워있던 적은 있지만, 작정하고 학칙을 어긴 건 처음이었다.

    “빨리 와.”

    “그래. 그런데 굳이 옥상으로 가는 이유가 있어?”

    “있어. 네가 갑자기 쳐들어와서 친한 척했잖아.”

    “친한 척한 적 없다.”

    그녀의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정색하며 답해줬다.

    “손을 잡았잖아.”

    “손목이야.”

    “그게 그거지. 반 애들이 사귄다고 오해할 게 뻔해.”

    “겨우 그걸로?”

    “확실해. 2학년, 최강훈이 반에 왔을 때도 바로 오해했으니까.”

    “그렇군.”

    이 학교에는 남의 사생활이 궁금한 인간이 너무 많았다.

    “너랑 사귄다는 오해받을 바에 죽는 편이 낫잖아?”

    “말을 참 심하게 하네! 그 말에 설득당한 나도 싫고.”

    “알겠으니 빨리 와. 이 계단으로 과학 선생이 곧 올라올 거야.”

    “거참….”

    그녀에게서 자주 결석한 연륜(?)이 느껴졌다.

    “나만 잘 따라오면 안 들키고 옥상까지 갈 수 있어.”

    “가자마자 설명해.”

    “뭘?”

    “계속 자살하는 이유. 자살이 취미는 아닐 거 아니야?”

    “맞는데?”

    “......”

    “농담이야. 그러니 벌레 보듯 하지 말아줄래?”

    “하는 거 봐서.”

    우리는 학교 옥상에서 2차 간담회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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